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exciting!

회사 일이 많이 바쁘다.
아침 5시 45분쯤에 일어나서, 12시쯤 잠자리에 들기까지, 그야말로 틈만나면 회사일을 한다. ^^

아침 출근 전에도 이메일로 일 할 것들을 처리하고,
회사에서 보통 2-3개씩의 일을 multi-tasking을 한다.
늘 사람들과 이야기나누어야 하는 일들이 있고, 해야하는 전화, 해야하는 실험, 정리해야 하는 data, 세워야 하는 전략 등등이 늘 정신 없다.
가능하면 회사에서 늦게까지 있지 않으려고 노력을 하긴 하지만, 여건이 허락하면 밤에도 일을 하곤 한다.
혹시 집에 오더라도, 여기저기 전화하고, 밤에 conference call을 하고, 이메일쓰고, presentation material을 만들거나 하는 일도 한다. 

뭐, 나만 회사일을 하면서 바쁘게 사는 건 아니고, 나보다 훨씬 더 바쁜 상황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으므로, 불평하거나 잘난척할 일은 아니다.

최근 며칠은, 회사에서 늘 눈에 걸리던(?) 몇 사람들과 팽팽한 긴장관계가 유지되었다. 주로 그 사람들은, 자기를 높이기위해 다른 사람의 credit을 깎아 먹거나, 다른 사람의 업적을 낮추어 평가하거나, 혹은 이기적으로 다른이에게 피해를 주면서 자기의 영역을 확보하려고 하는 사람들이다.
나는 오지랖이 넓은 관계로, 그런 사람들과 ‘화평’을 이루지 못하고, 찾아가서 그런 사람들과 부딪히곤 한다.

어제 저녁에는,
아니…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보자고 이렇게…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그냥 소위 ‘의무 방어’만 하고, 회사에서도 자꾸 일 만들지 말고 그냥 시키는 것만 하고,
괜히 회사에서 입바른 소리하거나 하다가 ‘모난 돌이 정 맞는’ 것 하지 않으면 더 편하겠다… 뭐 그런 생각.

그러나 곧이어 한편으로는,
그래도 이렇게 내가 믿고있는 가치와 신념에 따라,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사랑하는 ‘그분’의 뜻에 따라…
이렇게 열심히 뛰며 고생하며 고민할 수 있는 환경 자체가 얼마나 감사한 것인가 하는 것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적어도 나는,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있고, 부족하지만 그것을 위해서 회사에서도 좌충우돌하며 사람들과 때로는 부딪히기도 하고, 얼굴이 빨개져라 목청을 높여 언쟁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지친 사람을 부축해서 함께 가기도 하고 있지 않은가.

이건 분명히, 누구에게나, 그리고 아무때나 주어지는 특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런 일로 골치아프고, 힘들고, 마음상하고, 그렇지만 그안에서 보람을 찾는 일들은… 정말 Exciting한 일이다! 

Love Wins

금년 늦봄 즈음이었던 것 같은데,
Rob Bell이 쓴 Love Wins 라는 책에 순식간에 많은 주목을 받았다.
지금은 꽤 많은 교인수를 가진 교회를 개척한 젊은 목사이면서, 젊은이들 사이에 인기가 높은 유명 강사였으나,
나는 이 사람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한번에 받게될줄은 몰랐다.

내가 보스턴에서 다니던 교회의 목사님이 최근 설교를 하나 하면서, Rob Bell의 이 책에 관해서 언급을 했다. 재미읽게 읽었다고 이야기를 하면서도, 관점이 왔다갔다 해서 Rob Bell이 정확하게 뭘 말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는 평가를 내리는 것을 들었다. 그리고 Rob Bell의 관점에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이 있었다는 것도 덧붙이고.

