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로 양이 차지 않는다…

참 이상하다.
QT는 지난 20여년간 내 신앙생활을 지탱해온 중요한 축이었는데…

요즘은 그 QT가…
뭐랄까… 양에 차지 않는 느낌이다.

그리고 QT를 하면서 자꾸면 역사적 context등을 따지는 습관들이 나와서,
나 스스로를 당혹하게 만든다.

나의 이런 ‘증상’과 관련해서…
다음의 기사가 매우 눈에 띄었다.

http://www.newsnjoy.us/news/articleView.html?idxno=1829

마음에 들지 않는 직장 동료

같은 팀에 있는 어떤 직장 동료가 참 마음에 들지 않는다.
매우 이기적이고, bossy하고, nosy 하다.
뻔히 다 아는 얘기를 자신의 입으로 이야기하여 자신이 주도권을 잡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고 싶어한다.
여러가지 세팅에서 그 자리에 있지 않은 다른 직장동료 흉을 보는 경우가 많다.
애매하게 비꼬는듯한 어투로 ‘겸손한척’ 하는데, 이것이 아주 효과적인 self-defense mechanism이 되어 더 이상의 argument로부터 자신을 보고하는 역할을 한다.
늘 다른이의 말을 끊고 자신의 말을 하려고 하고 함께 일하는 사람에게 무리한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강자엔 자신을 낮추고, 약자에 대해서는 고압적인 자세를 취한다.

나는 이 사람과 꽤 많이 부딛힌다.
다소 오지랖이 넓은 나는, 이 사람이 이런식으로 행동하는 것을 그냥 고분고분 봐주지 못하는데,
문제는 내가 그것을 통크게 받아주거나 너그럽게 품을 capacity가 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대담하게 그 문제를 그 사람에게 이야기할 용기도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주 애매한 긴장을 유지하며 이 사람과 지내고 있는데…

최근 이 사람이 내가 하는 어떤 일에 대해 또 아주 짜증나게 bossy하면서도 nosy하게 접근해왔다.
나는 그냥 쌀쌀맞게 대하고 말았는데,
생각해면 생각할수록 화가 나기도 하고… 게다가 이런 식으로 우리 팀의 chemistry를 흐려놓는 행동을 뭔가 저지해야겠다는 어줍잖은 의협심에 이 사람과 대결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이 사람이 현재 하고 있는 일은, 말하자면 자신의 전문분야가 아니다. 오히려 내가 그 분야의 전문성을 더 가지고 있다고 할수 있다. 게다가 이 사람이 억지를 부리는 경우가 있으므로, 나름대로 논리의 헛점도 있다.

내가 받는 유혹은,
내가 가진 전문성과 논리로 이 사람을 짓눌러버리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 사람이 스스로를 작게 느끼도록 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실제 그런 시도를 하다보면…
그런 작전이 먹히지도 않은 뿐 아니라… (더 큰 갈등만 불러일으키고 나도 괜히 모냥도 빠지고. -.-;)
이 사람도 이 사람이 가진 self defense mechanism을 더 작동해서 더 좋지 않는 쪽으로 몰려가는 것을 보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더 큰 문제는, 그러는 와중에서 내가 망가지는 것이다.
마음의 평안이 없어지고… 지배하려는 욕망으로 내가 가득차게되는 것을 발견한다.
내가 가진 사랑이 아니라, 내가 가진 힘으로 이겨보려는 욕심이 나를 지배하게 된다.

자세도 중요하다!

주일 설교에서,
목사님이 전 교인에게 월요일 하루만 ‘부정적인 것들’을 없이 사는 날로 하자고 제안을 했었다.
불평하지 않고, 불만을 말하지 않고, 부정적인 말을 하지 않고…

어제 하루,
정말 그렇게 해보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아아… 정말 내가 하루 종일 얼마나 많이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서 사는지!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않고 살려고 하니…
정말 할 생각이 별로 없었다!

그 부정적인 생각, 불평, 불만 중 많은 것들은,
내 ‘거룩한’ 신앙적 사고와 열심에서 나온 것이었다!

