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ra Munum, in USA

처음 미국에 왔을 때에는,
한국에 비해 싸울 싸움이 크게 없다고 느꼈다.

한국에서 내게 갈등하고 괴로워했던 많은 것들이 이미 극복된 사회인 것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사회적 부조리, 똘레앙스의 문제, 미성숙한 시민 의식… 등등

그러나 이제는…
미국에서 싸워야하는 전장(battle field)가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을 훨씬 더 알게되는 것 같다.

한국에서와 같이, crude하면서 다이나믹한… 마치 백병전을 연상케하는 싸움이 아니라…
더 치밀하고 정교한… 정보전을 연상케하는 싸움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멀리서 바라보는 한국사회에서의 싸움도 이제는,
점차 미국에서의 싸움과 비슷한 것이 되어야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기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아 보이는 경우는, 그저 그 이야기를 끝내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려고 참고 있을 뿐.

그런 사람들과의 대화는, 늘 피곤하고, 지루하다.
나와의 대화는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비판을 수용할 줄 아는 사람

비판을 적극적으로 듣고 수용할 수 있는 사람을 찾기란 참 쉽지 않다.
특히 그 사람들이 ‘리더쉽’의 위치에 있으면 더욱 그렇다.

세월이 지날 수록…
자신에 대한 비판을 관대하게 수용할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위대한 사람들인가 하는 것들을 더더욱 새롭게 깨닫는다.

내가 지금보다 훨씬 더 철이 없던 시절,
나는 여러가지 비판을 남발하면서 (비판이라기 보다는 비난에 가까웠다) 그것을 수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정죄의식으로 가득차 있었다.

얼마나 철없고 미숙한 모습이었는지!

나에대한 비판을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는 성숙을 갈망한다.

KOSTA/USA-2009 주제

KOSTA/USA-2009의 주제는…

“예수 안에서의 평화, 세상을 향한 용기”
“Shalom in Jesus, Courage against the World”

요한복음 16:33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말한 것은, 너희가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는 세상에서 환난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표준 새번역)

기대가 크다.

다음은, KOSTA/USA의 공동대표들과 KOSTA 국제 이사들께 보낸 공문에 사용한,
KOSTA/USA-2009의 간략한 배경및 취지 설명이다.

현재 한인 디아스포라 학생들은 (그리고 조국의 청년학생들도 마찬가지로) 심한 세속화의 경향에 휩쓸려 가고 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 모두에게 해당한다.

그리고 이들은, 더 이상 무엇이 옳은가 그른가, 미래를 위하여 어떤 가치있는 삶을 살 것인가를 추구하지 않고 눈앞의 이익에
매달려 사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니 깊이있는 삶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고 안락한 삶만을 추구하거나 안락한 삶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여러가지 분석이 가능하겠으나 시대가 지극히 경쟁적이 되고, 물질주의화
하면서 사람들이 그것에 편승하지 않을 경우 그 시대로부터 낙오될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다는 사실이 그러한 경향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외칠 구호도, 흔들 깃발도 함께 부를 노래도 잃어버린 채 그 시대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세상에 끌려가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는 삶의 모습 자체를 포기하거나 타협하고 순종하지 않는 것은 이러한 두려움에 기인한다.

세상이 알지 못하는, 세상이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이 잃어버린 소망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이 그 어느때보다 더
필요한 이 시대의 상황에서 복음에 사로잡힌 한인 디아스포라 청년 학생들이 세상에 당당히 맞서는 일들을 해야한다. 피조 세계의 전
영역에서 그리스도를 주로 선포하고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는 힘은 그리스도께서 이미 세상을 이기심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평화(shalom)로부터만 주어질수 있다. 그리고 그 참된 평화를 가질때에 우리는 세상을 향해 당당하게 나아갈 수 있다.
이제는 용기를 내어 그리스도의 평화로 세상에 당당히 맞설때이다.

묵상기도에 빠지다

2-3년 전 부터, 묵상기도를 해오고 있다.

이전에 부르짖어 기도하던 것보다는…
조용히 앉아서 소리를 내지 않고, 주님과의 교제를 하는 것이다.

때로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설명, 마음의 상태에 대한 이야기 등등을 그저…
묵상을 통해 주님께 내어놓고…
주님의 임재 속에서 주님과 교제하는 일을 하곤 한다.

요즘은,
그 기도하는 ‘재미’에 빠져 있다.

하루 15분 정도만이라도…
그렇게 기도하지 않으면…
마치 사랑하는 사람과 깊은 대화를 나누지 못한 것 같이…
그렇게 그 기도를 하고 싶어진다.

한때,
‘기도 무용론자’ 수준이었던 내가…
부르짖어 주님께 간구하는 것을 배우고,
방언도 하게 되고,
눈물로 주님 앞에 엎드리는 것을 배우고,
그리고…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배우고 있다.

나 같이 더디 배우는 사람에게…
주님께서는 주님과의 교제를 눈높이에 맞추어 교육시키시는 것이다.
우리 주님께서는… 참 애 많이 쓰신다…. ^^

‘능력있는’ 리더가 하는 두가지 실수

개인적으로 ‘능력이 있는’ 리더가 할 수 있는 두가지 종류의 실수가 있다.

첫번째는, 자신의 능력을 신뢰하면서 다른 이들의 능력을 불신하기 때문에 자신이 모든 것을 다 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는 많은 경우 자신의 능력에 대한 과신이나 과대평가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겸손하지 못한 리더들에게서 흔히 발견되는 듯 하다.

두번째는, 자신의 능력을 일반화하여, 자신이 하는 모든 것을 모든 사람이 쉽게 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때로 ‘능력있는’ 사람들이 하는 어떤 일들은 ‘모든 사람’이 그것을 모델로 삼을수 없는 독특성이 있는데, 그것을 무시하는 것이다.
이는 능력있는 리더들이,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거나, 자신이 섬기고 있는 follower들을 세심하게 배려하고 돌보지 않는 독선과 무관심에서 비롯되는 듯 하다.

두가지의 balance를 갖춘 리더를 보는 것이 참 쉽지 않다.

어떤 것이 더 나쁜 리더일까?
두가지 모두 나쁜 리더의 모습들이지만,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두번째 유형인 것 같다.
더 뿌리깊은 교만과 더 뿌리깊은 사랑없음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나는…
너무 자주… 두번째 리더의 모습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