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만큼 소중한 존재는 없다

이 세상에서 많은 일을 이루고, 업적을 쌓는 일이 가치 있어 보이지만,
사람만큼 소중한 것은 없다.

갑자기 뜽금없이 들수도 있으나…

요즘 몇주간 계속 내 마음 속에서… 그 사람들에 대한 소중함이 새록 새록 다시 remind 되고 있다.

사람은, 그 사람이 아주 형편없어 보이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수 많은 사랑을 그에게 쏟아부을 만한 가치가 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내게 그것을 가르친다.

동생

내겐 나보다 한살어린 동생이 있다.
내가 아주 어릴때 부터, 얘는 나보다 한살이 어렸다.
그리고 내가 아주 나이많도록 얘는 나보다 한살 어릴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살아갈동안 소중하게 생각하고 살아갈 사람들을 주시면서,
평생을 어떤 관계로 엮어 주시고 그 안에서 사랑하고 섬기도록 하신 것이 참 신비롭다.

내가 아주 어릴때부터 내게 사랑하는 방법을 가르쳐준 내 소중한 가족, 내 동생…

참 감사한 일이다.

gpKOSTA-TX를 마치고

gpKOSTA-TX를 마쳤다.
이런 저런 일로… 떠나기 전날 밤을 거의 새우다시피하고 떠났고..
그래서 gpKOSTA 기간 내내 부족한 에너지를 경험해야만했다. ^^
(어쩌면 나로 하여금… 좀 자제하도록 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고)

유난히 열정적으로 준비했던 준비위원들,
매우 reception이 좋았던 참석자들,
아주 적극적인 현지 어느 지역교회의 지원…

정말 참 좋은 여건과 환경이었는데…
내가 mess up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어려운 마음이 솔직히 든다.

내가 해야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는 어느정도 알고 있는 것 같은데…
그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었던 사람들이었는데…
그 이야기를 막상 해주지 못한 것 같은 아쉬움이 정말 무겁게 마음을 누른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앞으로의 과정을 올려드릴 수 밖에…

짧은 시간이지만 강동인 간사님, 안상현 간사님을 비롯해 다른 간사님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것도 참 감사했다. (물론… 많~이~ 아쉽다…. 더 얘기하고 싶었는데….)

gpKOSTA-TX

내일부터 3일간은 Dallas, TX 근교의 어느 수양관에서 gpKOSTA에 참여한다.
계속해서 준비팀의 이메일들을 따라가면서… 야…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과연 내가 이들에게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글쎄…
아마도 내가 어떤 도움을 주겠다고 작정하고 가기 보다는…
소중한 사람들을 만나러 간다고 생각하고 가는 것이 더 바람직한 자세가 아닐까… 싶다.

가끔… 정말 내가 message가 잘 될때는,
내가 해놓은 message를 듣고 또 듣고… 심지어는 note도 하고 하고 싶을만큼 잘 될때도 있다.
갑자기 power point를 켜는 순간 각종 inspiration이 쏟아져 들어오고 그 inspiration을 주체할 수 없을만큼 쏟아내게 될때가 있다.

그럴때마다 정말 이건 내가 하는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갖곤 하는데…
하나님께서 이번에도 내게 그런 은혜를 주실까.

기도

하나님, 이건 꼭 해주셔야 합니다…
이런 기도가 이기적일 때도 있지만, 이런 기도가 꼭 필요할 때도 있는 것 같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이 그렇게 기도하는 것을 통해 일하시고.

나는 기도한다.
마음을 움켜잡고, 하나님께 기도한다.

Reunion

이제 마지막 Boston 왕복 비행기표를 끊었다!
(아내의 졸업식에 참석할 비행기표는 아직 일정이 확정되지 않아서 못했지만)

이제 터널의 끝이 보이고 있다.
터널의 끝에 다가가면서 비로소, 내가 아내의 존재를 많이 miss 하고 살았다는 것이 깨달아지고 있다.

참 신기하다.

지난 4년간 이렇게 살면서,
나는 늘 내 아내가 안쓰럽게 느껴지는 일종의 걱정,
그리고, 내 딸에 대해서는 떨어져 있기 때문에 생길 수 있는 어려움이 없도록 하겠다는 의무감…
이 두가지가 주된 감정이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그리움이 주된 감정이 되고 있다.

아마 그리움이라는 감정을 내 스스로 억누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그리움이 튀어나오면 감당하기 어려울 테니까.

어쨌든,
이제 거의 다 왔다! only three more months to go!

성령님의 인도

지난 몇달간, Stanford 학생들과 함께 하는 성경공부 모임에서는 사도행전을 공부하고 있다.
나는 사도행전 공부가 이번이 3번째인데…
나는 이번에 참 많은 새로운 시각들을 발견하고 있다.

