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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얻는 것

이익을 얻고 사람을 잃으면 말로 다 할 수 없는 손해다.
근시안적인 편안함을 얻고 사람의 마음을 잃으면 그것은 회복하기 어렵다.

이익은 힘으로 얻을 수 있지만 사람의 마음은 힘으로 제압해서 얻을 수 없다.

힘으로 어떤 사람을 내 뜻대로 움직일때마다, 그 사람의 마음은 그만큼 내게서 멀어진다.

세상은 참 어리석다.

Overwhemled

살다보면 쏟아지는 일/상황 때문에 압도당할때가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보다 내가 해야하는 일이 많다고 느낄때,
내가 해야 하는 일이 있는데 내가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느낄때.

그럴때 그 상황을 침착하면서도 지혜롭게 대하는 것은 성숙한 사람의 특징일 것이다.

나는 참 panic을 잘 한다.
너무 쉽게 겁을 먹고, 너무 쉽게 힘들어한다.
내가 overwhelm한 상황을 해결하는 방법은 두배로 열심히해서 얼른 그 상황을 벗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겉보기에는 늘 열심히 하는 것 같아 보이는데, 사실은 그게 panic해서 허둥거리는 경우가 많다.

가까운 사람들이나 내가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화를 내기도 한다.
그건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사람들에게 화가 났다기 보다는 그 상황에 대해 화가 난 것이거나, 더 나아가서는 그 상황에 허둥거리는 나 자신에게 화가 난 것일수도 있다.

예전에는 overwhelm되었을때 그냥 숨어버리거나 잠수를 타거나 회피하는 일들을 더 많이 했었다.
지금도 그러지 않는건 아닌데, 예전보다는 조금 나아졌다.

내가 가진 신앙은,
이런 상황에서 잘 듣는 소화제처럼 뻥 뚫어주는 것 같이 작동하지 않는다.
그냥 몸의 허한곳을 보해주는 한약같이 작동하는 것 같다.
나는 압도당해서 허둥거리는데 신앙은 신속한 효과를 내게 가져다주지 않는다.

당연히 그렇다고 해서 신앙이 무용한 것은 아니다.

신앙이 무용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매우 자주,
그 효과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그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너무 긴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I’m overwhelmed.

토론의 자세

민우는 Trump 대통령을 아주 많이 싫어한다. ^^
그리고 미국 민주주의가 많이 후퇴하고 있다면서 진심으로 걱정을 많이 한다.

두어주전에,
내가 Trump 대통령이 잘한것도 있지 않느냐고 몇가지 이야기를 했다.
아주 떨떠름한 표정으로 내 이야기를 듣더니만 그럴수도 있겠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결국은 Trump가 나중에 시간이 많이 지난 후에 보면,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는 조금 좋은 평가를 받는 사람으로 남을 수 있지 않겠느냐고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민우가
“I disagree” 라고 이야기했다.

내가 그래서 아니.. 그런데 말이야… 하면서 내 이야기를 더 하려고 하니까 민우가,
“I get your point, but I disagree” 라고 이야기를 했다.

가만히 보니,
민우의 토론 자세가 내 자세보다 더 훌륭했다.

나는 내 의견을 가지고 민우를 설득하려고 했던 반면,
민우는 서로 다른 의견이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으로 그 대화의 종착점으로 삼았다.
단기간에 합의에 이룰 수 없는 것은 그렇게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거기에 머무를 수 있어야 하는 건데 말이야.

이제는 딸아이에게서 배우는 일이 가끔씩 생기고 있다. ^^

창의성과 게으름

지난 주일에 우리 교회의 소그룹 모임에서 나온 이야기.

