싼타마스!? 그리스마스?!

지난 주말, 결혼한지 4년만에 처음으로 집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갖게 되었다. 그동안 살고 있는 집이 워낙 좁아 트리를 놓을 자리도 없었고, 그리 비싼 것은 아니지만 트리를 장만할 경제적 여유도 없었을 뿐 아니라 결혼을 한지 1년만에 낳은 – 이제 세돌이 막 된 – 딸 아이의 안전을 위해서도 예수님 생일을 축하하는 장식을 쉽게 집안에 들여놓기 어려웠던 터였다. 그러나 금년엔 이제는 조금씩 사리분별을 하는 아이의 정서를 위해서도 예수님 생일을 더욱 드러나게 기뻐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조그마한 인공 소나무 하나를 사왔다.

그런데 문제는 그 크리스마스 트리를 장식하는 장식품들이 문제였다. 이제는 잠자리에 들기 전 눈을 꼭 감고 기도하는 훈련을 시작한 딸아이에게,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오신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를 가르치기 위해 마련한 크리스마스 트리인 만큼 정말 예수님의 생일을 축하하는 장식들을 달고 싶었다. 반드시 “말구유에 놓인 아기 예수님”들로만 장식을 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정말 크리스마스 정신(spirit)에 맞는 장식을 하고 싶었다. 하나씩 장식을 걸며,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는 세살박이에게 크리스마스에 대해 설명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장식품들을 하기 위해 가까운 백화점이나 할인 매장등에 갔을 때 우리는 정말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나타내는 장식을 찾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저 반짝이는 전구들, 가짜 눈, 반짝거리는 금줄, 눈사람, 산타 클로스, 루돌프, 호두까기 인형 등은 어느 곳을 가든지 쉽게 발견할 수 있었으나 정말 예수님의 탄생과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장식은 아무리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었다. 가장 그나마 비슷한 것이라곤, 크리스마스 트리의 맨 꼭대기에 다는 별과, 일부 천사의 날개(?)를 단 눈사람 장식들이 전부였다.

결국
우리는 제법 떨어진, 그러나 제일 가까운, 기독교 서점에 가서 아주 빈약한 장식 몇 개를 살 수 밖에 없었다. Joy 라고 크게 써 있는 반짝이가 박혀있는 글자 장식과 천사 장식 몇 개… 그 가운데 내 시선을 붙들었던 장식 하나가 있었다. 그것은 화려한 크리스마스 트리가 한쪽에 있고, 그 반대 쪽에는 예수님의 십자가가 그 트리를 받치고 있는 장식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잊은채 크리스마스 트리를 장식 하고 있지만 사실 크리스마스의 참 의미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있다는 뜻으로 생각되었다.
비교적 단순하고 작은 장식이었지만, 나는 그 장식을 보며 눈물이 핑돌았다. 이제는 아무도 축하하지 않는 예수님의 생일에, 다른 화려한 백화점에서 크리스마스의 참 의미를 지는 장식을 찾지 못하고 이렇게 구석의 후미진 기독교 서점의 한 구석에서라야 이렇게 작은 장식을 찾을 수 있는 현실. 어쩌면 산타클로스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고, 정작 크리스마스의 주인공이신 예수님은 구석에서 찾아주는 사람도 별로 없이 계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곤, 내 자신과 내가 속한 공동체를 돌아보아도 그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꿈꾸며 기대하기도 하고, 크리스마스가 되면 같이 성경공부를 하는 사람들끼리 따뜻하고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겠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그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고, 우리와 함께 하기 위해 말 밥통에 오신 예수님의 사랑에 흠뻑 젖어보겠다는 결심은 별로 하지 않고 있구나… 하는 생각. 교회에서도 함께 윷놀이를 하긴 하지만,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어 오신 것에 대한 감격으로 함께 끌어안으며 감격해 하고 기뻐하는 일들은 별로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

어느덧 모든 사람들에게 ‘싼타마스’가 되어버린 이번 ‘크리스마스’엔, 정말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오신 그 의미를 깊이 묵상하면서 기뻐해보고 싶다. 세상의 모든 가치관을 뒤집으시면서 (upside-down) 태어나신 왕께 내가 드릴 수 있는 감사를 마음껏 드리는 크리스마스를 갖고 싶다. 똘망똘망한 눈을 가진 내 사랑하는 딸이 후에 성인이 된 후 기억하는 아름다운 크리스마스의 모습이, 다른 사람이 아닌 예수님의 생일을 축하하며 감사하는 것이면 좋겠다.

정직훈련 (팽동국)

이글은 2002년 1월 이코스타에 실린 글입니다.
http://www.kosta.ws/eKOSTA/200201/focus/focus02.htm

하나님은 ‘정직훈련’으로 나를 초대하시는데, 두 분의 신앙선배들을 사용하셨다.


당시 신학 대학원을 다니고 계셨던 한 전도사님의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나는 이 ‘정직훈련’에 대한 첫 초청장을 받은 셈이다. 그
분이 한 대기업 회사를 다니고 있었고, 예수님을 영접한지 채 몇 년이 되지 않은 때였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기도하던 중에
정직할 것에 대한 도전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자기가 얼마나 거짓말을 자주 하고 정직하지 못한지를 생각해 본 후에 말씀에
순종해서 살기로 작정을 했다. 즉, 다음날부터 어떤 상황에서든지, 누구와 이야기하고 있건 간에, 거짓말을 한 바로 그 순간 말을
멈추고 기도하기로 결심을 했다. 거기에는 아주 사소하고 작은 거짓말, 소위 말하는 하얀 거짓말, 그리고 필요치 않은데도 심히
과장하는 것까지도 포함하기로 했다. 여러분 같으면 하루에 얼마나 멈추어야만 할 것 같은가? 그 분은 자기가 순간적으로
거짓말했다는 사실 때문에 그 다음날 25 번 대화를 중단하고 기도했어야만 했다고 한다. 수치감과 당혹감, 자신에 대한 실망과
좌절로 인해, 때로는 대화 중에 주저앉아 무릎을 꿇어야 했고, 때로는 북받쳐 오는 분노와 절망으로 인해 울음을 터뜨리기도 하고
화장실로 도망쳐 가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거기서 포기하지 않고, 그 다음날도 동일하게 하기로 했다. 여러분 같으면 그
다음날에 몇 번으로 줄일 수 있을 것 같은가? 그는 그 다음날에도 23번이나 대화를 멈추고 기도했어야만 했다고 한다. 내가
개인적으로 충격을 받은 것은 첫날의 25번의 거짓말이 아니라 바로 두 번째 날에 겨우 2번밖에 줄이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열심히 순수하게 기도하며 순종하기로 결심을 했다면, 그리고 그런 당황스러운 경험을 하면서까지 자신을 몰아붙여 거짓말을
하지 않기로 결단을 했다면, 나는 그 다음날에는 거짓말 하는 횟수를 최소한 반 이하로 줄일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겨우
2번을 줄였다니 ! 지금도 그렇지만 그 얘기를 들었던 당시 나는 인간의 전적 타락한 죄성에 대해 참으로 피상적인 이해를 하고
있었으며 인간의 의지와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있었기에 2번 밖에 줄이지 못했다는 사실을 잘 이해하지 못했으며 충격을 받았던 것
갔다. 지금은 나라도 그렇게 많이 줄이지는 못했을 것을 인정한다. 어쨌든 그 분이 자연스럽게(?) 정직할 수 있게 된 데는 한
달이란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습관적으로, 상습적으로 해 오던 거짓말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울 수 있었다고 한다. 인간의
죄성이 우리 자신 속에 얼마나 깊이 뿌리 박혀 있었는지를 여실히 드러내 주는 일례라고 생각한다.

