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벌 (6)

그러면, 한국과 미국에서 내가 경험했던 차이는 무엇이었을까.

일단, 한국이 미국보다 학벌에 대한 차별이 더 심하다는 것이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이 꽤 심하다고 생각한다. 미국에 그런 것이 없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런데,
또 다른 차이를 가지고 오는 요인은, high profile의 학생들이 모두 Harvard나 Stanford같은 학교만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경제적인 이유로 혹은 다른 선호의 이유로 Ivy와 그 level의 학교들만을 가지는 않는다.
내가 민우 대학을 research 하면서 알게된 것이었는데 실제로 내가 이름도 잘 알지도 못하는데 들어가기는 Ivy 들어가기만큼 어려운 Liberal Arts 학교들이 정말 많이 있었고, 또 그렇게 competitive하지 않는 학교라 하더라도 완전 high profile을 학생들이 가는 경우가 있었다.
물론 학교 ranking이 낮아질수록 high profile의 학생이 가는 비율도 낮아지지만…
한국과 같이 모든 학교들을 일렬로 줄 세워서 학교를 지원하는 것과는 달랐다.

내 박사과정 지도교수와 같이 엄청 똑똑한데도 MIT를 가지 않고 University of Iowa를 가는 사람이 미국엔 그래도 있는데,
사실 한국에서는 서울대 갈 실력이 되는데 강원대를 가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래도 옛날엔 – 내 아버지 세대엔 – 좀 더 있었는데 요즘은 더 찾기 힘들다.)

또 그렇게 될 수 있는 큰 이유 가운데 하나는 미국에서는 대학마다 정말 특징이 있다.
어떤 학교는 아주 strict한 course work을 교육의 지표로 삼아서 교육하고, (그래서 core requirement가 많고)
어떤 학교는 반대로 아주 느슨하고 자유로운 course work을 짜 놓았다. (그래서 core requirement가 거의 없다.)

그래서 가령, strict한 course work을 원하는 사람은, 느슨한 course work의 학교의 커트라인이 더 높다 하더라도 자기의 선호에 따라서 더 낮은 ranking의 학교에 지원하는 것이다.

가령, 민우는 liberal arts education을 받기를 원했다. (그리고 나도 민우가 그런 교육을 받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민우의 이런 preference 때문에 내가 참 좋다고 생각했던 학교의 70% 이상은 고려 대상에서 제외되었었다.
물론 민우가 Harvard를 갈 실력이 되는데 못갔다 그런건 아니다. ^^
그렇지만, 실제로 민우가 Harvard를 갈 실력이 되었다 하더라도 나는 민우가 Harvard 가는 것은 막았을 것 같다. 그리고 MIT를 가겠다면 아마 결사 반대 했을 것이다. ^^

학벌 (5)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적어도 내가 경험하기에,
미국에서는 그 출신 대학교별로 실력차이가 그렇게 두드러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박사과정을 할때 만났던 여러 동료들이나, 직장생활을 하면서 만나왔던 사람들을 보면 그렇다.

물론 Stanford 출신들은 거의 대부분 엄청 똑똑하다. ^^
그리고 University of Nowhere 출신들은 당연히 Stanford 출신들에 비해 실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지만 University of Iowa 출신이 Stanford 출신보다 더 똑똑하고 일도 잘하고 하는 것을 보는 경우가…
전북대 출신이 서울대 출신보다 더 똑똑하고 일을 잘하는 것을 보는 것보다 더 흔하다고 느껴진다.
(사실 MIT의 내 지도교수가 학부가 University of Iowa 출신이었다. ㅎㅎ)

왜 그럴까?

내가 예전에 아마도 무슨 NPR의 radio program에서 들었던 내용으로 기억하는데… (fresh air나 radio lab이나 뭐 그런 것)
대충 내용은 이렇다.

미국의 고등학생들 중에서 아주 똑똑한 사람들을 sampling 해서 몇년에 걸쳐서 계속 study를 했다고 한다.
대충 비슷한 실력과 점수와 profile을 가진 두 그룹을 비교해 보았다.
top 1% 이상의 아주 뛰어난 그룹이었는데, 한 그룹은 Harvard나 Stanford 등의 top school에 들어갔고,
다른 한 그룹은 그 성적으로 자기 주에 있는 State school들을 들어갔다. (UC Berkeley 같은 학교가 아니고, University of North Dakota 같은…^^)
그리고 대학 졸업 후 몇년 후에 그 사람들이 얼마나 ‘성공’해 있는가를 비교해 보았다.
그랬더니만 두 그룹의 income이나 직장에서의 승진 정도나 등등이 거의 차이가 없더라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결국은 성공에 있어 그 사람의 자질이나 실력이 더 중요하지, 어떤 학교를 졸업했는가 하는 딱지가 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

어쩌면 내가 미국의 대학원과 직장에서 바로 그런 것을 본 것이 아니었을까.

