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look 없이 못살아

나는 내가 해야할 일등을 늘 outlook에 update 시켜놓고,
그것을 내 iPhone과 sync 해서 일정을 관리한다.

하루에도 2-3번씩 그 일정을 수정하거나 update하고,
내 outlook alarm에는 늘 2-3가지의 일이 overdue로 떠 있다.

한동안은 매일 하는 실험일정까지도 구체적으로 올려놓고 update하곤 했는데,
너무 심한것 같아 요즘은 그것보다는 좀 더 설렁설렁(?)하게 해놓고 산다.

그렇지만,
outlook 없이 사는 삶은 거의 상상하기 어렵다.

이것은 잘못된 것일까?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내가 그런 lifestyle을 가지고 사는 것은 outlook과 같은 tool을 사용해서 시간관리를 하면서 살 것으로 assume되는 그런 사회 속에 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다시 말하면,
내 삶의 context 자체가 그렇게 늘 multi-tasking을 하면서, 시간관리를 하면서 사는 것이기 때문이지,
내가 outlook과 같은 scheduling tool 자체에 중독이 되어있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만일,
내가 이런 lifestyle이 아닌, 좀 더 시간적으로 여유있는 lifestyle을 선택했다면 나는 그 context 속에서 나름대로 시간관리를 하면서 사는 것을 선택했을 것이다.

오히려,
지금 내가 처한 상황 속에서…
‘느긋함’을 무리하게 누리려 한다면,
무책임하고 게으른 사람이 되어버리고 말 것이다.

그렇지만,
바쁘게 살지만 쫓기며 살지 않는 균형과 지혜가 중요한 것 같다…

바쁠 때 전화해도 내 목소리 반갑나요

예전에,
이선희가 부른 노래 중,
“알고 싶어요” 라는 곡이 있다.

그 가사에
“바쁠 때 전화해도 내 목소리 반갑나요”
라는 부분이 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는 아무리 내가 아끼는 사람이라더라도,
내가 바쁠때 그 전화가 반가운 사람이 없다. -.-;

적어도,
내 아내가 하는 전화는 반가워야 할텐데…

점차 바쁠 때 전화해도 반가운 사람이 늘어나서,
누구든, 언제든, 그 사람을 위해 내 시간을 나누는 것을 기뻐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게으름을 어찌할꼬…

게으름은 성품일까, 아니면 극복해야할 죄일까.

점액질의 사회에서 살다보면 마음이 느긋한 사람은 게으른 사람으로 치부되기 십상인데…
그런 것을 감안하면 너무 쉽게 죄로 밀어버리는 것은 잘못일테고,

게으름을 성품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인 거의 대부분 죄로서의 게으름에 빠져있는 사람들인데…
그런 것을 감안하면 죄라고 이야기하며 강하게 극복하도록 촉구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내 최근의 생각의 경향은 게으름을 극복해야하는 것으로 보는 쪽으로 더 기울어져 있다.

어찌되었건 간에, 게으름은 seven deadly sins 가운데 하나가 아니던가.

영적 은사가 가져다주는 착각

최근, 운동을 하면서 들은 것은, 모 신학교에서 “Postmodern 시대에 그리스도를 선포하기”라는 내용의 시리즈 강좌이다. (아마 한학기 과목인 것 같기도 하다.)
Tim Keller와 Ed Clowney 가 공동 강의를 한 것인데…
어떤 것은 참 깊은 깨달음을 주었지만 어떤 것은 동의하기 어려운 것들도 있었다.

거기서 들은 이야기중,
너무나도 당연한, 그러나 내가 한참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한마디.

“영적 은사를 많이 가지고 있거나, 혹은 그 은사를 활용해서 많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과, 그 사람이 은혜안에 거하며 그리스도와 동행하고 있다는 것은 전혀 별개의 것이다.”

그러면서 마태복음 7장의 다음 본문을 인용하였다.

7: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에게 말하기를 ‘주님, 주님,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또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행하지 않았습니까?’ 할 것이다.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분명히 말할 것이다.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물러가라.’

마음이 바짝 말라있고, 배우자가 아닌 이성에 음란한 마음을 품고 있고, 자기 배우자를 미워하고 있고, 다른 이들에 대한 질투심에 가득차 있고, 나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욕심에 가득차 있다 하더라고,
그 사람이 매우 훌륭한 설교를 할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이 훌륭한 설교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이 주님과 건강하게 동행하고 있다고 착각하면 안된다고.
(특히, 훌륭한 설교가 자신이 스스로에 대해 그런 착각을 쉽게 한다고)

내가 무슨 일을 하느냐,
내가 얼마나 그 일을 잘 하느냐,
심지어는 내가 어떤 value system을 가지고 그 일을 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
내가 올바로 서있느냐 하는 것을 재는 바른 잣대가 되지 못한다.