그 분의 간증과
나눔을 통해서, 나 자신의 본성인 죄를 이기고 성령님께 순종하며 살기가 얼마나 힘이든지를 깨닫게 되었고 그 때부터 나도
“정직훈련”을 시작했다. 뭐 그 분처럼 할 용기도 자신도 없었고 나름대로 가능하면 정직하기로 결심을 했다는 이야기일 뿐이다. 첫
번째 해야 할 일은 얼마나 내가 자주 거짓말을 하는지 확인하는 일이었다. 직접 하루동안 세어 보지는 않았지만, 나도 그분에
조금도 뒤지지 않게 거짓이 몸에 베어 있다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두 번째의 도전은 비슷한
시기에 한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서였다. 그 목사님이 신학공부를 하면서 성품 훈련을 할 때, 거짓말을 하거나 자기의 못된 성품이
표출될 때마다 한끼씩 굶기로 했었는데, 처음에는 수도 없이 굶어야만 했었다고 설교 말씀 중에 본인의 경험을 나누며 청년들에게
도전을 하셨다. 그리고 최근의 예로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불법으로 복사해서 쓰고 있었는데, 매번 등록하라는 창을 읽다가는 요긴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삭제했다는 경험을 말씀하셨는데, 그 때 당시는 충격이었던 것이 문제 의식이나 죄책감 없이 누구나 책
복사와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복사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나는 이 두 분들을 통해서 예수님 믿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산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이 두 분의 경험과 도전을 통해서 “정직훈련”으로 초대되어 훈련받기
시작한지가 지금은 벌써 8년이란 세월이 지나갔다. 그런데 최근에 나는 다시 한번 이 훈련을 받게 되었고 -물론 평생을 거쳐 받을
훈련이지만- 이 경험을 함께 나누려고 한다. 나는 의공학용 초음파에 대해서 연구하고 있는데, 지난해 여름에 예상치도 기대치도
못하고 있었던 일이었음에도 좋은 초음파 장비를 빌려서 실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지도교수를 비롯해 몇 사람이 주어진
예산안에서 그보다 훨씬 못한 장비라도 빌리려고 2년 동안 시도하다가 경비와 안전규율 등의 문제로 작년 봄 이후로 포기하고 있었던
중이었는데, 갑작스럽게 지도교수를 통해 35만불이나 되는 아주 좋은 장비를 무료로 2주 동안 빌릴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정말로 하나님의 은혜임이 분명했다. 장학생(長學生 not 奬學生)을 졸업시키고, 부족한 나를 훈련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와 인도하심이라고 본인은 확신한다. 어쨌든 촉박하게 결정된 일이라 급하게 실험준비를 하고는 그 장비를 2주 동안
최대한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실험을 할 수 있었다. 보통은 돼지 피를 사용해서 실험을 하는데, 실험 결과가 아주 예상한
것 이상으로 좋았다. 몇 년 전에 우리 실험실 석사 학생이 관찰을 했었으나 아직 학회에 보고되지도 않았고, 그때도 역시 짧은
기간에 비교적 좋은 장비를 사용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그때 한번 관찰한 이후로 장비의 한계로 관찰할 수 없었던 아주 재미있는
현상을 관찰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여러 변수를 바꿔가며 실험을 해서 그 현상을 어느정도 까지는 해석하고 그 원인까지도 분석할
수 있는 실험을 할 수 있었다. 그러던 중에, 혹시나 하면서 본인의 목 부근의 동맥을 관찰을 해 보았는데, 아주 비슷한 현상이
관찰되었다. 너무나 기쁘고 감격스럽고 흥분이 되었고, 그래서 아무생각 없이 과 실험실 몇 사람들에게 부탁을 해서 같은 현상을
관찰하고 자료를 받아 두었다. 그리고 나서 한 달 동안 기초 자료 분석을 한 후에 학술 발표에 요약문을 제출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뒤에 지도교수가 갑자기 사람 관련된 실험을 학회에 발표하려면 학교 쪽에 안전 허가를 받아야 될 것 같으니 알아보라는
것이다. 의공학용 초음파 장비는 이미 안전규율에 따라 제작되고 있고 일반 병원에서도 진단용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가장 안전한
방법중의 하나로 잘 알려져 있기에, 별 문제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구비서류들을 준비하여 허가를 받으려고 자료를 찾아
읽어보니, 모든 사람 관련된 실험은 심지어 설문조사까지도 “반드시” 실험 전에 학교측에서 안전 허가를 받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몇몇 실험실 사람들의 조언을 받아서 그냥 실험 날짜만 바꾸어 앞으로 할 실험인양 꾸며서 허가를 받고, 그 후에 학회발표를 하면
되겠다고 생각을 해서 그렇게 서류들을 준비하고 있었다. 거리낌이 조금 있기는 했지만, 워낙 안전한 방법이기에 아무 상관없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러나 나와 실험실 사람들은 상관이 없었지만 하나님은 이러한 생각과 계획을 좋아하지 않으셨다. 어떻게
그것을 깨달았는지 그 과정을 얘기하면 다음과 같다.

그 주에 영국에서 유학온 한 크리스찬 친구를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우연히 자신의 삶을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 전 주 토요일 교회의 한 집회에서 도전을 받아서 운전을 할 때 속도
위반을 하지 않기로 결심을 했다고 한다. 그도 분명 안전을 생각하면 통상 많은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다른 차들을 따라서 대략
최고 속도보다 시속 5마일 정도 빨리 달려야 되는 것을 분명히 알지만, 이것은 안전 문제라기보다는 하나님과 자신과의 약속이기
때문에 비록 덜 안전하더라도 그렇게 하기로 결심했다는 얘기를 하였다. 참 하나님 보시기에 귀한 결심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의
생각이나 방법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못한다는 정도로만 생각하고 그냥 지나쳤다. 그런데 그 날 하루 종일 그 생각이 계속해서
떠오르며, 운전과는 상관 없는 내 자신의 안전허가 계획과 연관이 지어지는 것이다. 동시에 마음 한편으로는 그 연관성을 억지로
부인하며 합리화시키고 그냥 묻어두려고 했다.

그런데 더불어 과거에 경험했던 하나님의 ‘정직훈련’이 다시 생각나는
것이다. 전에 말씀드렸던 그 두 분의 도전을 받은 얼마 후에, 계속해서 말씀을 읽고 들을 때거나, 책을 읽을 때 혹은 사람을
만날 때마다 계속해서 ‘정직’이라는 단어가 집요하게 나를 파고들어 피할 수 없이 직면했어야 되었다. 그 때 당시 성경에는 온통
‘정직’이란 말만 가득 써 있는 듯이 느꼈었는데, 최근에 한번 서치 엔진을 사용해서 세어 보았었는데, 실제로는 170여 번에
걸쳐 정직이란 단어가 반복되어 기록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뒤이어 내가 처음으로 통과해야 했던 정직 훈련의 큰 관문은 바로
인생을 건 일이었다. 그때 다니던 대기업 회사에 사표를 내고 미국의 한 명문 사립대에서 입학허가를 받았었는데, 비자 신청을
준비하던 중에 앞에서 말한 것처럼 도무지 피할 수 없는 하나님의 강권적인 여러 가지 사인을 통해서 결국 하나의 결심을 하게
되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 통상적으로 하는 방법대로 통장에 돈을 빌려서 잔고 증명서를 준비해서 제출하는 임시방편이
거짓으로 느껴지게 되었고, 그래서 부모님과 형제들만이 최악의 경우에 보태줄 수 있는 최대한도의 약속된 액수만큼 만을 잔고 증명에
넣어서 서류준비를 했다. 그때 당시 총 마련할 수 있는 부모와 형제들의 통장에 있는 액수를 다 합쳐 보니 충분치는 않았지만 1년
학비와 생활비 정도가 되었고 그러면 될 줄 알았었는데, 여지없이 재정부족으로 비자 거부를 받았다. 그래서 결국은 1년을
기다렸어야 되었는데, 경제적으로 나아진 상황은 없고, 또 회사는 이미 그만둔 상태여서 돌아갈 수도 없고, 마치 이스라엘 백성이
앞에는 홍해요 뒤에는 애굽 군대가 쫓아오던 상황처럼 진퇴양난의 상황에 처해서, 다른 소망없이 유학갈 것에 대한 분명한 사인을
보내 주셨던 주님만을 기대하며 마치 홍해가 갈라졌던 것처럼 유학의 길을 열어주시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1년이 늦춰지기는 했지만 다시 비자를 받을 수 있었고 이렇게 미국에 오게 되었다. 그런데 그 기다리던 1년 동안 하나님이 참으로
많은 축복을 해 주셨다. 철저히 경제적인 부분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훈련을 할 수 있었고, 어머님이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나가시게 되었고, 두 분 형님들이 가장 어려운 시기를 보내게 되었는데 함께 옆에 있어줄 수 있었고, 그리고 또 결국에는 하나님의
은혜로 국비 장학금까지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 고난과 어려움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할 수
있었던 것이 가장 큰 유익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그렇게 생을 걸었던 ‘정직 훈련’을 거쳤던 기억과 그리고 그 과정이 비록
힘들고 어려웠지만 결과적으로 얼마나 큰 유익들이 있었고 그 이후에도 얼마나 많은 복들이 있었는지를 다시 아주 생생하게 기억을
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때까지 그것이 하나님의 사인인지를 깨닫지 못하고, 한편으로 여러 가지
핑계를 대고 있었다. 그때는 그때고 이번에는 다른 상황이며, 그리고 이것은 모르고 한 일이고 아무 해도 없고 안전한 것이라는
합리화, 나뿐만 아니라 지도교수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등의 핑계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한가지 방법이 떠 올랐다.
지도교수를 찾아가서 상황을 설명하며 동의와 허가사인을 받는다면, 내 책임을 교수한테 어느정도 떠 넘겨서 회피할 수 있고, 또
그러면 나 자신과 하나님께도 받아들여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발한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모든 서류들을 날짜를
바꾸어서 준비를 해서 교수를 찾아가려고 하고 있었다. 영악하다 못해 사악하기까지 한 도무지 가능성 없고 구제불능인 내 자신의
모습임에도, 하나님은 신실하셔서 그런 나의 연약함과 무지함을 책망도 없이 또 다른 방법으로 말씀하고 권면 하셨다. 바로 교수를
찾아가려던 그 날에 사전에 예고도 없이 지도교수가 여행을 떠나셨는데, 그것도 해외로 15일씩이나 가신 것이다.


