What’s wrong? (4)

가설: 목회자와 교회 system이 해야하는 역할은 모든 사람들에게 모든 영적인 필요를 충족시켜주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내가 접하는 이런 필요들을 모두 system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럴수도 있다.
결국 자신의 신앙에 대한 책임을 대부분 자신이 져야한다는 생각을 나는 가지고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의 영적인 필요를 충족시켜줄 필요가 없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내가 이 사람들을 돕는건 뭐 대단한 것이 아니다.

그냥 성경공부를 하는거다.
성경 말씀을 펴놓고 한구절 한구절 함께 보면서 그 의미를 파악하고 그것을 우리에게 적용시키는 작업이다. 그러면서 내가 했던 생각들과 경험들을 나누기도 하고, 제안을 하기도 한다.
아니, 이렇게 성경공부하는게 뭐 그렇게 독특한 필요인가?
이건 오히려 이런 필요가 없는 사람들도 독려를 해서 함께 하자고 해야하는것 아닌가?

그리고, 앞글에서 이야기한것과 같이,
이런 필요가 있는 사람들이 상대적이로 소수라 하더라도 전략적으로 이런 필요를 가진 사람들이야말로 더 잘 독려해서 건강하고 튼튼한 신앙을 갖도록 해야 system이 건강하고 튼튼해지는 것이 아닐까.



What’s wrong? (3)

가설: 내가 접하는 사람들이 좀 독특한 사람들이다. 일반적으로 교회 system이 채워주지 못하는 need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그럴지도 모른다. 사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그렇게 별나게 무언가를 더 추구하지 않는다. – 그건 사실은 비극이다.
대형교회에 아무 생각없이 다니는 대중을 생각해보면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접하기에는 그렇게 생각없는 대중으로 교인들을 대하는 교회의 system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다. 신앙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떠나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떠나는 사람들은 어떤의미에서 제대로된 리더십을 발휘하거나 리더십을 support할 수 있는 부류의 사람들이다.

잘못된 교회의 system과 비뚤어진 목회자들이 있는 교회가 건강하게 바로잡히고 더 건설적인 방향으로 개선될수 있는 resource를 제공할 수 있는 사람들이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이렇게 system 안에서 resource를 받지 못하고 있다면 결국 이들은 system에 대한 소망을 잃어버리고 system에 대해 비관적이거나 무관심한 사람들로 남게 된다.

그러면 결국 system은 자정능력이나 발전할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리게 되고,
리더가 manipulate하기에 좋은 대중만 남게 되어버린다.
사실 지금 많은 교회에서 발견하게 되는 현상이다.

What’s wrong? (2)

스스로를 성경의 수퍼 전문가인냥 이야기하는 목회자들은 이 사람들에게 왜 아무것도 해주지 않는 건가? 목회자가 남아돈다고 다들 난리인데.

