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o Serious

예전에는 내가 블로그에 농담도 올리고,
인터넷에 떠도는 재미있는 것들도 퍼다올리고 했었는데,
언젠가부터 그걸 할 수 없게 되었다.

facebook 같은 곳에서 그게 워낙 활발하게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어디 재미있는 것이 올라와 있으면,
그걸 퍼다 나르는 일이 꽤 중요했었는데,
이제는 facebook같은 곳에서 매우 빠르게 퍼져버리니,
이런 B급 블로그에서 그런일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렇게 하다보니,
지난 몇년간 이 블로그의 글이 많이 ‘심각해져’ 버렸다.

그래서 사람들이 쉽게 답글을 달기도 머시기하고…
쉽고 가볍게 읽을 수 없는.

지난주,
ㄱㄷㅇ 간사님의 사진 충만한 포스팅을 읽다보니,
아… 사진 같은걸 잘 찍으면,
나 같은 사람이 얼굴에 인상 잔뜩 쓰고 하는 이야기를,
훨씬 더 부드럽게 하는 것도 가능한거구나… 싶었다.

덜 serious해지도록 노력!

바쁘게 사는 죄 (6)

사람을 바쁘게 살도록 만드는 system은 악하다.
I repeat.
사람을 바쁘게 살도록 만드는 system은 악하다.

그렇다고 그 악한 system을 무조건 뛰어나오라는 것은 아니다.
그 속에서 해야할 일은,

1. 우선 그 system이 악함을 인정하는 것
2. 그 system 밖의 대안이 없을까를 찾아보는 것
3. 2번이 없다면, 그 system 안에서 좀 덜 바쁜 방법을 찾아보는 것
(이것을 위해서는 어떤 희생이 필요하다. 돈을 덜 번다거나, job security가 나빠진다거나, name value가 떨어지는 직장을 선택한다거나…)

이 시리즈의 글은,
중간에 다른 것을 쓸 일이 많아,
맥이 좀 끊긴 감이 있지만…

나름대로 내가 깊이 고민하는 것이어서 어떻게든 좀 정리를 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좀 맥이 끊기니, 나도 생각의 흐름도 좀 끊긴 감이 없지 않긴 하다. ㅎㅎ)

바쁘게 사는 죄 (5)

나를 포함해서,
바쁘게 사는 사람들이 갖는 아주 큰 딜렘마는 이것이다.

바쁘게 사는게 나쁘다는 것도 알고,
바쁘게 살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기도 한데,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가령,
나 같은 엔지니어가,
바쁘지 않게 사는 직업을 택하는 것이 가능할까?
정도의 차이가 어느정도 있긴 하겠지만,
기본적으로 ‘죽어라고’ 일을 하는 직업들 이외에 정말 대안을 찾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아주 바쁜 사람들중 어떤 이들은, (나를 포함해서)
사실은 약간 덜 바쁜 것을 선택하는 것이 가능한 경우가 있다.

사실,
내가 이 전 직장을 그만두고 지금 직장으로 옮긴 것도 그런 move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정말 9-5 하는, 널럴한 직장을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하더라도,
하루 14시간 일하는 직장으로부터, 하루 12시간 일하는 직장으로 옮기는 것은 가능하다는 것이다.

혹은,
평소에 아주 바쁘더라도,
휴가등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직장으로 옮기는 것이 가능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왜 그런 선택을 하지 않을까?

대부분의 경우에는,
조금 덜 바쁜 직장은, 덜 잘나가는 직장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바쁘게 사는 죄 (4)

그러나, 바쁘게 사는 것에 의미는 부여해야 하겠고, 그리고 그것을 미화할 필요가 있으므로…
나는 자꾸만 그 안에서 의미를 찾고자 한다.

많이 바쁘지만, 그 속에서 깨닫는 것을 기쁘게 여기고,
바쁘게 사는 속에서 사는 의미를 자꾸만 정당화하려 한다.

그렇게 하니, 당연히 매우 efficient하게 일을 하고,
일을 하는 측면에서는 successful하다.
그러다보면, 성공과 능력을 우상으로 추구하는 것은 더욱 심화되고,
그렇게 하는 속에서 내 영혼이 병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물론,
바쁘게 사는 것에서 주는 건강한 유익이 있다.
(언제 다른 기회에 이것에 관해서도 좀 정리를 해보려 한다.)