제는 하나님의 뜻임을 분명하게 알게 되었고 이쯤 되면 두 손들고 기쁘게 순종할 때도 된 것 같은데, 막상 정직하게 허가 신청을
할 생각을 하니 근심과 걱정이 몰려오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만약 허가를 못 받으면 졸업이 늦춰지고, 학회 발표도 취소가 될
텐데, 또 만약 학교 기관에 사실대로 알렸다가 무슨 부당한 처분은 받지 않을까? 그리고 또 더불어 지도교수에게도 피해가 가지
않을까? 등등의 염려가 몰려오기 시작해서 이번만은 그냥 계획대로 실험 날짜를 바꾸어서 하고 싶은 유혹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시에 날짜를 바꾸어서 논문 하나를 더 내고 싶다는 욕심이 강하게 들기도 하면서, 여러 가지 복잡한 상황을 피할 수 있고
간단하고 편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다는 편리함을 이유로 들며 마음이 흔들리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기보다는 얼마나
세상을 두려워하고 있으며, 또 얼마나 욕심에 사로잡혀 살고 있으며, 편리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세상방법을 좇고 하나님 방법을
택하지 않는지를 어찌 이보다 더 여실히 드러낼 수 있단 말인가? 정말로 몸서리 쳐지게 자기합리화와 자기 본위의 생각을 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보았다.

참 좋은 하나님은 이런 나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고 계속해서 위로하고 격려하셨다.
그런 다음날 말씀을 묵상하는데, 본문이 신명기 28장 1-14 이었고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면 나갈 때나 들어올
때나 복을 주시며 심지어 자손에게까지 복을 주시겠다는 말씀을 마주 대하게 되었다. 정말로 하나님은 나에게 순종을 원하시고 그것을
통해서 내가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니라 복을 받게 되며 그래서 이렇게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고 나에게 복을 주시기를 원하시는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면서 하나님께 순종해서 받을 복이 세상방법을 포기했을 때 잃어버릴 손해보다 훨씬 더 크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최대의 손실 이래봤자 졸업 조금 늦어지는 것, 최악의 경우 학회 발표 하나를 못하고 논문 1개를 더 쓸 수
없다는 것, 하지만 순종하지 않을 때는 하늘의 영원한 복을 잃게 된다는 간단한 산술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몰려오는
염려와 두려움 없이 기도하면서 심지어는 기대하는 마음과 기쁨으로 기꺼이 하나님께 순종하여 정직할 수 있었다.

결론
적으로 말하자면 학교 담당자를 만나서 솔직하게 상황을 얘기하였고, 상담을 하니 그래서는 안되지만 즉흥적인 실험이었고 알지 못하고
한 일이기에, 한번만은 실험 후에 허가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해서, 결국에는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올해 초에 드디어
거짓없이 정당한 방법으로 허가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10년에 가깝게 ‘정직훈련’을 해 나오면서 쉽게 빠졌었던
두 가지 오류들을 지적하며 글을 맺으려 한다. 하나님께 이렇게 정직 훈련을 하게 되면서 나보다 더 정직하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을
보면서 너무 쉽게 교만해지고 우월해지기 쉽고, 그래서 바리새인의 모습을 갖추고 타인을 판단하기 쉽다는 것이다. 내가 잘해서
하나님께 순종하거나 정직훈련을 받은 것도 아닌데도 그리고 아직도 많은 부분들을 잘 하고 있지 못하면서도 자기 의가 생기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어쩌면 이것은 부정직한 것 이상으로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모습일수 있다. 또 다른 하나는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어짜피 완벽할 수 없으니까, 쉽게 포기하고 도전도 받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려고 하려는 노력조차도 하지 않으며
은혜의 하나님만을 얘기하는 모습이다. 특별히 나를 비롯한 한국 교회의 많은 기독신자들은 이런 모습이 많이 있는 것 같다. 이런
나 자신의 부끄러운 고백과 실수를 통해 이 글을 읽는 분들이 더 이상의 시행착오가 없기를 바라며, 우리 자신의 깊은 죄성과
한계에도 포기하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의 성실하심과 열심에 힘입어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이 각자 하나님 보시기에 거룩하고 온전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영적 성장을 이루어 가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유학생에게 미국은 무엇인가

국민학교 2학년 때의 일이었다. (현재는 ‘초등학교’라 해야 맞는 표현이지만, 동민이가 어릴땐 ‘국민학교’였으므로 이 명칭을 그냥
쓰도록 한다.) 동민이는 하얀색 모시 한복을 입고 시민회관에 모인 많은 청중 앞에 섰다. ‘전국어린이 반공 웅변대회’에 출전한
것이었다. 어찌나 열심히 웅변을 했는지, 6.25 전쟁 당시 북괴군을 도운 소련을 성토할 때와 우리 자유대한을 도운 미군을 높일
때엔 눈물도 찔끔 났다. 많은 박수를 받은 동민이는 결국 최우수상을 받았고, 많은 선생님들로부터 ‘반공 어린이’로 칭찬을
받았다. 동민이는 작은 주먹을 불끈 쥐며 다짐했다. 하루빨리 커서 북괴를 물리치고 빨리 우리 나라를 미국과 같은 잘사는 나라로
만드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노라고.

중고등학교 때에도 동민이는 유난히 미국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왠지
영어는 더 재미있었고, 미국의 50개나 되는 주 이름을 다 외는 것은 친구들 사이에 자랑거리였다. 뭐든지 미국에 대해 궁금한
것이 생기면 친구들은 동민이에게 물어보곤 했다. 학교에서 늘 좋은 성적을 유지하던 동민이는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에 유학을 가는
꿈을 꾸곤 했다.

고등학교 시절 열심히 공부한 결과 동민이는 많은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인 우수대학교에 좋은
성적으로 입학할 수 있었다. 대학 시절을 시작하면서 우연히 만난 어느 여학생의 권고로 학교 내 성경공부 동아리에 가입했고,
동민이는 두달여의 성경공부 끝에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였다. 내내 공부만 알던 동민이가 예수님을 영접하면서 동민이의 삶에는 많은
변화가 생겼다. 비로소 ‘세상’에 대한 진지한 사랑의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동민이에겐 새로운 갈등이 생겼다. 사회
정의와 독재타도를 외치는 친구들의 ‘정의로운’ 목소리에는 언제나 ‘반미(反美)’ 구호가 끊이질 않는 것을 보았다. 여태껏 자신이
알고 있는 미국과는 너무 다른 얼굴을 한 미국에 대해 사람들은 이야기하고 있었다. 과연 어떤 미국이 진정한 미국이란 말인가.
자유와 평화와 풍요의 나라, 그리고 내가 그토록 소중하게 여기는 복음을 우리에게 가져다 준 나라. 그 미국은 과연 우리 민중의
적이란 말인가.

대학교를 마칠 무렵, 많은 고민과 기도 끝에 동민이는 미국 유학을 결심하였다. 동민이가 공부하고
있는 무선 통신 분야는 미국의 연구가 많이 앞서 있는데다 어려서부터의 꿈인 미국 유학을 꼭 이루고 싶다는 욕심도 이 결정을
하는데 큰 동인이었다.

미국 유학 생활은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매일 쫓기는 실험 스케줄과 지도교수로부터의
압력, 경제적 압박, 장래에 대한 불안 등 여러 종류의 스트레스가 언제나 동민이를 사로잡았다. 그나마 매일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지만 겨우 자기 생활을 유지해 나가는 것이 버겁게 느껴지곤 했다. 이런 힘든 환경은 동민이를 현실로 자꾸만
몰아세웠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미국에 와서 동민이는 미국에 대해 어려서부터 가졌던 관심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과연 미국은 유학생들에게 무엇인가? 자유와 평화가 넘치는 기회의 나라이자, 신앙의 나라인가? 아니면 제3세계 빈곤을 만드는, 이기적인 거인인가?

미국에 대해 생각하면서 몇가지 주의해야 할 점들을 생각해보자.

