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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른 말

회사에서 함께 일을 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말이 정말 빠르다.
특히 나이가 어릴수록 말이 빠른 추세는 더 명확한 것 같다.
요즘 podcast나 인기있는 youtube등을 들어보면, 거기도 말이 대개는 좀 빠르다.

최근 KOSTA follow-up 인도자들의 카톡 그룹에서 나누어진 이야기인데,
좀 나이가 있는 인도자들의 말씀에 따르면, 젊은 세대는 말이 빠르다면서 빠른 말로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세대차이를 느끼신다고.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런것 같다.
말이 느리면… 사람들이 지루해하고 집중력을 잘 잃어버리는 것 같기도 하다.
말이 빠르면 빠른 말을 다 이해하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일정한 정도의 긴장감을 유지하며 듣게하는데 도움이되는 것 같다.

가끔 내게 말이 빠르다고 하시는 분들이 계신데…
내가 생각해도 내 말이 좀 빨라졌다.
한국말도 영어도 모두.

서서히 전향중?

나는 늘 스스로 liberal이라고 생각해왔던 것 같다.
어쨌든 나는 한국이 민주화를 거치는 것을 겪은 세대이고, 아마 그 영향이 크지 않았나 싶다.

한국과 미국에서 지지하는 정치세력도 한번도 바뀐적이 없었다.
저쪽 반대편에 호감을 가지거나 투표를 해본적도 없었고.

그런데 몇년전부터 정말 내가 liberal일까 하는 것에대한 의문을 가지고 있는 중이다.
아니, 어떻게 말하면… 현재 미국적 상황에서 liberal들의 입장을 보면서 불편하게 느끼는 것들이 있다고 해야할까.

liberal이 많이 비판해왔던 교조적인 모습, 경직된 자세, 관용없음등의 모습이 점점 liberal들에게서 그대로 보이고 있는 것 같다.

나는 한국에서는 여전히 liberal이 비주류라고 생각하고 있고,
미국에서도 liberal이 주류라고 보기 어렵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적어도 미국에서는 사상적,문화적,학문적 권력은 liberal이 장악했다고 보는데…
정치적 권력을 장악하지 못한 상태에서도 이 liberal이 가지는 배타성과 경직성은 대단히 불편하다.

그런의미에서 나는 조금씩 liberal이라고 스스로를 define하는 위치로부터 전향하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

국제 운전면허

대충 2008년 경 부터는 매년 국제운전면허를 만들었던 것 같다.
심지어는 급하게 출장 가야하는데 못찾으면 일년에 두번씩 만들었던 때도 있었다.
(국제운전면허의 유효기간은 1년이다.)

일본이나 중국 같은 곳에서는 절대로 운전 안하지만…
유럽이나 한국으로 출장을 갈때면 운전이 훨씬 편한 경우가 많이 때문에 국제면허를 만들어야 했다.

어제는 급하게 뭘 좀 찾아다 여기 저기 흩어져있는 내 지난 국제운전면허를 모아보았다.
중간에 빠진 것들이 좀 있는데 그것도 어딘가 뒤져보면 나올지도.

금년에는 참 오랜만에 국제운전면허를 만들지 않게 되는 것 같다.

Until Summer of 2021

우리 회사에는 Obama 정부에서 FDA commissioner (미국 FDA의 총 책임자)를 했던 사람이 있다. (link)
Work from home을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았을때, 팀의 몇사람과 Rob을 미팅에 초대해서 virtual 미팅을 한적이 있었다. 그때 그 사람은 이거 한참 간다. 적어도 18개월을 갈것이라고 예측했었다. 지난 3월에 18개월이라고 이야기했으면 그게 내년 9월인건데…

어제 Google은 내년 6월 말까지 꼭 office에 와야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모든 직원이 집에서 일하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아직은 가야할 길이 좀 먼것 같다.

그렇지만 이런 와중에 일을 하는 사람들을 여전히 있다. 그리고 거의 정상상태로 일을 하는 회사도 꽤 있다. 최근에도 산호세에 있는 PCB를 만드는 회사에 방문해서 그쪽에서 만들고 있는 것을 점검한적이 있었다.
가보니 거의 100% 풀 가동되고 있었다. 물론 모든 사람이 마스크를 쓰고 있었고, 출입을 할때 체온을 재는 등이 조치를 취해놓긴 했지만.

