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장이 엄마의 기발한 사랑 표현


아내가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다가 어떤일인지 금방 내려버린 사진.
민우가 자는 동안에… 요즘 아내는, 민우의 팔에 이렇게 ‘낙서’를 해준다.

사랑한다… 자는 모습이 예쁘다… 숙제 하느라 수고 많았다 등등.

민우는 이 ‘낙서’를 매우 기분좋게 하루종일 간직한다.
늘 황당한 생각을 잘 하는 엄마의…. 기발한 사랑표현법이 아닐까 싶다. ^^

최근 매스컴 기사들…

최근 internet 여기 저기에서 우리 기사가 꽤 많이 나고 있다.
미국에서 뿐 아니고 한국.. 중국 등 다른 나라에서도…
다음주에 Arizona에서 열리는 flexible display conference에 가서 또 발표를 하나 하게 되는데…

최근에는 우리 그룹에서 100% Roll-to-Roll 이라는 방법으로 display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이건 사실 꽤 대단한 건데…)
이것은 현재의 display를 혁신적으로 싸게 만들수 있는 것이다. 아직은 실제 대량생산을 할 수 있을 수준에 이르기까지 갈길이 멀지만.

점점 뭔가 something big이 다가 오고 있는 느낌…

그냥 얼른 찾아본 몇개의 기사만 보더라도… 엄청 많다…

http://itview.joins.com/news/article.asp?total_id=3412397
http://www.betanews.net/article/437841&ad=rss
http://blog.sina.com.cn/s/blog_5e13f6110100cbwg.html?tj=1
http://blog.wired.com/gadgets/2008/12/hp-prototypes-f.html
http://www.pcmag.com/article2/0,2817,2336409,00.asp
http://chanho32.egloos.com/2165215

우리 Lab director가 찍은 비디오도 있다. ^^

엘리트에의해 spoil 되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극소수 엘리트 그룹에 속하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최근 다시 인식하게 되었다.

회사에서 만나는 우리 팀 사람들은, 아마도 우리 분야에서 top 0.1% 내에 드는 극상의 엘리트들 일 것이다.

내가 성경공부를 통해서 만나는 사람들도, 그리고 KOSTA를 통해서 만나는 사람들도 대부분 신앙의 엘리트 들이다. 각 교회에서 속한 신앙 공동체에서 ‘날리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그들과 많은 대화를 나눈다.

그러다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엘리트들에 의해 spoil 된 듯 하다.
스스로 동기부여가되어 목표를 향해 돌진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나를 본다. 사실 이 땅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은 그 동기부여 자체가 힘든 사람들일텐데 말이다.

그러다보니 내가 점점 현실감각을 상실해 버린,
비뚤어진 형태의 엘리트시즘에 빠져버린 건 아닌가 하는 두려운 생각이 든다.

내가 다른 누구에게 role model이 될 수 있을까.

내 삶이 다른 어떤 이들에게 “message”가 될 수 있을까.
내 성공과 성취, 승리와 기쁨 뿐 아니라,
내 실패와 좌절, 패배와 슬픔 까지도

점점 나이가 들면서,
이제는 내 삶의 모든 contents가 다른이들에게 “message”가 되는 삶을 살지 않는다면,
내가 말로, 내 얄팍한 passion으로, 섬긴다고 돌아다닌다는 것이 그저 공허한 장난에 지나지 않게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가정과 직장과 내 개인의 삶이 모두 건강하게 integrate되어 있지 않으면,
더 이상 내 말이 진실하지 않은 것임을 깨닫는다.

내 얄팍한 열정이 오히려 다른이들을 파괴하는 무기가 됨을 깨닫는다.
내 신앙의 피상성을 나도 참을 수가 없다!

전투력

권오승과 김수영이 한 침대에서 잘때,
이불은 김수영이 100% 뺏어감,
침대는 70% 정도 면적을 김수영이 차지하고 잠.
==> 김수영의 압승!

김수영과 권민우가 한 침대에서 잘때,
이불은 김수영이 90% 뺏어감.
침대는 85% 정도 면적을 권민우가 차지하고 잠.
그러나 권민우는 원래 이불을 거의 안덮고 잠.
==> 권민우의 판정승!

이로써,
우리 가족의 서열이 확실하게 정해진다.

권민우 > 김수영 >> 권오승

흑흑…
나도 나름대로는 카리스마 있는 사람인데… 쪼그만 다람쥐 두마리에게 눌려 살다니.

점점 매스컴은 타는데…

Economist에도 우리가 하는 일에 관한 기사가 났다.
점점 우리 그룹(HP Labs)  / 우리 회사(Phicot)이 하는 일이 소문이 나고… 매스컴도 타고 하는데..
점점 더 본격적인 게임에 돌입하고 있는 것 같다.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고… 딸깍 딸각 소리를 들어가며 오르막을 오르고 있는 기분이다. 


영적 리더가 되는 아픔

어제 영적 리더가 되는 기쁨에 대해 나누었는데,
오늘은 역시 지난 주말을 지내며 생각하게 되었던 영적 리더가 되는 아픔에 대하여 한번 정리해본다.

1. 후배들을 위해 해줄 수 없는 나를 보며 아파하게된다.
훌륭한 후배들을 만났는데, 그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줄 수 없을때만큼 내가 원망스러울 때가 또 있을까.
훌륭한 후배들을 만나면서 나의 한계를 더 뼈저리게 느끼고, 나 스스로의 성장과 성숙을 향한 타는 듯한 목마름을 느낀다.
때로 그 목마름은 마치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는 것 같은 고통으로 다가오기도 하는 듯 하다.

