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해낼 수 없을 것 같은 싸움 (마가복음 6:1-29)

상민이는 이제 막 직장에 취직한 새내기 직장인이다. 그런데 직장 안에서 몇몇 사람들이 한 직장 동료를 왕따시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에 격분한 상민이는 그 왕따 당하고 있는 직장 동료를 변호하며 왕따를 조장하고 있는 사람들과 맞서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제 막 직장생활을 시작한 상민이가 10년여동안 직장생활을 해온 여러명의 선배들과 맞서서 싸우는 것은 역부족인것으로 보인다.
점차 상민이도 이들에 의해 함께 왕따를 당하는 입장이 되어가고 있다. 함께 하는
회의에서 교묘하게 이들과 맞서는 일들을 계획해 보기도 하고
, 이일에 가담하고 있지 않은 직장상사에게 항변해보기도
하지만
, 쉽지 않다.

이 싸움을 상민이는 계속해야 할까. 계속한다면 어떻게 해야하는 것일까.

예수께서 고향에서 배척을 당하시다 (6:1-6)

1. 예수의 가르침에 대하여,
본문의 고향 사람들의 반응과 가버나움 사람들의 반응(1:23-28)을 비교해보라.
이곳 고향 사람들이 예수에 대하여 회의적/부정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2. 이곳에서 예수께서 많은 기적을 행하실
수 없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 왜 예수께서는, 5장에서 보았던 강력한
그분의 권능으로 사람들을 제압하고 당신 앞에 엎드리게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가
?

 

이것을 통해 보여지는, 예수의 하나님 나라 복음 전파에 관한 원리는 무엇인가?

 

열두제자를 파송하시다 (7-13)

3. 열두제자를 파송하시는 예수님의 분위기(tone)를 간략하게 기술하자면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장엄함? 두려움? 당 당함? 조심스러움? 세심함?

 

4. 제자들에게 예수께서 말씀하신 지침들을
정리해보라
. 왜 이러한 지침들이 주어졌다고 생각하는가?

 

5. 이 본문의 바로 앞에는 예수 당신이
고향사람들로부터 배척을 당하는 이야기가
, 이 본문의 바로 다음에는 예수의 길을 예비했던 세례요한이 참수를
당했던 이야기가 기술되어 있다
. 이러한 상황 속에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명하신 지침들은 어떻게 비추어지는가?

 

그 지침들은 당신에게 개인적이고 실제적으로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가
?

 

세례요한의 죽음 (14-29)

6. 본문에서 예수께서는 세례요한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 (본문의 이러한 표현은, 세례요한의 이 기사가,
예수께 서 겪으셔야하는 일들과 무관하지 않음을 암묵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세례요한은
본문에서 어떠한 일을 당하는가
?

 

이는 예수께서 당하시게될 앞으로의 일과 어떻게
대비가 되는가
?

 

7. ‘세상 권력’의 부정함에 정면으로 맞서
싸운 세례요한의 이야기가 극적이면서 활기찬 결말로 이어지지 않은 것
, 예수께서 결국 그 세상 권력에의해 처형을
다하시는 것을 묵상해보라
. 하나님 나라는 어떻게 전파되는가?

 

정리

8. 오늘 본문의 바로 앞과 뒤에는 예수께서
대단한 기적을 행하시는 기사들이 배열되어 있다
. 그런데 그 사이에 끼어 있는 오늘 본문은,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그것과는 다른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 이 두가지의 다른 모습이 어떻게
하나로 정리될 수 있는가
당신의 삶 속에서는 어떻게 정리되어 있는가?

 

9. 맞닥들이는 ‘세상’의 모습이 거칠고
척박하게 그려지는 사이에
,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그 세상으로 파송하신다. 당신이 파송된 ‘세상’에서 당신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은 어떠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10. 오늘 본문을 공부한 이후에,
당신은 앞에 나온 상민에게 어떤 충고를 해주겠는가?

