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주 쉬는 동안

자그마치 두주동안이나 블로그 글을 쓰지 않으면서,

정말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두주 후면 많은 복잡한 생각들이 더 많이 정리되어 잘 정돈된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기대 했었습니다

그런데 생각은 더 많아지고, 고민은 더 깊어지고…

게다가 이사까지 하는 바람에 정리된 글 쓰기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지경입니다. 

그렇지만, 다시 글쓰기 시동을 걸어야 할 것 같아 새 집에 인터넷이 개통되자마자 이렇게 한자락 올려 봅니다. 

글 투를 바꾸어서 글을 써 볼까 생각중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렇게 한번 올려봅니다. 

이사 때문에 온 삭신이 쑤십니다. 🙂

이번 한주, 블로그 더 쉽니다.

지난주,

KOSTA 집회가 잘 끝났다고 들었습니다.

14년만에 결석을 하면서, 내내 마음은 테일러와 휘튼에 가 있었습니다.

한편 함께 가 있지 못한 것이 대단히 고통스러웠지만,

이렇게 인도해주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조금더 생각을 가다듬고, 기도를 하기위해,

이번 한주 블로그를 더 쉽니다.

이렇게 오래 블로그를 쉰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다음주 월요일에 다시 허접한 글들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

한주, 혹은 두주 동안 블로그를 쉽니다.

다음 한주,

KOSTA 집회를 두고 기도에 집중하기 위해, 

블로그를 쉽니다.

(그리고 그 다음주까지도 쉬게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함께하지 못하지만,

2000마일 떨어진 곳에서,

마음을 쏟아, 눈물을 쏟아, 무릎꿇어 기도하고자 합니다.

특히,

사랑하고 존경하는 동지들에게 정말 죄송합니다.

한주동안 여러분의 땀과 눈물에 젖은 조끼가 정말 많이 생각날겁니다.

14년만에 처음으로…

96년에 처음,

나는 KOSTA 집회에 참석했었다.

하루종일 하도 울고, 울고, 또 울었다.

기뻐서 울고, 감사해서 울고, 안타까워서 울고, 답답해서 울고, 서러워서 울고, 소망에 감격해서 울었다.

그후 99년, 지도교수가 여름에 short-course를 하면서 나를 ‘조교’로 쓰고 싶다고 해서,

나는 집회에 참석하지 못했다.

그후 작년까지,

매년 나는 7월 첫째주를 시카고 혹은 인디애나에서 보냈다.

금년에…

14년만에 처음으로,

이 집회에 참석하지 못하게 되었다.

내 마음의 상태로는, 어쩌면…

주님의 은혜를 깊이 더 경험하고 싶은 목마름이 간절한데…

그게 허락되지 않았다.

다음 한주,

시카고와 테일러에서는 또 한번의 잔치가 열린다.

내일 부터는,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빨간조끼들이 많이 고생하기 위해 집회 장소에 모여들것이다.

다음 한주,

나는 이곳에서 동쪽 하늘을 바라보며…

많이 울게 될 것 같다.

하나님께서,

그곳에 모인 소중한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을 꼭 만나주시길 기도한다.

이걸 보면서, 또 울었다.

이걸 보면서,

또 다시 울었다.

아… 아직도 어디선가는 복음이 이렇게 forcefully advancing하고 있는 거구나.

그렇지만 여전히 떨치지 못하는 고민은 이것이다.

19-20세기의 context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복음은 relavant하고 powerful 했지만,

21세기의 context에서 복음은 그렇지 않아 보인다는 것이다.

이제 며칠 앞으로 다가온 코스타 집회를 위해 마음을 쏟아 기도한다.

이걸 보면서, 많이 울었다…

이걸 보면서…혼자 많이 울었다.

한때는 한국에서 복음이 이렇게 영광스럽게 드러난적도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시대가 간걸까.

가난, 독재, 분단 등등의 아픔을 가진 사람들에게,

복음이 소망을 주는 시대가 있었는데…

21세기 자본주의체제의 부속품으로 전락해버린 이들에게,

복음은 무슨 소망을 주고 있는 걸까.

아버지 팔순

지난 주말,

한국에서는 아버지의 팔순 축하 event가 있었다.

한국에 있는 두 동생/가족이 아주 멋지게 event를 치루어내었다.

