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때문에 예수를 안 믿을 뻔 한 분과 만나다

지난 금요일,

박총 형제가 우리 동네에 와서, 좋은 강연을 해주었다. 

(혹시 원하시는 분은 하나의 씨앗교회 podcast에서 받으실 수 있슴다. ㅎㅎ)

그런데,

그 자리에서, 다 끝나고 의자를 정리하고 있는 와중에,

한 여자분이 내게 와서 나를 만난적이 있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나는 사실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 죄송…)

아마 3년쯤 전에,

어느 교회의 청년부 수련회에 강사로 갔던 적이 있었는데,

거기에 있었던 자매인 것 같았다.

그 자매 말로는,

내 그 수련회의 설교가 오랫동안 마음에 깊게 남았다고 한다.

(약간 으쓱… 해졌다.)

그런데,

곧 이어 하는 말이,

그 설교들을 듣고서는, 예수를 그만 믿으려고 했었단다. (허걱!)

설명인 즉슨,

내가 설교를 하면서, 복음을 잘 못 이해하고 있는 모습에 대해 설명을 했었는데…

그리고 복음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어떤 자세를 갖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을 했었는데….

자신은 도무지 그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고.

그래서, 만일 자신이 알고 있던 복음이 정말 그렇게 폭좁은 왜곡된 것이었다면, 차라리 예수를 그냥 안믿어 버리겠노라고… 

감사한건,

그분이 지금껏 결국 예수를 그만 믿는 결심을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휴우…)

그렇지만,

그분과의 짧은 만남은, 내게도 참 오래 기억에 남는 것이었다.

도대체 나 때문에 예수를 믿지 않게 되는 사람이 생겨서야 되겠는가…

내가 말씀을 대하는 자세가, 너무 가볍지 않아야 한다는 두려움이 참 깊게 생기는 대화였다.

내 아내는 

이젠 다른 사람들이 예수 믿도록 좀 이야기하라고 놀린다.^^

Ritual이 주는 유익

지난 토요일,

예쁜 부부의 결혼식에 참석했다.

신랑도 신부도 참 예뻤다.

정말 예쁘다는 표현이 잘 맞는 부부였다. ^^

이제는 주례설교에 있어서,

한껏 물이 오르신(?) A 모 목사님께서,

감기에 걸리신 와중에도 아주 물 흐르듯 부드러운 진행과,

간결하면서도 오래 기억에 남을 주례설교를 해 주셨다.

늘 함께 있으면 기분이 좋은 사람들과 함께,

새로 탄생하는 가정을 축하하며, 축복하며, 참 따뜻한 시간을 가졌다.

예쁜 햇살이 들어오는 혼인 예배 장소에 선 부부를 보면서,

아… 내가 16년 전에 저 자리에 섰을때 어떤 생각이었던가,

그 후에 참 어리석은 모습으로 남편 노릇을 하려 했던 시간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16년이 지난 지금에도, 나는 지금 내 아내를 만나 결혼하게 된것이 얼마나 감사한 것이던가,

뭐 그런 등등의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어쩌면… 내가 결혼을 해서 지금까지 지내온 시간보다,

지금부터 민우가 커서 결혼을 하게될 시간이 더 짧을텐데…

아직도 나는 내 결혼 생활이 성숙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더 커서…

결혼식에 참석할 때 마다, ‘돌이켜 봄’의 자세를 더 갖게 되는 것이구나…

뭐 그런 생각도 해 보았다.

결혼식이 되었건,

장례식이 되었건,

어린 아이의 돌, 어르신의 칠순, 팔순 생신…

그리고 작게는, 매년 맞이하는 생일…

뭐 이런 모든 삶의 milestone을 축하하는 ritual은, 

삶을 돌이켜보는데 유익을 주는 것 같다.

사람을 정죄하지 않기

나는 20-30대에,

내가 너무 쉽게 사람을 정죄하는 성향을 가진 것과 많이 싸웠었다.

나는 그야말로, 세상의 모든 사람이 마음에 차지 않았다.  (나를 포함해서.)