도저히 복음의 진보가 막히지 않는 모습에 거듭 감탄하면서도,
실제 내가 섬기는 사역들과 모임들에 주는 implication이 무엇인지를 묵상하다가 감탄을 연발하게 된다. 이 아침에 쓰는 이 짧은 글로 그 깊이와 감동을 다 표현하려 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것이리라.

아직도 물론 내가 말씀을 대하는 수준이 유치하기 그지 없지만,
그러나 적어도 이전에 사도행전 말씀을 접했던 수준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까지 내가 성장한 것이 아닌가 싶어… 나 스스로의 등을 두드려주게 된다. ^^
그리고 또한 내 믿음의 깊이가 더 성장했을때 내가 말씀을 이해하게 될 수준에 대한 기대와 목마름이 더욱 깊어진다.

최근 섬기는 사역과 관련해,
도대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어디에 있는지 하는 것을 고통스럽게, 그러나 또한 다소 다급하게, 묻고 있는 과정을 겪고 있다.

그런데,
사도행전에 나타난 것 같은 성령님의 인도는… 그리고 그런 복음의 진보는,
결국 사도행전적 사역을 할때만 경험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본다.
(무엇이 성령님의 인도냐, 무엇이 사도행전적 사역이냐 하는 것에 대한 긴 설명이 필요한 말이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그것에 대한 설명은 이 짧은 글에 담을 수 없는 것 같다.)

금관의 예수

내가 대학교 1학년이었던 1987년에는 독재타도의 함성이 온 나라를 덮고 있었다.
대학의 축제라고 가보면 ‘대동제’라는 이름으로 소위 ‘운동권’의 노래를 부르고 막걸리를 마시는 분위기가 대세였다.

고등학교때 철저하게 ‘반공 이념교육’을 받아 운동권=빨갱이=나쁜놈 의 등식을 가지고 있었던 내게 ‘금관의 예수’라는 노래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1. 얼어붙은 저 하늘 얼어붙은 저 벌판
    태양도 빛을 잃어 아 캄캄한 저 가난의 거리
    어디에서 왔나 얼굴 여윈 사람들
    무얼 찾아 헤매이나 저 눈 저 메마른 손길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우리와 함께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우리와 함께 하소서

2. 아 거리여 외로운 거리여
    거절당한 손길들의 아 캄캄한 저 곤욕의 거리
    어디에 있을까 천국은 어디에
    죽음 저편 푸른 숲에 아 거기에 있을까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우리와 함께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우리와 함께 하소서

지금 다시 이 가사를 음미해보면서, 이 ‘운동권 노래’가 하나님 나라 신학의 아주 건강한 면을 담고 있음을 본다.

그리고 한편,
지금 이 시대에… 시대를 거슬러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와 같은 이런 찬양이 더 이상 나오고 있지 않음이 가슴 저리게 아프게 느껴진다.

다시한번 눈물로…
“금관의 예수”를 불러본다.

캘리포니아 다람쥐

내 아내는 유난히 햇빛을 좋아한다.
날씨가 조금만 좋으면 감탄사를 연발한다.

또, 추위도 많이 탄다. 그런데 두꺼운 옷 입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보스턴 같은 곳에서 살 사람이 아닌데…
보스턴에서 오래도 살았다.

여전히 보스턴은 낮 최고 기온이 30s 인 날들이 대부분이고…
이곳은 낮 최고 기온이 60-70s 인데…

보스턴과 이곳 날씨를 생각하면서…
하루빨리 이 다람쥐가 캘리포니아에 와서 살게 될 날을 기다린다.

캘리포니아 다람쥐는, 내가 내 아내를 처음 만났을때부터… 아내를 불었던 일종의 애칭같은 것이었다. 다람쥐 같이 생긴데다…. 캘리포니아에서 살다 왔다고 해서 붙여준 것이었다. ^^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Sign

요즈음,
KOSTA에서는 간사 훈련 program이 막 시작되고 있다.
집회 준비 때문에 정신없이 바쁜 우리 간사님들을 더 바쁘게 만드는 일을 하고 있는데…

간사 훈련 관계로…
우리 간사들 전체 리스트를 엑셀 file로 정리한 것을 여러가지 방법으로 sort 해서 보고 또 보고 해 보았다.

어찌 이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이 정말 이렇게도 훌륭한 사람들인지!

정말 순수하고, 성실하고, 열정적이고, 겸손한… 이런 사람들이 이렇게 또 모이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이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 자체가 KOSTA를 아직은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사용하신다는 sign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