높아지는 관심, 커지는 갈등 (마가복음 3:7-35)

민정은 작년에 새로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지난 일 년동안, 매우 큰 기쁨으로 삶의 여러 부분들의 우선순위를 재점검하고 인생의 방향과 목표, 삶의 자세등 모든 것을 새롭게 알게된 가치들에 맞추어 나가고 있다. 여러가지 삶의 영역가운데 결혼에 대한 새로운 시각은 특히 민정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흔히 사람들이 이야기하는조건에 맞추어 배우자를 선택한다던가, ‘한눈에 사랑에 빠지는것과 같은 감각적인 사랑을 추구하기 보다는,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며 함께 이땅에서 나그네된 삶을 살아가는, 그러면서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으로 인해서 기뻐하는 아름다운 가정을 꾸릴 수 있는 사람과 결혼을 하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최근 민정은, 학벌이나 경제적인 여건으로는 세상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지만, 성실하고 사려깊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는 한 사람과 결혼을 전제로 교제중이다. 그러나 장로님이신 아버지의 강한 반대에 부딛혔다. 신앙은 없지만, 나머지 조건을 다 갖춘 어떤 사람과 한번 만나보라며 권유도 하신다.

민정에게는, 복음이 이미 너무 소중한 가치가 되어 버렸기 때문에 도저히 아버지의 권유를 받아들일 수 없다. 민정의 마음 속에 자리잡고 커져가고 있는 소중한 가치들이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듬 (7-12)

1. 예수님을 보러 온 사람들이 온 지역을 지도에서 찾아보라.(7-8) 주로 갈릴리 지방에서 사람들이 왔던 마가복음 전반부와 어떻게 대비가 되는가?

 

이는 바로 전에 나오는 종교지도자들의 모습과 어떻게 대비가 되는가? (6)

 

2. 예수님께서 몰려든 군중들에게 하셨던 일들을 어떻게 기술되고 있는가?

 

3. 7-12절에서, 예수님의 사역이 팽창하게 되는 것을 다음의 두 영역에서 살펴보고 정리해보라.

  • 사람들 속에서의 인지도
     
  • 영적인 영역에서의 인지도

 

 

열두제자를 뽑으심 (13-19)

 4. 사역의 확장과 더불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고 예수님께서 더 유명해 지시면서 아마도 이 사역을 함께할 사람들이 필요하게 되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 열 두제자를 뽑으시는 모습에서 다음의 내용들을 정리해 보라

  •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장소

  • 예수님의 제자들을 부르시는데 있어서 예수님의 역할

  • 예수님의 제자가 된 사람들의 예수님에 대한 반응

  • 제자들이 했던 일  (제자들을을 부르신 목적)

 5. 위의 내용들을 바탕으로 제자도 (Discipleship) 의 중요한 요소들을 정리해보라.

  

당신은 예수님을 어떻게 따르고 있는가? 정리된 제자도의 요소들은 당신의 삶 속에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가?

 

예수와 바알세불 (20-30)

 6. 예수님을 관찰하고 있는 서기관들 (scribes, teachers of the law)은 어디에서 왔는가? (22)

 

이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7. 서기관들과 예수님의 논쟁의 내용들을 정리해 보라. 서기관들의 주장(22)은 무엇이고 예수님의 주장(23-26)은 무엇인가?


 

8. 예수님께서는 성령에 거스르는 죄에 대하여 강하게 경고하신다. (28-29) 서기관들의 말, 행동, 취했던 자세는 어떤 의미에서 성령을 거스르는 죄에 해당한다고 생각하는가?

  

 

9. 이 본문의 논쟁에서, 예수님께서 기술하시는 예수님의 사역의 본질은 무엇인가? (27) (바알세불 Beelzebub의 문자적 의미는집주인이라는 뜻 으로 예수님께서 27절에서 강한 집 주인의 비유를 드신 것은 청중들에게 쉽게 이해되었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삶에서, 어떻게 이 사역의 본질을 행하셨는가? 행하고 계 신가? 혹은 행하시기를 기대하는가?

  

 

예수님의 가족 (21, 31-35)

 10. 예수님의 이름이 많이 알려지고 사람들이 모여들자 예수님의 가족들(어머니와 형제들)은 예수님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고 반응하는가? (21)

  

 

11 예수님의 가족들의 예수님에 대한 자세는 그 당시 예수님 주위에 있었던 사람들의 예수님에 대한 자세(7-10)와 어떻게 대비가 되는가?