은혜에 대한 개념이고 뭐고 간에,
그저 이 부정적인 생각의 cycle로부터 나를 건져내는 것이 정말 중요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은혜에 대한 개념이 내게 온전하게 이해되지 못한, ‘깊은’ 문제가 내게 있다고 생각했으나,
어쩌면 내 문제는 삶의 자세를 바로 잡아야하는 ‘얕은’ 문제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괴로워야 하는데, 괴롭지 않다면?

우리 그룹은 참 사람들이 좋다.
우리 그룹 리더를 비롯하여 다들 참 성품이 좋은데…

최근,
유난히 계속 bossy 하게 굴면서 자꾸만 남들을 깎아내리고 자신을 높이려는 어떤 한 사람이 마음에 걸렸었다.

계속 내게도 와서 참견도하고,
마치 내가 하는 일을 자기가 감독이라도 하는양 굴고,
게다가 내 앞에서 다른 사람들 깎아 내리며 욕하기도 하고…

참고 참다가,
어제는 내가 한번 터졌다. -.-;

그 사람이 또 참견하고 잘난척하고 게다가 자신이 잘못한 것을 다른 사람이 잘못한것으로 덮어씌우려고 하는 것을 보고는… 내가 참지 못하고 쏘아붙였다.

약간 언성을 높이며…
그 사람의 잘못을 조목조목 따졌다.

그 사람은 이내… 조용해졌고,
내게 갑자기 무척 고분고분해지며 친절해 졌다.
(약자에 강하고, 강자에 약한… -.-;)

그런데…
이런 상황을 겪고 나면…
마음이 찜찜하고 내 행동이 후회가 되고, 그 사람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고,
성령님의 인도에 순종하기 보다는 내 옛성품이 나온 것을 안타까워하는…
그런 마음이 되어야 하지 않나?

그저…
내 마음에는…
에이… 속시원하다…는 생각만 드는데…
이것은 어쩌면 내가 내 성품을 성령의 인도아래 다스리는 일을 게을리하고 있었다는 증거는 아닐까.

며칠 더,
어제의 incident를 곱씹어보며…
내가 내 성품을 그리스도인 다운 것으로 성숙시켜나가는 일들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점검해 볼 일이다.

바쁘다

뭐 내가 자주 투덜거리듯이…
요즘 바쁘다. ^^

회사일은 계속 ‘급한’것들이 내게 떨어지고 있고,
계속되는 이메일 폭탄에,
수없이 걸려오는 전화들,
매일 계속되는 conference call,
섬기는 모임에서 해야하는 일들…

한동안
아… 바빠지는구나… 지친다…
이렇게 생각을 했다가,
요즘엔 살짝~ 이 바쁜 속에서 경험하는 ‘생기’를 찾는다.

내가 다 처리할 수 없는 일들이 쏟아지기 때문에,
차라리 내가 아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경험한다.
(내가 참 자주 망각하는 것이다 – 내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이라는 사실)

바쁜 일정을 쪼개어 분단위로 시간을 쪼개어 지내다보면,
내 헌신의 자세를 다시 추스리게 된다.
마치 운동을 할때 지방이 분해되는 것 같이… 내 삶속에서 더러운 찌꺼기가 태워지는 것을 경험한다.

물론,
바쁜 생활 속에서 내 spirituality가 깨어지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겠지만…
하나님께서는 나같이 허둥지둥 하는 사람의 분주함 속에서도… 온화한 미소를 짓고 계신다.

어른을 섬기는 일

가끔은, 나보다 나이많은 ‘어른’을 내가 섬겨야 하는 경우가 있다.
그 어른이 물론 존경받을만 하거나, 나를 잘 이끌고 인도해줄 수 있는 경우라면 내가 기꺼이 그 관계를 누리며 지낼 수 있으나…
그 어른을 내가 ‘이끌어야’하는 경우라면, 이야기가 좀 다르다.

어른을 이끌어야 하는 경우에도 크게 두가지의 경우가 있다.
첫번째는 그 어른이 나로부터 ‘배우려는’ 자세가 있을 경우. 이럴 경우에는 내가 그분을 존중하고 겸손하게 섬기면서 무례하지 않게, 그러나 때로는 단호하면서도 직설적으로 함께 할 수 있다.