학벌 (4)

학력고사 점수별로 일을 잘한다는 것은 분명 잘못된 편견의 부분이 많이 포함되어 있을테고, 극복해야할 bias일것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내가 ‘과학원’에서 보았던 그 차이가 어디에서 왔을까… 편견이라는 큰 factor를 제외하고 나열을 하자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지 않을까 싶다.

(1) 실제 능력의 차이.
어제 글에서 썼던 것 같이 고3이라는 특수 환경에서 다들 최선을 다해서 죽어라고 공부한 결과이니, 어쨌든 어떤 형태로든 그 결과가 학력고사 점수라는 것으로 반영되어서 나온다는 생각이다.

(2) 교육 환경의 차이
서울대 교수와 지방대교수 사이의 실력차이는 사실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특히 teaching skill에 대한 것은 서울대 교수들이 지방대 교수들보다 더 낫다고 이야기할 수 없다고 본다.
다만, 학력고사 310점짜리들이 모인 class와 학력고사 250점짜리들이 모인 class는 그 환경에서 차이가 날 가능성이 많이 있다. 서로 challenge하는 분위기라던가, 함께 만들어가는 높은 기준 등등이 다를 수 있을 것 같다.

(3) 자신감
서울대 출신들은 지방대 출신들보다 아무래도 더 ‘자신감’이 있을 가능성이 많다. 말하자면 같은 실력이어도 지방대 출신들이 주눅이 들거나 스스로를 제한하는 것이다.
자신감이 있다면 더 잘 할 수 있는데, 괜히 위축되고나면 잘하던 것도 버벅거리기 마련이다.

(4) 평가 기준의 문제
내 생각엔 이게 아주 클 것 같은데…
말하자면 평가를 하는 사람도, 평가를 받는 사람도 모두 ‘학력고사 잘보기’로 평가를 주고 받는 것에만 익숙해져 했는 거다.
그래서 실제로 대학원에서 연구를 하는데요, 학력고사를 잘 보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마치 대학원생활을 잘 하는것이라고 평가를 하는 것이다.
제대로 말하면, 사실 대학원에서의 평가기준은 얼마나 시험을 잘 보느냐 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되는대도 말이다.
다들 학력고사라는 기준에 익숙해서 성공한 사람들이 평가자가 되어 있으니… 그것 말고는 다른 식으로 사람의 능력을 평가할줄 모르는 것이 아닐까 싶은 것이다.

또 어떤 것들이 있을까?…
빠진 것들이 있을 텐데….

그런데,
나도 경험을 했지만, 분명히 이런 모든 한계를 뛰어넘는 사람들이 있다.
서울대 출신보다 나은 연대 출신들이 분명히 있고, 연대 출신보다 나은 성균관대 출신들이 분명히 있다.

다만,
서울대 출신보다 나은 연대 출신의 비율이,
서울대 출신보다 나은 충남대 출신의 비율보다 높다고 느껴지긴 했었다.
이것 역시 편견일수 있겠지만.

(이쯤에선 읽으면서 열 받는 분들이 분명 계실텐데… 아직은 조금 더 내 경험과 생각과 논지를 전개해볼 생각이다.)

학벌 (3)

이번 글은 아마 욕을 많이 먹을 가능성이 있는 글이다.
많이들 욕해주시길… ㅎㅎ

내가 한국에서 대학원을 다닐때, 거기에는 매우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재료공학과 였는데, 내가 대학교를 들어갈때 서울대 무기재료공학과는 공대 전체에서 제일 커트라인이 높은 과 가운데 하나였다. 그 서울대 무기재료공학과 출신들도 대학원에 있었다. 그보다 약간 커트라인이 낮았던 서울대 금속공학과 출신들도 있었다. 또 연대, 고대, 한양대… 그리고 아마 서울대 무기재료공학과보다 학력고사 커트라인이 최소한 50이상 더 낮았을 학교 출신들도 있었다. 그리고 나같이 학력고사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고.