  

 

12.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가족관계 자체를 부인한 말씀은 결코 아니다. (성경의 다른 구절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여전히 가족을 소중하게 여기셨음을 확인할 수 있다. Ex. 19:26-27)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임으로 함께 누리게되는 영적인 가족관계가 중요함을 말씀하신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 나타난 것과 같이, 전파되는 하나님 나라와 그 반대 세력의 충돌이 있을 때, 예수님에게 있 어서 영적인 가족은 더욱 중요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마가는 의도적으로 예수님이 사람들과 함께 집안쪽 (inside)’에 있 고, 예수님의 가족들이 집바깥쪽 (outside)’에 있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함께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진정한 영적인 가족으로 느껴진 경험이 있으면 나누어보자. 그 사람들의 어떤 점이 영적인 가족이 되게 하였는가? 본문에서 어떤 사람들이 예수님과 함께 영적인 가족이 되는가?

 

정리

13. 하나님 나라는 모멘텀을 얻어 더욱 힘차게 선포되고 있고, 예수님을 따 르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예수님의 사역도 더 체계화하고 있고, 그에 따른 반대도 더욱 거세어지고 있다.  오늘 본문에서 나타난 하나님 나라의 특징은 어떤 것인가?

 

 

14. 당신이 개인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로서 겪고 있는 갈등과 충돌은 어떤 것들인가? 오늘 본문은 당신의 상황에 어떤 실제적인 도움을 주는가?

 

생명과 종교의 충돌 (마가복음 2:18-3:6)

어느나라 옛 궁전 광장 한쪽에 서 있는 병정 한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그곳은 그냥 평범한 광장의 일부인데도 그 호위병은 시간 맞추어 임무 교대도 하며 계속해서 자리를 지켰다.
왜 그곳을 그렇게 지키고 있느냐고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그 이유를 아는 사람을 만나기가 그리 쉽지 않았다.
그 병정은 왜 아무것도 없는 광장의 한쪽을 그렇게 지켜야만 했을까.

이전에 그 나라의 왕이 자신이 키우던 예쁜 장미꽃 하나를 그 자리에 심었고
그 장미꽃 주변을 예쁘게 꾸몄다
. 사람들이 그 장미꽃과 주변 장식을 훼손하는
것을 막고
, 왕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병정들이 시간 교대를 해가며 그 곳을 지켰다. 시간이 흘러 장미꽃은 시들어 죽고, 그 주변의 장식들도 모두 없어졌다. 그러나 그 자리에 장미꽃을 지키던 병정은 계속 서있게 되었고, 이전에 하던대로 시간 교대를
해가며 그 자리를 지켰다
. 오랜 시간이 지나 이제는 그 왕의 장미꽃을 기억하는 사람도 없게 되었지만 그 자리에서
병정은 계속 임무교대를 하고 있었다
. 이제 그곳을 지키는 병정은 과연 무엇을 지키는 임무를 맡은 것인가.

 

0. 다음의 항목들은 종교적 and/or “복음적”인가? 당신의 생각을 점수로 표시하여보라.(scale of 1-5)
(
무관하다고 생각하거나 다른 의견은 comment에 적어보라)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예수님을 소개하기 : 종교적(     )     복음적(     )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기 : 종교적(    
)     복음적(     )


바른 정치를 위해 헌신하기 : 종교적(    
)     복음적(     )


소득의 일부분을 헌금하기 : 종교적(    
)     복음적(     )


성경공부 하기 : 종교적(    
)     복음적(     )


데이트하기 : 종교적(    
)     복음적(     )


기말고사 준비를 위해서 공부하기 : 종교적(    
)     복음적(     )


매일
QT
하기
: 종교적(    
)     복음적(     )


신앙과 과학의 문제로 믿지 않는 친구들과 토론하기 : 종교적(    
)     복음적(     )


교회 친구들과 함께 MT 가기 : 종교적(    
)     복음적(     )


학교 친구들과 함께 MT 가기 : 종교적(    
)     복음적(     )




1. “
종교적(religious)”이라는 표현에 대하여 당신의 느낌은 어떠한가?
당신은 스스로를 종교적으로 여기는가? 종교적임(religiousness)을 당신의 말로 설명해보라.

 

헌것과 새것
(2
18-22)

2.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과 같은 종교적인 사람들은 일주일에 두번 이상, 물도 마시지 않는 금식을 하였고,
금식은 기도와 인내를 배우는 중요한 행위가운데 하나로 여겨졌다. 당시 하나님을 잘
따르려고 노력했던 사람들은 금식에 충실했다
. 예수님에게 금식에 관한 질문을 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금식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어떻게 받아들여졌을 것으로 유추할 수 있는가? (2 18)

 

3. 예수님의 세가지 비유를 살펴보라.
(19-22
) 다음은 각각 무엇을 상징하는가?

