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요한복음을 공부해야 할 듯

이번학기 누가복음 마지막 부분을 공부하고 있다.
참여하는 사람들은 힘들어하는 것 같긴 한데, 나름대로 꽤 많이 공부하고 준비해서 하고 있다.
역사적인 예수와 신앙의 예수와의 간극이랄까 그런걸 나름대로 많이 느끼고 있다.

나도 공부하면서 새롭게 보게된 것들도 있고 더 깊게 생각하게 된 것들도 많이 있어 도움이 되었지만,
반면… 내가 정말 이 역사적 예수와 내 신앙의 예수를 제대로 integrate하고 있는걸까 하는 반성을 많이 하게되기도 했다.

그러던중 최근 요한복음을 쭉 읽었는데,
허어.. 이거 참 매우 새롭다.

내게 요한복음은…
20대 일때 내가 참 좋아했던 책이었고,
30대 일때 내 삶의 지침이 되어주었던 책이었는데,
40대가 되면서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ㅠㅠ
공부를 하면 할수록 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내겐, 요한복음의 예수님이 한편 많이 필요한 것 같다.
다시 요한복음을 공부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Build

내가 일하는 분야에서는 개발하고 있는 제품을 만드는 일을 ‘build’라고 표현하곤 한다.

10월, 11월, 12월, 1월 내내 그런 build 들이 계속되고 있다.
그래서 부지런히 비행기도 타고, video call도 하고,
시간대가 다른 쪽과 일을 맞추기 위해서 새벽에 일어나서 일을 하기도 한다.

나 뿐 아니라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해야한다고 설득해서,
다른 사람들도 고생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우리쪽에 중요한 부품을 만들어서 보내주어야 하는 회사가 일을 망치는 바람에 완전 난리가 났었다.
지난 금요일까지 받아야 하는 것인데 이 사람들이 금요일 아침에 되어서야 다음주까지 보내준다고 이야기를 해 온 것이다.

완전 난리가 났다.

하루종일 이메일 하고, 전화하고, 회의하고, 목청 높이고, 열받고…

그날 내 slack은 불이 났고, 정말 여러 message를 한 100개쯤은 주고 받은 것 같다.

월급받으며 일하는거 참 쉽지 않다.
그리고, 그런 속에서 마음의 평정을 잃지 않는 것은 더욱 쉽지 않다.

기도할때 드러나는 추악함

나름대로 계속 여러 부담을 안고 기도를 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아침에 시간이 되면 근처 한인 교회 새벽기도에 가기도 하고,
시간이 안되면 약간 일찍 회사에 가서, 회사 conference room 하나에 들어가서 한 20~30분 정도 기도를 하곤 한다.

기도의 부담이 있어서 계속 기도를 하는데…
그렇게 기도를 하면 자꾸만 내 추악한 모습들만 자꾸만 보여진다.

예전에도 기도를 할때 그런 경험들이 있었다.

내가 개인적으로 많이 어려웠을때,
그 문제를 좀 해결해달라고 정말 열심히 기도를 하고 싶었는데,
그렇게 기도를 하려고 막상 하다보면…
한 5분쯤 지나면 내 기도의 방향이 계속 ‘하나님 나라’라는 쪽으로 흘러가버려서 한편 당황스럽고 한편 속상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때 정말 나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할때 이 모든 것을 더해주시는 경험을 했었다.

요즘 내 기도는 꽤 치열한 싸움이다.
계속 하나님과 씨름 중이다….

애가의 기도

요즘 매일성경의 QT 본문이 애가(lamentation)이기도 한 데다,
개인적으로 여러가지 애가의 기도를 많이 하게되는 시즌을 지나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애가를 하루에 한번씩 쭉~ 읽고, 그것을 내 기도로 삼아 기도해보려고 하기도 하고,
아침에 그런 기도를 마음에 담아보려고 많이 애쓰기도 하고 있다.

한때
애가를 그래도 어느정도 이해한다고 생각했었다.
(세상에.. 그런 교만함이…. ㅠㅠ)

그런데 지금 다시 읽으면서는,
정말 하나도 모르겠다.
진짜 나는 정말 완전 무식하고, 완전 천박하다고 밖에 할 수 없다.

이해도 안되고, 공감도 못하고, 그 말씀을 그 기도를 마음에 전혀 담아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누구나 살다보면 애가의 기도를 하게되기도 한다.
문제는 그걸 나의 기도로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일텐데…. 나는 정말 멀었다.

