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눈을 감자

나는,
유난히 ‘번잡한’ 사람이다.
그래서 늘 무엇인가를 해야한다.
하다못해 그것이 web surfing이든, 전자오락이든…
그냥 가만히 앉아서 생각하는 것을 잘 못하는 것 같다.

오늘부터는,
자주 눈을 감는 훈련을 해보려 한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그냥 ‘아무것도’ 안하고 그냥 하나님을 ‘느끼는’ 시간.

점심 시간에는 적어도 10분 정도씩 나만의 아지트에서…
내 말을 쏟아놓는 기도가 아니고,
정말 아무것도 안하고 하나님과 함께 앉아있는 그런 시간을 가지려한다.

약자의 하나님

하나님은,
적어도 내가 보는 관점에서는…
다소 편애가 있다고 보일 정도로….

‘약자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강자의 웃음보다는 약자의 눈물에 더 관심이 많으신 하나님인 것 같아 보인다.

그런데,
나는 아무리 봐도… 너무 ‘강자’이다.

이런 시각에서… 내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길은…
내 강함을 정말 <<completely>> 약자들을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된다.

너무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일까.

이태백에게 교회가 할 수 있는 말은

나는 미국에 20세기에 왔고, 지금은 21세기 이니… 두 세기에 걸친 미국 생활 동안 한국이 많이 변한것은 틀림없으렷다.

이태백(이십대 태반이 백수)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심한 과정의 말인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을 들어보면 그것이 전혀 과정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과연,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들 ‘이태백’ 들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이 어떤 것들이 있을까.

한참 꿈을 꾸며 이상에 부풀어 있어야할 나이에 절망하고 있는 이들에게 복음이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이 어떤 것이 될지는 알지 못하겠으나… 사도행전에 나온 것 같이 ‘은과 금은 아닌 듯’ 하다. 그렇다면 은과 금이 아닌 나사렛 예수의 이름이 이들에게 어떤 위로와 희망을 줄 수 있을까.

선뜻 이것에 대한 대답을 섯불리 열거하기 이전에 어떤 것들이 아닌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본다.

1. ‘예수 믿고 (현세적, 물질적) 복 받아라’

건 아닌 것 같다. 이것이 복음이 이야기하고 있는 내용이 아닐 뿐더러, 실제 그러한 현세적 복을 잃어버린 박탈감에 허덕이고 있는
이들에게 이러한 메시지로 사탕발림을 하려 한다면 복음은 정말 천박한 원색의 룸살롱 광고 찌라시 정도 이상의 attention을
얻지 못할 것이다.

2. 열심히 살아서 그 열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라.
말을 돌려서 해서 그렇지, 사실 이건 ‘성공해라’ 라는 말이다. 이들이 성공이 싫어서 그러고 있는 사람들일까. 성공을 억지로 피해서 이태백이 되었을까.
만일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 비복음적인 말에 이들이 거짓 위로라도 받을 것을 기대해 볼수 있으련만.

3. 지금 참고 견디면 좋은 날이 올거다.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사실 나라도 그렇게 얘기해 줄 수 있으면 좋겠다. 조금만 참아라.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풀어주실 테니.
그러나… 정말 그럴까.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앞에 두고 도박이라도 하자는 건가.

……

어설픈 좌파 그리스도인의 입장에서 보면,
이들 이태백들 가운데 다수는 소위 ‘신자유주의’의 피해자들이다.
경쟁 사회 속에서 낙오된 사람들이다.

그런데, 교회는 ‘신자유주의적’ 메시지들을 강단에서 계속 선포하며…
성공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릴 것들만 이야기 해왔지 않았는가.

형통하게 하시는 하나님이라고,
우리가 야성적인 그리스도인이 되자고,
그리고 고지를 점령하자고.

그런데 우리가 이들 이태백들에게 ‘우리에게 오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씨알이나 먹히겠는가!

교회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아니… 근본적으로 내가,
이 세상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생각, 이 세상을 바라보는 frame을 제대로 정비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20년 뒤,
텅텅빈 한국의 어느 예배당에서 나와 내 아내가 예배를 드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태백들의 박탈감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품어줄 수 있는 복음의 능력을 보고 싶다.

이상주의자의 변절

나는,
내 스스로를 이상주의자라고 생각해왔고,
다른 이들도 나를 그렇게 보아왔던 것 같다.

나는 내가 이상주의자임에 자부심을 느껴왔고 그 ‘순수성(?)’을 지키려 많이 노력했었다.

그런데,
요즈음, 내가 가지고 있던 ‘이상주의’의 한계와 벽을 많이 실감한다.