  • 혼인잔치에 온 손님, 신랑, 신랑 을 빼앗김
  • 생베조각,
    낡은 옷 
  • 새 포도주, 낡은 가죽 부대

 

안식일 논쟁
(23
– 28)

4. 예수님과 그 일행이 안식일에 밀맡을 지나는
것을 바리새인이 보았다고 본문은 기록하고 있다
. (23-24) 사람들이
많이 있을 회당 같은 장소가 아닌
, 밀밭에 있는 예수님과 일행들을 목격하고 질문을 했다는 사실로 미루어 보아,
바리새인은 왜 이 장소에 있게 되었을 것으로 보이는가? 본문에서 발견할 수 있는
바리새인의 모습에서 나타난
열성적인 종교인의 특징을 생각해보라.

 

5. 바리새인들이 제기한 문제와 예수님의 응답의
내용을 다음과 같은 관점에서 정리해보라
.

  • 종교적 행위의 동기
  • 종교적 원칙과 기본정신
  • 종교적 행위와 그것을 행하는 사람과의 관계

  

손이 오그라진 사람을 고치시다
(3
1-6)

6. 오늘 본문의 처음 단락 (2 18-22), 두 번째 단락 (2 23-28), 그리고 세번째 단락 (3 1-6)에 나타난, 예수님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움직임을 자세히 관찰하여 보라. 어떻게 이 사람들의 의도와 행동이 발전하고 있는가? 3 1-6절에서 예수님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는가?

 

7. 안식일에 치료를 하는 행위는,
생명 의 위협이 있는 경우에 한해 랍비들에 의해 하는 것만 허용되었다. 본문에 나와
있는 사람의 경우에는 분명히 생명의 위협이 있는 경우는 아니었다
. 이 사실을 염두에 두고, 예수님께서 하셨던 행동을 유심히 살펴보라.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 앞에서,
율법의 재해석을 요구하는 상황에 닥친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행동하시는가? (3,
4-5
)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종교적 행위의 원칙은 무엇인가?

 

8. 예수님께서, 마음이 굳어 있는 사람들을 보시면서 느끼셨던 감정은 어떤 것이었는가? (5)

 

마가복음에서 예수님의 이러한 감정을 언급한 것은 그리 많지 않다.
마가복음의 초반부에, 예수님의 이러한 감정을 마가가 기술한 배경, 그러한 감정의 대상, 그러한 감정의 원인 등을 다시 한번 정리해 보라.

 

9. 안식일에 치유사역을 하신 예수님을 본 이후에,
예수님을 없앨 모의를 하는 두 부류의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이 두부류의 사람들의
배경을 볼 때
, 이 사람들이 함께 예수를 없앨 모의를 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놀라운가?

 

정리

종교(宗敎)의 한자의 의미는으뜸되는 가르침이다.
즉 종교란 삶에서 으뜸되는 가르침으로 삼아 삶과 세상을 이해하는 기준으로 삼는 원리이다. 그러나 그 종교의 형식이 생명의 힘을 막거나 제한하는 것이 될때, 종교 적이라는 것은 죽어있는
형식을 따르는 자세를 표현하는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게 된다
. 종교 적 형식이 생명의 원리를 강화시킬 수 있으나,
오히려 생명의 원리를 제한하고 부정할 수도 있는 것이다. 참된 생명의 문제를 다루는
성경적 기독교에 있어서는 이것이 더욱 결정적으로 중요한 문제이다
.

 

10.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새로 가지고 오시는 새로운 파라다임에 관하여 어떤 특징을 말해주고 있는가?

 

11. 사람들이 예수님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종교적
신념의 잣대로 재려고 했을 때
, 예수님 안에 있는 새로운 생명의 능력을 잴 수 없었다. 우리 주위에서, 죽어있는 종교성의 잣대로 생명을 담을 수 없는 일들을 본 적이 있는가?
예를 들어보라.

 

당신의 종교성이, 당신 안에 있는 생명을 죽이고 있는 것들을 어떤 것들이 있는가?

