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원주의자, 다신론자 아브라함과 동행하시는 하나님

요즘,
창세기에 나와있는 아브라함의 일생을 공부하고 있다.

성경 본문을 연구하면서,
참 새로운 모습으로 아브라함을 만나고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는,
정말 아브라함이 처음 하나님을 만났을 때 정말 아브라함의 상태가 어떤 것이었던가 하는 것에 대한 생각을 통해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관계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Ur 지방에서 살던 아브라함은,
아마도 다원주의자이거나 다신론자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아브라함의 아버지가 야훼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었던 것으로 보아, 아브라함이 어떤 가정교육을 통해서 유일신관을 전수받았을 것 같지도 않다.

그런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명령하셨을때,
아브라함은 그 야훼 하나님을 어떻게 인식했을까?
아마도 많은 지역신 가운데 하나로 인식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그 신을 하나 붙잡았으니 그 신을 통해서 부와 평안을 얻으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아브라함이 가나안 지방으로 와서 단을 세우고 예배를 드린 행위라던가,
멜기세덱을 만나서 십일조를 한것 같은 마일스톤이 될만한 아브라함의 행동들도,
유일한 하나님에대한 위대한 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기 보다는 그 당시 근동지방에서 통상적으로 행해지던 종교행위의 일부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브라함은 그저 자신이 이해하고 있는 종교의 수준에 매우 오래 머물러 있었고, 그 framework에서 야훼 하나님을 이해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이집트에 갔을때, 자신의 아내를 sister라고 이야기한 것이나,
심지어는 하갈과 같은 대리모를 통해 자신의 대를 연장하려고 했던 것들도…
아브라함이 대단히 잘못한 것이라고 손가락질 하기 보다는,
제한된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있었던 아브라함에게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으로 이해할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그런 과정 중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차근차근, 창조주로서의 야훼 하나님, 그리고 마침내 이땅에 궁극적 창조질서의 회복을 계획하시는 야훼 하나님을 드러내신다.

아브라함의 생애동안,
계속해서 아브라함이 가지고 있었을 잘못된 세계관을 바로 잡아가시는 하나님,
다원주의자였을 아브라함에게 유일신으로서 당신의 존재를 소개시켜가시는 하나님…

이런 관점으로 아브라함을 읽고 있자니,
정말 흥미진진하다!

마치 2차원 도면으로 평면에 표현되어 있던 3차원의 구조물이,
현실로 드러나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는다!

이겨도 이긴게 아니야

지난주말,
우리 그룹에서 어떤 사람이 내가 하는 어떤 실험에 대하여 아이디어를 내어 놓았다.
그러면서 실제 구체적인 experimental design을 해서 내게 excel file로 보내왔다.
그대로 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기분이 많이 상했다.
아니 내 실험인데… 지가 뭔데 이래라 저래라야.

어제 아침 process meeting 시간이 있었는데,
나는 그 사람의 experimental design이 잘못되어 있음을 하나씩 지적하며 그 사람의 논리를 반박했다.
그 meeting이 끝난 이후에도 그 사람과 이야기하면서 그 사람의 논리가 부족함을 조목조목 따졌다.
process parameter들을 펼쳐가며… 이미 내가 한 실험 결과를 설명하며… 그 사람의 실험에 대한 제안이 ‘시간낭비’가 됨을 역설했다. 솔직히 나중에 가서는 그 사람이 약간 억지를 부리기도 하였다.

그 사람은 결국 자신의 논리가 부족함을 인정했고, 나는 그 토론에서 ‘이겼다.’

그.러.나…

내가 이긴 것은 이긴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렇게 내가 그 사람과 논리 싸움을 해서 이긴게 어떤 유익이 있는데?
결국은 내 실험에 그 사람이 관여했던 것이 기분나쁜 것 이상의 그 무엇이 아니었지 않은가!

지난 달이었던가…
우리 lab director와 이야기를 하면서 나와 논쟁을 벌였던 그 사람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 사람이 사실 매우 어려운 위치에 있다는 것이 우리가 함께 나눈 말이었다. 그 사람은 말하자면 별로 훌륭한 학문적 훈련을 받지 못했다.
최고의 학벌과 실력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그 사람이 자신의 위치를 잡는데 매우 어려울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나와 우리 lab director가 함께 동의했었는데…

불과 몇주가 못되어,
나는 그 사람을 자근자근 짓누르고자 혈안이 되었던 것이다.

예수의 방법(The way of Jesus)이 아니야…
이겨도 이긴게 아니야…

또 하나 상을 받았다.

