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60 challenge

사순절을 맞아 60-60 challenge 라는것을 하고 있다.
(엄밀하게 말하면 60-40 challenge 일텐데…)

원래 60-60 challenge 라는 것은,
60일동안, 매 60분마다 자신이 예수님 안에 거하고 있다는 것을 remind 하는 것인데…
다음의 web site에 잘 설명이 되어 있다.

http://paradoxchurch.com/forum/index.php?topic=91.0

나도, 이번 사순절동안, 매 60분마다 내가 주님과 동행하고 있음을 깊이 인식하는 일들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결국… 내가 주님 안에, 주님이 내 안에 있다는 것 만큼 내 삶 속에 가치있는 것이 무엇이 더 있으랴!

사순절

오늘로서 사순절이 시작이다.

최근 내 안에 깊이 있는 spiritual hunger때문에 거의 고통에 가까울만큼 힘들어하고 있었는데…

정말 더 깊이 있는 기도에 집중하고,
하나님을 향한 더 깊은 갈망을 드러내는 기간이 되었으면 한다.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너무 깊어…
아픔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기도하려고 한다.

그저… 울었다.

어제,
KOSTA/USA-2009 홍보 동영상을 만들고 있는 멀티미디어팀에서,
금년 홍보 동영상 pre-release version을 보여주었다.

KOSTA 집회에 참석하기위해 공항 셔틀을 타고 등록처로 들어오는 사람들의 모습,
조별모임을 하는 모습,
강의와 설교를 듣는 모습,
기도와 헌신의 모습,
찬양하며 춤추는 모습 등…

그 동영상을 받은 것이 오후 4시 경이었던가.
회사에서 한참 실험이 잘 안되어 다소 지쳐있었는데…
그 짧은 동영상을 잠깐 틀어보고는…
난 한동안 내 자리에 앉아서 정신없이 울었다.

이렇게 하나님을 찾는 젊은이들을 보며 갖는 벅찬 소망 때문에,
하나님께서 또 다시 일하실 KOSTA/USA-2009 집회를 향한 바람 때문에,
매년 신실하게 일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 때문에,
나 같은 사람도 이 일에 참여하게 하신 감사 때문에,
아직 이 기쁨을 함께 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에…

그저 울었다.

배경보다 큰 사람

자신의 학벌, 집안 등 배경을 자랑 하는 사람은,
자신이 그 배경보다 작은 사람이기 때문에 그 배경을 통해서 자신을 실제보다 더 훌륭하게 보이게 하고 싶은 것이다.

반면,
큰 사람은, 자신이 배경을 더 훌륭하게 만든다.

세상의 성공의 기준은, 자신보다 큰 배경을 취득하는 것이지만…
건강한 성공의 기준은, 자신이 배경보다 큰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닐까.

야전 사령관과 훈수쟁이

Spiritual leadership을 가지고 사람들을 섬기다 보면,
자신이 이런 저런 결정을 하고 자신이 섬기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 결정을 따르도록 도우며 함께 나아갈일이 많이 있게 된다.

그런데,
적어도 나는, 너무나도 자주…
그러는 과정 속에서 내가 섬기고 있는 사람들에게 훈수를 두고 있는 사람으로 전락해 버리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훈수를 두는 사람은, 그 경기의 승패에 큰 관심이 있다거나, 그 경기에 임하는 사람에 큰 관심이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저 훈수를 두는 재미를 즐기는 것이다.
또한 훈수를 두는 사람은 그 경기의 결과에 대하여 책임을 지지 않는다.
훈수를 두는 사람은 자신이 어떤 수를 읽고 이야기할 수 있는가 하는 것에 중심 생각이 있다. 다시 말하면 매우 자기 중심적인 것이다.

그러나,
야전 사령관은 다르다.
야전 사령관은 현장에서 함께 땀흘리고 함께 뛴다.
그 전투의 승패에 궁극적 책임을 진다. 그 전투에 임하는 사람에게도 깊은 관심을 쏟고, 그 사람들이 가져오는 크고 작은 승리와 패배의 소식에 깊이 귀를 기울인다.
야전 사령관은 자신이 어떤 일을 성취할 수 있느냐 하는 것보다는 이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는가 하는 것에 더 큰 관심이 있다.

내가 사람들과 모임들을 섬기면서,
훈수쟁이가 아닌 야전 사령관이 되도록 지켜주는 핵심적인 key는 과연 무엇일까.

나는 요즈음, 그 핵심을 ‘기도’라고 생각한다.
영적인 부담이 너무나도 크고 무거워서 그 영적 부담만으로도 잠을 이루지 못하면서 하는 기도.
예수님께서 하셨던 것 처럼, 땀이 피가되도록 절실하고도 간절하게 하는 기도.

복음과 세계관

복음을 듣고, 자신의 세계관으로 복음을 해석하는 길이 있다.
그러나 반대로 복음을 듣고 그것을 자신의 세계관으로 만드는 길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 양자의 중간 어디쯤에 자신의 위치를 두게 되는 것 같다.

나는 이 양극단의 사이에서, 어디쯤 위치해 있을까.

2월 16일

2월 16일은 내가 내 아내와 첫 데이트를 한 날이다.
벌써 12년전 일인데…

1997년 2월 15일은 내 아내의 대학원 원서 접수 마감일이었다.
막판까지 부지런히 원서와 각종 서류들을 써서 2월 15일 저녁에 그 대학원 admission office 방 아래 원서를 밀어넣고 나서는…
함께 저녁 식사를 하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서로 이미 마음이 통하고 있음을 확인하였었다.