The Kingdom is Nowhere? Now Here! (마가복음 1:16-45)

유치원생들을 모아놓고, 그 아이들에게 양자역학(quantum mechanics)의 원리에 대하여 설명한다고 생각해보라. 당신은 그 시작을 어떻게 하겠는가? 15분을 함께 앉혀놓고 이야기를 하기도 힘든 아이들에게 그 아이들이 전혀 경험해보지도 못한, 경험해 볼 수도 없는 물리학적 원리를 설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사탕을 주며 달래보기도 하고, 다른 유비(analogy)를 들어 시도도 하겠지만 아마도 쉽지 않을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것인지 경험해 보지도 못했고, 제대로 상상해보지도 못했던 사람들에게 그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신다. “봉숭아 학당의 선생님이 된 예수님의 모습을 오늘 본문에서 살펴보자.



하나님의 나라를 전하심 / 제자들을 부르심 (16-20)



1. 요한복음 1장을 비롯한 복음서의 다른 부분에서 나온 내용들을 참고해 보면, 제자들은 아마도 예수님과의 만남을 갖기 이전에 이미 예수님에 대하여 들었을 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모습은 매우 즉각적인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예수님을 따르기로 결심한 제자들의 모습에서 보여지고 있는 제자도(discipleship)의 내용들을 다음에 비추어서 정리해보라. (유대문화에서 몇 대씩 내려오는 가업과 부모를 즉각적으로 포기하는 것으로 제자들이 그려진것에 유념하라)




  • 헌신의 대상과 내용

  • 결심의 주체

  • 치루어야하는 댓가

  • 따르는 보상


2.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로서 당신이 본문에서 특별히 더 생각하게 되는 부분은 어떤 부분인가?



 



가버나움 회당에서 귀신을 내어 쫓으심 (21-28)



3.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을 관찰한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한가? (22, 27)





이들은 예수님에 대하여 얼마나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가? 오늘날 이런 사람들이 교회 안에 있다면, 이들을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다면 이들에게 부족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당신의 경우와는 어떻게 비교할 수 있는가?



 



4. ‘더러운 영은 예수님에 대하여 얼마나 자세히 알고 있는가?(24) 이런 사람들이 교회 안에 있다면 이들을그리스도인이라고 부 를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다면 이들에게 부족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당신의 경우와는 어떻게 비교할 수 있는가?



 



병자들을 고치심 (29-34), 나병환자를 고치심 (40-45)



귀신을 내어쫓는 일이나 병자를 고치는 일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제 이곳에 임했다는 상징적 선언이었다. 이미 구약에서 그러한 일들이 있을 것이라고 예언되었던 것을 성취하고, 당시 하나님의 형벌이라고 사람들이 여기고 있었던 것들을 예수님의 권세(authority)로 정복하는 모습을 보여주심으로써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을 드러내시는 것이었다.



5.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고치시자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32, 33, 37, 45)



 



6. 나병(leprosy)은 악성 피부병을 의미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저주 혹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형벌로 인식되어온 질병이었다. 율법에 따르면 나병에 걸려 있는 사람들은 사회로부터 격리되었고, 종교적으로도 멸시되었다. 이러한 사실을 염두에 두고, 예수님께서 나병환자를 대하는 태도와 행동들을 관찰해보라. 예수님께서 보이신 태도와 행동들에서 예수님의 어떤 의도들을 찾아볼 수 있는가?



 



7. 비슷한 관점에서, 마가는 예수님이 시몬의 장모를 고치는 기사를 넣으면서, 그 당시 천대받던 계층이었던 여성에 대한 존중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새로 도래하고 있는하나님 나라가 기존의 파라다임을 뛰어넘는 또 다른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당신의 삶 속에서, 기존의 세상 속에서의 가치관에 의하여 사람들을 구분짓고 판단했던 일들을 생각해보라.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 어떤 다른 기준들이 당신의 삶 속에 세워져야 하는가? (교우관계, 가족관계, 직장/학교에서, 정치적 입장, 배우자 선 택 등등의 관점에서 생각해보라)



 



8. 예수님께서는 왜 반복해서 자신의 정체를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것을 꺼리신다고 생각하는가? (25, 34, 44)



 



9. 예수님께서 알리지 말라고 당부하신 내용을 나병환자는 왜 나가서 공개적으로 이야기했을 것으로 생각하는가? 치유된 나병환자의 이러한 불순종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가? (45)



  



기도하시는 예수님 (35-39)



10. 오늘의 본문에서 즉시(immediately)라는 단어는 8번이나 등장한다. 그만큼 빠른 템포로 상황이 진행되고 있는 것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밤 늦게까지 사람들이 문 앞에 모일 정도로 예수님은 바쁜 일정을 소화하셔야 했을 것이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35절에 나타난 예수님의 행동의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11. 35절에 예수님께서 기도하신 후에, 내리신 결정을 살펴보라. (38) 상황에 근거한 외면적 필요(felt need)들을 채우는 것들과 원칙에 근거한 실제적 필요(real need)를 채우는 것에 대한 균형을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찾으시는가?  당신의 QT 생활에 관하여 어떤 통찰을 얻을 수 있는가?