1. 적어도 내게있어, 이상주의는 교만함과 tightly coupled 되어 있었다.
특히 신앙적 이상주의의 경우에 그랬다.
하나님 안에서의 순수함을 지키려 노력하는 것은 좋으나, 내가 가지고 있는 ‘dogma’를 ‘옳은 이상’으로 설정해 놓고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나 자신을 포함한)을 정죄하였다.
그 교만함은 다시 내 이상주의를 강화시키는 positive feedback 으로 작용하고, 결국은 나와 내 생각과 내 행동에 파과적 효과를 가져오는 듯 하다.

2. 이상주의는 현상을 지나치게 단순화 시킨다.
현실적으로 어떤 ‘이상’에 도달하지 못하는 다양하고도 복잡한 이유가 있는데, 적어도 내가 가지고 있던 이상주의는 그 복잡한 내용을 지나치게 단순화 시키는 (over-simplfying) 문제가 있었다.
내가 정치를 바라보는 시각이 그랬고, 문화를 바라보는 시각이 그랬고, 교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그랬다.
마치 내가 제시하는 어떤 문제 하나만 해결되면 그 시스템이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그렇게 상황을 설정해 버리는 오류를 종종 범해왔음을 본다.

3. 이상주의는 종종 all-or-nothing의 approach로 가게된다.
소위 ‘혼합’이라는 것을 견디지 못하므로… 조금이라도 그 이상에 도달하지 않을경우에는 신랄한 비판만을 남긴채 아예 발조차 담그려 하지 않는 것이다.
이럴경우 결국 그러한 비판은 내가 아래에 쓴… ‘비판쟁이’를 양산하는 mechanism으로 작용한다.

4. 이상주의는 자주 사랑의 부족에서 기인한다.
‘고결한(?) 이상’만을 추구하기엔 우리의 사랑이 필요한 대상이 너무나도 많다.
사회를 비판하면서도 정작 그 사회 속에서 진정으로 섬김이 필요한 사람들을 외면한다든지,
교회를 비판하면서 정작 그 속에서 당장 눈물을 뿌려 섬겨야할 영혼들을 생각하지 않는 부조리를 흔히 보게 된다.
가령… 교회가 타락했다고, 모든 교회의 문을 다 닫고 때려부수고 새로운 교회를 세우기에는 그 안에 있는 영혼들이 너무 귀하다.
정말 한 영혼 한 영혼을 향한 눈물이 있는 사람이라면, 손을 더럽혀가며 현실과 싸우는 노력이 있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아직도 나는 ‘이상주의자’로 분류될 수 있는 듯 하다.
그러나… 내가 위에서 열거한 내 결점들을 보면서… 어쩌면 여태껏 견지해왔던 스타일의 이상주의자로부터는…
내가 변절을 해야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나는 절망한다

요즈음 인터넷의 ‘젊은 세대’를 보면… 대략 두부류로 나누어 지는 것 같다.

첫번째 부류는, 모더니즘적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다.
미국의 Northeastern liberal들과 매우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다.
정치적으로는 중도 혹은 중도 좌파의 성향을 가지고,
문화적으로는 개방적이며,
윤리적으로는 비교적 건전하고 (적어도 표방하는 자세로는)
종교적으로는 무신론이다.
이들이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소 낙관적이고, humanitarianist 들이라고 할 수 있다.

두번째 부류는, 포스트모더니즘적 사고방식을 가진사람들이다.
정치적으로는 무당파,
문화적으로는 매우 개방적,
윤리적으로는 구속을 싫어하고,
종교적으로는 무신론보다는 무심론(無心論:관심이 없음)에 가깝다. 때로 다신론적 입장을 취하기도 한다.
‘I don’t care’가 이들을 표현하는 key point이다.

나는 이 시대의 이런 흐름들에 절망한다.
적어도 현재의 성향이 5-10년정도 지속된다면 한국교회는 지금의 유럽교회만도 못해질지도 모른다.

왜 이 모양이 되었을까?

그 이유에 대한 분석이야 이미 많이들 되어 있으므로 내가 따로 여기에 늘어놓는 것은 크게 의미가 없을 듯 보이나…
정말 더 마음을 짓누르는 것은… 앞으로 5-10년 이내에 이런 trend를 뒤집을 가능성이라도 볼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어떤 큰 일을 행하신다면 모르겠으나…
적어도 내가보기엔 매우 희박하다.

내 딸 민우가 대학생이 되었을 때에는,
born-again Christian 친구와의 fellowship을 누리며 인생의 계획을 나누느라 밤을 새우는… 그런 모습을 기대하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절망한다…

누가복음 7:31-32
31 또 가라사대 이 세대의 사람을 무엇으로 비유할꼬 무엇과 같은고
32 비유컨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서로 불러 가로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을 하여도 너희가 울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비판쟁이

나무가 어떤 나무인지 알려면 그 열매를 보라고…

나의 경우엔, 나에게서 깊은 신앙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특히 최근으로 들어올수돌 더?) 많이 …
‘비판’적 시각을 갖는 것 같다.