우선 미국에 대해 절대적으로 숭배하는 자세이다. 미국의 모든 것은 앞서있고, 미국의 모든 것은 선하고, 미국의 모든 것은
신앙적이라는 입장들이다. 그러다 보면 상대적으로 한국을 포함한 모든 것은 그보다 열등한 것이라는 생각도 자리잡게 된다. 그러나
과연 미국은 기독교적 기반으로 세워지고 운영되는 ‘선한’ 나라인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물론 미국을 초기에 형성한 사람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으로 온 사람들이긴 하지만, 그리고 미국 사회 곳곳에 기독교적 문화가 적어도 한국에 비하면 많이
침투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미국의 국가 운영이나 사회 전반에 흐르는 사상의 조류나 문화, 그리고/또는 경제적 체제 등이
성경적 기반 위에서 형성되어 운영된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 같다. 오히려 미국의 많은 부분은 성경적 기반 위에서 형성/운영되고
있다고 보기보다는 인본주의적인 기반 위에서 형성/운영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 같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으로서 미국의 인본주의적인 흐름을 기독교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다면 큰 오해로부터 비롯된 실수를 하는
것이 될 것이다.

미국을 선으로 규정하고 있는 사람이 이번 WTC 테러 공격에 대해 보일 반응을 생각해 보면
아주 명확하다. 그것은 ‘선’인 미국에 대해 ‘악’인 이슬람이 공격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에 대한 반응으로 ‘악’인 이슬람
국가들을 공격하는 것은 성전이 된다. 그러나 미국이 취해온 대외 정책과 반미의식의 원인 등을 구체적으로 분석하지 않은 채
무차별하게 기독교 = 미국= 좋은 나라, 이슬람 = 나쁜 나라의 공식을 적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고 하겠다.

반대의 극단은 절대적인 반미(反美)의 입장이다. 제3세계 대부분의 빈곤은 미국의 주도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세계화’에 기인한
것이고, 미국의 패권주의는 힘을 바탕으로 궁극적으로 자국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악’이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여전히 민중의 적인
자본주의의 총 본산으로서의 미국은 타도 혹은 극복의 대상이라는 좌파적 생각이 이런 입장을 취할 수 있겠다. 이런 입장은 자주
설득력을 가지고 있고,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내용들이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때로 미국에 대한 증오가 큰 나머지, 미국의 모든
것을 악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지난 WTC 테러 공격 이후 일부 인터넷 게시판 등에서 볼 수 있었던 반응 가운데에는 통쾌하다,
잘됐다, 속 시원하다는 식의 내용들이 있었는데 어찌보면 소름이 끼칠 정도로 잔인한 생각이다. 무고한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희생된
사건에 대해 통쾌해 할 수 있는 것은 어찌보면 또 다른 이데올로기적 편향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어느 개인을
막론하고 하나님께서 독특하게 주신 은사와 특징이 있듯이 민족 혹은 족속에도 그러한 것이 있다고 나는 믿는다. 그러므로 미국의
모든 것이 ‘선’ 혹은 ‘악’이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미국의 장단점을 타산지석으로 우리 민족의 은사와 특징을 잘 계발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한국과 같이 폐쇄적이고 획일적인 사회 속에서는 이러한 것들을 비교, 분석하여 발견하기 어려우나, 미국과 같은
다인종 다문화 사회 속에 있는 우리 유학생들은 이러한 일은 하기에 아주 적절한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겠다. 특히 한국의
오피니언 리더가 될 것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이것은 아주 중요한 이슈일 것이다.

미국은 기독교 문화가 널리 깔려
있는 나라, 그러나 결코 기독교적이지 않은 나라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다. 20세기의 탁월한 사상가 프란시스 쉐퍼도
미국에게 있어 다시 돌아갈 ‘Golden Age’가 없다고 이야기하면서, 미국에 대해 혹은 서구 문화에 대해 가질 수 있는
편견에 대해 경고한 바 있다.

1901년 태어나 1945년 해방을 불과 몇 달 앞두고 세상을 떠난 김교신이라는
신앙의 선배를 생각해본다. 김교신은 암울했던 시기에 <성서조선>이라는 잡지를 발간하며 조선을 성서 위에 세울 꿈을
꾸었던 신앙적, 민족적 선각자였다. 그는 그 당시 우리 나라와 가장 가까운 관계에 있던 강국(强國) 일본에 유학했던
유학생이었다. 그가 <성서조선>을 통해 나누었던, 그리고 그의 일기를 통해 비추어졌던 그의 사상은 그를 ‘100년이
지나도 그리운 사람’으로 만들고 있다.

김교신은 일본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했고, 무교회운동의
창시자이자 반군국주의자였던 우찌무라 간조로부터 성경을 배웠다. 따라서 그의 문집을 보면 많은 일본사람들과 매우 돈독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더구나 우리 민족과 일본 민족을 비교하면서 우리 민족의 부족한 점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모습들도
잘 나타나 있다. 일본 유학생으로서 일본으로부터 배울 것들에 많은 관심이 있었던 모습이다. 그러나 또한 ‘박물학자’였던 김교신은
<조선 지리 소고>와 같은 글에서 우리 지리를 고찰하면서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높이는데 노력을 하는 등 민족적인
자존심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성서적 입장에서 일본이 반드시 망할 것과 조선이 반드시 독립할 것을 이야기 하였고, 이는 일본
경찰들도 혀를 내두른 점이었다. 1945년 일제의 강압에 의해 교사직에서 쫓겨난 뒤, 함흥에서 장티푸스에 걸려 죽어가는
노동자들을 돌보다가 세상을 떠난 진정으로 ‘낮아져서 섬긴’ 유학생이었다. 우리 나라와 일본, 그리고 세계 많은 나라에 대한
‘성서적’ 시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성서적’ 입장에서 각 나라와 민족의 장단점을 볼 수 있었던 선각자였다.

어쩌면
매우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유학생인 동민이와 (그리고 내 자신과), 우리 신앙의 선배인 김교신을 비교하며 몹시 부끄러움을 감출
수 없다. 이제, 21세기 ‘강국’인 미국에 유학하고 있는 우리 역시 편향된 반미 혹은 친미가 아닌 ‘성서적’ 시각을 제대로
갖추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할 수 있을 때 하나님의 시각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우리 민족의 장래에 대해 치우치지 않은 비전을
제시하는 사람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더운 여름날 냉수 한 사발 같이 시원한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 이 글은 eKOSTA http://www.ekosta.org 2001년 10월호에 실렸던 글입니다.

내가 본 한국 교회, 내가 본 코스타 (우종학)

*이 글은 코스타의 웹진인 이코스타(www.ekosta.org)에
2001년 8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내가 본 한국 교회, 내가 본 코스타

To generalize is to be an idiot. – William Blake

1. 한국 교회와 한국 사회: 신병 교육대와 전투지


떤 분께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 정신에 반하는 커다란 문제가 발생했을때, 그것이 윤리의 문제이든,
문화의 문제이든, 가치의 문제이든, 그 문제에 대해 기독교적인 목소리를 낼수 있는 각 분야의 전문가를 찾기가 너무나
어렵다는(cf. 김연종 ‘흔들리는 한국 교회’). 나는 이것이 매우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반기독교적 흐름을 상대할
기독교적 파워가 없다는 게임의 논리에서도 그렇지만 ‘아군’이라고 분류하는 한국 교회의 정체성 자체에 대해서 의문이 가기
때문이었다.

“한국 기독교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입니까” 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잘 모른다” 라고 대답하는 것이
가장 솔직한 대답일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뚜렷한 관측적 사실은 한국 교회의 성장 또는 그 규모와 한국 사회에 대한 교회의
영향력 사이에 별다른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안점식, ‘한국 교회와 기독교 세계관의 문제’). 이러한 현상은 교회 성장주의,
유교적 권위주의, 기복주의(박성호, ‘한국 교회 그렇다면 무엇을 개혁할 것인가?’) 등과 감성적, 개인적 성향에 맞춘 교회의
목회 전략, 사회에 대한 교회의 침묵(권오승, ‘세상으로 복음의 영광을 주목하도록’) 등, 쉽게 관측되는 요인들에 의한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요인들 위에, 혹은 이런 요인들의 다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한 가지 요인을 덧붙이고 싶다. 그리고 나는 이것이 보다 근원적인 문제이며, 위에서 지적된 요인들을 극복하는 교회
개혁으로만은 해결되지 않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현장의 기독교인’의 부재이다.
반문화(counter-culture)를 주요 특징으로 하는 근본주의(fundamentalism)적 경향이 많은 한국 교회 안에
짙게 깔려 있음으로 인해 교회의 안과 밖을 철저히 나누고 교회의 벽을 높이 쌓는 이원론적 경향이 팽배해 있다는 것, 바로 그것이
‘현장의 기독교인’들을 사라지게 만든 근원적인 이유라고 생각한다(cf. 정진호, ‘부흥을 가로막는 장벽들, 이원론의 문제를
진단한다-(2)’). 1920년대 미국에서 세속 문화에 대한 대항으로 일어났던 근본주의운동의 경향이 복음주의권 안에도 깊이
들어와 미국 사회의 여러가지 문제들에 대해 복음주의자들을 침묵하게 만들었다는 지적은 90년대의 미국 복음주의권에서도 넓게
논의되었던 이슈 중 하나였다 (Mark Noll, ‘The Scandal of the Evengelical Mind’).