이 사람을 이래서 안되고, 저 사람은 이래서 안되고…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그렇게 날카롭던 내 정죄/판단의 날이 점점 무디어지고, 더 깊은 인간 이해에 대한 갈증이 깊어졌다.

내가 인간을 깊이 이해하는 수준이 더 깊어졌다고 말할 자신은 없지만,

인간에 대한 이해의 깊이가 예전에 비해서는 확실이 깊어졌다.. 그리고 또한 분명히 내 정죄의 칼날은 현저하게 무디어졌다.

개 20-30대의 열정과, 

인간을 더 깊이 이해하는 깊이가 함께 결합될 수만 있다면,

정말 참 좋을 텐데…

내 20-30대에는,

‘지혜’ 보다는 ‘열정’에 매달려 살았고,

이제는 

‘열정’보다는 ‘지혜를 더 좋아하게 되었구나..

하루 일과

뭐 하루 일과가 이렇게 잡히는건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project code 같은건 살짝 가려주는 센스 ㅋㅋ)

미팅이 두개 동시에 잡혀서,

한 미팅에 참석하면서, 다른 미팅은 전화로 cover할때도 있었다.

점심을 가만히 앉아서 먹을 수 있는건 대단한 luxury이다.

다른 회사로 옮긴다 하더라도,

이런 lifestyle에 얼마나 변화가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문제는, 바쁜 것이 아니라,

마음이 쫓기며 사는 것이 아닐까 싶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쫓기지 않으며 사는 삶은,

단순히 결심으로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많은 수양이 필요한 것 같다.

특히 하나님에 대한 신뢰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 아닐까 싶다.

Integrity

예전에 김인수 교수님께서 다음과 같은 equation을 보여주신 적이 있었다.

C: Character

Pt: Life path at time t

I: Integrity factor (0 or 1)

사람의 인격(C)는,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의 여정을 다 더한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 Integrity factor I 가 곱해진다.

Integrity가 있으면 1 이고, Integrity가 없으면 0 이다.

다시 말하면,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의 궤적이 어떠하든지 하는 것에 관련 없이,

그 사람의 integrity가 없다면, 그 모든 삶의 궤적은 모두 무의미한 것이 된다.

지난 주,

K 간사님으로부터 들었던 어떤 분에 대한 이야기가 머리 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소위 많은 ‘fan’을 확보화고 있는 리더가 integrity가 없는 것은,

그저 그 개인의 비극뿐 아니라,

그를 아끼는 많은 사람의 비극으로 연결된다.

Happy(?) Anniversary

11월 5일.

내가 애플에 들어와서 일한지 1년이 되는 날이다.

1년 전, 

참 많은 결심과 생각을 하면서 이 직장에 들어 왔는데…

1년이 지난 지금,

그 결심과 생각들 가운데, 

지금 생각해도 참 기특한 것들도 있고,

지금 생각하면 참 어설픈 것들도 있다.

이제 조만간 애플을 떠나려고 한다.

지난 1년간 정말 많은 경험을 했고, 참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

조금 생각이 더 정리가 되면,

시리즈로 한번 글을 정리하려고 한다.

1년전 내가 기대했던 모습과는 다른 Anniversary 이지만,

어쨌든,

Happy Anniversary 이다. ^^

다람쥐가 죽었다.

1년쯤 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만일 내가 운전하는 차에 어떤 사람이 갑자기 뛰어들어 자살을 하면 내가 어떻게 반응하고 느낄까 하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끔찍한 상상이었는데, 그런 신문 기사를 읽다가 든 생각이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아마 첫번째로 드는 생각은, 

‘이 사람 죽으려면 혼자 죽지 하필이면 내차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아니,

사람이 죽었는데, 말하자면 에이~ 재수 없어 식의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나는 정말 많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고, (하나님을 위해 이렇게 열심히 살고)…