우리 회사도 실험실에서 해야하는 일들이 있다보니 회사 office에 오는 사람들을 적절한 수준으로 control하고 있다. 대충 전체 인원의 30% 수준까지 office와 lab에 올 수 있도록 하고 있고, lab을 사용할 경우에는 그 lab에 일정 수의 사람 이상이 오지 않도록 조절하고 있기도 하다.

office에 정규적으로 오는 사람들은 모두 두주에 한번씩 COVID-19 테스트를 받도록 하고 있고, 매일 자신의 건강 상태를 app으로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뭔가 그래도 좀 해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고, 내 생각엔 COVID-19 문제가 100% 해결되진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계속 조심스럽게 뭔가를 open하는 시도들을 계속 더 하게되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뭔가를 해보려고 사람들이 참 애를 쓴다.
이렇게 애쓰고 수고 하는 사람들이 모두 정말 건강하면 좋겠다.

나는…. 대충 한달에 한번정도씩 office에 몇시간 정도 나가는 정도다. 그냥 계속 집돌이인 셈이다.

명령인가 판별식인가

어제는 교회에서 짧은 설교를 했다.
누가복음 12:49-53, 예수님께서 칼을 주러 왔다고 하시는 본문이었다.

예수님께서 너희에게 칼을 주러왔다는 말씀을 보면서,
그것을 종교적 명령으로 받아들여 내가 칼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어쩌면 오류일 수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오히려 그 말씀은 지금 내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인가를 알아보는 판별식으로 사용해야하는 것이 아닐까.

지금 내가 세상의 주된 가치와 부딛히며 살고있지 않다면,
나는 예수님의 따르는 사람이 아닐 것이라는 것.

예수님께서 너희에게 칼을 주러 왔다고 하실때에는 칼을 가지라고 명령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 너희는 칼을 가졌으니 그걸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아라. 그로 인한 박해나 어려움이 온다는 것을 미리 잘 알아라….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다.

이걸 명령이 아니라 판별식으로 읽고나면… 오싹 소름이 돋는다.
그러면 이게 진짜 무서운 말씀, radical한 말씀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그렇다…

작은 결심 하나

가능하면 말로나 글로나,
내가 ‘바쁘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현대는 바쁘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는 용도로 사용되곤 한다.
바쁜 사람은 뭔가 쓸모있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있는 거다.

내가 바쁘다고 이야기할때는 내가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가를 드러내기 위해서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나보다 훨씬 더 중요한 사람들이 많은데 뭐 내가 거기서 무슨 명함을 내밀어 보겠나.
그렇지만 어떤땐 내가 전략적으로 바쁘다고 이야기를 할때가 있는데, 그때는 대개 성실하지 못하거나 게으른 사람에게 성실하게 살도록 요청하고자 하는 목적이다.

어떤땐, 나 지금 이렇게 바쁘고 힘드니까, 너 그 게으름에서 조금 빠져나와서 나를 도와 열심히 사는 일에 함께해보지 않을래? 이런 요청을 하고 싶을때 바쁘다고 설레발을 칠때가 있다.

그런데 그렇게 하는 방법이 대개는 별로 잘 먹히지 않는 것 같다. -.-;
불성실하고 게으른 사람이 나에 대한 compassion으로 게으름에서 빠져나오는 것을 거의 경험하지 못했다…

대신 내가 바쁘다고 이야기하면 내가 생각하지못한 부작용들이 더 많이 생기는 것 같다.
마치 바쁜 것이 대단한 것인양 생각하는 분위기를 더 고양시키게 되는 거다.

아, 그래서 내가 바쁘냐…
뭐 그런 셈이다. 회사일 뿐 아니라 다른 여러가지 일을 다 하는 것을 포함하면 하루에 10시간 아래로 일을 하는 경우는 별로 없는 것 같다. 많은 경우엔 12시간 이상, 심하면 15시간까지 할때도 있고.