모든 분들이 다 그렇게 생각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를 아끼던 (서울대 출신의) 어떤 교수님이 언젠가 나와 단 둘이 있을때…

그래도 과학원(그때는 KAIST를 과학원이라고 불렀다. ㅋㅋ)에 들어올 정도면 다들 똑똑한 것일텐데 말이야,
일을 시켜보면 거의 예외없이 애들이 학력고사 점수 순서대로 일을 잘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다.
나도 당연히 보는 눈이 있으니… 누가 더 공부를 잘하는지, 누가 더 실험을 잘 하는지 하는게 당연히 보였다.
그런데, 정말 정직하게 말해서… 그 교수님의 이야기가 얼추 맞았다.

예외가 없는 것은 물론 아니었다.
가끔 학력고사 점수 20점쯤 낮았을 사람이, 서울대 출신 사람보다 더 창의적인 경우가 있었다.
그런데 그런 경우에도 많은 경우에는… 저 사람은 참 창의적이고 일 잘하는데 아마도 이러이러한 점이 모자라서 서울대 못갔을꺼야… 이런식으로 설명이 되는경우가 정말 많았다.

그때 편하게 얘기할수 있는 ‘과기대'(당시는 KAIST 학부과정을 과기대라고 불렀다.) 애들하고 같이…도대체 왜 그럴까 그런 분석을 해보기도 했었다.
어설픈 분석으로 애들이 얘기했던 것은, 어쨌든 고3때는 다들 죽어라고 최선을 다해서 공부를 하니까… 어찌되었건 간에… 그때 점수는 적어도 그런 평가방식에 관한한 꽤 정확한 그 사람의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겠나… 뭐 그런 얘기들을 했었다. 물론 그 평가방식이 얼마나 합리적이냐 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겠지만.

지금 그때를 다시 생각해본다.
그렇게 KAIST를 졸업한 애들 중, 서울대 출신으로 지금 그저 ‘평범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지방대 출신으로 그보다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간 사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 우리가 ‘과학원’에서 봤던 서울대 출신과 지방대 출신의 명확해 보이는 차이는 무엇이었을까?
정말 우리가 생각했던 것 같이 그 차이는 그 사람들의 능력의 차이였을까?
후광효과는 얼마나 있었을까?

여러가지 복잡한 생각들이 있다.
(내일 조금 더 이어서…)

학벌 (2)

내가 민우를 평가하기엔,
민우가 정말 top school에서 완전 휘잡을 정도의 천재는 아니다. ^^

아니, 네가 그런걸 어떻게 아느냐… 이렇게 물어볼 사람이 있겠는데,
사실 내가 그런 천재는 아니더라도, 사실 천재들을 꽤 많이 만나봤다. ㅎㅎ
그래서 그런 천재들이 어떤지 안다.
그런 천재들은 늘 ‘이 정도 하면 참 저 나이에 대단하다’라고 생각하는 내 바운더리가 있으면 그걸 넘어서는 사람들이었다.
가령, 예를 들면, 덧셈을 가르쳐주면 혼자서 이리저리 생각하고나서, 그 다음날 곱셈의 원리를 설명을 해낸다던가,
미분을 가르쳐주면 혼자서 적분의 원리를 깨우친다거나 뭐 그런 류의 천재들 말이다.

민우는 참 똑똑하고, 성실하고, 꼼꼼하고, 나보다 훨씬 더 creative하지만, 적어도 내가 경험하기에 그렇게 바운더리를 넘어서는 것을 별로 많이 보여준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실망하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전혀. 내가 천재가 아닌데 뭐.)

나 스스로 좋은 학교들을 다니면서 자신의 능력보다 더 좋은 학교에 다녔기 때문에 심하게 불행하진 사람들을 너무 많이 보았었다.
그게 중간에 학교를 그만두고 어쩌고 그런 류의 문제가 아니다.
심지어는 그 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어느학교 출신이라는 몸에 맞지 않는 옷을 내내 입고 있음으로써 자신에 대해서 정확하게 볼 수 있는 시각도 흐려지고, 자신에게 맞지 않는 목표를 설정하면서 야망과 탐욕과 시기에의해 불살라지는 사람들을 참 많이 보았다.

나는 절.대.로. 민우가 그런 사람이 되게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가능하면 민우가 갈 수 있는 최대치의 학교보다 더 ‘낮은’ level의 학교에 가게하고 싶었다.