그러나,
바쁘게 사는 것 자체가 주는 해악이 크다는 것,
쫓기며 살도록 나를 drive하는 ‘system’은 타락으로 인한 distortion이라는 것,
사랑할 여유가 없이 사는 것은 죄라는 것 등을 기억하며 사는 것은 참 중요한 것 같다.

마치 늪에 빠진 사람과 같이,
바쁜 생활 속에 자꾸만 함몰되어가는 속에서,
이 악순환을 끊어낼 수 있는 건강한 영적 break-through가 필요한 것 같다.

어떤 눈물

어떤 눈물은, ‘가슴’이 움직여서 나오게 된다.
슬픈 영화를 보거나, 가슴 아픈 사연을 듣거나, 몹시 기쁜일을 겪을때 나오는 눈물이다.

이상하게 들릴수 있으나,
어떤 눈물은 ‘머리’가 움직일때 나오게 된다.
깊이있는 사색과 생각을 하다가 어떤 결론에 이르기되어 그것이 눈물로 연결된다.
말씀 묵상을 깊이 하다가 마지막에 탁~ 하고 터져나오는 깨달음과 함께 눈물이 흐르는 경우가 그렇다.

그런데,
어떤 눈물은,
그저 그 대상 때문에 자연스럽게 흐르게 된다.
내게는, 코스타가 그렇다.

96년부터 코스타에 참석해왔으니,
올해가 내 개인적으로 코스타 20주년이었다.

ㄱㄷㅇ 간사님의 블로그에 올라오는 글과 사진들을 보며,
facebook등에 뜨는 update을 보며,
간사들의 카톡 메시지를 보며…

뭐 특별히 마음이 더 찡했다거나, 깊은 깨달음이 있었다거나 그런것도 아니었는데,
그냥 눈물이 흘렀다.
매년 코스타에서 그렇게 많이 울었기 때문에 그냥 조건반사로 그랬던 것이었을까.

모든 이야기를 자세히 듣지는 못했으나,
그곳에 함께 하지 못한것이 참 안타깝고 속이 상했다.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어주신 모양이다.

동성 결혼에 대한 내 입장 (4)

8.
나는,
세를 과시하고 정치적인 이익집단이 되는 것은, 복음이 세상을 섬기는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복음이 세상에 영향을 끼치는 방법이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꾸만 물량주의의 함정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복음이 세상에 영향을 끼치는 방법은, 사랑의 섬김에서 나오는 authority이다.
세를 불려서 나오는 power가 아니다.
물론, 정치적인 방법을 통해서, 복음적 가치를 펼쳐나가는 노력을 해야한다. 그러나 그것은 언제나, 복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가지는 사랑의 authority의 강력한 support를 받아야 한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아… 저 사람들은 그래도 우리를 깊이 사랑하고 있어…
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그 genuine한 authority를 가져야 한다.

적어도 지금은,
미국도 한국도, 교회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 대해 사랑의 authority를 잃어버렸다.
그러니 지금 이 시점에서 어떤 agenda를 가지고 목소리를 높여도, 그저 비난만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나는 동성애에 대해서 보수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동성애에 대해서 나와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옳을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사람들로부터 많이 배우고 싶다.

미국에서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이 일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교회에게 어떤 말씀을 하시고 싶어하는 것은 아닐까… 좀 더 듣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외침을 좀 줄이고, 더 많이 들어야 하지는 않을까.

동성 결혼에 대한 내 입장 (3)

6.
그리스도인들이, ‘혼인’의 궁극적 authority가 어디에서 오는가 하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세속국가에서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혼인관계를 인정하는 것은, 국가가 그것을 인정했기 때문인가,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다시 말하면 교회가) 그것을 인정했기 때문인가.
나는 Catholic 신자는 아니지만, 혼인을 ‘성사(sacrament)’의 일부로 보는 Catholic의 입장에 주목해본다.
만일, 정말 동성결혼을 교회에서 용납할 수 없는 것이라면,
교회가 스스로, 그리스도인들에게 혼인관계를 authorize하는 유일한 기관임을 천명하고,
세상에서 인정한 혼인관계와는 또 다른 차원에서 교회에서 인정하는 혼인관계가 있음을 이야기해볼수도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교회 밖에서 혼인관계에 대한 내용을 혼탁하게 만들고 있다고 믿는다면,
교회 안에서는 오히려 세상과 다른 가르침이 무엇인가를 명확하게 드러낼 수 있는 기회이다.