나 같이 스스로를 과대평가하기 좋아하는 사람이 꼭 마음에 새기고 또 새기고 새겨야할 말이다.

사려깊음

사려깊음은, 성품일까 재능일까?

성품이라면 그것이 개발될 수 있는 것이고,
재능이라면 개발될 수 있는 것이라기 보다는 주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는 사려깊음을 성품으로 보았다.
그런데, 점점 그것이 성품이라기 보다는 재능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한 생각의 흐름 속에서,
나 자신이나 다른이들의 사려깊지 못함을 좀 더 용서하고 수용하려고 하고 있는데…
글쎄.

부부싸움은…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다” 라는 말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해도 소용없다… 자연스럽게 금방 그 효과가 없어진다는 것 같이 보일 수 있는데,

내 생각엔,
“부부싸움은, 왼손과 오른손이 싸우는 것과 같다.”는 표현이 더 적절한 것 같다.

서로 열심히 싸우면,
결국 함께 하고 있는 그 가정이 아프고…
서로 ‘다른 사람’인 것 같이 생각해서 싸우고 나면 결국 한 몸인 것을 발견하게 되는…

– 최근의 경험으로부터 나온 묵상. ^^

마음에 들지 않는 직장 동료

같은 팀에 있는 어떤 직장 동료가 참 마음에 들지 않는다.
매우 이기적이고, bossy하고, nosy 하다.
뻔히 다 아는 얘기를 자신의 입으로 이야기하여 자신이 주도권을 잡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고 싶어한다.
여러가지 세팅에서 그 자리에 있지 않은 다른 직장동료 흉을 보는 경우가 많다.
애매하게 비꼬는듯한 어투로 ‘겸손한척’ 하는데, 이것이 아주 효과적인 self-defense mechanism이 되어 더 이상의 argument로부터 자신을 보고하는 역할을 한다.
늘 다른이의 말을 끊고 자신의 말을 하려고 하고 함께 일하는 사람에게 무리한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강자엔 자신을 낮추고, 약자에 대해서는 고압적인 자세를 취한다.

나는 이 사람과 꽤 많이 부딛힌다.
다소 오지랖이 넓은 나는, 이 사람이 이런식으로 행동하는 것을 그냥 고분고분 봐주지 못하는데,
문제는 내가 그것을 통크게 받아주거나 너그럽게 품을 capacity가 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대담하게 그 문제를 그 사람에게 이야기할 용기도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주 애매한 긴장을 유지하며 이 사람과 지내고 있는데…

최근 이 사람이 내가 하는 어떤 일에 대해 또 아주 짜증나게 bossy하면서도 nosy하게 접근해왔다.
나는 그냥 쌀쌀맞게 대하고 말았는데,
생각해면 생각할수록 화가 나기도 하고… 게다가 이런 식으로 우리 팀의 chemistry를 흐려놓는 행동을 뭔가 저지해야겠다는 어줍잖은 의협심에 이 사람과 대결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이 사람이 현재 하고 있는 일은, 말하자면 자신의 전문분야가 아니다. 오히려 내가 그 분야의 전문성을 더 가지고 있다고 할수 있다. 게다가 이 사람이 억지를 부리는 경우가 있으므로, 나름대로 논리의 헛점도 있다.

내가 받는 유혹은,
내가 가진 전문성과 논리로 이 사람을 짓눌러버리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 사람이 스스로를 작게 느끼도록 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실제 그런 시도를 하다보면…
그런 작전이 먹히지도 않은 뿐 아니라… (더 큰 갈등만 불러일으키고 나도 괜히 모냥도 빠지고. -.-;)
이 사람도 이 사람이 가진 self defense mechanism을 더 작동해서 더 좋지 않는 쪽으로 몰려가는 것을 보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더 큰 문제는, 그러는 와중에서 내가 망가지는 것이다.
마음의 평안이 없어지고… 지배하려는 욕망으로 내가 가득차게되는 것을 발견한다.
내가 가진 사랑이 아니라, 내가 가진 힘으로 이겨보려는 욕심이 나를 지배하게 된다.

나의 후배들에게… 이런 선배가 되었으면 한다.

나의 후배들에게,
내가 이룬 것으로 인해 존경받지 않고,
내가 한 선택으로 인해 존경받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내가 이룬 것은 내게 주어진 것이지만,
그래서 후배들이 따라할 수 없을 수도 있지만,

내가 한 선택은 내가 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후배들이 그 선택의 성공 여부를 떠나 그것으로부터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살고 있는 삶의 방식이,
내가 무엇을 이루기 위해 살고 있는지…
그렇지 않으면 내 선택의 동기와 순수함이 내가가진 competency와 함께 꽃을 피울 수 있도록 노력하며 살고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