그러나 두번째 더 어려운 경우에는 그 어른이 나로부터 배우려는 자세가 없거나, 자신이 나이가 많기 때문에 우월하다고 생각하거나, 혹은 자신을 과대평가하거나, 혹은 나이어린 사람으로로부터 인도함을 받는 것을 ‘위협’으로 느끼는 경우이다.
이런 경우엔 참 여러가지로 힘들다.

많지는 않지만 내가 이런 두번째 경우에 빠졌을 경우에는, 나는 그냥 손을 들어버렸던 것 같다. 이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라고 이야기하며 포기했다.

최근,
내가 존경하는 어느 선배님이 이런 상황에서 어른을 겸손히 섬기면서, 지혜롭게 대화를 하면서, 결국은 그 어른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볼 기회가 있었다.

어른에 대한 존경/존중과, 지키려는 진리에 대한 확신, 그것을 겸손하게 present 하는 자세, 두려운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모습, 그리고 결코 사람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설득하고 매달리고 품고 사랑하고 기도하는 자세…

하나님을 사랑하며 사는 것은,
열정만으로 이루어 지는 것도,
테그닉으로 이루어 지는 것도,
연륜으로만 만들어 지는 것도,
지식으로 세워지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며 사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을 가지고 사는 것이 아닐까 싶다.

예수를 믿지 않던 시절, 예수를 막 믿게되었던 시절

나는 모태출석 교인이다.
어머니께서 나를 태중에 가지고 계실때부터 교회 출석을 했다.

내가 그 신앙을 내 개인의 것으로 받아들인것은 대학교 3학년때의 일이었다.
그 이전까지는 그 신앙을 깊이 곱씹어볼만큼 내가 넉넉하지 못했던 것이리라.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아직 신앙을 갖고 있지 못하던 시절,
신앙이 없으면서 신앙이 있는 척 했던 시절,
진리에 대하여 목말라 했던 시절,
그리고…
그 진리를 막 발견한 직후 내 생각과 감정과 마음이 급속히 바뀌어 가던 신앙의 초기 단계…

이것들에 대한 기억이 자꾸만 희미해진다.

그래서,
내가 그 당시에는 매우 어렵게 받아들였던 개념이나 깨달음들을,
너무 가볍게 여기거나 당연한 것으로 치부해버려 내가 섬기는 사람들을 당황하게 하는 경우가 있지 않나 싶다.

기회가 되면,
내가 예수를 믿지 않던 시절에 했던 고민들,
또 내가 막 예수를 믿은 직후에 했던 고민들만을 다시 깊이 곱씹어보는 시간을 좀 갖을 수 있으면 한다.

이 블로그에도 간단하게 그것들을 좀 올리고.

교만함과의 싸움

교만함과의 싸움이 참 힘들다…
때로… 마음 속에서만 가지고 있었던 교만한 생각을 그저 말로 한번 실수로라도 한번 내 뱉으면…
그나마 마음 속으로만 그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 보다 훨씬 더 나쁜 영향이 있는 것 같다.

교만한 생각 자체가 없다면 정말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그 생각 자체가 꿈틀거리는 것을 자꾸만 누르며… 혹시라도 내 입으로 삐져 나올까를 계속 경계해야 하는 듯 하다.

자주 눈을 감자

나는,
유난히 ‘번잡한’ 사람이다.
그래서 늘 무엇인가를 해야한다.
하다못해 그것이 web surfing이든, 전자오락이든…
그냥 가만히 앉아서 생각하는 것을 잘 못하는 것 같다.

오늘부터는,
자주 눈을 감는 훈련을 해보려 한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그냥 ‘아무것도’ 안하고 그냥 하나님을 ‘느끼는’ 시간.

점심 시간에는 적어도 10분 정도씩 나만의 아지트에서…
내 말을 쏟아놓는 기도가 아니고,
정말 아무것도 안하고 하나님과 함께 앉아있는 그런 시간을 가지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