그래서 일분 일초가 늘 아까운데,

이 와중에 이 엉뚱한 일이 벌어졌네… 에이…

혼자 그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섬찟 해졌다.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 내 삶과 세상에 대한 자세, 무엇보다 사람에 대한 생각이 그 정도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내 영혼이 병들어 있다고 생각했다. 아주 심각하게 잘못되어 있다고 스스로 진단했다.
….
어제,
운전하다가 다람쥐 한마리를 죽였다.
시속 40마일 정도로 달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다람쥐가 그야말로 내 차에 뛰어 들었다.
바로 뒤에 차가 따라오고 있어서, 급 브레이크를 밟을 수도 없었다.
차에서, 아주 가벼운 덜컹~이 느껴지고, 
백미러로 보니 다람쥐의 털이 날리고 다람쥐는 바닥에 죽어 있었다.
어제 그 다람쥐를 죽이고 나서는…
하루 종일 마음이 아프고 무거웠다.
예전 같으면 그냥, 에이, 멍청한 놈 하고 지나갔을 수 있었는데…
….
일년동안,
하나님께서는 내 영혼을 많이 치료해 시켜주신 것 같다.

참 감사한 날

벌써 오늘로 내 딸이 15살이 된다.

생각해보면, 참 준비 잘 안된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나름대로 잘 해보려고 노력도 많이 했고, 우리 방식으로 사랑도 많이 주었지만,

20대의 ‘철 없는’ 부모에게서 태어나서, 얘도 고생이 많았다.

아직 삶과 세상과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일천했던 나와,

어떻게 보면 지난 15년동안 이 아니는 함께 커 주었다.

이 아이를 사랑하며, 이 아이 때문에 걱정하며, 이 아이를 위해 기도하며,

나는 하나님을 만났고, 하나님은 나를 만나 주셨다.

지난 여름 이사오자 마자,

민우 방에 있는 white board 에,

다음과 같은 그림을 그려주었는데,

민우는 그 그림을 지우지 않고 있다. 


아빠와 엄마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과,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자신을 말로 다 할 수 없는 사랑으로 사랑하고 계시다는 것을,

마음 속 깊이 담고 사는 사람으로 자라나면 좋겠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아이의 생각과 마음이 더욱 깊어지고, 

하나님과 사람을 더 깊이 사랑하는 아이로 계속 커 주면 좋겠다.

 

오래 기다려온~

2004년 Boston Red Sox의 World Series때 Nike에서 내보냈던 광고이다.

1918년 마지막으로 우승했던 Red Sox는, 2004년에, 86년만에 처음으로 우승을 해낸다.

The Curse of Bambino를 끊었다고 난리였다.

그러나,

1918년 이후, Red Sox는 홈 구장인 Fenway Park에서 우승을 거머쥐는 승리를 거둔적이 없었다.

어제, 자그마치 95년만에, 그 일이 다시 이루어졌다.

무언가를 오래 갈망하다가 그 것이 마침내 이루어지는 것을 보는 일은, 감격스럽다.

Go Red Sox! 🙂

독서와 경험

지난 주말,

필라델피아에서는 KOSTA 공동대표 모임이 있었다.

여러가지 내용을 토론하고 나누는 것도 의미가 있었지만,

늘 그렇듯 밤에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여러가지로 유익했다.

이야기를 하다가 흥분을 하기도 했고, 가슴이 답답해서 말을 잘 하지 못하기도 했고, 싸~한 감동이 마음을 덮기도 했다.

그중 내 마음에 많이 남는 이야기는 이것이다.

나는 깨달음을 가르침/독서를 통해서 얻는가, 경험을 통해서 얻는가?

어떤 사람은, 새로운 깨달음을 독서나 기타 다른 가르침을 통해서 얻고, 삶 속에서 그것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는 반면,

다른 사람은, 새로운 깨달음을 삶의 경험을 통해서 먼저 얻고, 독서나 강의와 같은 가르침을 통해 재확인 하는 과정을 거친다.

물론, 누구든지 이 두가지의 경험이 다 있겠지만…

나는 내 자신을 가만히 생각해보니, 

삶을 통해서 얻은 깨달음을 독서나 강의 등을 통해서 confirm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았다.

아, 물론…

신앙의 연륜이 매우 짧았던 때에는 독서가 삶을 이끌던 때도 있었지만…

어떤 한가지가 다른 것보다 더 우월하다고 볼 수는 없으나,

가르침과 경험 가운데 어느 한가지만을 추구하면 적절한 균형을 잃을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