이번주 Phoenix에서 열리고 있는 Flextech conference에서 우리 회사와 HP의 우리 그룹이 상을 또 하나 받았다.
이번 상은, Flexible electronics쪽에서 가장 active한 학회에서 준 상이어서 의미가 있게 느껴진다.

우리 그룹이 최근 1-2년 동안 받은 award, recognition등을 정리해 보면…

2008년 IDTechEx printed electronics award
2008년 Merck award for outstanding display technology
2008년 Wired Magazine top ten technology breakthrough
2010년 Flextech alliance outstanding R&D award

그외에… 수없이 많은 학회 invited talk이 물론 있었다.

두가지 연관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첫번째는,
상을 받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 아니라 실제로 market place에 의미있는 방식으로 contribute하는 technology를 개발하여 commercialize 하는 것이 목적이므로 자꾸만 상을 받아 모으는 것으로 기뻐하는 것보다 실제로 이루어지는 작지만 의미있는 technological achievement에 더 기뻐해야 할텐데…
이렇게 recognize 되는 것을 더 기뻐하는 것을 보면 내가 일하는 자세나 모습이 아직 유치한 수준이 아닌가 싶다.

두번째는,
이번에 학회에는, 내가 최근 여러가지 일로 travel을 많이 했기 때문에 참석하지 않기로 했었는데… 내가 참석하지 않기로 한 학회에서 상을 받게 되었고… 그 상을 받는 자리에 내가 없다는 사실이 잠깐 섭섭했었다. 그래도 내 나름대로는 이 technological achievement에 내가 중요한 부분을 contribute 했다고 믿고 있는데…
그렇게 잠깐 생각했다가… 정말 부끄러워졌다.
결국은 그렇게 attention 받는 것이 내 동기의 바닥에 깔려 있었던 것인가.
그렇지 않아도… 너무나도 자주.., 우리 그룹 내에서 그리고 외부적으로도… 내가 deserve 한것보다 더 많이 나는 attention과 recognition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자주 해 왔었는데…

상받는 기쁜 소식에,
부끄러운 두개의 단상.

선배가 필요해…

나는 고등학교 3기이다. 당연히 선배가 많지 않다.
대학교는 2기이다. 내 1년 선배가 대학 선배의 전부이다.

그런 영향이 있을까…
나는 그리스도인으로서도 참 선배가 많지 않다.

대학교 3학년때, 처음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맺은 후,
정말 desperately “선배”를 찾았다.
그러나 나를 이끌어주고 키워줄 그런 선배를 결국 찾지 못했다.
내가 가진 진지한 질문에대해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이해한 수준의 자기 중심적인 대답을 길게 나열하는데 바빴지, 내 질문과 고민을 종합적으로 이해하고 그 사고를 발전시키도록 도와주지 않았다.
단순히 내 대학선배뿐이 아니었다. 교회에서 만나는 어른들, 꽤 이름이 있는 평신도 지도자들, 교수님들로부터도 도움을 얻지 못했다.
그런이들과의 대화는 도움은 커녕 frustration만을 가져왔다.

몇년간 그런 시도를 하다가,
나는 선배를 찾는 것을 포기했다.
하나님께서, 적어도 내게는, 그런 luxury를 허락하시지 않는다는 잠정적 결론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런데 요즘,
그런 선배를 다시 찾아본다.
그런데… 그런 선배가 없다.

역시 내 고민을 이야기하면,
자신의 한계 내에서 내 고민을 나름대로 해석해서,
내 context와는 무관한 대답만을 쏟아놓는 사람은 많이 만나지만…
정말 나의 성숙과 성장에 관여하여 도움을 주려는 그런 사람을 만날수가 없다.

내게, 도움을 요청하며 무엇인가를 기대하는 사람은 많은데…
막상 나는 그런 도움을 받아본 경험이 일천하기 때문에, 너무 자주 엉뚱한 실수를 한다.

어쩌면,
선배에 대한 나의 이런 목마름이…
나의 깊은 문제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내가 충분히 유연하지 못해서 다른 이들의 가르침을 잘 듣지 못한다거나,
이미 좋은 스승이 내 주변에 많이 있는데도 내가 그분들을 appreciate하지 못한다거나…

역시 “선배”는 내게 luxury 인가.

기도

정말 기도가 고프다.
내 진액을 짜내는 것과 같은 그런 기도가 고프다.

하나님을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갈망하며,
그분의 영광을 바라는 기도…
그런 기도가 고프다.