아버지의 팔순 생신을 가까이에서 축하하지 못하는 것이 못내 속이 쓰리고 마음이 아파서…

주말에 많이 마음이 무거웠다.

아버지의 생신은 7월 4일이다. 그래서 지난 20년 가까이, K 운동을 섬기면서 아버지 생신을 제대로 축하해드리지 못했었다.

술을 잘 못하시는데,

아마 앞에 놓은 와인을 반잔 정도 드시고는 얼굴이 붉게 되신 것 같다.

딸, 아들 부부, 손자가 생신을 축하하는게 많이 기쁘셨겠지.


동생들이 수고가 많았다.


내가 집을 떠난 것은,

고등학교를 들어가면서 였으니까,

벌써 30년 가까이 되었다.

그 이후 30년 가까운 시간동안,

집을 떠나 살면서, 결혼도 하고, 공부도 하고, 아이도 낳고…

이제는, 내 딸이, 내가 집을 떠나오던 시절의 내 나이만큼 컸다.

아버지께서 팔순을 맞으셨다는게, 잘 믿어지지 않는다.

아버지를 위해 더 많이 기도하게 된다. 아버지가 보고싶다…

난감한…

내가 이전 직장에 있을때,

아… 저런 사람하고 함께 일하면 정말 피곤하겠구나…. 하고 매일 생각했던 사람이 있었다.

다행히도 함께 일할 기회가 없어, 그 사람과 부딪히지 않고 지낼 수 있었다.

그런데, 최근 그 사람이 회사에서 lay-off를 당했다.

음… 뭐 이해가 안되는 건 아니다. 그 사람과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없으니까…

그런데,

그 사람이 요즘 계속 내 linked-in을 통해서,

내 network에 있는 누구를 소개시켜달라, 누구를 소개시켜달라는 식으로 요청을 한다.

그렇게 내 network에 있는 사람과 연결을 해서 그를 통해 job을 얻어보려고 하는 것 같다.

벌써 몇번이나 내게 그런 부탁을 하고 있는데,

부탁이 올때마다 점점 더 표현이 간절해진다.

음… 좀 난감하긴 한데…

왜냐하면,

나는 이 사람을 ‘추천’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이 사람과 함께 일하는 것 자체가 참 고통스럽게 느껴질정도로…

참 이기적이고, 잘난체 많이하고, 정직하지 못하고…. 뭐 그런 사람인데…

그 사람을 ‘괜찮은 사람’이라고 소개하는 것은 내 양심상 도저히 할 수가 없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우리 민우랑 동갑인 그 사람의 딸이 생각난다.

그 아이도 이제 고등학교를 들어가는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래도 내가 나서서 좀 소개도 시켜주고 해야하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글쎄… 

개인의 고난? 공동체의 고난!

예전에,

‘고난받는 공동체, 거룩한 공동체’ 라는 주제로 한해동안 K 운동을 했던 적이 있었다.

2004년이었던가.

그때… 즈음이었던 것 같은데,

함께 섬기던 간사들중 몇 사람이 비슷한 어려움들을 겪는 일들을 경험했었다.

구체적으로는 언급하지 않고, 그냥 ‘직장관계’로 어려움을 겪었다고 해보자.

뭐 그냥 sensitivity를 가지지 않고 그 상황을 만나면, 어휴 다들 직장 때문에 힘들어하네… 기도하자…

이렇게 하고 지날 수 있었겠지만,

그때는,

유난히 이상하게 그렇게 공통으로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것이 깊이 마음에 박혔었다.

아니, 왜 이렇게 간사들이 같은 어려움을 다 함께 겪는 걸까…

그러다가 적어도 내가 깨닫게 된것은 이것이었다.

아… 그래… 우리가 섬기는 사람들이 지금 이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보여주고 계신 것이 아니겠는가!

간사들이 공통으로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다가… 그것을 위해 기도하다가… 그런 깨달음을 얻고, 실제 Korean Student Diaspora를 보니 정말 그게 보였다. 정말 이 사람들이 다들 그렇게 힘들어 하고 있는게… 눈이 열려 보였다.

그리고,

적어도 나에겐,

그때 그 발견은 내가 Korean Student Diaspora를 바라보는데 중요한 시각을 형성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개인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고난은 때로,

공동체로 엮어서 볼때야 비로소 해석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