물론 여러 학교에대해 실제로 research도 해보고 하면서 알게된 것은, 학교의 여러 특성들이 꽤 다르기 때문에 학교들을 성적순으로 줄을 세우고 어느 학교가 더 높고 어느학교가 더 낮고… 식의 도식을 그리는 것이 참 바보같은 것이라는 것을 많이 깨닫긴 했지만 말이다.

학벌 (1)

1.
민우를 대학에 보내면서 정말 ‘좋은 학교’, ‘학벌’ 등에 대해 하루에도 몇번씩 여러가지 생각과 고민들이 넘쳤었다.
내 안에서도 욕심과 불안과 pride와 야망, 그리고 가끔씩 경건한 올바름 등이 마구 섞여 있는 것들이 계속 보였고,
민우를 바라보며, 민우와 대화하며, 그것들이 마구 터져나왔었다.

2.
작년 초,
한국의 ‘학벌없는 사회’라는 사회운동 단체가 해산했다.
그것은 한국이 더 이상 학벌에 의해 지배당하는 사회가 아니기 때문에, 그리고 자본의 독점에의해 지배당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학벌없는 사회라는 캐치 프레이즈가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이유에서 였다.

3.
대개 회사에서 새로운 회사와 어떤 형태로든 새로운 business deal을 체결한다거나, 새롭게 technical project를 할 경우, 일하는 상대의 linkedin profile을 쭈루룩 한번 보는 것은 꽤 흔한 일이다.
작년에 한국의 어떤 회사와 여러가지 대화를 하다가, 그쪽에서 우리 회사의 팀원들의 linkedin profile을 쭈루룩 뽑아서 table로 정리해놓은 것이 있는 것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내가 ‘저희에 대해서 아주 많이 조사를 하셨네요’ 라고 이야기했더니 그쪽에서 웃으면서, ‘그냥 linkedin에서 어떤 분들이 계신가 한번 보았습니다. 그나저나 이렇게 학벌이 좋은 팀은 제가 일하면서 처음 만나봅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나는 정말 그런가… 하고 그 사람이 조사해보았을 사람들의 학력 profile들을 보니…
정말 ㅎㄷㄷ 이었다.
나는 사실 내 동료들이 다들 그렇게 좋은 학교 졸업했다는거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4.
새해 벽두부터 너무 빡빡한 이야기를 하게되는 것 같아 좀 걸리긴 하지만… ^^
그래도 연말에 글쓰기를 쉬는 바람에 머리 속에 글 쓸 내용들이 엄청 많이 밀려있기도 하고… ㅋㅋ
지금 이 시점에서 이 생각은 한번 정리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번 시작해 본다.
아마 꽤 여러번에 걸쳐서 쓰게되지 않을까 싶다.

또 다시 마음이 흔들리다 (3)

먹고사는게 물론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는 해도,
믿음의 사람의 중요한 특징은 먹고 사는 것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 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내가 이 직장에 존재함으로써, 나 뿐 아니라 다른 사람도 먹고 살게 되고, 무엇보다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잘 되도록’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입장을 견지하기 위해서는,
내가 출세를 하는 것이라던가, 내가 더 돈을 많이 받는 것이라던가 하는 것들을 바라보면서,
정말 내게 그것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해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여러가지 이유로) 필요하고, 기회가 주어진다면 당연히 승진도 하고 출세도하고 해야할 일이겠지만,
정말 출세를 위한 출세, 성공을 위한 성공을 추구하는 것은 믿음의 사람들을 망가뜨리는 아주 치명적인 ‘독’이 된다.

그래서,
필요에 대한 것들을 많이 생각해보고, 사람에 대한 책임의식 같은 것을 많이 생각해보고, 그리고 나서야 좀 더 거시적인 관점에서의 비전 같은 것을 논의하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적절한 순서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이런 것들을 종합적으로 생각해 보았을때,
일단은 지금 이 직장에 최소한 조금 더 있을 예정이다. ^^

어제도 Carl이 내게 text도 해오고… 괜히 text로 뜬금없는 소리를 하면서…
내년 초에는 어쨌든 오랜만에 Carl이랑 점심이라도 한번 먹어야겠다.

(새해를 맞이하는 마당에 급하게 좀 정리해본다. ㅎㅎ)

독자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저는 1월 3일에 뵙겠습니다. 꾸벅~

또 다시 마음이 흔들리다 (2)

어쨌든 내가 요즘 하는 가장 중요한 생각은,
직장생활이… 세상을 변혁시키는 수단이라던가, 자아를 실현하는 수단이라던가.. 뭐 그런 것 보다도
우선 일차적으로 먹고살기 위한 것이라는 것이다.

