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다운, 불쌍한 사람들

지난 월요일이었던가,
밤 10시쯤 Comcast 인터넷이 다 다운이 되었다.
그때 비가 좀 많이 왔는데 그것과 관련이 있었던 것인지 잘 모르겠다.

교회 카톡방에서는 회사 미팅중에 갑자기 끊겼다는 둥… 그런 이야기들이 나왔다.
그러다가 한 시간 정도 있다가 인터넷이 다시 되니,
인터넷 끊겨서 오늘 하루 쉬나 했더니 아쉽다고…
밤 11시에.

불쌍한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에겐 정말 이 사람들만이 하는 고민을 신앙으로 담아내는 일이 정말 필요하다.
그냥 ‘일반적인 신앙의 이야기’만을 해서는 이들이 경험하는 삶의 경험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그 신앙의 이야기가 묻혀버리기 쉽다.

새로운 생각, 다른 생각, 틀린 생각

몇주전 교회 소그룹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동성애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10명 정도의 사람이 모여 있는 그룹이었는데,
나는 궁금해서 그중 동성애를 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중 1명은 죄라고 생각한다고 했고,
2명은 잘 모르겠다고 했고,
나머지는 모두 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특히 80년대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은 1명만 잘 모르겠다고 했고, 나머지는 모두 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이야기했다.

  1. 이런 생각들을 나눌 수 있는 교회 분위기가 되어서 참 감사하고 좋았다.
  2. 이런 사람들은, 과연 동성애가 죄라고 하면서 반동성애 운동 열심히 하는 대부분의 (한인) 교회에는 절대로 다시 돌아가지는 못하겠구나… 싶었다.
  3. 그나마 그래도 우리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은 어쨌든 신앙이 보수적인 사람들일텐데… 이 사람들이 이렇다면…
    아, 반동성애가 기독교적 가치라고 이야기하는 교회는 적극적으로 젊은 사람들을 교회에서 몰아내고 있겠구나… 싶었다.
  4. 새로운 생각, 다른 생각, 틀린 생각…. 이것들을 좀 진지하게 분별해내는 수준높은 고민을 하는 것을 더 많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COVID-19 뉴스

Observation from the Front (RMC) download

  • 겨울 동안 계속 바이러스는 퍼지고 사람들이 감염되겠지만, 백신과 적절한 치료로 파괴적인 결과는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을 듯
  • 미국도, 전세계적으로도 감염자 숫자는 증가도 감소도 없이 유지되고 있다. 유럽에서는 증가 추세
  • 한국은 전세계가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테스트, 접촉 추적, 마스크, 거리두기, 그리고 이제는 높은 백신 접종률까지. 미국의 인구 10만명당 사망자 수는 211명, 한국은 5.8명.
  • 어린이 백신은 안전하다는 data가 많다. – 문제는 사람들이 그것을 신뢰하도록 하는 것.
  • 심근염(mycaditis)- risk는 낮고, 백신의 효과는 높다
  • Pfizer의 항바이러스약 – 입원과 사망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을 듯
  • 독감시즌이 왔다. 독감 예방주사도 맞아라!
  • 계속해서 마스크 쓰고, 거리두기하고, 백신맞고… 해야한다. 우리에게는 바이러스와 싸울 무기가 이미 있다

한밤중에 찾아온 친구 비유 (누가복음 11장)

누가복음 11장의 한밤중에 찾아온 친구 비유는 무슨 뜻일까?
한밤중에 친구에게 찾아가, 급하게 빵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빵을 요청하는 이야기.
그 친구는 너무 늦어서 못주겠다고 했는데, 그 친구에게 계속 졸라서 받아내었다고.
그러면서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의 친구라는 이유로는 청을 들어주지 않을지라도, 그가 졸라대는 것 때문에는 줄것이다.”
그러면서 나오는 말은,
“구하라, 찾아라, 두드리라…”

이 예수님의 가르침은 소위 ‘강청기도’를 주장하는 본문으로 많이 쓰인다. 하나님에게 조르라는 거다. 그러면 주신다는 것.

그런 것일수도 있겠지만…
내가 혼자서 생각해본 것은 이렇다.