비판이 갖는 건강한 순작용이 있고,
특히 어떤 사안의 경우엔 비판이 아니고는 도저히 스스로 정화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없는 경우도 있거니와 (그 비판의 수용여부는 물론 별도의 문제이다.)
비판이 때로 어떤사람의 ‘시각’ 자체로 고정되어 버리면 그 사람을 ‘비판쟁이’로 만들어 버리는 것 같다.

어떤 이들은,
‘교회’ 라는 이야기만 나오면 일단 비판할 거리들을 늘어놓는다.
그것이 자신이 속한 지역교회이건, 한국교회이건, 일반적인 우주적 교회이건 간에.

어떤 이들은,
‘요즈음 학생들’ 이라는 이야기만 나오면 핏대를 세우는 것으로 대화를 시작한다. 세속의 가치관에 물들어버려 소망이 없다는 둥, 비지성적이라는 둥…

이 ‘어떤 이들’에는 물론 나도 포함되어 있다.
나도 매우 ‘비판쟁이’이니까 말이다.

비판쟁이들은…
어떤 이야기를 꺼내도…
일단 비판부터 하고 보고…
그래서 너의 personal한 삶에서 그 이슈가 어떻게 영향을 주느냐는 질문을 하고 보면… 그냥 대화가 막힌다.

비판하는 이야기는 늘 구체적이기 보다는 추상적이고,
개인적 dimension에서의 적용이 빈약하다.
비판을 하며 가르치는 주제로는 이야기거리가 쌓여있지만,
그것을 위해 섬기는 action은 극도로 빈약하다.

비판의 소리들을 다시 분석하여 또 다시 반문하고 캐물어보면,
이들의 비판 역시 ‘들은것’ 일뿐.. ‘체득한것’은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내가 스스로 정한 기준이 있다. 그것은…
내가 어떤 대상을 위해 섬기는 크기가 그리고 기도의 크기가 그것에 대한 비판의 크기보다 항상 더 커야한다는 것이다.
그 대상이, 어떤 개인이건, 단체이건, 지역교회이건, 한국교회이건, 이 시대의 젊은이이건, 목회자이건… 누구건 간에.
그리고 내가 섬기지 못하는 중에 비판의 생각이 혹시 떠오르더라도, 그것이 내 입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단속하고… 그 생각을 스스로 정화시키려 노력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로부터 신앙적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비판쟁이’의 모습을 자꾸만 갖는 것을 보면,
내가 스스로 정한 기준을 내가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

가슴을 칠 일이다…

빌립보서 2:5-8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누가복음 6:39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소경이 소경을 인도할 수 있느냐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아니하겠느냐

원리적 기도와 관계적 기도

다른 사람들이 인정을 할른지 하지 않을른지는 모르겠으나,
예수님을 처음 믿으면서 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나는 ‘모범생’이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늘 내 기도가 ‘올바른 기도’여야한다는 부담을 가지고 지내왔던 것 같다.
소위 ‘정욕으로 쓰려고 잘 못 구하는’ 기도를 하지 않으려 했고…
‘내 뜻 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도록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내 스스로 많이 되뇌었다.

그리고, 그렇게 ‘원리적’기도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얼마나 경멸했는지 모른다. 바로 저런 사람들 때문에 기독교가 욕먹는 거라고.

그런데,
요즈음 나를 바라보면서,
내가 스스로 ‘원리적 기도’를 하려고 노력하는 그 자세가
‘관계적 기도’를 막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민우가,
어떤 장난감을 가지지 못해 몹시 마음이 상해 있을때,
그것을 나와 나누지 못한 채…
그저 ‘원리적’으로…
그 장난감 욕심을 내는 것이 합당하지 못하다는 당위와 자신의 욕심 사이의 간극(gap)을 나와 이야기하지 않은 채 스스로 메우려고만 한다면…
나는 무척이나 마음이 상할 것 같다.

일단,
민우의 생각이 정리되어있지 않아도 좋으니…
나와 이야기하면서 ‘원리’ 혹은 ‘정답’을 찾아가기를 원하는 것이 아빠된 마음이다.

내가… 하나님을 정말 내 ‘아버지’로 생각한다면,
하나님께 어떻게 기도해야한다는 ‘당위’를 앞세우기 전에,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대회를 해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한다.

내가 혼자 다 고민해서 하나님과는 전혀 상의도 하지 않은 채… 정답만을 가지고 하나님께 간다면…
그것이 ‘원리적 기도’이기는 하겠으나…
‘관계적 기도’는 아닐 것이다.