는 ‘신병 교육대와 전투지’의 비유가 ‘왜 현장에 그리스도인이 없는가’를 잘 설명해 준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강제 징집이 아닌
사랑과 섬김으로써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이 이방인이 아닌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도록 돕는다. 그리고
이때부터 그들의 삶에서 치열하게 시작될 영적 (지적·감성적·의지적) 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을 먹으며
말씀 안에서 성장해 갈 수 있도록 교회는 그들을 ‘신병 훈련’으로 돕는다.

이제 신병 교육대에서 기초 훈련을
마친 그리스도의 전사들은 가끔씩 (한 주에 한 번이든 세 번이든) 후방으로 돌아와 쉼을 얻기도 하고 사기의 재충전을 받기도
하지만, (시간적으로는 복음을 받아들임과 동시에) 그들은 전방, 전투지에서 그들의 대부분의 삶을 보내게 된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그것은 바로 그들이 기본적인 신병 훈련 외에 실전에서 사용될 전투 훈련을 받은 적이 없이 홀로 전투지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부정과 미움, 하나님의 질서를 반하는 어그러짐으로 물들어 있는 직장, 인간 관계, 사회 구조, 문화 속에서
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현장에서 일어나는 끊임없는 공격은 그들의 삶이, 우리의 일이 예배가 되지 못하게 한다.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유지해 가는 것만해도 사실 기적과 같은 일이다. 이들이 배치될 전선의 부대는
어디에 있는가? 이들보다 먼저 전선에 들어와 실전을 통해 전투 능력을 갖추고 있는 각 분야의 그리스도인 전사들은 어디에 있는가?
이들에게 전선의 상황을 알려 주고 공격 목표를 주지해 주며 전술을 가르치고 함께 작전을 펼치는 소대장, 병장들은 어디에 있는가?
나의 제한된 판단으로는 현장에 대한 부르심에 뜨겁게 헌신한 소수의 정예들은 고전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전사들은 혼자서 살아남는
일에 급급하여 숨어 있으며 그나마 뜨거운 열정을 가진 전사들은 도로 신병 교육대로 돌아가 버렸다. 세상 일에는 흥미를 잃은
반면에(김연종 ‘예수 이름으로 가진 병’) 신병을 모으고 교육하는 일이 그래도 하나님 나라에 대한 그들의 열정을 채워 줄 수
있으니까. 전선의 병력이 정예 부대여야 하고 다수여야 하는데, 내 눈에는 몸집 큰 신병 교육대만 보인다고 하면 과언일까?
신교대는 커진 몸집을 굴리느라 더 많은 교관을 필요로 하고 그러다 보면 전선으로 나오는 전사들은 당연히 적어진다.


는 교회가 성장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교회가 커지는 만큼 전선에서 활동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신병 교육대만 커진다면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신교대인가? 교회가 커지는데 사회가 그대로 변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다면 그 사회
속의 그 교회가 진정한 교회인가를 되물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만일 교회가 제대로 된 교회이고 각양의 그리스도인들이
각자의 현장에서 주님의 가르침 대로 하나님의 질서 대로 살고 있는데도 아직 하나님의 때가 되지 않아 우리 사회의 모습이
그대로라면, 우리는 하나님을 앞서 가는 우를 범하지 않고 기다려야 하겠지만, 현재의 내 좁은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만은 않는다.

나는 또한 현장의 그리스도인이 없다는 것으로 교회의 교육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목회자의 역할은 목회
전문가로서 복음을 전하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성도들이 자랄 수 있도록 도우며 교회 공동체와 예배를 통해 끊임 없이
그리스도인들을 복음으로 재충전 시켜주는 일이며 이것은 타락된 창조계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시작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전투는
실전 경험을 통해 전선에서 배우는 것이기에 신교대에서 해 줄 수 있는 훈련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다 많은 현장의 문제들이 교회에서 다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투지의 그리스도인들의 전투 경험이 신병교육 훈련의
내용에 보다 많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장의 문제들에 대해 현실적으로 다루고 이에 대해 체계적으로 훈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많은 캠퍼스 선교 단체에서 학부 시절 뜨겁게 헌신하던 리더들이 졸업 이후에는 대형 교회의 대예배 좌석에 숨어 버리는
일도 나는 이러한 맥락에서 비롯되었다고 이해한다. 그룹 성경공부를 인도하고 영혼의 성장을 돕던 리더십이 부정과 악이 팽배한
직장에서 통전적인(wholistic) 그리스도인의 삶을 자동적으로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우리에게는 현장의
그리스도인들이 필요하다. 교회는 전사들을 소총으로 무장시켜 개인적으로 전선에 내보내는 무책임함을 넘어서 이들이 현장의
그리스도인들과 연결되도록 구조적으로 도우며 전선의 전력 증가를 위해 신교대에 투자하는 이상의 노력과 자금을 현장에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채플과 교목실을 두는 정도로 구색을 맞추는, 이름 뿐인 기독교 대학이 아니라 학생들이 기독교적으로 사고하는
일을 구체적으로 돕는 커리큘럼을 갖춘 진정한 기독교 대학을 세우는 일, 생명의료 윤리, 개별 대중문화 등, 사회와 문화의
문제들을 사안 별로 연구하고 결과물들을 낳아 교회 교육에 내용을 제공할 수 있는 연구 단체나 프로젝트 등에 지원하는 일 등을
예로 들 수 있겠다. 기독교라는 이름을 걸지 않더라도, 사회 속에서 기독교적 가치와 하나님의 나라 회복을 위한 사역들에 보다
적극적으로 지원할 수도 있다. 교회 내적으로는 교회 봉사의 순번제 같은 제도를 만들 수 있다. 다시 말해, 교회의 상황에 따라
헌신된 성도들 중에서 20~50%는 2-3년을 주기로 주일 학교나 성가대등 교회 봉사를 쉬게 하고, 대신 직업과 현장의 문제에
집중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는 것이다. 교회 ‘운영’에 지장이 있을 거라는 우려가 있겠지만 이들이 2-3년 후에 다시 교회
섬김으로 돌아올 때는 교회 자체가 새로운 공급을 맛 볼 것이며 또한 끊임없이 현장으로 그리스도인들을 보냄으로써 전선은 점진적으로
강화될 것이다. 수요 예배 가지 않는 대신에, 주일 학교 봉사하지 않는 대신에 같은 시간과 노력으로 직장에서의 삶과 신앙이
부딪히는 문제, 청소년을 어떻게 기독교적으로 양육할 것인가의 문제에 매달려 기도하고, 배우고, 연구하고, 나누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목회 전문 목회자가 현장의 전문가들과 함께 팀사역으로 목회를 하는 교회들에 관한 소식을 듣는
일은 매우 고무적이다. 예배당 중심의 신앙 생활(?)이 믿음의 잣대가 되는 교회의 분위기가 바뀌지 않고는 세상은 그리스도 없음의
축복(?)과 축제를 계속 만끽할 것이다.

그러나 지역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 특별한 한계
상황이 아닌 이상, 신교대가 신병 교육을 제쳐두고 전투지에 뛰어들 수는 없는 일이다. 참으로 중요한 일은 전투 부대가 세워지는
일이다. 현장의 그리스도인들이 연합해야 한다. 물론 현장에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속단하건대) 현장의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은 많은 경우, 또 다시 신병 교육대의 역할만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예배당 중심의
신앙생활을 간과한다는 오해를 받더라도 전투지에 헌신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 우리가 부끄러워 하지 않는 복으므이
능력이 각 현장에서 면면히 드러나도록 세상속의 그리스도인들이 세워져야 한다. 각 현장의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
답이 내게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각 현장의 상황에 맞게 연합하고 답을 찾아가야 한다는 원론 외에는. 그리고 나 자신도 나의
현장의 문제에서 답을 찾는 묵묵한 노력을 하고 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나는 코스타를 이런 시각으로 본다. 지역 교회가 할 수 없는 일, 신병 교육대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일, 현장의 그리스도인들을 키우는 일, 이것을 코스타가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너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내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하나님의 창조 명령과 통하는 그리스도의 지상 명령은 ‘제자를 삼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데까지,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다시 이루는 데까지, 그의 나라가 타락된 온 창조계에서 회복되는
데까지 이르는 것이다(정진호, ‘두 집 내기’).