그렇다면,
내가 기도를 감당해야하는 어떤 사람들, 어떤 것들은…
도대체 어떻게 한단 말인가.

Privilege

개인적으로 여행을 할때는 아주 약간의 돈이라도 아끼려고 노력을 한다.
그래서 공항에 가서도 웬만하면 사먹지 않고, (공항은 비싸니까)
어떻게든 비행기 안에서도 공짜로 주는 것을 더 많이 받아서 견뎌보려고 한다.
대개는 여행지에 가서도 비싼거 먹지 않고 가능하면 간단하게 적은 돈을 들여서 먹으려고 하는 편이다.

그런데,
회사 돈으로 business trip을 하면,
공항에서도 사먹고, 도착해서 저녁을 먹을 때에도 평소 같으면 잘 가지 않을 음식점에가서 먹기도 한다.
심지어 international business trip을 할때는 business class를 타기도 하니까, 그러면 더더욱 비싼 여행을 하게 된다.

보통 아시아나 유럽쪽으로 한번 출장을 가면 1인당 7,000불에서 10,000불 정도를 쓰게 되고, 미국내 출장은 보통 1인당 2,000~3,000불 정도를 쓰게 된다.

가끔은 business trip을 많이 다니다가 개인적인 여행을 하게 되면,
내가 얼마나 돈을 많이 쓰면서 출장을 다니고 있는가 하는 것을 더더욱 깨닫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렇게 일을 하는 것은 대단한 privilege이다.

Just getting along

우리 팀에는, 이스라엘에서 온 D가 있다. D는 이스라엘 군대에서 장교로 복무했고, 실제 전쟁에서 참전했었다고 했다.

또 우리 팀에는, 이란에서 온 S가 있다. S는 군 경험은 없지만, 나름대로 페르시아 문화에 대해 자부심도 있는 사람이다.

지난주,
팀에서 한 오후, 근처 공원에 다 함께 가서 점심을 먹었다.

거기서 D와 S가 함께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았다.
그 대화중에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전쟁과 긴장에 대한 이야기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 대화에 내가 계속 끼어서 있을 수는 없었지만,
두 사람은 진심으로 지금 벌어지고 있는 긴장에 대해 걱정하고 있었다.

D와 S가 함께 이야기하고 함께 밥도 먹는 것 처럼,
중동에서도 그런 일들이 좀 벌어지면 좋겠다….

‘성경적’이라는 언어의 폭력성

성경이라는 text를 해석하는데는 당연히 여러가지 관점이 있을 수 있다.
그중 어떤 관점은 전통적 기독교와는 너무 달라서 ‘이단’으로 정죄되는 것이 있지만,
(가령 예수님의 인성이나 신성과 같은 것들)
사실 그 외에 아주 많은 것들은 기독교 내에서도 다양한 의견과 견해가 존재할 수 있다.

가령 소위 ‘속죄론’만 하더라도
atonement theory라고 google search를 해보면 여러가지 이론들이 나온다.
아니, 기독교인들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속죄에 대한 교리 조차도 그렇게 다양한 견해가 있는 거다.

그런데 하물며,
그렇게 핵심이 아닌 것은 오죽 할까.

성경적 가정, 성경적 교육, 성경적 정치, 성경적 재물사용, 성경적 데이트, 성경적 인간관계, 성경적 직업관….

이런 것에 다양한 견해가 존재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이런 것들이 획일적으로 정리되지 않는다는 것은 내가 생각하기에 기독교의 큰 매력이다.

그런데 가령,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정’에 대한 한가지 아이디어를 가지고 ‘성경적 가정’이라고 정의해 버린다면,
그것과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비성경적’이 되어버리고 만다.
말하자면 ‘성경적’ 이라는 언어는 사실 거의 대부분 폭력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제발 교회에서 ‘성경적’이라는 말을 좀 남용하지 않으면 좋겠다…. ㅠㅠ

예전에 start up 을 한다고 어쩌구 저쩌구 했을때….
결국 맨 마지막에 우리는 $1M (백만불)이 없어서 하던 일을 접게 되었다.
그 $1M이 모여졌더라도 그 다음 고비가 더 있었겠지만, 어쨌든 그때 $1M이 더 있었으면 우리는 더 갈 수 있었다.