 



지금 당신의 삶 속에서, 상황에 얽매여 벌어지는 상황만을 처리하고 있는 부분은 어떤 것들인가? 하나님과의 교제가 당신이 처한 상황에서 어떤 변화를 만들 것으로 기대할 수 있는가?



 



정리



하나님 나라와 복음의 내용을 당신이 이해하고 있는 정도를 가만히 생각해보라. 어쩌면 당신은 당신 삶의 문제 하나를 해결받으려고 하나님 앞에 나왔을 수도 있고, 마음의 평안을 위해서, 사람들을 사귀기 위해서, 혹은 심심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갖고자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펼쳐보이신 하나님나라 복음의 내용과 범위는 그 모든 내용들을 다 초라한 것으로 만들 정도로 광대한 것이다. 예수님께서 2000년 전에, 근동 지방에서 오늘 본문의 사역들을 행하고 계셨을때, 예수님을 이해하지 못한 채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군중들의 모습속에서 예수님은 바로 당신의 모습을 보고 계셨다.



 



12. 다음의 항목을 중심으로 오늘 본문을 정리해보라.




  • 전파되는 하나님 나라의 내용

  • 사람들의 반응, 예수님 사역의 열매

  • 예수님의 자세, 예수님의 마음


13. 당신은 하나님 나라와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 당신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통치가 절실히 요구되는 부분은 어떤 것들인가?


 

다원주의자, 다신론자 아브라함과 동행하시는 하나님

요즘,
창세기에 나와있는 아브라함의 일생을 공부하고 있다.

성경 본문을 연구하면서,
참 새로운 모습으로 아브라함을 만나고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는,
정말 아브라함이 처음 하나님을 만났을 때 정말 아브라함의 상태가 어떤 것이었던가 하는 것에 대한 생각을 통해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관계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Ur 지방에서 살던 아브라함은,
아마도 다원주의자이거나 다신론자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아브라함의 아버지가 야훼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었던 것으로 보아, 아브라함이 어떤 가정교육을 통해서 유일신관을 전수받았을 것 같지도 않다.

그런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명령하셨을때,
아브라함은 그 야훼 하나님을 어떻게 인식했을까?
아마도 많은 지역신 가운데 하나로 인식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그 신을 하나 붙잡았으니 그 신을 통해서 부와 평안을 얻으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아브라함이 가나안 지방으로 와서 단을 세우고 예배를 드린 행위라던가,
멜기세덱을 만나서 십일조를 한것 같은 마일스톤이 될만한 아브라함의 행동들도,
유일한 하나님에대한 위대한 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기 보다는 그 당시 근동지방에서 통상적으로 행해지던 종교행위의 일부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브라함은 그저 자신이 이해하고 있는 종교의 수준에 매우 오래 머물러 있었고, 그 framework에서 야훼 하나님을 이해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이집트에 갔을때, 자신의 아내를 sister라고 이야기한 것이나,
심지어는 하갈과 같은 대리모를 통해 자신의 대를 연장하려고 했던 것들도…
아브라함이 대단히 잘못한 것이라고 손가락질 하기 보다는,
제한된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있었던 아브라함에게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으로 이해할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그런 과정 중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차근차근, 창조주로서의 야훼 하나님, 그리고 마침내 이땅에 궁극적 창조질서의 회복을 계획하시는 야훼 하나님을 드러내신다.

아브라함의 생애동안,
계속해서 아브라함이 가지고 있었을 잘못된 세계관을 바로 잡아가시는 하나님,
다원주의자였을 아브라함에게 유일신으로서 당신의 존재를 소개시켜가시는 하나님…

이런 관점으로 아브라함을 읽고 있자니,
정말 흥미진진하다!