그렇다고 내가 대단한 사람이냐…그건 아닌 것 같다.
내가 바쁜 것은, 뭐 한편 그냥 일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일을 현명하고 지혜롭게 잘 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것도 있을 것이다.

바쁘다고 이야기해봤자 별로 긍정적인 효과도 거두지 못하고,
오히려 엉뚱하게 다른 부작용만 가져오는데…
그래서 바쁘다는 이야기를 웬만하면 하지 않으려 한다. 앞으로는 글에서도, 말로도. (블로그의 이 글이 한동안 바쁘다는 이야기를 마지막 글이 아닐까 ㅎㅎ)

그냥 내 주변의 사람들은 내가 늘 한가한 것으로 여기도록 사는 것이 그 사람들에게 사랑의 여유를 남겨두며 사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사야서

이사야서를 묵상하면서 생각하는건,
아… 이런건 좀 제대로 공부하면서 묵상하면 참 좋을텐데…

하다못해 여기서 이사야서를 읽다가 느낀 감동을 누군가와 좀 나누고,
그 사람의 깊이있는 묵상도 좀 들어보면 좋을텐데…

아침에 그저 시간에 쫓겨서 20분 남짓 읽고 생각해보는 걸로는 정말 충분하지 않은 거구나.
좀 시간 충분히 들여서 말씀을 볼 수 있는 사람이 깊이있게 말씀을 읽고 연구한 것을 좀 나누어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한달여 전,
회사 일이 갑자기 많아져서 그냥 파묻혀버리고 있을때,
갑자기 나는 내가 새해애 했던 결심을 생각했다.
조금 더 힘을 내서 내게 주더진 시간 내에 최선을 다하자. 내게 주어진 모든 자원과 시간과 능력을 사용해서 최선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자.

이사야서 묵상할 시간이 없다는 것에 안타까워하는 내게,
아마 그 새해 결심을 다시 상기시켜야하는 듯 하다.
조금만 더 힘을 내자. 이 말씀을 그냥 이렇게 흘려보낼수는 없다.

막 화가 난다!

어떤때 약간 낮선 상황에서 낮선 사람들과 성경공부를 한다거나, 내가 무슨 이야기를 나눌때가 있는데…
어뗜 경우엔 그렇게 성경공부나 다른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엄청 화가 날때가 있다.

요즘 KOSTA follow-up의 일환으로 열댓명의 신청자와 함께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4주짜리 강의 패키지로 해서 나누고 있다.
그렇게 특별한 것도 아니다. 그냥 아주 기본적인 이야기, 그리고 성경에 아주 명확하게 잘 나와있는 이야기들. 하나님, 창조, 깨어짐, 죄, 십자가, 구속, 하나님 나라, 선교…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해주는데도 어떤 사람들은, 완전히 새로운 눈이 열렸다, 몇년동안의 문제가 해결되었다, 처음으로 복음을 듣는 것 같다… 이런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아, 내가 개떡같이 이야기하는데 그걸 듣고 그렇게 반응해주는 분들을 만나면 눈물 쑥~ 빠지게 감사하다. ㅠㅠ 얼마나 목말랐으면 이런걸 듣고도 그렇게 감사해할까.

그런데 한편으론,
아니 몇년씩, 몇십년씩 교회에 다닌 사람들인데, 이 사람들에게 이런 기본적인 이야기도 안해주고 교회들은 도대체 뭐 한거지? 고작 4주짜리 40분 강의로 그래도 이 정도나 해결할 수 있는 걸 몇년 몇십년 교회 다니면서도 해결해주지 못한다니… 그게 말이되나?
정말 아주 심각하게 화가난다.

그러면서 한편 흠찟 놀라며 생각하게 되는 것은,
내가 함께 지내며 여러가지로 말씀도 나누고 하는 사람들에는 그런 맹점이 있지는 않을까?
소름….

어쨌든 한번 더 남은 강의, 잘 준비해서 어떻게든 참여하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게 해야겠다는 전의가 막 불타오르고 있는 중이다.

쓸데없는 관심, 쓸데없는 욕심

요즘은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시간이 하루에 15시간은 족히 되는 것 같다. 대충 아침 7~8시부터 저녁 12시 정도까지. 중간에 한 두시간 정도 밥먹고 운동하느라 빠지고.
주말에도 최소한 하루 6~7시간 정도는 되는 것 같고

그러다보니 쓸데없는데 자꾸만 관심이 간다.