  • 몇가지 가능성내가 접하는 평신도들의 이런 필요가 그렇게 일반적이지 않다. 실제로 내가 접하는 사람들은 아주 독특한 그룹의 사람들일 뿐이다.
  • 목회자와 교회 system이 해야하는 역할은 모든 사람들에게 모든 영적인 필요를 충족시켜주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내가 접하는 이런 필요들을 모두 system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 사실상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적절하게 훈련받지 못했고, 그런 의미에서 내가 접하는 이런 사람들의 영적 필요를 채워 줄 방법을 잘 알지 못한다. 목회자들과 더 나아가서는 교회의 리더들이 받게되는 신학교육과 신앙교육의 내용에 문제가 있다.
  • 목회자의 자질의 문제이다. 목회자가 된다는 것은 어떤 그룹의 영적 리더십을 감당해야하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그룹이건간에 리더가 되는 것은 리더가되는 기본적인 자질이 있어야 한다. 지적, 정서적, 육체적, 그리고 목회자의 경우에는 영적 자질까지도.
    그러나 지적 능력이 되지 않거나 정서적으로 준비되지 않는 사람들이 목회자가되면 그 사람들을 교육시킴으로써 리더로 만드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 기독교 신학의 문제이다.
    현대 사회가 급격히 변해가면서 복잡하게 변하개는데 현대 기독교의 신학은 복잡한 세상을 제대로 해석해낼 능력을 갖지 못했다.
    현재 교회가 가지고 있는 신학적 패러다임 자체가 복잡한 세속 사회 속에서 살고 있는 평신도의 상황을 해석할 방법을 잃어버리게 되었고 그 속에서 아무리 뛰어난 목회자라도 평신도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 대부분의 교회와 상황의 문제다. 현재 교회라는 상황, 그리고 그 안에서 만들어진 어떤 독특한 문화가 있고 그 안에 있는 목회자를 포함한 교회 리더들이 그 속에 갖혀버리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이 그 밖을 바라보기 어렵게 되어버렸거나, 혹시 그 밖을 바라볼 수 있더라도 그것으로부터 나오기 어려운 환경이 되어렸다.
  • 기타 다른 문제들…
    여기에 언급되지 않은 다른 문제들이 있을텐데…
    혹시 글을 더 써나가면서 생각이 날지도…독자들도 좋은 생각들을 나누어주시길….

다음 몇번의 글에서 이 내용들을 조금씩 생각해보려고 한다.
문제의 근원을 딱 한가지로 규정하는 것은 어려울수도 있을테고, 부정확한 진단이 될수도 있겠다. 그리고 여러 원인들은 서로 그 내에서 다시 원인과 결과의 관계로 엮여 있을 수도 있겠고.

그냥 성경공부를 하면서 한편 이렇게 성경공부를 참여하는 사람들의 간절함이 너무 짠하고, 그래서 열심히 내가 준비해보겠다는 생각을 하게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일종의 답답함과 분노가 올라와서, 정말 정리가 충분히 잘 되지 않은 글들을 더 써보려 한다.

What’s wrong? (1)

작년 초에 온라인으로 성경공부나 다른 강의들을 열심히 하겠다고 결심하고는 나름대로 열심히 했는데…

교회 사람들, 코스타 간사들, 이렇게 저렇게 만난 사람들 해서 또 다시 성경공부를 하게 되었다.

현재는 두개를 하게 되었는데 어쩌면 하나를 더 해야할지도 모르겠다.

놀라운건, 작년 말에 빌립보서를 교회와 코스타 간사그룹과 했었는데 그 이야기를 들은 그 주변의 사람들이 나도 하고 싶다고 이야기를 해서…
이번에 사람들이 많이 늘었다.

우리는 큰 교회가 아니니까, 교회 그룹에서 잘하면 3~4명과 함께 하게 되겠다고 생각했고…
작년에 빌립보서를 마치면서 함께 공부했던 코스타 간사 그룹에 아쉬워하는 분들이 좀 있어서 어떻게든 필요하면 뭐든 하겠다고 offer를 했었다.

3~4명짜리 그룹이 되겠다고 생각했던 교회 그룹은 13명짜리 큰 그룹이 되어버렸다.
교회 소그룹인데 교회 밖에서 신청해서 하겠다는 분들이 더 많다.
내가 아는 아무개가 있는데 그 사람도 함께 해도 되느냐..는 식으로 문의가 좀 있어서 계속 더해지다보니 큰 그룹이 되어버렸다.

느끼는건….
이렇게 성경공부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고,
그 사람들의 필요가 각자 속한 교회나 그룹에서 채워지지 못하고 있는데…
그래서 나 같이 비전문가가 하는 성경공부에서라도 뭔가를 받아보고 싶다는 생각에 전혀 한번도 만난적도 없는 내게 연락을 해와서 함께 해도 되느냐고 하는 것이겠지.

작년 연말에는 교회에서 ‘목장 모임’을 인도하라고 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며… 좀 도움을 얻을 수 있겠느냐고…
다른 교회 다니는 몇분이 내게 물어봐서 zoom으로 소그룹 인도와 소그룹 dynamics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편 화가 나기도 하고 도무지 이해가 안되기도 한다.
나는 나름대로 꽤 바쁜 직장에서 죽어라고 일하면서 짜투리 시간에 조금 혼자서 성경공부하는 완전 비전문가이다.