최근, 아빠가 되어서 정신을 못차리면서, 유난을 떠는 놈이 하나 있다. (내가 공개적으로 ‘놈’으로 부르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 아닐까 싶다. 그도 그럴 것이, 그놈이 지금 지 아들만할때부터 내가 그렇게 귀여워 해줬었는데… ㅎㅎ)
그러던 와중에 얘기 이 책을 읽었다고 자신의 블로그에 썼다.
마침 audible account에 free credit 하나가 남아 있던 차여서, Rob Bell의 Love Wins를 다운로드 받아서 이틀만에 해치워버렸다. Rob Bell이 직접 읽었다.

이 책을 ‘읽고’ (엄격하게 말하면 듣고) 느낀 내 감상 몇가지는 다음과 같다.

1.
참 책을 잘 썼다! 정말 재미있었다. 설득력있게 쓰기도 했고. 그러면서도 논리적으로 성경을 잘 해석하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았고,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자신의 경험, 성경 해석의 관점, 성경 구절, 신학적 전통 등등을 효과적으로 잘 활용했다고 생각했다.

2.
만일 이 책을 읽고 Rob Bell이 지옥이 없다고 얘기한다고 느꼈다면, 그 사람은 좀 더 공부를 해야하는 사람인 것 같다. ^^
정말 Rob Bell이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들어보면, Rob Bell의 주장은, 여러 관점을 폭넓게 소개하면서 다른 관점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임을 항변할 뿐이다.
실제로, 한참 이 책이 문제가 되고 있을때, Rob Bell이 섬기는 교회의 podcast를 통해서 그의 설교를 들어보았다. 한 설교의 처음은 이런 식으로 시작되었다.
“제 이름은 Rob Bell 입니다. 저는 크리스천입니다. 저는 천국을 믿습니다 저는 지옥을 믿습니다. 저는 하나님도 믿고, 삼위일체도 믿고, 성경의 신적기원도 믿습니다. 예수의 십자가도 믿고, 심판도 믿고, 죄가 있음도 믿습니다. 사탄의 존재도 믿고 영생도 믿습니다. 그리고, 어떤 책을 비판하려면 최소한 그 책을 먼저 읽어보기라도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정확한 wording은 기억나지 않지만 대충 이런 식이었다. Rob Bell의 설교를 들어본 사람은 알지만, 그는 말이 무척 빠르다. 따다다다~)

3.
정말 Rob Bell이 왜 이런 책을 썼고, 이런 주장들을 펴는지 하는 것을 정말 더 깊이 이해하려면, 이 책에 나온 ‘예화들’을 잘 들여다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Mars Hill 이라는 교회에서 Rob Bell이 했던 설교들을 좀 들어보고, 특히 그 설교 중간중간에 드는 예, 설교 전후 혹은 설교 중간에 교인중에 한 사람이 하는 간증 등을 들어보면 참 도움이 된다.
정말 죄 때문에 심하게 망가져버린 사람들을 만나고 접하면서, 죄가 얼마나 사람을 무지막지하게 망가뜨리는지 하는 것을 가슴아프게 보았던 것 같다. 그리고 예수의 사랑으로 그런 사람들이 ‘구원’을 받아 새로운 삶을 살게되는 것을 반복해서 목도했던 것 같다.
그래서, 정말 저렇게까지 망가지는 저런 것이 바로 ‘지옥’이구나 하는 관찰을 했고, 그것으로부터 나와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새 생명을 얻는 것이 정말 ‘영생’이구나 하는 것을 보게된 것 같다.

4,
어떤 의미에서, 지옥을 죽어서 가는 영원한 심판의 장소로만 이해하는 사람들은, 지금 이 땅에서 죄의 consequence가 얼마나 집요하면서도 무섭게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가 하는 것을 무시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차라리, 죽어서 가는 영원한 장소로서의 지옥이 아니라, 지금 이땅에서 죄의 consequence로 그야말로 소망을 잃어버린채 살고 있는 그 모습 자체가 지옥임을 보는 눈을 뜨는 것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마치, 죽은 후에 가는 ‘천국’과 이땅에 이미 임한 ‘하나님 나라’를 통합해내어야 균형잡힌 온전한 신앙을 갖을 수 있는 것 처럼, 죽은 후에 경험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지옥’과 ‘이 땅에서 죄의 결과로 고통받는 아픔’을 통합해내는 것이 필요하지는 않을까.