가령, 키보드를 조금 더 좋은 것으로 사고 싶은 욕심이 든다던가,
모니터를 조금 더 큰것으로 하고 싶다던가,
최근에는 의자를 조금 더 편한 것으로 바꾸고 싶다던가.. 뭐 그런.

지난 2월 이후 계속 집에 있으면서 그런 upgrade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키보드 try (책상 아래 설치해서 낮은 위치에서 타이핑 할 수 있는 것) 50불
기계식 키보드, 무선, 60불
컨퍼런스콜용 헤드셋 30불

이 정도를 썼으니 그럭저럭 이렇게 저렇게 나름대로 upgrade를 해 왔는데,
문제는 좀 비싼 것들에 눈이 간다는 거다.
모니터가 지금은 공짜로 득템해온 모니터 24인치 두개로 쓰고 있는데, CAD design file을 본다던가, vendor에서 보내온 왕창 큰 excel file을 열어놓고 볼때는 좀 더 컸으면 하는 바람이 살짝 생긴다.
기계식 키보드는 집에 있는 동안 한번 써보려고 ebay에서 싼걸로 하나 샀더니만…. 게다가 blue switch로! (아주 시끄러움) 가끔은 가족들로부터 구박을 당할때가 있다. ^^
그래서 이것도 뭔가 다른걸 사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multiple device를 쓸 수 있는 좀 좋은 키보드는 100불이 넘는 것들도 많다.
의자는 비싼걸 사자면 한도 없고, 그래도 좀 review 좋은 편한 의자를 사려면 아마 100불 가까이 해야하지 않을까.

이런 것들, 사실 없다고 일 못하는 것도 아니고,
비싼 돈 들여서 그것들 사면 그 비싼만큼 생산성이 왕창 높아지는 것 같지도 않은데…
그냥 집에만 있고 계속 일만하고 다른거 뭐 관심 갖을 시간과 여력도 없으니…
당장 계속 쓰는 눈앞에 보이는 것 가지고 괜한 욕심을 부려보는 것 같다.

지금 생각으로는, 이번 주말에 작정을 하고 책상 주변을 청소도 하고 정리도 해서 그나마 있는 것들로 더 깨끗하게 만들어보려고 한다.
괜히 돈쓰는 것 보다 주말에 시간 조금 더 써서 환경을 바꾸어 보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싶어서.

어둔밤 마음에 잠겨

예전에는 어둔밤 마음에 잠겨 찬송가가 사실상 KOSTA의 주제가 비슷하게 사용되었었다.

김재준과 문익환이 작사를 한 곡이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 일꾼을 부른다. 하늘 씨앗이 되어 역사의 생명을 이어가리.

몇가지 생각

1.
김재준, 문익환 목사님들이 작사한 것을 보수신학의 입장을 가신 사람들의 대중집회에서 불렀다는것을 생각해보면, 지금의 여러 상황은 예전으로부터 많이 후퇴했다.

2.
80년대 후반에는, 어쩌면 90년대 중반 정도 까지도 민족에 대한 개념이 그리스도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민족을 살리는 기독교.
나도 그것으로 마음이 뜨거워지기도 했었고.
지금은? 그 민족에 대한 개념 자체가 매우 협소했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 당시 민족을 이야기하는 것이 어쩌면 정의와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에 그 당시에는 복음과 같이 갈 수 있는 측면이 있지 않았나 싶다.

3.
암울한 상황에서 일꾼을 이야기함.
어떤 상황을 해결해나갈 헌신된 일꾼이라는 개념은 70년대, 80년대, 이른 90년대정도까지 매우 중요한 시대정신이 아니었나 싶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교육이라는 것이 결국 그런 일꾼을 길러내는 중요한 수단으로 인식되었고.

지금은 그런 개념이 거의 해채되어있는 것 같아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런 책임을 요청하는 것이 여전히 합당하지 않을까?
그게 엘리트주의가 되는 위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황에 자신을 던져 헌신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필요한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