한 형제가 시간이 조금 있다면 조금 더 창의적으로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이야기하자,
그 아내가, 자기 생각에는 시간이 조금 더 있으면 창의적이되기 보다는 게을러지는 것 같다고.
게으름이 늘 창의성을 이기더라고.
(자신의 경험으로는 그렇더라고)

여러 대화 가운데 하나 였는데,
나는 이게 참 마음에 오래 남고 있다.
나는 내가 창조적으로 살고 있지 못하다는 불만이 늘 내게 있다.
그런데 정말 가만 생각해보면 막상 토요일 오전이라든지 시간이 살짝 나면 창조적이 되기보다는 게을러지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내 두 가지 결심

  1. 바빠서 창의적이지 못하다는 핑게는 대지 말자.
  2. 조금이라도 시간이 나면 게을러지지 말고 창조적이 되어보자

상상과 희망

내가 오른쪽 손가락 힘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세다고 해보자.
다른건 완전 별로인데, 딱 손가락 힘만 좋다. 힘도 좋고, 그 힘 조절도 잘한다.
게다가 나는 다른 사람들의 손가락 운동신경에 대해서 유난히 잘 볼 수 있는 안목도 있다고 하자.

나와 같은 팀에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 사람들은 나보다 똑똑하고, 키도 크고, 잘생겼고, 팔 다리 힘도 세고, 달리기도 잘하고.. 하여간 짱이다.
그런데, 딱 하나 손가락 힘은 나만 못하다.

그런데, 옆팀에서 우리 팀에게 바둑 알까기 내기를 하자고 내기를 걸어왔다.
나는 내가 손가락에 관한한 자신이 있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이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지 훤히 패가 보인다.
그냥 내가 하면 되는거다.

그런데,
나와 같은 팀에 있는 사람들은 그걸 보지 못한다.
왜냐하면 손가락 운동신경에 대해 이 사람들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내가 상상하는 바둑판 알까기의 화려한 세계를 상상해내지 못한다.

아…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이 상상을 이 사람들에게 전달만 해 줄 수 있다면…

나는 때로 회사에서 그런 답답함을 느낄때가 있다.
그런데, 훨씬 더 자주,
나는 교회에서, 기독교 모임에서 그런 답답함을 느낀다.
내가 보기엔 되는데, 나는 그게 보이는데, 사람들이 안된다고 하는 거다.

상상이 부족해서 희망을 갖지 못하는 거다.

다른 사람들도 나를 보면서 그렇게 또 답답할까?
나도 다른 누군가의 상상을 볼 수 없기 때문에 희망을 보지 못하고 있는건 아닐까?

진짜 공부가 재밌다!

갑자기 바람이 불어서,
전자과 학부과목중 몇개를 공부해보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밤마다 인터넷에 나와 있는 강의를 하나씩 듣고 있다.
MIT는 open courseware라고 해서 웬만한 강의들은 강의 video도 다 올라와 있고, 숙제, 강의 노트, 시험문제 등등도 다 올라와 있다.

허억.
이게 재미있다!

듣다보니,
아… 진작 이런거 있었으면 내가 이런거 공부도 더 해서 훨씬 더 유식해졌을텐데… 싶다.

지난 이틀동안,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하면서 산다고 뭐라고 썼는데,
밤에 이렇게 공부하면서 재미를 느낄 수 있으니…
내가 영 적성에 맞지 않는 것만하면서 사는건 아닌것 같다.

아, 시간이 조금 더 있다면 진짜 더 열심히 재밌게 공부해볼 수 있을 텐데.

적성에 맞지 않는 일 (2)

이건 뭐 길게 쓸 생각이 없었는데 하나 더 쓸게 생겨서…

나는 기독교 미니스트리에 있어서도 정말 내가 잘 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지는 않는다.
나는 그냥 내가 해야하는 일, 내게 주어진 일을 하면서 사는 것 같다.

