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말을 또 한번 하기

내가 잘 하지 못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당연한 말을 또 한번 하는 것이다.

가령, 내가 참 고맙게 생각하는 사람에게 고맙다고 이야기하는 것,
나와 대화상대가 이미 공통적으로 알고 이해하고 있는 것을 다시 확인하고 이야기하는 것 등등…

아마 나는 그렇게 하는 것을 시간낭비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때로는,
이렇게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많이 배운다.

매우 자주, 같은 presupposition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가만히 이야기해보면 매우 다른 presupposition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고,
나와 매우 다른 context와 background에서 문제와 상황을 접근하기 때문에 의외로 내가 아주 기초라고 생각하는 것이 함께 공유되고 있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리고 또한,
인간이 모두 감성적 존재이기 때문에, 무엇을 이야기하느냐 하는 것만큼이나 어떻게 이야기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경우 내 대화 상태가 아주 당연해 보이는 말을 하는 것을 들으면서… 아니 왜 저런 말을 저렇게 길게 해야할까… 하는 의문을 품게도 되지만,
어쩌면 그렇게 하는 것은 이미 상대에 대한 배려와 존경과 사랑이 그렇게 말하는 사람에게 배어있기 때문일수도 있겠다.

Apprentice of Jesus

마가복음 6장 전반부를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송하시고,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고 일하게 하시는 장면이 나온다.
지난 월요일에는 Stanford의 KCF 형제 자매들과 이 본문을 함께 공부했다.

최근,
여러가지 일로 쫓기면서 마음의 평정도 잃고,
여러 사람들의 요구에 지치기도 하고,
내 자신의 모습에 실망도 하고… 그러고 있었는데,

제자들을 파송해서 사역하게 하시는 본문을 접하게 되었다.

이 본문에서 제자도에 대하여 배울 수 있는 많은 것들이 있었다.
전하는 내용의 contents, 전하는 자세, 사역자로서의 당당함, 동역의 중요성,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 의존 등등.

지난주엔 많이 바쁘게 지내가다,
이 본문을 보면서… 이렇게 내가 무언가를 해야 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데도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 의존을 배울 수 있는 것일까. 결국 이것들은 모두 ‘내 힘’으로 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들이 들었다.

그런데 본문을 다시 묵상해 보면서,
과연 제자들은 그렇게 파송을 받아 사역을 하면서 ‘자신의 힘’으로 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지 않았을까… 그런 의문을 가져 보았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마을에 들어가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면서 무엇인가 자신들이 하지 않으면 안되는 리스트들이 잔뜩 있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이런 상황속으로 제자들을 몰아놓으시면서 ‘하나님에 대한 절대 의존’을 말씀하신 예수님의 의도는 무엇일까.

그것은 결국,
그리스도의 제자는,
그저 가만히 앉아서 예수님의 말씀을 이론적으로 생각하고 묵상하는 사람들이 아니고,
현실에서 자신이 무엇인가를 해야하는 것 같은 상황을 겪여 나가면서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법을 배워나가는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바로 그 다음 본문인 31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따로 와서 좀 쉬어라… 라고 말씀하셨고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제자들이 밥 먹을 시간도 없었다고 전하고 있다.

마치 내가 무엇인가를 다 하고 있다는 부담감을 가지고,
내가 무엇인가를 해야하는 것 같은 책임감을 가지고,
어깨에 힘을 잔뜩 주어서 방방 뛰는 내게,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는 건 좋은데… 그러면서 내게 의지하는 법을 배워라” 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내가 궁시렁 궁시렁 하면서… 하나님 왜 저는 이렇게 일이 많습니까… 그러고 있을때,
그런 모습 조차도 귀엽다(?)는 표정으로 나를 빙긋 웃으시며 바라보시는 것 같은 모습이 본문에 배어 있었다.

다니엘 9:1-19

어제 QT 본분은 다니엘 9장 전반부였다.
지난주 Stanford KCF 모임에서 다니엘 9장 전반부를 나누면서 함께 그렇게 기도하자고 했었는데…

정말 가슴을 후벼파는… 그런 본문이다.
정말….

9:1 메대 족속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우스가 1)바빌로니아 나라의 왕이 된 첫 해,

2 곧 그가 통치한 첫 해에, 나 다니엘은 거룩한 책들을 공부하면서, 주님께서 예레미야 예언자에게 하신 말씀, 곧 예루살렘이 칠십 년 동안 황폐한 상태로 있을 것을 생각하여 보았다.