누가복음은 8장 후반부부터 19장 중반부까지 꽤 많은 분량을 할애해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11장에 해당하는 이 많은 분량의 기간을 마태복음에서는 딱 1장에서 다루고 있다.
누가복음은 8장~19장의 내용이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인 것이다.

그런데,
적어도 내가 읽기에는…
8~19장에 나타나있는 내용은, 정말 임박한 하나님 나라, 이제 정말 아주 급박하게 돌아간다는… 일종의 urgency가 많이 드러나 있다.
예수님께서도 여기서부터는 꽤 돌직구를 많이 날리시는 편이고,
뭔가 그 이전에 감질나게 말씀하시던 것으로부터 팍팍~ 진도를 빼시는 분위기로 바뀐다.

그래서 나는 8~19장을 ‘종말론적’으로 읽는 것이 매우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종말론적이라는건, 예수님 재림에 대한 이야기라는 말이 아니라,
이제 막 임박한 하나님 나라의 도래의 이야기로 읽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의미에서 나는 누가복음 11장 앞부분에 나오는 주기도문도 그렇게 종말론적으로 읽을 필요가 있지 않나 싶고…
당연히 그 바로 다음에 나오는 이 밤에 빵을 얻으러 간 친구 비유도 그렇게 종말론 적으로 읽을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그러니까,
이제는 너희가 기대하던 하나님 나라가 드디어 왔다는 거다.

그러니 이제는 너희가 바라는 것을 bold하고 shameless하게 이제는 요청할때라는 거다.
그리고 이제는 구하고 찾고 두드리면, 그 하나님 나라가 온다는 거다.
그러니 이제는 지치지 말고, 쉬지말고 구하며 기도하라는 거지.

내가 아주 많은 주석을 찾아보지는 못했지만,
이렇게 해석을 하는 건 딴데서 별로 보지 못했다.
내가 너무 혼자 엉뚱한 생각을 하는건가… ㅠㅠ

출처를 알지 못하는 짜투리 지식

나는 강의를 위해서 책을 읽는다거나, 책을 쓰기 위해서 강의를 듣는다거나….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건…. 나는 강의/설교같은걸 하는 사람도 아니고, 책을 쓰는 사람도 아니니…
내가 강의를 듣거나 책을 읽는건, 그야말로 그냥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다.
그렇게 배우고 생각해야 내가 살것 같은 거다.
그렇게 지혜를 얻어서 어떻게든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인거다.

그래서 내가 알고 있는 예화, 짧은 지식들, 어떤 quote들은 내용을 대충 알고 있는데 출처를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ㅠㅠ
뭐 한마디로 살짝 무식하다는 거지…

습득한 지식을 잘 정리해놓는 작은 note라도 하나 마련해야할 듯 하다.
Google keep같은데 좀 정리를 해보든가.

마음의 평화라는 독약

내가 어릴땐,
하나님의 뜻을 잘 따르면 마음에 평화가 온다고 믿었다.
그리고 어쩌면 그때는 그것이 맞았을수도 있다.

내가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할때, 나는 그 기준으로 선택을 했고,
어떤 것은 좋은 선택이었지만, 어떤 것은 그냥 그저그런 선택이기도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마음의 평화가 없는 선택을 하는 것이 신앙의 선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된다.
너무 쉬운 마음의 평화는, 그저 너무 좁은 세계 안에 갖혀 있는 상태에서 나 중심적으로만 판단할때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나이가 어리고,
걸쳐있는 세상이 작을 때에는,
그저 내 마음의 평화를 추구하는 것이 어쩌면 옳을 길일수도 있다.

그러나 내 책임의 영역이 넓어질때 마음의 평화가 판단의 기준이된다면,
그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 되는 것은 아닐까…

경력과 경험

회사에서 많은 경력을 가진 사람과 이야기를 해보니,
막상 일을해보니 어디서 들은 건 많은데, 실제로 아는건 별로 없는 경우가 있다.

이력서 상에서는 많은 경력이 있는데… 그래서 분명히 이런 정도는 알아야 할 것 같은데…

왜 그렇게 될까?
어떻게 하면 그 많은 경력이 있음에도 막상 그 사람에게 어떤 경험으로 남아있지 않게 될수가 있을까?