내가 사랑하는, 내가 사랑해야하는 이들의 아픔과 고통을 내 마음에 담고 하나님 앞에 서는,
그런 기도가 고프다.

기도는,
물론 그냥 하면 되지만…

정말 내가 하고픈 그런 기도는,
내가 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내가 하게 되어지는 것 같은데…

It’s not something I do,
but it’s something I get to do.

매 순간을 식사기도 하듯 살기

식사기도를 할때면
(제대로 식사기도를 할때 이야기다, 물론.)
잠시나마 음식을 공급해주신 공급자에게 감사하는 시간을 갖는다.

식사 자체가 내 노력으로 온것이라기 보다는 하나님의 공급하심에 의한 것임을 인정하고 그 앞에서 감사하게 된다. 그리고 겸손해 진다.

놓여진 음식의 맛을 음미하며 그 맛에 깃들인 하나님의 솜씨를 감상한다.

—

시쓰러운 알람 소리에 눈을 떠 아직 남아 있는 잠을 쫓을때,
아침에 바쁘게 민우를 깨우고 아침 준비를 하며,
내가 실험실에서 기계의 단추 하나를 누르며,
내가 평소에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 긴 미팅을 가져야하는 순간에,
나와 생각이 다른 어떤 실험 해석에 대하여 내 생각을 표현하는 이메일을 쓸때,
점심 먹을 시간이 부족해서 샌드위치를 한손에 들고 일을 하며 식사를 때우려 할때,
오후에 잠을 쫓으려 커피 한잔을 들때,
민우를 픽업하기 위해 시간맞추어 나오기 위해 실험 계획을 짜 놓았는데 다른 사람이 내 앞에서 미적 거리는 모습을 지켜봐야 할때,
예상했던 business meeting이 연기되어 허탈해졌을때,
민우 픽업 시간에 늦지 않으려 부랴부랴 운전을 하며 I-280을 달릴때,
저녁시간 급하게 차린 식탁에 따뜻한 현미밥이 막 얹어지는 순간,
저녁에 밀린 일들을 처리하다가 잠깐 인터넷 사이트를 뒤질때,
밀려오는 피곤을 가지고  잠자리에 들때…

모두 한 순간 한 순간…
식사 기도 하듯 그렇게 살고 싶은데 말이야…

블로그

블로그에 글을 매일 하나씩 쓰기 시작한지 거의 2년 가까이 되어간다.
대충 1년 10개월쯤 되지 않았나 싶다.

블로그를 시작한 이유가 무엇이었던가.
내 생각을 좀 더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 내 생각을 좀 더 알려야 하는 사람들과 내 생각을 나누고자 한 것이었는데…

요즘은 public space에 있다보니,
누가 들어오는지도 잘 모르겠고…
누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좀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또한,
내가 정말 마음 속에 두고 있는 생각이나 말들을,
속 시원하게 풀어낼 수 없다는 한계를 더 많이 느끼게 된다.

언제까지 이걸 계속하는 것이 좋을까…

헛점을 드러내는 섬김

최근 여러가지 일로 힘들어하시는 어느 선배님과 전화 통화를 했다.

그 선배님이 자신의 심경을 담은, 꽤 emotional한 이메일을 지난주에 보내셨고,
내가 그 이메일에 역시 꽤 emotional하게 답을 했었다.

그 선배님께서 내게…
자신이 여러가지 일로 많이 마음이 무겁고 힘들어서…
그 이메일을 쓰던 날 밤에 많이 감정이 격해져 있었다, 그 이메일을 보내고 많이 후회했다며 내게 걱정하지 말고 힘내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러면서 자신이 겪고 있는 어려운 상황, 감정적인 어려움, 내부에서 해결되지 못한 anger에 대한 이야기들을 해주셨다.

지난 15여년동안,
정말 내게 따르고 본받고 싶은 모범이 되어주신 그 선배님의 그 말씀을 들으며 가슴이 뭉클해졌다.

나같은, 참 보잘것 없는 후배에게, 자신의 부족한 면을 투명하게 보여주시면서…
이해를 구하시는 모습이 정말 감사했다.

나는 오히려 내가 그 선배님께 걱정을 끼쳐드렸을 것 같아 염려가 되어…
죄송하다… 걱정 하지 마시라… 열심히 잘 하고 있다… 등등의 말씀을 드리려 했는데,
그 선배님께서는 그렇게 선수(?)를 치신 것이다.

그 선배님의 따르고 싶은 또 다른 모습을 경험했다.
나는… 정말… 아직 멀었다.