3 응답을 들으려고, 나는 금식을 하면서, 베옷을 걸치고, 재를 깔고 앉아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면서 간구하였다.

4 나는 주 나의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백성의 죄를 고백하고 아뢰었다. “위대하시고 두려우신 주 하나님,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언약과 인자를 베푸시는 하나님!

5 우리가 죄를 짓고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악한 일을 저지르며, 반역하며, 주님의 계명과 명령을 떠나서 살았습니다.

6 우리는, 주님의 종 예언자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우리의 왕과 지도자와 조상과 모든 백성에게 말하는 것을 듣지 않았습니다.

7 주님, 주님께서는 언제나 의로우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처럼 낯뜨거운 수치를 당합니다. 유다에 사는 사람이나 예루살렘에 사는 주민이나, 가까운 데나 먼 데, 곧 이스라엘 사람으로서 흩어져 사는 사람이, 주님께서 쫓아내신 그 모든 땅에서 수치를 당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주님께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8 주님, 우리와 우리의 왕과 지도자와 조상이 낯뜨거운 수치를 당한 것은 우리가 주님께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9 주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겨 주시고 용서하여 주셨으나, 우리는 하나님께 반역하였습니다.

10 우리가 우리 주 하나님께 순종하지도 않고, 하나님의 종 예언자들을 시키셔서 우리에게 말씀하여 주신 율법도 따르지 않았습니다.

11 참으로 온 이스라엘이 주님께 순종하지 않고, 주님의 율법을 어기고 벗어났으므로, 하나님의 종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벌과 저주가 우리에게 내렸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주님께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12 주님은 우리에게 큰 재앙을 내리셔서, 우리와 우리를 다스리는 통치자들에게 하신 말씀들을 이루셨습니다. 예루살렘에 내린 것과 같은 재앙은 하늘 아래 그 어느 곳에서도 없던 것입니다.

13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이 모든 재앙이 우리에게 미쳤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는 죄의 길에서 돌아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따라 살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주 우리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려 하지 않습니다.

14 주님께서 재앙을 간직해 두셨다가 우리에게 미치게 하신 것은, 주 우리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은 의로우신데, 우리가 말씀에 순종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15 강한 손으로 주님의 백성을 이집트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오늘과 같은 명성을 얻으신 주 우리 하나님, 우리가 죄를 짓고, 악한 일을 저질렀습니다.

16 주님, 주님께서 지난 날에 우리를 구하여 주셨으니, 이제 주님의 성 예루살렘 곧 주님의 거룩한 산으로부터 주님의 분노를 떠나게 해주십시오. 우리의 죄와 우리 조상의 죄악 때문에, 예루살렘과 주님의 백성이 우리 주위에 있는 민족들에게 멸시를 받습니다.

17 우리의 하나님, 이제 주님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들어 주십시오. 무너진 주님의 성전을 복구하여 주십시오. 성전을 복구하셔서, 주님만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모두가 알게 해주십시오.

18 나의 하나님, 귀를 기울이시고 들어 주십시오. 눈을 크게 뜨시고, 우리가 황폐해진 것과 주님의 이름을 빛내던 이 도성의 고통을 굽어보아 주십시오. 우리가 이렇게 주님께 간구하는 것은, 우리가 잘나서가 아니고, 주님께서 자비하시기 때문입니다.

19 주님, 들어 주십시오. 주님, 용서하여 주십시오. 주님께서 들어 주시고, 이루어 주십시오. 나의 하나님, 만민이 주님께서 하나님이심을 알아야 하니, 지체하지 마십시오. 이 도성과 이 백성이 주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미성숙한 사람들

영적으로 미성숙한 사람들 가운데 많은 이들은,
자신이 미성숙하다는 사실 자체를 깨닫지 못한다.

이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교회의 문화에 익숙해서,
나는 아직 멀었다…
나는 많이 미성숙하다…
하는 식의 말을 하지만…

사실 이들과 정말 마음과 마음을 열고 이야기해보면,
자신이 전혀 미성숙하다고 느끼지 않고 있거나…
심지어는 다른이들보다 우월하다고 느끼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런 이들은,
대부분 성장 자체가 멈추어버린 상태에서 몇년, 십몇년, 심지어는 수십년씩 정체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에게는 성장/성숙에의 자극을 주는 것 자체도 매우 힘들다.