한가지 아쉬운 것은, 맨 마지막 chapter와 그 앞의 chapter들과의 연관성이 충분하지 못했다고 보여진다는 것이다. 거의 universalism에 가까운 이야기들을 많이 풀어놓고 나서는, 예수를 받아들이고 따르는 삶의 urgency를 이야기하는 것이 별로 convincing 하지 않았다.

흠….
오진이에게도 나가사끼 짬뽕을 사서 보내줘야 하나… ^^
 

한국어, 영어

내 일상 생활에서, 
영어와 한국어를 쓰는  비율이 얼마나 될까.

듣는 것은, 대략 영어:한국어=80:20 정도 되고, 
말하는 것은, 대략 영어:한국어=70:30 정도 되지 않을까 싶다.

나는,
전반적으로 생각과 언어가 함께 묶여서 매우 compartmentalized되어 있는 것 같다.

다시 말하면, 영어로 말하는 영역에서는 생각도 영어로만 하고,
한국어로 말하는 영역에서는 생각도 한국어로만 하는 것 같다.

어제도… 밤 늦게까지,
우리 회사 일로, 한국의 co-work하는 사람들과 conference call을 했는데,
중간에 이야기가 잘 되지 않으면, 내가 중간에서 통역 비슷한 것을 하는 역할도 했었다.
한-영, 영-한 통역을 둘 다 해야하는 상황인 셈인데…
대부분 회사의 일들은, 내가 영어로 생각을 해온 영역이기 때문에, 한국으로 생각을 바꾸어놓아본 일이 별로 없었는데…

한국어로 듣고 영어로 이야기할 때에는, 
영어로 표현해내는 기술이 딸려서 힘든 반면, (단어선택, 문법 등)

영어로 듣고 한국어로 이야기할 때에는,
생각이 영어로 되어 있어서, 그 생각의 실타래를 풀어 한국어로 번역한 후에 전달해야 하기 때문에 더 힘든 것 같다. (상대적으로 단어나 문법등은 이게 더 쉽다.)

미국에 온지 16년,
이래저래…
한국어도, 영어도… 다 잘 안되는… 난감한 상황에 놓여 있는 것 같다…

Deep Church

아직 마지막 한 chapter가 남긴 했지만,
안상현 간사님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Deep Church 라는 책을 이제 거의 다 끝냈다.

내가 지난 1년여동안 읽은 책들 중에서,
내가 가장 큰 도움을 얻은 책이 아닐까 싶다.

내가 가장 큰 도움을 얻은 부분은, 단편적으로 알고 있었던 Emerging church에 대하여 아주 잘 정리된 view를 접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무엇이 emerging church의 주장들이고, 무엇이 전통 교회의 그에 대한 반론인지 하는 것을, 여러 전문가와 관계자들과의 대화, 그들의 책들을 열거하며 잘 설명해 놓았다. (물론 Jim Belcher 자신의 교회이야기도 꽤 유익했다.)

정말 emerging church가 이렇게 significant한 mass/force로 여겨질만큼 컸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다소 놀랐고, 한편으로는, 한국 복음주의의 환경에서도, 이런 emerging church가 전통교회의 ‘대화상대’가 될 수 있을만큼 좀 크면 좋겠다… 싶은 부러운 마음도 있었다.

내가 참 기뻤던 것은,
저자가 이야기하고 있는 전통 교회로부터 느끼는 답답함과 emerging church로부터 느끼는 불안함(?)에 내게 크게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해법으로 제시하고 있는 ‘Deep Church’라는 개념도 참 좋았다.
책을 쭈욱 훑어가면서, 
“그래, 바로 그거야”, “그러게, 내 말이 바로 그거라니까” 등등의 감탄을 연발했다.