2. 내가 보는 코스타 (미주 코스타)

최근의
통계를 볼 때, 코스타의 참석자 중 매년 70% 정도가 코스타에 처음 참석하는 사람들이다. 매년 새로운 사람들이 코스타를 접하고
간다는 면에서 코스타를 매우 효과적인 사역으로 볼 수도 있지만 반면에 한 번 온 사람들 중 70%가 다시 코스타에 오지 않는다는
얘기도 되는 셈이다. 이 통계 자료가 말해 주는 것은 무엇일까? 다른 평가 자료나 의견(feedback)들을 참조하여 이것을
해석해 보면 코스타는 ‘한 번으로 만족되는 수양회’, 혹은 ‘매 년 똑 같은 수양회’ 라는 얘기로도 볼 수 있다. 한 번으로
만족되는 수양회라는 평가가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에 대한 결론을 이 자체만으로는 내릴 수 없다. 당연히 코스타 수양회의 목표가
무엇인지를 묻고 그에 준하여 이 평가가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코스타의 목표가 복음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리스도인으로 결단케 하는 것이라면 ‘한 번으로 만족되는 수양회’라는 것이 부정적 평가는 아니다. 그리스도를 두
번 영접해야 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코스타의 목표가 복음화된 유학생들에게 기독교 세계관과 가치관을 확립하게 하는 것이라면 약
4박5일의 수양회를 통해 기독교 세계관과 가치관이 얼마나 확립될 수 있는가를 평가해 보아야 한다. 코스타의 목표가 유학생들의
기독교적 세계관에 입각한 학문 연구와 신앙 생활을 격려할 뿐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삶의 현장에서 선교적인 활동과 봉사의 삶을
살도록 한다는 것이라면 일주일의 수양회를 통해서 이 목표의 성취가 어떻게 가능한지를 평가해야만 한다. 사실, 위에 언급한 세
가지 모두는 코스타의 사명이자 핵심 정신(core value)이다 (미주코스타, ‘코스타란?’).

독자들 스스로
평가를 내리겠지만, 복음화의 목표를 제외하고는 한 번의 수양회를 통해서 나머지 목표들을 성취한다는 것은 턱도 없다. 일주일 내내
‘여러분 기독교 세계관과 가치관을 가져야 합니다!’ 라고 외쳐대는 것만으로는 되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감성보다는 지성,
설교보다는 강의에 촛점을 두고 교육을 위주로 하는 수양회로 완전 탈바꿈한다고 하더라도 한 번의 수양회로는 달성하기 쉽지 않은
목표이다. 나는 코스타가 복음전도 집회만으로 구성된다고 하더라도 비난할 생각은 전혀 없다. 복음을 전하는 일만큼 중요한 일을
말하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을 정도로 복음 전도의 우선성이라는 복음주의의 기본 입장에 어느 정도 동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코스타가 복음전도 집회만을 하는 수양회라면 나는 한 번 이상 가지는 않겠다. 내가 복음을 모르는 영혼들을 섬기겠다는 결정을 하여
섬기는 이로 가지 않는 이상. 나는 수양회에 2번 이상 참석하는 30%의 사람들중에는 이렇게 섬김의 마음으로 와서 헌신하는 많은
분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섬김을 통해서 배우는 제자도는 매우 귀중한 배움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한 번 이상 오지 않는
수양회’가 된 것은 한국 교회의 신병 교육대적인 성격이 최근의 코스타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복음 전도하는 것 이외에는 별 내용이 없는, 교회에서도 들을 수 있는 복음의 진수를 더 효과적으로 그리고 강렬하게 다시 듣는 것
이외에는, 어떤 참석자들의 보다 신랄한 표현을 빌리면, ‘화끈한 영적 샤워’로 끝나 버리는, 혹은 어느 정도 현장의 문제를 담긴
하지만 한 번 수양회 참석으로도 다 소화해 낼 수 있는 내용의 수양회… 코스타의 시작부터 세워졌던 목표들은 좋지만 지금
코스타의 모습은 처음의 그 목표들과는 거리가 먼 것이 아닐까 라는 반성이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은가?

3.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하는 수양회


음화된 대학원생 유학생들을 돕는 가장 중요한 안건은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첫째는 “전공 속에서 혹은 전공을 통하여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인가?” 라는 안건이고 둘째는 “캠퍼스와 지역 교회에서 어떻게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며 섬길 것일까” 라는
안건이다. 코스타의 모든 프로그램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학생들을 복음화하는 일에 병행하여 이 두 가지 실제적인 안건을 중심으로
짜여져야 한다. 예를 들어 오전은 강의 중심으로 전공과 현장의 문제들을 다루고 저녁은 설교 중심으로 복음과 좁은 의미의 제자도를
다룰 수 있다. 오후의 세미나 트랙의 경우도 ‘구도자의 트랙’, ‘제자도의 트랙’, 그리고 ‘전공과 현장의 트랙’으로 분류 상
세 단계로 나누고 각 트랙에서도 내용의 깊이에 따라 레벨화하는 등 커리큘럼을 체계화할 필요가 있다. 강사에 따라 내용이 바뀌기
보다는 ‘체계화된 내용에 따라 강사를 선정해야’ 한다. ‘신앙과 학문의 통합’이란 말이 나의 전공영역에서는 도대체 무슨 뜻인가에
대해서 학생들이 생각하도록 돕고 답을 찾도록 구체적으로 도와야 한다. 이러한 일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대학원생 사역을
이해하고 유학생들의 상황·현실에 따라 코스타 전체 프로그램 구조와 세미나의 커리큘럼을 짜기 위한 연구 계획을 세우고 이를 위한
연구팀을 구성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렇게 커리큘럼이 체계화된다고 가정하고 단순화된 예를 들어 보면,
(편의상의 구분에 대하여 독자들의 이해를 바란다.) 복음을 모른던 학생이 첫 해에는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를 받아 들이며, 둘째
해에는 제자로서의 삶에 대해 배우고 익히고, 셋째 해 이후부터는 자기의 전공을 통해서 어떻게 하나님을 위해서 살 것인가를 목표로
코스타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복음을 받아들인 학생이라면 최소 두 번 이상 참석하여, 한 번은 제자로서의 헌신의
문제를, 그리고 두번째 해부터는 전공과 직업의 문제를 고민하고 돌아갈 수 있다. 또한 보다 헌신된 학생의 경우에는 처음부터
전공과 현장의 문제들을 목표로 하여 동역자들을 만나고 현장의 삶을 함께 준비하는 코스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지속적으로
복음의 핵심을 들으며, 하나님의 은혜와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감격을 되새기면서 말이다.

두번째로, 강사로부터
학생으로 주입되는 일방통행(one-way)의 설교·강의 흐름에서 학생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상호적(interactive)인
흐름으로 바뀌어야 한다. 학부생들과 달리 대학원생들은 강의도 하고 세미나도 발표하고 그룹 토론에도 참여한다. 대학원생이라는 것은
학생이기도 하지만 하나의 직업이다. 즉, 대학원생의 수준이 높기 때문이라기보다 이들에 맞는 형식을 찾아야 한다는 얘기이다.
이들을 학부생들처럼 일방적으로 앉혀 놓고 듣게 하는 것은 코스타에서 다뤄지는 내용과 참여자들의 질을 떨어뜨릴 수 밖에 없다.
설교를 제외하고 전체 강의를 포함한 모든 강의에서 학생들의 질문과 토의 시간을 10-30분 정도 배정해야 한다. 이런 과정 없이
관중의 열기나 웃음 소리만으로, 혹은 구매자가 누구인지 정확히 파악되지 않는 강의 테잎의 판매량으로 강의의 효과를 평가할 수
없다. 학생들이 그 내용을 되새길 수 있는 다른 방안이 마련되지 않은 채 쉴새 없이 쏟아붓는 것은 교육적 효과면에서 결코
바람직하다고는 할 수 없다.

더구나 현장의 문제를 다룰 때 각 현장의 문제를 어느 정도 겪고 있는 학생들의
생각과 고민은 매우 중요한 원동력이 된다. 이런 고민들이 던져질 때, 기독교 세계관이라는 원론에서 그치지 않고 현장의 문제들,
각론에 대한 해답을 끌어낼 수 있으며 최소한 학생들로 하여금 보다 현실적인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학생 때부터
생각하고 고민하고, 나누고 함께 찾는 일을 하지 않으면 막상 현장에 나갔을 때, 그 고민이 지속되고 연합이 지속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울러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는 장이 넓어져야 한다. 다양한 현장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전공에 속한, 혹은 전공을 통한 문제들에 대한 고민과 결과물들을 발표하고 나눌 수 있는 장이 마련되어야 한다. 전공과
관련된 한 가지 구체적인 문제를 연구한 논문 혹은 포스터 발표라든가, 전공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섬기는 팀 프로젝트라든가,
예술 작품이라든가, 문화 현상를 기독교적 시각으로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해 보는 보고서라든가, 각 전공에 따라 얼마든지 창조적인
참여가 가능하리라 본다. 기독교적 색깔이 전혀 없더라도, 학문의 논리에 충실한 결과물도 우리가 함께 나눌 수 있으리라 본다.
이런 참여를 격려하는 것이 학생들을 현장의 그리스도인으로 구체적으로 준비 시키는 전투 훈련이 아닐까.