그 후 재정이 빡빡한 회사에 다녀보기도 했고,
재정이 넘쳐나는 회사에 다녀보기도 했는데…
실제로 연관되어서 일했던 어떤 회사는 한주에 평균 $5M 정도를 쓴다고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다.
허걱…

그렇게 거기는 돈이 넘쳐나고…
내가 다니는 회사도 한번 fund를 받으면 뭐 거의 billion dollars 레벨이니…
최근 실리콘 밸리의 한 회사는 총 $6.6B 의 funding을 받았다고 뉴스에 나오기도 했다. 허걱.

반면…
내가 생각하기에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어떤 일들,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참 돈이 부족하다.

내가 나름 이리저리 모아서 헌금을 하고 나면 그쪽에서 연락이 오기도 한다.
헌금 잘 받았다고.

심지어 어떤 분은 너무 과하게 감사하다고 하셔서… 아니…그렇게 얼마 안되는 작은 액수인데…. 그렇게 까지 과하게 감사할 일인가 싶어 너무 민망하고 죄송하기도 하다.

또 어떤 경우에는 그저 100불, 200불 정도 용기를 내어서 헌금을 하면,
하고 있는 일에 뭔가가 딱 완결이 된다던가 하는 일들도 만나게 되기도 한다.
아니 겨우 그 정도 돈인데.

물론 내 개인적으로도,
내가 사고 싶은 것들 몇년째 사지 못하고 있는 것들도 있고,
내가 하고 싶은것에 돈을 쓰지 못하면서 살기도 하다.

그래서 가끔은…
아… 돈이 좀 더 많았으면…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꽤 진지(?)하게…

부끄러운 좌절감?

요즘 성경공부를 주중에 세 그룹하고 있기도 하고,
지난 주말에는 뉴욕까지 가서 뭔가를 하고 와야 하기도 했다.

나는 그래도 나름 열심히 준비를 한다.
머리에서 몇번이나 시뮬레이션을 돌려가며 꼭 해야하는 말이 빠지지 않도록,
할 필요가 없는 말을 괜히 하지 않도록 정말 나름대로 노력을 한다.

그리고,
매우 높은 확률로…
내가 계획한대로 그래도 그럭저럭 잘 하곤 한다.

그러고나면,
뭐 일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없는건 아니지만,
꽤 많은 사람들은 그 내용이 좋았다, 도움이 되었다고 이야기를 해주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깊은 부끄러움과 일종의 좌절감이랄까… 그런 기분까지도 갖게 된다.

왜냐하면,
내가 이렇게 하는게 정말 그 사람들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나 하는 생각 때문이다.

내 나름대로 많이 노력을 하긴 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냥 잠깐 그때 좋아하고 마는 것 같고,
정말 내가 마음으로 전달하고 싶어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게 되는 것 같아 그렇다.

심한 좌절감, 부끄러움이 몰려오곤 한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정말 잘 모르겠다.
한주에 세 그룹 성경공부를 하고 있으니, 성경공부 90분을 열나게 하고 나면 그 밤에 내게 그런 좌절감이랄까 그런 것이 폭풍처럼 밀려오곤 하고,
지난주말같이 조금 더 시간을 떼어서 정성을 들이고 나면 그런 좌절감의 폭풍이 조금 더 크게 다가오기도 한다.

그냥 그저 다 부끄럽다. 너무 형편없다.

계속되는 불편함

많은 회사들이 그렇겠지만,
이곳 실리콘 밸리의 회사들에서는 더 그런 것 같다.

자신들이 하는 일이 정~말~ 중요하고,
다 함께 일하는것이 기쁘고,
서로 잘하는 것을 무진장 칭찬해주고,
뭐 하나 하면 세상을 바꿀만한 일이라고 치켜 세우고…

나는 그런것이 정말 몹시 불편하다.
그냥 좀 불편한 것을 넘어서, 거의 역겹기까지 하다.

absolutely, tremendous, beautiful, wonderful, extremely 등등의 부사를 써가며 이야기하는 많은 것들이 너무 가식적으로 느껴져 정말 듣고 있기 힘들때가 많다.

이메일로 누가 뭐 잘했느니, 어쩌니 하는 것을 이야기하면서 그 밑에 쭈루룩…. 잘했다. 축하한다… 그렇게 쓰는 것도 그렇다.

내가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고 가장 강하게 느낄때는,
그런 회사의 문화들이 내게 몹시 불편하게 느껴질때이다.

뭐 그래도 어쩌겠나. 그 불편함 속에서 살아가야지.
심지어는 나도 그 역겨운 행동들에 동참도 해 가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