2. 후배들을 위해 해주지 못한 나를 보며 아파하게 된다.
나름대로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도,
그 소중한 사람들에게 무엇인가를 해주지 못한 아픔이 나를 사로잡는다.
그때는 나름대로 한다고 열심히 했는데, 잘못된 판단으로 엉뚱한 길을 내어놓았다면,
후배들은 그 잘못된 길을 바로잡기 위해 길을 내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하는 경우도 있다.
그때 내가 좀 더 차분하게 생각해서 접근했더라면 이러이러한 사람들에게 무엇인가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이었을텐데… 하는 후회는, 속을 쓰리게 한다.
지금부터 노력해도 그것을 되돌이킬 수 없기 때문이다.

3. 후배들을 위해 잘 해줄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된다.
What if I’m wrong?
과연 내가 내리는 이러한 결정이 후배들에게, follower들에게 정말 도움이 되는 결정일까.
이것으로 전혀 잘못된 길로 이끌게 되는 것은 아닐까.
이들에게 최상의 것을 제공해주는 것일까.

지난 주말 KOSTA 간사 모임을 지내며 이런 생각들을 해보았다.

영적 리더가 되는 기쁨

리더가 되는 기쁨은 매우 풍성하지만,
지난 주말을 지내며 생각하게된 몇가지를 적어본다.

1. 하나님께서 일하심을, 어떤 경우에는 exclusive하게, 더 자세히 관찰할 수 있다.
리더의 위치에 있으면, 섬기고 있는 일의 성격때문에 어쩔수 없이 더 많은 정보를 얻게 된다. 때로 그러한 정보 가운에 어떤 것들은 다른이들과 나누기 어려운것들도 있다.
그런데 그런 정보를 다 수집해서 모아보면 하나님께서 세밀하게 인도하시고 일하심을 더 분명하게 보게되는 경우가 있다.
상황의 detail을 알지 못하면 그저 잘 되었네… 수준의 일인데, 상황의 detail을 알고 나면 감사의 눈물을 흘리거나, 온몸에 전율을 느끼거나, 할말을 잊게되는 수준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을 보게된다.

2. 훌륭한 선배들을 더 가까이 겪게 된다.
많은 분들이, 어떤 조직이나 모임의 리더에게 소중한 조언과 안내를 해주신다. 그 가운데에는 물론 여러가지로 마음을 어렵게 하거나 방해가 되거나, 그저 시간낭비가 되는 일들도 있지만, 어떤 경우에는 무릎을 치는 통찰을 얻게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이런 선배들이 해주시는 조언이 리더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좀 더 근본적으로는 그 리더가 섬기고 있는 조직이나 모임을 위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리더는 어부지리로 큰 선물을 받게 되는 것이다.

3. 훌륭한 후배들을 더 다양하게 만나게 된다.
리더로서 사람들들 더 많이 만나게 되고, 그러다보면, 미래에대하여 부푼 희망을 갖게하는 훌륭한 후배들을 만나게 된다. 이런들을 보는 것은 정말 가슴벅찬 일이다.
한때 나는, 내가 사람들을 길러내지 못하고 있다는 자괴감에빠져 힘들어 한적이 있었다. 그때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 사람들은, 이러한 훌륭한 후배들이었다.

지난 주말,
또 한번의 KOSTA 간사모임을 마쳤다.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사랑하는 이들을 만난다.

어둔밤 마음에 잠겨 역사에 어둠 짙었을 때에
계명성 동쪽에 밝아 이나라 여명이 왔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 빛속에 새롭다
이 빛 삶속에 얽혀 이땅에 생명탑 놓아간다  

옥토에 뿌리는 깊어 하늘로 줄기 가지 솟을 때
가지 잎 억만을 헤어 그 열매 만민이 산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 일꾼을 부른다
하늘 씨앗이 되어 역사의 생명을 이어가리  

맑은 샘줄기 용솟아 거치른 땅을 흘러 적실 때

기름진 푸른 벌판이 눈 앞에 활짝 트인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 새하늘 새땅아
길이 꺼지지 않는 인류의 횃불되어 타거라

—–
96년에,
처음 KOSTA/USA 집회에 참석하여 이 찬송을 부르며 눈물을 펑펑 쏟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어두운 시대, 소망을 잃어버린 시대 속에서,
나는 오늘 저녁에 만나게될 이들을 통해 소망을 본다.

벅찬 감격으로, 하나님께 감사한다.

고난에 관하여 (final)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너무나 당연하게 교회에서 이야기하는 이 문장이,
초등학생이 가볍게 이야기해면 그저 ‘예쁜 이야기’에 그치지만,

깊은 고난을 통해 귀한 열매를 맺은 사람이 이야기하면 그 말 자체에 엄청난 은혜가 실리게 되는 듯 하다.

고난에 관하여 알지 못하는 내가,
감히 고난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것이 다소 부끄러운일이 될수 있겠으나,
하나님의 선하심에 기대어, 내 사랑하는 이의 고난을 보며….
그와 내 자신에게 혹시 도움이 될까 싶어 이렇게 한번 정리해 본다.

앞으로 몇년후에 이 글들을 다시 읽으며…
그때 내가 이해했던 것이 그렇게 천박한 수준밖에 되지 않았구나…
하며 얼굴을 붉히게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