왜 사람들의 필요가 나 같은 비전문가를 통해서 채워져야 하는 걸까?
왜 system은 작동되지 않는걸까?

단순히 요즘에 겪은 일들만을 두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지난 20여년동안 늘 그랬다.

New Year’s Resolution (5)

그리고 생각을 하면서 살기 위해서는,
생각을 하는 노력을 더 기울여야할 것 같다.

귀에서 이어폰을 떼고,
뭔가를 계속 배우겠다는 내가 가진 일종의 집착을 어느정도 포기해야할것 같기도 하다.
운전을 할때도 뭔가를 듣기보다 뭔가를 생각하는 시간으로 활용하려고 해보고…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생각을 위한 건강한 재료들이 계속 공급되기는 해야할 것 같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성경을 조금 더 제대로 공부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말고…
익숙하지 않는 내용을 독서등으로 배우는 것을 조금 더 시도해야할것 같다.



그래서,
별로 깊게 생각하지 않은 상태로 만들어본 올해의 결심.

생각좀 하고 살자. 그러기 위해서 조금 더 빠릿빠릿하게 살고, 생각의 여유를 두고, 생각의 재료를 섭취하자.

….

별로 잘 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한번 해보는 거지 뭐.

New Year’s Resolution (4)

예년과같이 생각도 좀 하고 반성도 하고 기도도 하고… 그런 시간을 거의 갖지 못한 작년 연말을 보내고…
그래서 이런 반성을 좀 해본다.

생각좀 하면서 살자.

그래서 이것이 내 새해 결심이다.

도대체 어떻게 생각을 하면서 살 수 있을까.
우선, 생각을 할 여유를 좀 만들어야 할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역설적으로 조금 더 빠릿빠릿하게 일을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일을 살짝 질질 끌면서 하는 때가 많았고,
그러다보니 자꾸만 쫓겨서 일을 하게 되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 마음이 더 바빠져서 생각할 여유를 많이 잃어버리게 되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첫번째 action item은 조금 더 빠릿빠릿하게 살자.
이건 멍하니 생산적이지 못한 것으로 시간 보내는 것을 줄이는 것을 의미할것이고,
쫓겨서 살기보다는 조금더 적극적이고 자발적으로 사는 것을 의미할 것 같다.
하다못해 운동도 좀 열심히 하고, 아침에 일어나면 침대에 누워서 전화보는 일 같은거 하지 말고…

New Year’s Resolution (3)

문제가 있다.
올해에는 작년과 같이 그렇게 분명한 결심이랄까 목표를 아직 세우지 못했다.

지난 연말에 참 오랜만에 잘 쉬었다.
마음껏 자고, 마음껏 쉬고, 대단히 게으르게 보냈다.
이런 휴식이 내게 그래도 조금 필요하긴 했던 거구나…

한동안 이렇게 쉬면 자연스럽게 생각도 좀 하게되고 그러다보면 작년을 돌아보고 금년 계획을 세우는 것이 되곤 하는데…
금년엔 그냥 완전히 다 shut down!

허어… 이것 참.
이거 당황스럽네.

그래서 생각해보았다. 아니 왜 이렇게 아무 생각을 못하겠는 거지?

생각해보니…
작년에는 그렇게 좀 생각할 여유가 없이 살았던 거다. -.-;
생각할 에너지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말 계속 뺑뺑 돌면서 생각을 하지 못했고,
생각의 흐름 자체를 잃어번채, 지쳐있는 채로 한해를 마무리했던 것 같다.

새해에 이건 좀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New Year’s Resolution (2)

작년에 내 새해 결심은 조금 더 열심히 살자… 뭐 그런거였다.
그렇게 결심했던 큰 이유 가운데 하나는 내가 이미 얻게된 것들이 있는데 그것들을 충분히 활용하여 나누며 살고있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직접적으로는 재작년 연말에 달란트 비유를 가만히 곱씹어보다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은 정말 많았다.