촉촉한 사람 = 부드러운 사람

촉촉한 사람이 되기 라는 내 새해결심은,
작심 삼일 수준으로 망가지고 있다. ^^

다시 결심을 추스려야 할 듯.

한가지 생각한 것은,
촉촉한 사람이 되는 중요한 key는 부드러운 사람이 되는 것이라는 것이다.
부드러운 사람이란, malleable 한 사람, 즉 쉽게 변화되는 사람을 의미한다.

지난 5년 정도의 시간을 돌이켜 보면,
내 내면이 정말 변화되었던가.
그리스도와 동행하기 때문에 가능한 그런 변화가 내 안에 있었던가.

어쩌면,
이 질문이 나를 on-track에 있게 하는 key question이 아닐까…

대형교회를 변호하자면…

아마 약 10년쯤 전의 내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소위 ‘대형교회'(Mega-Church)에 대해 내가 몹시 비판적이었음을 알것이다.

세월이 지나 무디어 진 것일까, 아니면 몇년쯤 전에 내가 스스로 선언한 ‘이상주의 포기’의 일환일까.

최근 사랑의 교회 예배당 건축과 관련하여 신문 기사들도 읽고,
여러가지 생각을 하면서 대형교회에 대하여 그렇게 비판적인 자세를 갖는 것에 대한 비판을 좀 해보게 되었다.
(지난 연말 Tony Campolo의 Mega-Church에 대한 시리즈 commentary가 많은 insight를 주었다.)

Tony Campolo가 이야기한, 대형교회들에 대한 defense는 다음과 같았다.
(미국의 이야기이므로 한국은 좀 다를수도 있겠다.)

1. 일반적으로, 대형교회들은 작은 교회들에 비하여 더 많은 percentage의 재정을 자기 교회 외부로 사용한다. (선교,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구제 등)
그것은 대형교회가 갖는 재정구조의 효율성 때문에 그렇다.

2. 대형교회에 출석하는 사람들이 하는 헌신의 정도가 일반적으로 작은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보다 더 크다. (이 부분은 한국에 그대로 적용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일인당 헌금액수, 일인당 선교와 지역봉사 등에 사용하는 시간등의 통계자료에서, 대형교회는 작은 교회를 압도하였다.

3. 대형교회는 더 생동감이 있다. 많은 작은 교회들은 지루하다(boring) – Tony Campolo가 그렇게 이야기 한 것이다.  내 말이 아니고. ^^
대형교회는 사람들의 context에 더 relevant하게 다가간다.

이런 Tony Campolo의 comment에 추가하여,
나는 다음과 같은 몇가지를 더 생각해 보았다.

1. 흔히 우리가 대형교회를 비판할때 하는 말은…. ‘모범을 보여야할’, ‘지도적 위치에 있는’ 등등의 말이다. 그러나, 나는… 대형교회가 모범을 보여야할 혹은 지도적 위치에 있다는 argument에 동의하기 어렵다.
대형교회는 물론 출석하는 교인의 수가 많으니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지만, 이들이 가진 신학이나 이들의 교회운영 방식이 필연적으로 시대를 선도해나가는… 혹은 차세대의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오히려 대형교회는, 현 시대의 need에 충실하도록 움직이는 것이 더 바람직할수도 있다.
대형교회에게 생명력을 공급해주는 body는, 그리고 일반적으로 교회에 생명력을 공급해주는 body는… 소수가 모인, 좀더 앞선 가치를 추구해나가는, 큰 교회가 하기 어려운 실험을 과감하게 할 수 있는, 작은 교회가 아닐까 싶다.

2. 그나마 많은 경우, 대형교회들은 일반적인 동시대의 교회들에 비해, 여러가지로 건강한 경우가 많다. 재정에 대해서나, 신학적으로나.
물론, 가령 한국의 대형교회들을 보면, 이들 대형교회들이 완벽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들 대형교회만의 문제라기 보다는 동시대 교회들이 함께 짊어지고 있는 문제가 아닐까.
대형교회는, 다수가 모인다는 그 특성 상, 시대를 한단계 더 앞서 읽고, 민첩하게 움직이는 것이 어려울수 밖에 없다. 따라서 그들이 이정도라도 건강함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칭찬해주어야하는 것은 아닐까.
다시 말하면, 많은 경우 대형교회들의 문제는, 대형교회가 비난을 받을 것이라기 보다는, 동시대의 모든 교회들이 함께 비난을 받을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그냥…
나름대로 짧은 생각을 한번 정리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