셋째로,
보다 연구하는 코스타가 되어야 한다. “아니 학업에 지친 몸을 좀 쉬러 왔는데 기독교 모임에서까지 왠 골치 아픈 소리요” 라고
한다면 대답할 말이 없다. 그러나 “전공마다 다르겠지만, 대학원생의 삶의 가장 기본은 연구하는 자세인데 왜 무엇보다 중요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는 문제에 대해서는 연구하지 않는가” 라고 되묻고 싶다. 조용한 방청객으로 남아있기 보다, 밤을 새우는 토론과
나눔으로 현장의 문제를 건드리는 초기의 코스타 분위기로 돌아가기를 바란다. 대학원생 모임은 자기 비판을 통한 자정 능력이 뛰어날
수 있다. 그런데 코스타에 대해서는 건설적인 비판의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이 나에게는 무척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뜨거워 할 말을 잊은 것일까? 생각 있는 사람들은 ‘이 운동은 아니다’ 라고 다 떠난 것일까? 나는
각각 자기의 전투지에서 고전하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여력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스타가 전도 집회만이 아니고 또한 선교동원 운동만이 아니라면, 그러면 어떻게 유학생들의 다양한 필요를 채울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다방면의 연구가 필요하다. 현재 강사와 참여자, 그리고 내용의 폭을 봤을 때 아직 지엽적이라고 평가될 수 있는 코스타가
미국 유학생이란 커다란 사역 대상을 폭 넓게 품기 위해서는, 캠퍼스선교 운동과 선교동원 운동을 넘어서는 도약이 필수적이다.
그리고 이것은 수 년에 걸친 체계적인 연구와 모델링을 거치지 않고서는 기대할수 없는 일이다. 미주 내에 캠퍼스와 지역 교회의
사역을 파악하려고 막 시작되고 있는 코스타의 HOC 프로젝트는 이러한 노력의 아주 좋은 예이다. 뿐만 아니라 코스타에 무엇을
담을 것인가를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연구 위원 혹은 연구 간사와 같은 장치도 꼭 필요하리라 본다.

수련회를
평가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진행에 대한 평가도 중요하지만 내용에 대한 평가는 필수적이다. 체계적인 평가자료를 개발하여
참석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이 자료를 토대로 향후 계획을 세워야 한다. 더불어 이 자료를 공개하여, 코스타라는 이름보다는
코스타에서 담는 내용을 중심으로 수양회 참석을 유도하고 코스타의 현재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

4. 맺으며


는 코스타를 잘 모르면서 편파적인 얘기를 썼는지도 모릅니다. 혹은 다들 아는 얘기를 장황하게 썼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동료 대학원생들과 함께 고민했던 몇 년의 시간을 통해서 주께서 우리들에게 주셨던, 삶과 신앙과 학문의 통합에 대한 외줄타기와
같은 균형에 대해 그저 스스럼 없이 나누었다고 생각합니다. 코스타를 중요하게 보는 한 사람의 대학원생으로서의 관찰과 생각을
나누었습니다. 이러한 나의 관찰과 생각들은 많은 일반화와, 때로는 기도보다 앞서는 운동성의 위험을 내포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스타가 어떤 ‘Monument’가 아니라 하나의 ‘Movement’라면, 나는 이 운동을 현재의 나의 삶에
주요한 하나님 나라의 운동으로서 받아들이기 때문에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독자들의 날카로운 비판과 가르침을 기대해 봅니다.

귀족 크리스천

인간의 사회는 어느 곳이 건 ‘계층’이 존재한다. 필연적으로 발생하지만 부정적이지 않은 부류의 계층도 있으나 그 계층의 존재
자체가 그 사회 혹은 공동체에 악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우리가 접할 수 있는 더 흔한 경우인 것 같다. 성경은 이러한 계층의
존재에 대해 어느 정도 인정하고 수용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로마서 13:1) 적극적으로 막힌 담을 헐어버릴 것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에베소서 2:14)

계층은 우리가 속한 지역 교회, 신앙 공동체에서도 흔히 발견할 수 있다.
때로 이러한 계층은 교회의 건전한 성숙을 이루는 좋은 프레임이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을 끼친다. 그러나 교회 혹은 신앙
공동체에서 특정 ‘계층’을 이룬 사람들이 성경적 공동체를 이루는데 큰 제약이 되는 경우를 우리는 자주 보게 된다. 나는 이들은
‘귀족 크리스천’이라고 부른다.

그러면 이들 ‘귀족 크리스천’들은 어떠한 사람들인가?

이들은
‘교회 문화’에 익숙한 사람들이다. 오래 교회 생활을 했거나 종교 생활의 연륜이 오래 되어서 예배의 한 순서가 끝나면 그 다음
순서를 의식하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행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대개 신앙의 ‘레벨’을 교회 문화에 익숙한 정도로 평가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얼마나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나오는 십자가의 감격에 의지해서 사느냐 하는 것보다는 종교적 행위, 교회 봉사 등에
의해 사람을 평가하고 그 평가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을 멸시한다. 이때의 멸시는 물론 겉으로 잘 들어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이들 ‘귀족 크리스천’들은 건덕(健德: 덕을 세움)을 중요시하는 교회 문화에 익숙하기 때문에 덕이 되지 않는
말은 입에 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음에는 담는다.) (마가복음 7:6-23)

이들은 또한 대부분
‘가르치는 일’에 익숙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어떠한 경우가 되건 가르치려 한다. 10여명이 모여서 삶을 나누는 성경공부에서도
이들은 다른 사람들이 내어놓은 삶의 구체적 고민들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마치 유일한 성경적 정답인양 30분씩 충고를 해 준다.
어떤 의미에서 설교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수도 있다. 대개 이들은 어떤 상황에서든 ‘가르칠’ 준비를 해야 한다는, 그리고 자신이
모든 상황에 대해 해답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 잡혀 살기 때문에 주변의 사건에서 겪은 일들이나 인상 깊은
설교로부터 가르칠 거리들을 잘 준비해 놓기 때문이다. 어려움이나 고민을 겪는 당사자의 이야기는 이들에게 그저 한
사례(case)로 입력되어 자동적으로 해답을 출력한다. 당사자가 개인적으로 하나님 안에서 겪는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상황에는 그리
관심이 없다. 어떠한 깨달음이나 가르침으로부터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돌이키는 것보다는 다른 이들을 향하여 무차별적으로 종교적
원론을 남발하는 것이 이들에게는 큰 기쁨이다. (디모데전서 1:5-7)

이들은 자신의 생각을 결코 꺾는 일이
없다. 자신이 한번 결심하고 결정한 것은 무조건 ‘옳은 것’으로 여기고 모든 타협과 충고와 협력을 거부한다. 그리고 이러한
타협과 충고와 협력을 거부하는 것을 신앙의 절개로 여기고 흡족해 한다. 따라서 이들과 함께 동역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고
이들이 리더가 되지 않는 한 이들은 어떤 공동체에 남아 있으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흔히 이들이 보이는 전형적인 행태는 지극히
율법적이고 종교적이다. 때로는 아무런 의미 없는 율법적 혹은 종교적 행위를 반복하면서 모든 다른 사람과의 동역을 거부한다.
(에베소서 4:1-3)

이들은 매우 사역 중심적이다. 지역 교회를 비롯한 신앙 공동체에서 이들은 탄탄한
종교행위의 이력을 바탕으로 많은 자료들과 인력을 동원해 사역을 진행시켜 나간다. 이들에게 있어 한 영혼의 구원과 양육, 성장,
치유 등의 개념보다 우선하는 것은 집단적 성장을 위한 계획, 전략, 추진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다른 이들과 동역 하는 것은
보기 어렵다. 자신의 생각과 계획을 따를 ‘추종자’만이 요구될 뿐이다. 때로 자신이 거의 혼자 관리하기 어려울 정도의 사역
계획을 수립해 놓고 이 일들을 이루어 나가는 것이 신앙의 성취이자 진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들의 이러한 성향은 ‘일꾼’을
찾는 많은 지역교회의 목회자들이나 리더들에게 인정을 받기 마련이고 소속된 신앙 공동체에서 단기간 내에 요직을 차지한다.
(누가복음 10:38-42)

이들 ‘귀족 크리스천’들은 대개 실패의 경험이 없는 ‘성공한’, 혹은 그 과정에
있는 사람들이다. ‘좋은 학교’를 졸업하고 ‘좋은 직장’에서 일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아니면 ‘좋은 학교’를 다니고 있는
학생인 경우도 많다. 그들에게 있어 이처럼 좋은 배경은 자신의 신앙적 자존심을 한껏 높이는 데에 한몫을 한다. 실패 혹은 좌절의
경험이 거의 없거나 전혀 없기 때문에 실패나 좌절은 당사자의 잘못쯤으로 여기고 정죄하기도 한다. 진정으로 낮아지는 섬김의 모습을
이들에게 찾아보기란 힘들다. 이들에겐 그저 성공을 향한 전진이 최상의 목표이다.