마치 2차원 도면으로 평면에 표현되어 있던 3차원의 구조물이,
현실로 드러나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는다!

아내와의 성경공부

지난 토요일에는
자그마치 2시간정도 동안…
아내와 함께 베드로후서 1:1-5를 공부했다.

나중엔 나도 아내도 체력이 달려서 그냥 하려던 진도를 다 마치지 못하고 마무리 했는데…

참신하면서도 신기하면서도 재미있으면서도…
하여간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묘한 재미가 있었다.

아주 열심히 열심히 성경공부에 임하는 아내도 좋았고,
오히려 내가 막판에 초치기로 예습을 하느라 성경공부 시작이 좀 늦어졌다. ^^

성경공부 같이 할 사람을 찾습니다~

소그룹으로… 성경공부를 같이 하실 분 혹시 계신가요?
저랑 제 아내랑…  좀 끼워주셔서 함께 성경공부를 했으면 합니다.

이미 좋은 성경공부 그룹이 있으시면 저희를 초대해서 끼워주셔도 좋고요,
저희랑 함께 성경공부 그룹을 시작하기 원하시는 분은 그렇게 해도 좋습니다.
아니면 소개를 시켜주셔서 저희가 좀 낄 수 있도록 해주셔도 좋습니다.

저희 집에서 모이거나, 저희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모이면 좋겠는데요. (20-30분 이내?)

제가 보기보단, 그래도 소그룹 성경공부 뭐 그런거… 좋아합니다. ㅋㅋ

갑자기 뜬금없는 광고이지만,
혹시 관심있으신 분들 연락주세요. ^^

사랑의 빚

벌써 지금으로부터 10년쯤 된 일이다.
내가 어느 지역교회에서 열심히 섬기다가 여러가지 여건으로 그 교회에서 더 이상 섬기지 못하게 된 일이 있었다.

인간적인 아쉬움과 안타까움, 섭섭함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내 영혼은 지쳐있었다.

성경말씀으로 사람들을 세우고, 양육하고 훈련하는 값진 일 이외에,
비본질적인(?) 일들에 마음을 많이 빼앗겼던 탓이었다.

나는 그때,
내가 한국에서부터 들어오던 Gate Bible Study 라는 성경공부 모임의 문을 두드렸다.
12월 추운 겨울이었는데…
그 성경공부에 참여해서 말씀을 나누며… 삶을 나누었던 그 첫 모임의 감격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아… 그래… 성경공부라는게 원래 이런거였지!
이렇게 말씀을 깊이 연구, 묵상하고… 그 말씀대로 살기로 결심하고 서로 격려하고…
지친 사람들을 섬기고 서로를 위해서 기도하고.

결국 그 모임에 얼마간 나가다가…
새 그룹을 ‘개척한다’고 선언하고…
그 당시 우리가 살던 기혼자 학생 아파트에 3명이 모여 성경공부를 시작했었고… 결국 그 모임은 25명까지 모이는 모임으로 성장했었다.

지난 주말에는,
그렇게 우리 가족을 Gate Bible Study에 정착하도록 도와주었던 선배님 부부와… 또 우리가 보스턴에서 말씀과 삶을 나누던 몇 가정과 함께…
보스턴에서 간단한 저녁식사를 나누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는… 그리고 나는…
참 많은 사랑의 빚을 졌다.

바울에 대하여 실망하다

최근 섬기고 있는 학생 성경공부 모임에서 사도행전을 공부하고 있다.
이번주는 사도행전 21장을 공부했는데…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장면이었다.
특별히 자신에게 고난이 닥칠 것을 알면서도 묵묵히 그 고난을 감수하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영웅으로서 바울을 보면서,
아… 바울은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을 위해 헌신하는구나…
이렇게 생각을 했다가,

21장 4절에서 걸렸다.
우리는 두로에서 제자들을 찾아서 만나고, 거기서 이레를 머물렀다. 그런데 그들은 성령의 지시를 받아서,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말라고 간곡히 말하였다.

성령의 지시를 받아서 바울의 동료들은 바울을 말렸다.
그런데도 바울은 가겠다고 했던 것이었다.

대부분의 주석에서는, 21장 4절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바울의 동료들이 성령으로부터 지시를 받은 것은 바울이 위험에 처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은 것은 성령의 지시가 아니라 사람들의 조언이었다. 성령의 지시에 사람들이 자신의 조언을 덧붙인 것이었다.