교회에서 성가대가 부족하면 성가대 하고,
성경공부 인도자가 없으면 성경공부 인도자를 하고,
주일학교 선생님이 없으면 주일 학교 선생님을 하고,
설교할 사람이 없으면 설교를 하고…

뭐 그냥 그거 주어지면 나름대로 그거 열심히 하려고 꽤 많이 노력을 하니까,
사람들은 내가 그거 좋아하고 잘하는줄 알고 그냥 그걸 자꾸 시킨다.

20대까지는 그게 좀 불만이었는데,
30대 들어서면서부터는 에이… 뭐 내가 꼭 하고 싶은걸 해야 하나. 그냥 내가 뭐가 되었던 도움이 조금이라도 된다면 그럼 되는 거지 싶어서 진짜 아무거나 하게 되었다.

에이, 뭐 그런거지 뭐.
뭐가 되었건 누군가에게 쪼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걸로 된거지…

적성에 맞지 않는 일

중학교때 수학을 뭐 꽤 잘 했다는 이유로 나는 이과를 선택했다.
그러나 고등학교때 나는 내게 수학에 재능이 없다는걸 알았다.

대학때 예수님을 믿고나서 철학적 고민들을 많이 하게 되었고, 그러면서 나는 내게는 이과적 재능보다는 문과적 재능이 더 많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대학원때 실험을 하면서, 나는 몸을 부지런히 움직여서 실험을 하는 것이 내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는 그래도 어느정도 직장 내의 여러 일 가운데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서 했으므로 그럭저럭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하면서 사는 것에 대해 큰 불편이 없었는데…

요즘은 회사에서 hard core engineer라기 보다는 그냥 program을 manage하는 일을 하다보니,
아…이건 또 역시 적성에 안 맞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

그래도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하면서 나름대로 학교도 열심히 다니고, 박사까지 마치고, 그걸로 밥벌이도 하고, 아이도 키우고 그렇게 하고 살았으니…
이젠 그러려니 하면서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하는 것을 그냥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살아가고 있는 듯 하다.

어떤 사람들은 내게, 아니, 그렇게 적성에도 안 맞는다고 하면서 나름대로 좋은 학교 다니고, 좋은 직장 다녔지 않았느냐고 하는데…
그건 내게도 좀 미스테리이기도 하다.
그냥 내가 적성에 맞지 않는 상황에서 적응해내는 방법은, 그저 ‘열심히 하기’였던 것 같다.
그리고 내 사정을 별로 봐 주시지 않고 나를 막~ 굴리시는 우리 하나님께서 이리저리 나를 몰아가셨던 것 같다.

나는 빠릿빠릿하게 내 앞길 챙겨가며 살아가는 것을 잘 하는 사람은 확실히 아니다.
나는 그냥 주어지면 그거 열심히 배워가며 그럭저럭 해나가는 사람인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딱 적성에 맞지 않더라도 그 일을 그럭저럭 하는 것이 내 적성인지도 모르겠다.

하고 싶었던 분야의 공부도 결국 못했고,
하고 싶었던 직업도 갖지 못했고,
가고 싶었던 쪽의 직장도 가지 못했고,
50대가 되면 되고 싶었던 모습의 사람으로 내가 되지도 못했다.
그러니 앞으로도 내가 어떤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거나, 무슨 쪽의 일을 더 해보고 싶다고 하더라도 그게 내 뜻 대로 안될 것이 분명하다.^^

나중에 하나님께서 내가 그분을 뵈었을때,
너 하고 싶은거 많이 못하고 살았으니, 너 하고 싶은거 좀 하게 해줄께 라고 해주셨으면… 하고 바랐던 때가 예전에 있었으나,
점점 철이들고 나이가 들면서는, 내가 하고 싶은 것 (my desire)가 많이 정화되어 나중에는 그저 모든 것을 마음에 품고 살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는 소망이 더 커지고 있다.

적성에 맞는 일을 하는 것 보다는,
사랑을 배우며 사는 것이 더 소중하다는 생각을 참 많이 한다.