무슨 할 이야기들이 그리 많았는지…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아내의 차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다가…
밤을 꼴닥 지새웠다.

밤에 이야기하다가…
함께 기도도 좀 했던 것 같고…
그러다 추워지면 차에 시동을 걸어서 다시 좀 따뜻하게 했다가…
그러다 다시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시간이 훌쩍 지나 아침 5시가 가까워 지자…
우리는 그냥 좀 더 이야기를 나누다가 새벽기도에 함께 가기로 했었다.
(그 당시 내가 새벽기도 밴 운전을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함께 가야만 하는 상항이 되었다.)
새벽기도를 마치고 나서야 긴 첫 데이트를 마치고 헤어져
집에 돌아가 눈을 붙였던 기억이 난다.

그로부터 12년…
우리가 한결같았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우리를 엮어주셨던 하나님은 한결같으셨다.

그 후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미고…
그 과정 속에서 함께 보낸 시간은 참 blessing 이었다.

발렌타인데이 (2월 14일)에 다들 상업적인 분위기에 들떠 정신 없을때,
우리는 늘 무덤덤하게 그 날을 보내고… (금년엔 특별히 아내가 먹다남은 허쉬 쵸콜렛을 나누어 주었다.)
그로부터 이틀 후 우리는 우리만의 참된 사랑의 기념일을 기억한다.
(그렇다고 뭐 특별한건 없다. 겨우 동네 음식점에서 먹고싶었던 음식 한번 사먹는 수준 ^^)

예수쟁이들이 늘 하는 이야기

지난 12월부터 몇주에 걸쳐서 Stanford의 KCF 모임의 형제 자매들과 함께,
“예수쟁이들이 늘 하는 이야기” 라는 시리즈의 message를 나누어왔다.

구원, 사랑, 성육신, 하나님 나라, 은혜 등등의 주제를,
그리스도 중심적 시각에서,
그리고 또한 삶에 구체적인 적용이 가능한 접근으로…
다루어 보았다.

잘 들어준 우리 형제 자매들에게도 고맙지만…
이번 기회에 나도 나름대로 참 기본의 내용을 여러번 곱씹어보는 유익이 있었다.

역시,
복음의 기초만큼 내면의 깊은 곳을 touch하는 다른 무엇이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역시 남는 아쉬움은…
정말 전해졌으면 하는 그것을 전할 방법이 내게 없다는 안타까움이다.

적어도 내가 아는 복음의 수준만 하더라도…
내가 이렇게 표현해서 설명하는 것보다 훨씬 더 깊고 좋은데….
그걸 말로 담아내고나니 이렇게도 초라해지는 것이다.

평가기준

지난주 학회에서 마지막 날 오후였다.
학회 막바지여서 지치기도 했고, 오후여서 나른하기도 했다.

거의 마지막 발표를 듣고 있었다. 발표는 한국의 어떤 기업에서 자신들이 한 내용을 발표하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영어도 부자연스럽고, 발표하는 자세도 위축되어 있었고, 내용의 전개도 아주 지루하게 느껴졌었다.

나는 그저 이 발표만 넘기곤 이제 짐싸서 간다는 생각에 지루하게 앉아있었는데, 내 옆에 앉아 있었던 Carl은 이 발표를 열심히 듣는 것이다. 내게 자꾸만 자신이 모르는걸 물어보기도 하고, 혹시 저 사람이 이렇게 표현한건 무슨 뜻이냐며.. 소위 콩글리쉬 해석을 물어보기도 하였다.

그 발표를 다 듣고나서는.. What a great talk! 이라며 아주 감탄을 하였다.
실제 자기가 연구하는 내용을 솔직하게 보여주었다며, 기업에서 하는 발표치고 이렇게 훌륭한 발표를 별로 들어보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같은 한국사람인 나도 지루하게 듣고 있었던 그 발표를, Carl은 적절한 평가기준을 가지고 평가하며 appreciate 하고 있었던 것이다.

발표를 그저 그 발표의 포장을 가지고 평가하고 있었던 나와는 달리, 내용의 핵심을 찍어 낼 수 있는 통찰이 날카로왔다.

나는… 아직도 멀었다.

Over-Qualified Candidates

우리 그룹에서 engineer를 몇사람 뽑는다.
모두가 임시직이다.
총 3명을 뽑기 위해서 회사 internet에 공고를 올렸는데, 150명 정도의 이력서가 들어왔다고 한다.

그중 추리고 추려서 일단 6명의 candidate을 놓고 요즘 매일 interview를 하고 있다. 이번 주는 일주일 내내 interview 이다.

interview 과정을 대개 이렇다.
아침에 와서 우선 hiring manager와 잠깐 이야기를 하고,
우리 그룹 앞에서 자신의 연구 내용과 관련된 발표를 하고,
그리고 나선 6-7명으로 된 interview team과 하루 종일 고생을 한다.
한사람이 30분씩 7명 + 점심시간 1시간 반 + 발표 1시간 + wrap-up 및 introduction 30분-1시간… 이렇게 하면 총 7시간 정도를 계속 interview만을 하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하기 이전에 먼저 전화 interview를 통해서 이렇게 사람들을 추리는 과정이 있었고.

문제는…
이렇게 뽑는 position이 모두 임시직인데도… 정말 엄청난 이력의 candidate들이 지원을 했다는 사실이다.

말단 임시직을 뽑는 자리인데… 나보다 나이가 10살 이상 많은… 큰 기업에서 group manager를 했던 그런 사람들도 지원을 했다.

아…
정말 경기가 어렵긴 어려운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