귀족 크리스천, 그저
이름만으로도 씁쓸한 웃음을 지어내게 하는 말이다.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 두 단어가 한 절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가 속한 신앙 공동체에서, 이러한 귀족 크리스천은 흔히 발견된다. 목회자들 사이에서, 교회 평신도 지도자들 사이에서, 캠퍼스
모임 리더들 사이에서 어쩌면 귀족 크리스천은 더 강한 연대를 가지고 계층을 형성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특히 어쩌면 ‘특권
계층’으로 여겨질 수도 있는 유학생들 사이에서 귀족 크리스천은 더욱 쉽게 발견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자신을 철저히 비우시고 털어내시며 우리를 섬기시지 않았는가. 세상의 가치관을 뒤집으시며 왕이 종으로
섬기시는 모습을 몸소 보이시지 않았는가. 죽으시면서까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용서하신 그분은 이제 너희가 나가서 사람들의
발을 씻으라고 우리를 보내고 계시지 않은가.

“낮아지신 예수, 섬기는 그리스도인” 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KOSTA/USA-2001은 그래서 그 제목을 보는 것만으로도 세상의 가치관에 대한 반란으로 느껴진다. 금년 코스타가 유난히 더 기대된다.

@ 이 글은 eKOSTA http://www.ekosta.org 2001년 5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자격시험(Qualifying Exam)에 실패한 후배에게

사랑하는 성철아,

지난 박사과정 자격시험에서 네가 실패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너는 하나님 안에서 매우 성실한 사람이고 또 열심히 준비했으므로 별 문제 없이 합격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네 불합격소식은 내게도 무척 충격적인 것이었다.

글쎄, 내 짧은 편지가 네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내 나름대로 너의 이번 실패를 두고 생각하는 것들을 좀 나누어 볼게.


도 미국에 ‘푸른 꿈’을 가지고 와서 (요즈음엔 이걸 비전이라고 이야기하지 않으면 시대에 뒤떨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더라) 정말
열심히 해 봐야지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단다. 비교적 적응도 잘 되어가는 듯 했고 수업도 그럭 저럭 따라갈 수 있었기 때문에
그저 별 문제가 없으면 사오년 안에 학위를 따고 날개를 활짝 펴고 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지. 그런데 내게 문제가 생겼다.
입학한 지 거의 일년이 다 되어 어렵게 찾은 지도교수가 갑자기 재정지원을 끊은 것이었어. 하루에 10시간이 넘게 열심히 일하며
어떻게든 잘 해보려고 몸부림치던 내게 그건 큰 충격이었어. 갑자기 지도교수를 잃어버린 나는 원래 보게 되어있었던 박사과정
자격시험을 볼 기회도 갖지 못한 채 석사과정 학생으로 ‘강등’이 되었지. 한 학기에 만불이 넘는 학비를 자비로 충당하는 건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 하고, 내가 다시 석사를 끝내고 박사과정 자격시험에 응시해서 합격을 한다 해도 다른 사람들보다 삼년 이상
늦어질텐데, 이럴 바엔 짐을 싸서 다시 한국으로 들어가거나 다른 학교로 옮기는 것이 낫지 않을까도 심각하게 기도했었어. 어느
아침에는 일어나서 ‘그래, 오늘은 부모님께 말씀을 드리고 한국에 다시 들어가겠다고 하자’고 결심했다가도, 그날 저녁엔 다른 학교
홈페이지를 뒤적이며 전학(transfer)용 원서들을 다운로드 받았고 자기 전엔 ‘내일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며 잠자리에
누웠지.

게다가 그땐 내가 청년부에서 회장을 맡고 있었던 때였고 그때 막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는 청년부를 돌보는
데에도 많은 힘을 쏟고 있을 때였어. 정말 아침엔 청년부 한 지체 한 지체를 생각하다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일어나 새벽기도를
가곤 했던 때였지. 어떻게 하면 새로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을 잘 양육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성경공부 모임들을 잘 세워나갈
수 있을까를 많이 고민하였고.

나는 하나님께 아주 절실하게 여쭈었어. 도대체 내가 잘못한 게 뭐냐고. 도대체
내게 무슨 문제가 있어서 이런 ‘고난’을 주시는 거냐고. 게다가 나는 유학생들과 복음을 나누고 복음으로 양육하는 중요한 일을
지금 하고 있지 않느냐고. 내가 특별히 학문적인 능력이 현저히 뒤떨어지는 것도 아닌데 왜 괜히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시느냐고.
어떤 땐 하나님께서 응답을 주실 때까지 한발작도 움직이지 않겠다며 교회의 한 골방에 들어가 금식기도를 하기도 했고, 어떤 땐
어떻게든 정신을 차려 이 사태를 수습할 방법을 찾아보자며 뛰어다니기도 했고, 어떤 땐 그저 앉아서 구름을 보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어. 중학교때 몰래 다른 아이 일기장 훔쳐 본 것까지 생각해 내며 ‘회개’를 하고 이젠 좀 풀어달라고 기도해보기도 하고.
그런데 하나님은 아무 말씀도 없으시더라.

그런데 답답한 마음 중에 나는 출애굽기를 묵상했었어. 사십년 간 광야를
돌았던 이스라엘 백성들과 나를 동일시하면서 말이야. 워낙 잘 아는 이야기들이고 그저 상투적인 표현들로 가득해 보였던 출애굽기가
내게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어. 정말 살아 꿈틀거리는 생생한 이야기로. 사십년 간 돌고 돌고 또 돌면서, 어떤 때엔
구름기둥/불기둥이 며칠씩, 몇달씩 움직이지 않았던 때도 있었을 거라 생각했어. 그러면 백성들은 아침에 일어나서 오늘은 구름기둥이
움직일 기색이 조금이라도 있나 하며 천막 밖으로 목을 빼곤 했겠지. 하나님의 ‘침묵’에 답답해 하면서도 그저 그것 외에는 의지할
것이 없으므로, 그래도 눈물을 빼면서 하나님의 인도를 구했겠지. 그러면서 나는, 하나님께서 사십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시면서 말씀하시고자 했던 것은 어쩌면 ‘가나안’이라는 땅에 가는 것 보다 더 소중한 것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라는 것,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 이러한 깨달음은 그저
‘시뮬레이션’으로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몸으로 부딪히고 온 삶으로 겪어야만 내 것으로 체득되는 것이니까.


늘도 나보다 이년 더 늦게 우리 과에 들어온 어떤 사람이 마지막 박사논문발표(final defense)를 한다는 이메일을
받았어. 이런 이메일을 받는 박사 6년차의 기분이 어떤지 넌 아니? 그래, 나는 아직도 그때 하나님께서 내 삶 속에 던져놓으신
‘돌맹이’로 인한 파장을 다 수습하지 못한 채 그 안에서 허덕이고 있어. 그리고 이렇게 장학생(長學生; 오래 공부하는 사람)으로
남아 있지. 그리고 아직도 하나님께서 왜 그때 그렇게 하셨는지 완전히는 이해할 수 없어. 물론 나를 더 멋진 사람으로 만드시기
위해, 공부를 향한 나의 인간적 욕심을 다루시기 위해 등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생각해 볼 순 있지만 말이야.

하지만 성철아,

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확신할 수 있는 건, 이 모든 ‘고난’과 ‘실패’의 경험이 있기 때문에 난 유학오길 잘했다는 거야. 젊은
시절에 경험하는 이 ‘광야생활’이, 비록 나를 ‘가나안’으로 인도하지 못할 지라도, 내가 목숨을 걸고 사랑하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더 절실히 의지할 수 있는 멋진 영적여정(Spritual Journey)임을 알기 때문이지. 지금 내 은행계좌엔
584불이 남아 있어. 앞으로 한달 동안 나와 내 아내와 우리 두살난 딸이 함께 살아야 하는 돈이지. 학문적, 경제적 압박들이
늘 나를 짓누르고 있고, 미래에 대한 불안과 또 다시 닥쳐올지도 모르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언제나 내 삶 속에 흐르고 있지만,
그래도 이런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을 더 깊이 알 수만 있다면 한번 해 볼만 한 일 아니니?

성철아,
이번의
실패로 마음이 답답하면 울어. 먼 산을 쳐다보며 멍하게 있어도 보고. 나도 어떻게 어려움과 아픔들을 견뎌야 하는지 잘 몰라.
그냥 나도 그렇게 울고, 그렇게 기도하고, 그렇게 멍하게 있곤 하거든. 그래도 우린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믿는 사람들
아니니.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같이 바보같은 사람들을 사랑하셔서 십자가에서 온 몸을 찢어 돌아가셨잖니. 그 예수님의 사랑에 한발
더 깊이 빠져보자. 그것 외엔 길이 없으니까.

언제 전화 한번 해라. 내가 네 푸념 들어주면서 네가 좋아하는 육개장 오랜만에 한국음식점 가서 사줄게.

2001년 4월,
주안에서 함께 형제된, 경호형이

@ 이 글은 eKOSTA http://www.ekosta.org 2001년 4월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