다른 이들에게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내겐… ‘관계적 기도’의 강조가 필요한 것 같다.

참된 ‘관계적 기도’를 하게 되면 결국은 ‘원리적 기도’를 하게 되지만,
‘원리적 기도’를 반복한다 해도 ‘관계적 기도’를 하지는 못한다.

KOSTA/USA-2004를 다녀와서

지난 한주동안 코스타에 다녀왔습니다.
이번이 여덟번째 코스타였으니… 이제는 제법 여러가지 일에 익숙해지기도 할만도 한데… 여전히 제게는 새로운 깨달음과 많은 숙제거리를 제공해준 코스타 였습니다.

1. 이번에 사실 저는… 제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많은 기도를 하지 못한 채 코스타에 참석했습니다.
이 말은… 예를 들면… 마라토너가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연습을 별로 하지 못하고 참석을 했다고 말하는 것이나…
가수가 콘서트를 하면서 노래 가사를 외우지 못한 채 무대에 선다는 것 이상으로 ‘엽기’임을 압니다. 그래서 더더욱 제겐 마음의 부담이 큰 코스타 였습니다.

2. 그와는 달리 코스타에 현지에서 기도는 대단히 energetic 했었습니다. 그 기도가 얼마나 powerful 했던지… 영적으로 매우 둔감한 제게조차도 그 힘이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3.
코스타의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사람가운데 하나로서, 제가 성실하게 코스타에 임하지 못한 여러가지 ‘증거’가 나타났습니다.
여러군데에서 프로그램이 원래 의도하지 않은대로 진행되는 것이 감지되었고, 전체 집회를 비롯해서 곳곳에서 발을 동둥 구르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이 일의 대부분은 ‘기획’의 미숙에서 나타난 것들이었습니다.

4. 그런데, 그 와중에서도…
100명에 가까운 사람이 새로 예수님을 개인의 구주로 영접했습니다. 그리고 60명에 가까운 해외 선교 헌신자들이 나왔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치유’를 경험했다고 고백했는지 모릅니다. 자신의 죄를 기도중에 쏟아내는 일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저도, 그 와중에… 하나님께서 하시는 놀라운 일들을 경험하면서… 그저 눈물을 펑펑 쏟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한번은 집회 중에 맨 뒤에 서서 눈물을 흘려서… 제 신발이 젖을 정도로 울었습니다.

5. 매년 코스타를 섬기면서 경험하는 것이지만, 준비하는 사람의 미숙함과 그 부족한 그릇을 사용하셔서 당신의 ‘실속’을 챙기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이번 코스타에서는 더욱 두드러졌던 것 같습니다.

것은 아마도… 코스타를 준비하며 섬기는 저같은 사람이야 말로 정말 하나님의 touch가 필요한 사람들이고,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부족한 섬김위에 당신의 은혜로서 넘치게 하셨던 것 같습니다. 마치 작은 간장 종지위에 나이아가라 폭포가 쏟아지는 것
같은…

6.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족한 섬김의 부분을 더 연구해서 채우는 일들은 계속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좀 더 성숙한 모습으로 코스타를 섬기고자 하는 열망을 더욱 주시는 것 같습니다.

7. 특별한 일이 없다면, 내년에도 저는 코스타에 참석 하겠지요. 참석해서 하루에 3-4시간씩 자면서 땀 범벅이 되어 뛰어다니겠지요. 또 다시 눈물을 펑펑 쏟으며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겠지요.
그러나, 내년에는 좀 더 나은 모습으로 섬기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는 소망을 가져봅니다.

8. 그리고… 아마도… 제가 좀 더 나은 모습으로 섬기는 사람이 되는 것은 코스타 기간 중이 아니고 코스타가 끝난 후의 제 삶의 모습에서 더 잘 드러나게 되겠지요.

그래 가자, 집으로 가자

그래 가자, 집으로 가자.
거기 우리 집에선 우리 아버지께서 기다리고 계실테고,
거기 우리 집에선 이런 서러움 따윈 없을꺼야…


한 6년 쯤 전에(-.-) 제가 제 이메일(?)의 시그니처로 썼던 문구 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유학 생활이 그렇게 힘드냐고…
뭔 시그니처가 그렇게도 서럽냐고 하더군요.

유학생활이 힘들기도 하거니와,
사실… 정말 ‘거기 우리집’ 이외에 정말 ‘서러움’ 없는 곳이 어디 있겠습니까.

여러가지 일로 눌리고 스트레스 받고 불안할 때,
역시 유일한 안식처는… ‘내 아버지’ 뿐이라는 생각이… 나이가 들수록 더 깊어지네요.

이제야 조금씩 철이 드는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