내가 바라보는 한국과 일본 technology 업계 (7)

이렇게 해서 일본 회사가 휘청하면 속이 시원할까?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렇지 않다.
나는 실제로 일본의 그런 재료회사에 있는 사람들과 만나서 밥도 먹고, 이메일도 하고, 밤 늦게까지 개인적인 이야기도 나누고 한 사람들이 꽤 있다.

일본 회사가, 일본 경제가 휘청해진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나는 당장 그 사람들이 떠오른다.
밤 늦게까지 함께 일하고 근처 라면집에서 라면 먹으면서 함께 자녀교육 이야기, 회사에서 스트레스 받는 이야기, 출퇴근하면서 고생하는 이야기를 나누었던 테라타니상이나 타카히로로상, 토모노상 같은 사람들의 얼굴이 당장 떠오른다.

일본 재료업체들이나 부품업체들에 가보면, 한국말을 잘 하는 일본 사람들을 만날때가 많다. 한국에 3년, 5년씩 살면서 sales를 했다는 사람들이다.
나는 당장 그런 일본에 있는 ‘한국통’들의 job이 힘들어지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든다.

뭐 나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한국과 일본의 일들에 대해 어떤 깊은 통찰을 가질만한 식견이 있지는 않지만,
적어도 내가 가지고 있는 좁은 경험으로 보면,
이번에 일본 정부가 벌이는 일은, 많이 이해가 안된다.
한국은 그래도 괜찮을 것 같다.
일본에 있는 내가 아는 사람들이 걱정된다.

뭐 이정도로 정리될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 좀 싸우지 말고 잘 지냈으면 좋겠다…

내가 바라보는 한국과 일본 technology 업계 (6)

가령 한국의 삼성에서 플렉시블 스마트폰 갤럭시 폴드를 만드는데, 거기에 일본 Sumitomo의 폴리이미드 필름이 들어간다고 하자. (그런 것으로 알고 있다.^^)

여기에서는 누가 ‘갑’이 될까?

그건 시나리오에 따라 다르다.

삼성에서 요구하는 폴리이미드를 만드는 회사가 일본의 Sumitomo말고 다른데가 없다면 Sumitomo가 힘을 갖게 된다.
반면, Sumitomo가 만드는 폴리이미드의 대부분을 삼성이 소비하고, 삼성은 Sumitomo 말고도 다른 option이 있다면 이때는 삼성이 갑이다.

지금 일본이 이깃장을 놓고 있는 재료들은 그렇다면 이중 어디에 해당할까?

나는 직접 그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어서 확실히 알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내가 이해하는 바로는 이게 한국의 숨통을 조여서 확 산업이 죽어버리게 할정도는 아니라고 본다.

가령, 내가 얼마전에 이쪽 실리콘 밸리에 있는 엔지니어와 이야기를 하면서, 삼성 Galaxy fold의 겉면의 플라스틱 필름이 어느회사것인지 궁금해서 물어본적이 있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이 Sumitomo것을 쓴 것같다고 이야기를 해주었다.
나는 왜 하필 Sumitomo냐고 물었더니 삼성이 한국 회사와 일하면서 그걸 해보려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실제로 한국 회사로부터도 꽤 괜찮은 물건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한국 회사가 계속 그렇게 안정적으로 물건을 잘 생산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삼성에게 없어서 결국 일본 회사를 선택했다고…

대개 재료선택이 그런식이 많다.
이 회사도 있고, 저 회사도 있는데…
어떤 회사를 선택할때 기준이 결국은 stable한 supply가 되느냐 하는 것이.

그런데….
재료회사의 공급이 stable하지 않다고 여겨지면 삼성은 어떻게 해야할까?
당연히 공급처를 바꾸는 거지.

나는 그런 의미에서 일본이 이렇게 한게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니 왜 이런 자해행위를 하는 걸까?
이거 잘못하면 일본 회사들 휘청하게 만들수 있는 아주 위험한 도박인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