허나… (약간 핵심에서 벗어난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핵심에서 벗어난 이야기는 아니다. ㅎㅎ)
교회에서 결혼관계 세미나라고 해서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결국은 행복하게 사는 것에 관한 이야기이다. 세상이 하는 것과 그리 다르지 않다. 행복한 가정생활이라는 것을 성경의 text로 정당화하고 있을 뿐.
복음주의 교회가 결혼에 대해 해줄 수 있는 이야기가 ‘행복한 가정생활’, ‘성공하는 자녀로 키우는 자녀교육’ 밖에 없으니….
세상에 대하여 할 말이 없는 것이다.

혼인 관계 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
그 하나님께서 맺어주시는 가정이 어떤 nature를 갖는 것인가 하는 것,
부부 갈등의 해결을 너무 shallow하게 추구하기에 앞서, 그 갈등 중의 부부에게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
뭐 이런 이야기들은 정말 교회에서 듣기 어렵다.

문제는,
shallow한 happiness를 추구하는 교회 문화 속에서,
지금 교회에서 하고 있는 혼인관계에 대한 이야기들이,
세속사회에서 하고 있는 ‘행복한 결혼생활’과 별로 다르지 않기 때문에,
진정한 결혼에 대하여 제대로된 논의를 펼쳐낼 수 있는 신학적, 목회적, 실천적 근거가 대단히 빈약하다는데 있다.

7.
만일, 동성결혼이 정말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을 행해 핏대를 올리고 소리를 지르기 이전에,
세상이 그렇게 흐르도록 만든 교회의 문제를 솔직하게 바라보며 회개해야 한다.
나는, 그것이,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다루어내시는 방법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

세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윤리를 선포해나가는 것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 하는 근본적인 생각이 부재한 상황.
교회론에 대한 이야기, 선교론에 대한 이야기, 이것들이 그냥 다 엉망진창이니…
십자가 깃발 들고 거리에 나가서, 얼굴 빨개져라 목청 높이는게 그리스도인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참 부끄럽다.

(내일 또 계속)

동성 결혼에 대한 내 입장 (2)

4.
나는, 동성애 자체를 성경이 지지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세속국가에서 동성결혼을 인정하는 것에 대해서는 조심스럽게 허용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가령, 나는 성경이 살인이나 전쟁을 지지한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세속국가에서 군대를 가지고, 전쟁을 하는 것이 허용될 수 있는 것 같이 말이다.
혹은, 국가권력이 ‘사형’이라는 제도를 통해서 살인을 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렇게 하는 것은, 세속국가가, 그 국민들이 행복을 추구를 보호하고 support하는 차원에서 그렇다.

좀 삼천포로 잠깐 빠지자면…
개인적으로, 나는 ‘국가’라는 institution을, 성경이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의미에서, 아나뱁티스트 전통의 생각과 비슷한 면이 있다.)
그래서, 국가가 저지르는 전쟁이나, 국가가 실행하는 사형과 같은 것 역시, ‘악’이라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 이것에 대한 논의는, 동성 결혼과는 별개의 문제이므로 언제 기회가 될때 따로 써보려 한다. (이런식으로 미루어둔 글쓰기 주제들이 한두개가 아닌데… ㅋㅋ)

나 개인적으로는, 동성애자들에게 civil union이라는 것을 허용하는 것이 적절한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하면 ‘결혼’ 혹은 ‘부부’라는 것의 전통적 견해를 manipulate하지 않고도 동성애자들에게 동등한 혜택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동성애자들은 그것 역시 차별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국가나 정부는, ‘부부’라는 이름을 그들에게 허락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그리스도인들이 그걸 반드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리스도인들이 이것을 어떻게 볼 것이냐 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그건, 내일의 글에서 다루어 보겠다.)

5.
동성애를 반대하는 입장을, 세속국가에서 이야기하려면, 좀더 세속국가에서 통용되는 언어로 소통해야 한다.
그냥 그게 죄라는둥, 그렇게 하면 에이즈 걸린다는 둥… 논리도, 개연성도, 사실에 근거한 치밀함도 부족한 것을 가지고 들이대는 방식은 결국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만 “돌아이”로 만든다.
동성애 반대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돌리는 글의 내용을 잃어보면… 많은 경우 완전 가관이다. 사실에 대한 왜곡과 과장, 논리의 비약, 과잉일반화 등이 넘쳐난다.
동성애에 대한 이슈를 이야기하려면, 그 이슈에 대해 적어도 조금은 공부를 해야 하지 않을까…

(내일 또 계속)

괜찮을 줄 알았는데….