이건 소위 ‘기독교 세계관’ 그런거 이야기하는 분들이 듣는다면 화들짝 뭐라고 할 이야기이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정말 그렇다.

아… 직장생활을 통해서 세상을 변혁한다거나 자아를 실현한다거나 전도를 한다거나 하는 등등의 일들이 무의미하거나 그것에 반대하는건 전혀 아니다. 모두 가치있는 일이고 (비록 이런 생각의 일부는 내 개인적으로 약간 skeptical하지만…) 그렇게 사는 사람들을 응원한다. (including myself)

그렇지만,
일차적으로는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내게 먹을것과 필요를 공급해주시는 수단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기독교인들의 직장윤리가 괜히 이상하게 꼬이게된 큰 이유가운데 하나는,
직장을 밥먹고 사는 중요한 도구로 생각하고 하나님께서 필요를 공급해주시는 도구로 생각하는 것을 덜 강조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그것이 결국 직장생활의 가장 기본적인 본질이고,
그 본질을 본질로 집중할때에야 비로소 어그러진 개인의 야망/욕망을 유사-기독교적 가치로 포장하는 것을 피할 수 있게 된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또 다시 마음이 흔들리다 (1)

두주에 예전에 내 boss였던 사람이 또 연락을 해왔다.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의 이름을 대면서 이 사람 아느냐고 물어보았다. 자기 밑으로 뽑을까 말까 망설이고 있다고.

그래서 이렇게 저렇게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약간 농담삼아서 “아… 거기 써있는 IMD나 CAD관련된 qualification만 내가 더 있다면 나머지는 나도 다 할 수 있는 건데… ”
이렇게 이야기했더니만,
“너라면 그런거 못한다고 해도 내가 무조건 데리고 오지! 그런데 지금 네가 하고 있는거 재미있어 보이는데 여기에 오라고 할수가 있겠니” 라고 이야기하는 거다.

솔직히 말하면 그쪽의 opening은 지금의 내 자리보다도 더 높은 position이고,
여태껏 내가 함께 일하면서 가장 chemistry가 잘 맞았던 사람과 함께 일할 수 있는 기회이고,
게다가 job description 자체도 꽤 재미있어 보이는데…

이제 이 직장 온 지 1년되었는데 그렇다고 후다닥 옮기는 건 너무 이르고,
그래도 지금 이 직장에서 어느정도 만족하면서 지내고 있는데…

또 다시 마음이 많이 흔들렸다.
이렇게 Carl하고 조금만 더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언젠가는 내가 후딱 넘어갈수도 있겠다 싶기도 하다…..

그래서 과연 내가 직장을 찾고 옮기는 기준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좀 고민을 해보게 되었다.

민우와 여행하다!

지난 목요일에 민우 대학 합격 발표가 나고,
동시에 역시 같은 날 기말고사가 끝났다.

무지하게 스트레스 많이 받고 고생 많이한 민우가 기특하기도 하고,
한편 늘 좋은 아빠가 되지 못한 것이 미안하기도 했는데…

그래서 민우가 Early decision에 합격하면 바로 민우가 원하는대로 일본이나 유럽 어디로 여행을 데리고 가겠다고 민우와 약속을 했었다.
민우 합격 발표를 보고나서 인터넷으로 가격도 알아보고, 내가 가진 마일리지도 톨톨털고…
해서 보니 유럽보다는 일본이 쌌다. ^^

그래서,
우선 민우가 가게될 학교를 찍고, 일본을 찍고 오겠다고 계획을 잡았다.
일본에서 돌아오는 싼 비행기가 한국을 경유해서 오길래, layover를 더 길게 잡고 한국도 하루 찍고 오는 걸로.
(엄마는, 연말에 무지하게 바빠서… 그냥 집에 있다. -.-;)

민우와 장난도 치다가,
진지한 이야기도 하다가,
맛있는 것도 사먹고,
사진도 찍고…
하루에도 몇번씩 안아주면서 지금 여행을 하고 있다.

출장다니면서 뭘 보거나 뭘 먹어도 하나도 재미도 없었는데,
이렇게 민우랑 가면 참 신이날 것 같은 생각이다.

민우도 많이 좋아하고 있다.
내게 참 좋은 성탄선물을 하나님께서 주셨다. ^^

다음주 초까지 blog update이 잘 안될 예정입니다.
독자 여러분 모두 Joy가 가득한 성탄 보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