Emerging church 계열의 idea에 열광하는 사람들, (N.T.Wright이나 Brian McLaren 등등의 추종자들 같은…)
혹은 전통교회의 defense에 목을 매는 사람들 (대부분의 한국교회 모범생들^^, Don Carson이나 John Piper 등등의 추종자들 같은…)
혹은 양쪽의 주장에 조금씩 동의를 하면서도 한쪽에 몰빵하기는 좀 애매하다고 느끼는 (나같은^^) 사람들…
모두에게 추천할 만한 책이다!

적어도, Ohseung’s book of the year award는 아마 이 “Deep Church”에 돌아갈 것 같다. ^^

New iPhone

iPhone 4S가 나오는 바람에, iPhone 4가 확~ 싸졌다.
민우가 iPhone을 갖고 싶다고 하기도 했고,  우리 부부가 쓰던 iPhone이 낡아서 upgrade가 필요해지기도 했다.

그래서, white iPhone 4, 똑같이 생긴거 3개를 주문하면서 carrier도 verizon으로 바꾸었는데,
우아… 정말 여러가지로 확~ 좋아졌다. ^^

민우와 함께 facetime 같은 것을 할 수 있는 것도 좋고,
우리 세 가족이 서로 위치를 물어보고 확인할 수 있는 것도 좋고,
뛰면서 track하는 GPS position도 훨씬 더 정확하고… 

새 모델이 나왔을 때, 바로 그 전 모델로 upgrade하는 방법은, 
강력히 추천할 만 하다!! ^^ 

상위개념, 하위개념

아래 글은,
최근… ‘친북좌파척결’의 극우 정치운동을 열심히 하면서, 그것을 신앙으로 여기고 있는, 내가 아끼는 한 친구와 나눈 이메일 대화중 일부를 옮긴 것이다.
신앙이 정치성에 종속되지 말아야 할 것에대한 내 논증인데… 아마 내 이런 논증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많이 있을 듯. ^^ 
(반론, comment 환영합니다. ㅎㅎ)

=====

정치적 신념은, 그 당시 처한 상황 속에서 무엇이 최상의 솔루션을 제공하는가 하는 것에 대한 분석에 근거하는 경우가 많지.