음… 괜찮을 줄 알았는데,
금년에 바쁘고 정신도 없어서, 그냥 괜찮을 줄 알았는데…

어제 밤에는,
ㄱㄷㅇ 간사님 블로그의 사진과 글들,
kostavoice의 글들,
간사들의 카톡 message,
facebook 등에 올라오는 update
등등을 보며,
많이 울컥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아직 사람들이 오지 않은 공간에서,
그 공간을 채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많이 많이 울컥했습니다.

코스타를 섬기면서 배우게된 가장 중요한 영적 원리는,
사람들이 잘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 섬기는 기쁨이 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 제 30대 전부를 던져서… 그리고 40대 후반에 이르도록… 몸을 던져 헌신하면서도,
적어도 코스타에서는 언제나 ‘뒤에서’ 섬기는 사람으로 남고싶다는 욕심을 계속 가졌었습니다.
더 이상 그러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냥 몸쓰며 기도만 많이 하는 그런 사람으로 남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뒤에서 몰래 기도하는 사람들,
우는 아이들만을 돌보며 한주를 보내는 ‘시니어’ 간사들,
밤 늦게 체크인을 하는 한 사람을 위해서 밤 늦게까지 자리정리를 하지 않고 기다리는 등록 간사들,
이런 사람들이 그토록 많이 부럽습니다. 그리고 참 많이 사랑스럽고 자랑스럽습니다.

이제 우리 간사들이 저를 얼마나 ‘선배’로서 생각해주는지 알 수 없지만,
일부 간사들은 제가 일대일로 말을 나누어보지 않은 사람들도 있지만,
우리 간사들이 한 사람 한 사람 다.. 그저 제 동생들 같아서 많이 울컥합니다.

간사들이 서로 카톡하면서 어느 건물 어디에서 뭐 가져다달라고 이야기하는걸 읽으면,
그 움직임이 빤히~ 다 상상이 됩니다.

정말 괜찮을 줄 알았는데…
금년엔 그냥 덤덤할 줄 알았는데…
2000마일 떨어진 곳에서 소식을 들으며 혼자 눈물 콧물을 찔찔… 합니다.

제가 그곳에 있지 않은 것이 많이 속상하고 억울하도록, 풍성한 집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정말 그러면 좋겠습니다.

동성 결혼에 대한 내 입장 (1)

내 마음은 온통 휘튼에 가 있지만,
지난 주말을 거치면서 미국과 한국 모두에서 난리가 난 이슈에 대해 간단히 내 생각을 정리해보아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생각은, 당연히 바뀔 수 있는 부분이 많이 있다. 아직은 나도 잘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아서…)

1.
기본적으로, 나는 동성애에 대해서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성경의 text에서는 동성애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요 아래 쓰는 내용을 읽으면, 그래서 너는 동성애를 지지하냐… 뭐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실까봐… 먼저 이렇게 천명해 놓고…)

2.
그러나,
나는 동성애에 대해서, 다르게 성경을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므로 나는, 내가 동성애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생각이 물론 있지만, 그것을 가지고 따발총을 쏘아대는 식으로는 반응하지 않으려 한다.

성경에 권위를 두고 그것에 submit하는 것은 건강하고 좋은 것이지만,
성경의 어떤 해석에 권위를 두고 그것에 submit 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나는,
혹시 먼 시간이 지난 이후에, 동성애를 반대했던 사람들이 대단히 그것에 대해 부끄럽게 여기게 될 가능성을 닫아놓지 않고 있다.

3.
비록 동성애에 대해서 나름대로 내 입장을 가지고 있지만, 나는 그것이 지금 그리스도인들이 싸워야하는 가장 중요한 이슈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걸 가지고 너무 열받아 하거나, 낙심하거나, 혹은 좋아하는 것은 지나친 에너지 낭비가 아닐까 싶다.

그리스도인들의 핵심적인 싸움이, 지나치게 contemporary해지면, 자칫 그 문제에 함몰되어 더 큰 것을 잃게되곤 한다. 교회의 역사 속에서도 그런 일들이 많이 있었다.

신학적으로 너무 급하게 동성애를 반대하거나 지지하려는 근거를 찾아, 상대를 공격하려 하는 것 보다, 좀 흥분을 가라앉히고 차분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것이 동성애를 타파하기 위한 것이었나?
적어도 지금 어떤 사람들에게는, 교회의 message가 그런 것처럼 생각되는 형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