그리고,
그 근거로 20장 22절에 나온 바울의 말을 인용한다.
보십시오.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입니다. 거기서 무슨 일이 내게 닥칠지, 나는 모릅니다.

그러나,
만일 21장 4절에서 정말 사람들이 성령을 받아 바울을 저지한 것이었고, 20장 22절에서 바울이 착각을 했거나, 오해를 한 것이었다면?
특히 20장 22절에 ‘성령’이라는 말은 다른 번역본들을 보면 그냥 ‘spirit'(소문자)으로 해석해기도 했고, ‘심령'(개역성경)으로 해석하기도 하였다.
다시말하면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가고자 했던 것은 자신의 사역자로서의 고집이자 열정이었지 성령의 인도하심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고집장이 바울은,
자신이 사역에 관하여 뜻을 정하고는 다른 사람의 조언도 듣지 않은 채 예루살렘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

말씀을 다시 읽어보고 묵상을 하면 할수록,
바울이 자신의 고집에 의해 움직인 것이라는 해석이 더 맞는 것 같아 보인다.

아… 바울에 대하여 실망했다!

그.러.나….
사도행전은 바울행전이 아니었다!
사도행전은 바울과 같은 고집장이를 사용하셔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복음을 전하시는 스토리였다!

누가가 바울을 고집장이로 그리면서도 복음 전파가 이루어지는 것을 그린 것은,
하나님 나라의 전파가, 바울의 뜻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당신의 계획과 뜻에 의한 것이었음을 드러내고자 했언 것은 아니었을까.

바울에 대하여 실망하자마자…
내 마음엔 감동이 밀려왔다.

바울에 대한 실망은, 즉시… 하나님에 대한 기대와 감사함으로 연결되었다.

성경, 하나님, 삼위일체, 우주

요즈음, 간사 훈련을 위해서 Wayne Grudem의 책을 공부하고 있는데..

Wayne Grudem이 묻고 있는 질문 이외에 몇가지를 더 깊이 생각해 보고자 질문들을 던져보았다. 우리 훈련 그룹에서 나눈 질문들.

1-1. 성경은 우리 삶의 모든 문제에 해답을 주는 것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혹시 주변에서 그런 잘못된 방법으로 성경을 접근하는 예를 찾아보실 수 있는지요? (사실 우리 삶의 여러 영역에서… 우리가 접하는 신앙 교육에서… 각종 설교에서… 이런 잘못은 무.진.장. 많습니다. ^^ 좋은 예가 있으면 좀 나누어 주시지요)

1-2. 이건 아마 나중에 성경연구 입문을 공부할때 나누게 될 문제이지만요… 성경은 우리가 알듯이 결국은 4세기에 교회에 의해서 인준되었고 확정되었습니다. 만일 성경을 인준한 것이 교회라면, 성경의 내용을 가지고 교회의 여러 원칙들을 정하려 하는 것은 일종의 순환논리(circular argument)가 아닌가요?

어떤 이들은 또… 성경은 교회가 확정한 것이 아니고 역사적으로 확정된 것을 인준한 것일 뿐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만일 성경이 역사/ 전통에 의해 형성되었다면, 역사나 전통은 성경보다 더 우위의 권위를 가지는 것인가요?

2-1. 하나님의 어느 한 속성을 다른 속성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잘못을 범하는 예를 들어보세요. 자신의 잘못은 share해도 좋고요, 어떤 가르침이나 사상등을 지적하셔도 좋습니다.

3-1. 만일 삼위일체를 포기한다면 어떤 문제가 생기나요? (가령 하나님께서 한분이 아니시라고 주장을 한다던가, 하나님께서 한분이신데 다른 여러 형태로 나타나신 것이라고 주장을 한다던가)

4-1. 어떤 신학적 입장을 가진 이들은, 피조세계가 인류를 위해 지어진 것이므로 인류가 자유롭게 explore하고 개발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특권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다른 신학적 입장을 가진 이들은, 전 피조세계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도구이며, 그러므로 인간이 함부로 그 피조세계를 파괴해서는 안된다고 이야기합니다. 전자의 의견에 충실하면 개발과 발전이 이루어지지만 자연과 생태계 파괴가 이루어지게되고, 후자의 의견에 충실하면 자칫 자연을 우상화하는 잘못을 범하게 될수 있습니다. 이 두가지 입장을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