가령, 너도 네 이메일에서 썼지만, 어떤 사람은 북한의 위협이 우리의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은 경제정의가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하잖아. 또, 북한의 주민들을 어떻게 하면 그 폭압과 부조리에서 해방시켜낼 수 있을까 하는 접근에 대해서도, 북한을 점진적 개방으로 이끌어야한다는 입장으로부터 북한을 강하게 몰아서 붕괴에 이르게해야한다는 입장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지.
이런 상황에서 어떤 결정을 하느냐… 하는 것은, 어떻게보면 100% 충분한 과학적 data를 바탕으로 결정하기 어렵다고 할 수 있어. 왜냐하면 미래에 대한 모든 information을 우리가 다 알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A 라는 결정을 하면 A’ 이라는 결과가 나온다고 100% 확신을 가지고 이야기할 수 없기 때문이지. 물론 어떤 입장을 견지할 때에는, 그 입장이 충분히 내적 통일성 (integrity)를 갖는지, 가능한 많은 data를 바탕으로 한 것인지 등등을 evaluate 해봐야 하겠지.
이러한 불확실성 때문에, 그리고 현실과 그것에 대한 해결책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이 존재하기 때문에… 정치적 신념을 이야기할때에는, 자신과 다른 정치적 신념을 가진 사람에 대해 관용을 갖고, 서로 대화를 통해서 풀어나가는 작업이 중요할 수 있지. 물론 그것이 어려울 때도 많지만.
일반적으로, 이러한 대화를 거부하는 그룹을 극우 혹은 극좌라고 이야기하는 거지.
그런데 신앙은, 그것보다 더 상위의 개념이야. 정치적으로 진보적이던 보수적이건 간에, 같은 신앙을 가질 수 있지. 신앙은 세상과 자신을 바라보는 가장 기본적인 가치이기 이잖아. (이 argument에 동의하지 않는 신앙인도 물론 있을 수 있지. 그렇지만 너같이 보수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면 내가 이야기하는 이 notion에 동의하리라 생각해.)
그런데, 정치적 신념을 신앙과 연결시키게되면, 하위의 개념과 상위의 개념을 연결시키는 과정에서 상위 개념의 범위가 축소되는 결과를 낳게 되지.
가령 예를 들면, 일반적인 인과론(논리 체계)과 논리 라는 상위의 개념이 있고, 그 인과론과 이성을 바탕으로 인간이 세상을 기술하는 방법으로 뉴튼 역학을 발견해 내었지? 뉴튼 역학은, 매우 powerful한 것이지만, 그것이 인과론과 이성이라는 a priori concept을 대체하는 것은 아니잖아. 만일 여기서 뉴튼 역학을 거부하는 것은 인과론을 거부하는 것이다 (상위 개념과 하위 개념을 바로 동일시 하는 거지) 라고 이야기하면, 그 순간 인과론의 범위가 뉴튼 역학이라는 하위 개념으로 좁아져 버리게 되지. 그래서, 가령, 뉴튼역학으로 설명이 되지 않지만 인과론이라는 더 큰 개념 안에서 설명이 되는 상대성 이론 같은 것을 받아들일 수 없게 되는 거고. 
신앙과 정치적 신념도 비슷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것 같아.
극우(좌)파의 사상 = 기독교 신앙 이라는 등식을 성립해버리면, 극우(좌)파의 사상을 통해서 기독교 신앙이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극우(좌)파의 사상의 수준으로 기독교 신앙이 강등되게 되어 버리지.
역사적으로도,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정치적 신념과 신앙을 동일시 했을때마다, 교회는 힘을 잃어버렸고, 복음의 영광이 가리워졌어. 
로마의 콘스탄틴 대제때 그랬고, 중세교회가 그랬고, 국교화되었던 개신교회들이 그랬고, 히틀러를 지지했던 독일교회나… 그리고 나는 지금의 한국 교회에서도 그런 것을 보면서 많이 우려하고 있어. 그리고… 네 이메일을 읽으면서도 그런 불편한 마음이 있었던 것이고.

 

민우의 생일

오늘로서, 민우가 teenager가 된다!! 

 
위의 사진은, 민우가 생후 몇개월 지났을때의 사진.

지난 13년동안, 하나님께서 정말 민우를 예쁘게 잘 키워 주셨다.
민우 때문에 마음을 졸인 날도 많았고, 참 말로 다 할수 없이 기쁜날도 많았지만,
민우때문에 가장 기뻤던 날은, 뭐니뭐니해도, 민우가 처음 세상에 태어난 날이었던 것 같다. 

아직 20대의 철없던 때에, 아빠가 되어서, 그야말로 민우는 아빠와 함께 커 주었다. ^^

민우가 이제 teenager가 되었으므로,
민우를 키우는 데에도 또 다른 stage로 move-on 해야하는 것이겠지.

민우의 어떤 성취나 행동이 아니라, 민우의 존재로 기뻐하고 감사하는 부모가 되는 일,
민우에게 일방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으로부터 점점 탈피해서 민우와 대화하고 상의하는 부모가 되는 일,
민우에게 지금까지보다 더 많은 선택의 영역을 허락하고 자율권을 허락해가면서, 이제는 점점 우리로부터 독립을 시켜가는 일,
민우가 내 소유가 아니라, 독립적인 인격체임을 인정하고, 내가 원하는대로 키우는 것이 아니라, 민우가 그 가진 재능과 열정과 관심을 잘 활용하도록 guide해주고 인도해주는 일.

등등을 점점 더 배워나가야 할 것 같다.

Teenager의 부모가 되었다! It’s exciti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