우선 내겐 시간이 있었다.
나는 비교적 여러 일로 바쁘게 살고 있는 편이긴 하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시간 여유가 많은 사람은 아니다. 그렇지만 나는 그 시간을 내가 쪼개서 쓸 수 있는 유연성(flexibility)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혹시 낮에 일을 다 하지 못하면 밤에 일을 마무리할 수 있는 경우도 있고, 우선순위를 정해서 급한 일들을 처리하고 나면 덜 급한 것들은 테트리스를 하듯이 빈 공간을 잘 채워넣으며 사는 것이 가능했다.
그래서 내게 시간이 있다고 생각했다.

내겐 여러 경로로 얻어진 지식이 있었다.
이건 내 전문분야의 지식도 있고, 내가 따로 공부해서 얻게된 다른 지식들도 있다.
기독교 관련 지식도 있고, 성경을 읽고 해석하는 skill이랄까 그런 것도 있고.
그런데 그 지식들을 충분히 잘 활용하고 있다고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내겐 제안적이지만 일종의 안정(stability)라는 것이 있었다.
이건 내 자신도 늘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회사가 불안정하면 나도 불안정한 마음을 가지고 살 수 밖에 없었다.
내가 대단히 부유하다고 볼수는 없지만 그래도 쪼들리며 사는 정도는 아니기 때문에 경제적인 안정도 약간은 있다.
적어도 이 안정이 주어져있는 이 시간동안에는 최선을 다해서 더 힘을 내어볼 수 있겠다고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결심한 것이 온라인으로 성경공부와 기독교 관련 공부를 조금 더 해보자는 것이었다.
혹시 그런 것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거절하지 말고, 또 그런 필요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적극적으로 다가가서 여러가지를 제공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1년이 52주 이니까, 적어도 그 절반인 26주정도는 한주에 90분정도씩 시간을 쓰도록 하겠다고 결심을 했다.

작년에 대충 따져보니까 90분짜리 세션으로 계산하면 거의 70세션정도를 했던 것 같다.
작년에는 목표를 추과달성(?)한 셈이다.

New Year’s Resolution (1)

새해 결심이라는걸 하는게 어떤땐 매우 의미있을 때도 있었고, 어떤땐 별 의미 없었을 때도 있었다.

새해 결심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는 대개 다음중 최소한 한가지를 포함한 경우였다.

(1) 나의 매우 고질적인 문제를 다루려고 할때
가령 나 같은 people pleaser는 다른사람의 기대를 맞추지 못하는 것을 매우 힘들어한다. 그래서 무리를 하게되는 경우가 많다.
언젠가는 거의 4~5년 이상 매우… 올해에는 사람들의 기대를 맞추면서 사는건 하지 말아야겠다고 결심을 했었고, 거의 매년 큰 진전없이 그해가 지났던 것으로 기억한다.

(2)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을때
예전에 컴퓨터 게임을 줄여야겠다고 결심을 했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그게 영 잘 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그 당시 내가 박사과정에 있었는데 박사과정이 잘 풀리질 않았고 그래서 일종의 도피처로서 컴퓨터 게임을 했던 것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정말 했어야하는 결심은 컴퓨터게임을 하지 말자가 아니라, 내가 지금 당면한 문제를 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마주하자 가 되어야 했던 것이었다.

(3) 결심의 내용이 모호할때
기도를 열심히 하자… 운동을 잘 하자… 뭐 이런 종류의 결심은 시간이 지나면서 희석되거나 흐지부지되어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기도를 열심히 하자는 결심은 어떻게 결심을 구체적으로 실행하겠다는 내용이 빈약했다.
매일 몇시에 몇시간 기도를 하겠다 뭐 이런 구체적인 내용이 없으니까 그 결심을 지속적으로 체크하면서 지켜나가기 어려웠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