어떤 일을 하든지 간에,
그저 듣는 것으로만 하고, 실제로 일을 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그렇다.
실제로 혹 일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냥 건성건성, 열심히, proactive하게 하지 않은 사람들이 그렇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들은 오랫동안 신앙 경험도 있고,
무슨 사역 경험도 있고…
정말 뭘 좀 알아야 할 것 같은데,
막상 이야기를 해보면…
음… 이 사람은 아는 것도 별로 없고, 경력만 있을 뿐 경험이 없구나… 하는 밑바닥을 보게되는 경우가 있다.

나는 전문적으로 사역을 하는 사람도 아니고,
뭐 그런 쪽으로 무슨 경력이 있는 사람도 당연히 아니지만…
그래도 이 정도 되었으면, 내가 하는 이야기가 그저 어디서 들은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로 할 수 있는 정도의 나이는 되었다고 본다.

다른 사람이 이해한 복음을 이야기하는 것을 넘어서,
내가 경험한 복음을 이야기할만한 나이는 된것이다.

회사에서,
혹은 교회나 다른 기독교 세팅에서,
경력만 있고 경험이 없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아, 내 신앙은 저렇게 되진 말아야 하는데… 하는 오싹함이 있다.

covid-19 뉴스

Observation from the Front (RMC) download

  • Endemic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 같다. (아직은 변이에 대한 불확실성은 있음)
  • 시뮬레이션 결과에 따르면 어린이 백신이 집단면역을 이루는데 매우 중요하다. 어린이 백신없이는 특히 변이가 일어날때 다시 입원과 사망이 늘어날 것.
  • Booster를 맞으면 좋다는 data가 점점 많이 나오고 있다.
  • 백신을 맞으면 혹시 covid-19에 걸리더라도 전파하는 기간이 더 짧다
  • 예전에 covid-19 걸렸던 사람들도 백신 한번 맞는게 좋다.
  • 1/3정도의 부모가 5-11세 자녀들에게 백신을 접종하지 않겠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 저소득층에서 이런 걱정을 하는 사람이 더 많다.
  • 1/3정도의 부모가 12-17세 자녀들 백신 접종에 부정적이다.
  • 1/5 정도의 어른이 백신 접종을 계속 거부하고 있다.
  • 접종 거부는, 저소득층, 낮은 교육수준, 시골, 공화당 지지자….등등의 사람들에서 높다.
  • 결국 COVID-19과 계속 함께 살아가게 될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 아직은 예측하기 어려운 것이 많으므로, 계속 백신 접종률 높이고, 저소득층/국가에 백신 공급하고, 마스크 쓰고… 등등을 하면서 사람 목숨 살리는 일은 계속해야한다.

Paul and the Gift

John Barclay가 2015년에 쓴 책이다.
재작년이었던가, 3년전이었던가… 시카고에서 김도현 목사님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요즘 hot한 책으로 Paul and the Gift라는 책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는… 뭐 학술적인 책, 혹은 대중을 위한 신학책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경건서적같은것인가보다 했었다.

그런데 최근에 내 youtube feed에 이 책에 대한 비디오가 떴다.
그래서 클릭해서 보았더니 이게 정말 대단한 책이라는 거다!

어떤 사람은 20세기 이후 성서신학계 최고의 책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고…

New Perspective on Paul과 Old Perspective on Paul을 절충하게 하는 책이라고 평가하기도 하고,
(그렇다는건 둘다 모두까기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할수도 ㅋㅋ)

내가 얼핏 보기살펴보기엔,
‘은혜’라는 개념을 여러가지관점에서 연구한 책인데,
은혜라는 개념이 바울 당시에, 그리고 그 전후에 어떻게 사용되었는가 하는 것을 연구함으로써,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바울 신학을 재정비하는 시도를 한 것이다.

책의 목차를 보니, 저자가 정리한 그 은혜의 개념을 가지고 갈라디아서와 로마서를 다시 해석하는 시도도 한 것 같은데…
한동안 갈라디아서를 보는 관점을 가지고 나름 약간 고민을 해왔던 나로서는 좋은 배움이 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보니까…
영어책으로는 672페이지, 한국어 번역책으로는 자그마치 1000페이지가 넘는 책인거다!

언제 용기를 내어서 한번 도전해봐야겠다는 생각만 주말에 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