이런 사람들과 만날때마다,
나는 섬뜩하게… 내 자신의 모습을 본다.
신앙의 핵심이 아닌, 문화와 껍데기에 익숙해져 안주해버리는 모습,
피상적인 신앙생활에 젖어 구체적이지 못한 삶,
내가 하고 있는 작은 ‘선한 생각’들을 스스로 곱씹으며 내가 ‘선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어리석음…

나의 미성숙함을 내가 바라보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늘 두렵다.

Boston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회사일로 여행을 하게 되었을때,
KOSTA등의 사역관련한 여행을 하게 되었을때,
아니면 Boston 집에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길에…

공항에서 비행기를 갈아타다가…
Boston으로 가는 비행기편 sign이 나오면…
나는 그 자리를 쉽게 뜨지 못한다.

비행기 시간이 아무리 촉박해도,
그 gate 앞에서 꼭 몇초간이라도 멈춰있곤 한다.

회사에서 Boston에서 학회가 있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을 때에도,
나는 그 안내문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람과 함께 이룬 소중한 가정에 하나님께서 주신 천사와 같은 아이가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나의 이 소중한 사람들을 향한 내 사랑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어져만 간다.

결혼해서 가정을 이룬지 10년이 더 지난 지금,
나는 결코 신혼의 미숙함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우리 그룹 picture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우리 그룹 사람들이 우리가 만든 sample을 가지고 서 있다.
길게 늘어져 있는 것이 우리가 만들고 있는 flexible substrate에 만든 TFT array이다.
전체가 하나의 긴~ 플라스틱 필름 위에 전자회로가 만들어져 있는 형태이다.

나는 지금 내가 함께하고 있는 이 사람들로 부터 참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들로부터 이렇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으리라고 사실 별로 기대하지 못했었는데.

열심히 일하는 것, 열정,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 팀워크, 리더쉽, 논리적 사고, 유머, 다양한 문화 등등.

그들에게 나는 어떤 사람일까 하는 것이 늘 마음에 있다.

정보와 묵상

(1) 적은 양의 정보를 가지고 깊이 있는 묵상/연구/고찰을 하는 것과,
(2) 많은 양의 정보를 가지고 깊지 못한 묵상/연구/고찰을 하는 것 가운데 어떤 것이 더 큰 문제일까.

내 생각엔 전자, 즉 적은 양의 정보를 가지고 깊이 있는 묵상을 하는 경우가 더 큰 문제인 것 같다.

왜냐하면,
그러한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이 깊다고 착각하기 때문에 적은 양의 정보를 가지고 내리는 편향된 결론에 엄청난 확신을 갖기 때문이다.

이러한 성향은,
소위 ‘신앙인’들에게서 많이 발견된다.

내 모습을 스스로 이에 비추어 보며… 부끄러워진다.

우리 그룹이 한 일이 미디어를 탔다

우리 그룹에서 한 일을 우리 lab manager가 유럽에 가서 발표를 했는데,
그게 semiconductor international에 떴다.
우리 manager가 이번엔 가서 keynote speach를 했다.

http://www.semiconductor.net/article/CA6548955.html?nid=3572

사실 이번에 이 발표에…
무언가 좀 더 좋은 결과를 발표하고 싶었는데…
많이 아쉽다.

내가 좀 더 열심히 했더라면… 무언가 달라졌을까.
이제 5월 말에 또 우리쪽에서는 가장 큰 학회가 있는데…
거기에도 일단 우리 그룹에서 invited talk을 하나 하게 되어 있는데…
그때까지는 정말 무언가 하나 만들어 내야 할텐데…

이번 연말까지 우리가 invited talk을 하도록 요청받은 것만…
벌써 3-4개는 되는데…
어깨가 무겁다….

민우에게 나는 늘 한가한 사람

가끔은 민우가 내게 online chatting을 걸어올때가 있다.
그러면서 내게 하는 말은…
자기가 엄청 바쁜데 특별히 아빠를 생각해서 chatting을 잠깐 할 시간이 났다는 거다.
그리고… chatting 중간에 잠깐 다른 것이 할 일이 생각나면 이내 자신의 상태를 ‘busy’로 바꾸어 놓는다. 자기가 바쁘다는 거다…. 그리고 아빠는 한가하고. ^^
다른 일로 엄청 바쁠때에도 민우가 온라인 채팅을 걸어오면 나는 그것을 대부분 받아준다. 내가 다른 일을 하면서 그 답변을 하는 한이 있어도.

나는 민우에게 늘 한가한 사람이 되고 싶다. 내 아내에게도 마찬가지이고.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내 가족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섬겨야 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늘 한가한 사람이고 싶다.
그것은 내가 바쁘지 않아서가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소중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시간을 쓰는 것이 내게 기쁨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내 사명이기 때문이다.

민우와 같이 어리고 철이 없을땐…
늘 자신이 제일 바쁘다고 생각하지만…
좀더 철이든 (hopefully) 내 입장에서는, 민우가 바쁘다고 하는 것 자체가 귀엽다.
그리고 내가 바쁜 것을 숨기고 민우를 위해 시간을 함께 보낸다.

내가 더 철이들고 성숙해지면,
내가 바쁘다고 엄살을 피우는 일도 줄어들고..
바빠서 힘들어하는 후배들에게 조용히 손을 내밀어 줄 수 있는 여유가 생기게 될까.
내가 바빠지지 않아서가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의 평화가 있기 때문에 말이다.

바쁘다는 엄살의 글을 막 써놓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좀 너무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한마디 더…

이메일 트래픽

요즘 여러가지 급박한 일들이 많이 겹쳐서 좀 정신없이 지낸다.
회사애선 곧 있을 학회에서 발표할 자료와 flexible display demo를 만들기 위해서… 정말 정신없이 실험을 하고 있고,
몇몇분들과 길게는 한시간 짧게는 30분 가량의 전화 통화를 하면서 의견을 듣고 상의하고 해야할 일들이 계속 있었고… 아직도, 일주일 내에 heavy한 전화통화나 논의들을 해야할 것들이 5건 정도 더 남아있다. 어제 하루동안에도 그렇게 전화통화를 한 시간이 총 2시간이 넘었다.
그리고, 어제는 드디어 내가 감당해야 하는 이메일의 트래픽이 100개에 달했다. 아마도 기록이 아닐까 싶다. ^^ (그냥 읽을 필요도 없는 이메일 말고… 내가 읽고 생각하고 respond 해야하는 이메일 + 내가 다른 사람에게 보낸 이메일을 더한 것이다.) KOSTA 관련 이메일이 그중 70% 이고… 회사 이메일이 15%… 그리고 이 지역에서 섬기는 것 관련된 이메일, 가족, 아는 사람 이메일들이 나머지이다. 그중 어떤 이메일은 그 이메일 하나를 쓰기 위해서 30분 가까이 고민하고 다시 생각하고 해야하는 것들도 있다.

물론 그렇게 하고도 해야할 일들을 다 못하고… 이렇게 버벅대고 있지만.

때로는… 이런 짐을 좀 나누어 질 사람들을 찾아보기도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내가 물론 부족한 탓이기도 하지만… 정말 faithful하게 헌신하는 사람들을 찾기가 쉽지 않은 탓이기도 하다. (회사 일이든, KOSTA 일이든… 뭐든 간에)
혹, 함께 짐을 나누어지길 원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그 짐을 나누는 것 자체가 내게 일이되어 이렇게 상황이 급박해지면 더더욱 그 짐을 나누는 것이 힘들게 된다. 해야할 일들에 대해 설명하고 하도록 돕고 잘 되었는지 같이 점검하고… (사실 리더로서 해야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인데… 그런 의미에서 나는 리더쉽도 참 부족한 사람인 듯 하다)
그러다보면 지치기도 하고, 답답해 하기도 하고… 원망이 되기도 한다. 나는 이렇게 뛰는데… 저 사람은 내가 이런것을 알면서도 왜 도움의 손길 한번 내밀지 않는 걸까.

그런데,
내가 최근 배우고 있는 것은,
치열하게 사는 lifestyle 자체를 유지할 수 있는 것도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 가운데 하나인 것 같다. (순발력, 체력, 열정, 기획력, 분석력… 등등이 모두 필요한 듯 하다)
따라서 그렇게 살지 않는/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원망이나 불평은 매우 부당한 것이다.
그런 사람은 그런 사람들 나름대로의 role이 있는 것이고… 나와는 다른 영역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더 깊이 알게 되는 것이다. 오히려 내가 그런 사람들로부터 많은 삶의 자세를 배워야 하는 것 같다.

예수님을 알고… 처음 10-15년 동안은…
예수님을 위해, 영원한 나라의 소망을 가지고, 이 땅에서 치열하게 사는 법을 배워왔던 것 같다.
그러나.. 최근 7-8년 동안은,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는 사람을 포용하고 이해하고 섬기는 법을 배우기 위해 struggle 하고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내 성숙함으로 나아가는 진보가 때론 너무 더디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