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너온 다리를 의지적으로 끊기

때로는,
지난 세월을 생각하며,
내가 이미 내린 결정을 다시 곱씹으며…

만일 내가 그때 그 결정을 내리지 않았더라면…
하는 생각을 다시 하지 않는 것이 좋을수도 있다.

말하자면,
내가 건너온 다리를 의지적으로 끊어버리고,
앞으로 갈 길을 성실하고도 부지런히 가는 것이다.

나도…
때때로 뒤를 돌아보며…
what if… 라는 생각을 하기도 하는데…
건강하지 못한 뒤돌아봄이 아닐까 싶다.

공돌이

내가 소외 ‘공돌이’의 길로 들어선 것이…
85년부터라고 할 수 있으니까 벌써 25년째.

공돌이로 살았던 시기가,
공돌이가 아닌 사람으로 살았던 시기보다 훨씬 더 길다.

대학때,
과연 엔지니어가 된다는 것은 내게 어떤 의미인가를 찾지못해 몹시 괴로워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스도인이 된 이후,
특별히 그리스도인으로서 엔지니어가 된다는 것이 어떤 가치가 있는 일일까 하는 고민을 얼마나 많이 했던가.

어떤 해답이 없을 것 같은 막막함에… 어떤 순간 괴로움 속에 절망을 하기도 하고,
어떤 순간에는 그저 그 의미를 찾을 것에 대한 기대를 버렸던 때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요 1-2년새,
그것이 급속히 나의 내면 속에서 정리되어가고 있다.

참 부끄러운 일이 아닐수 없다.
그 오랜세월 공돌이로 살며 그 의미에 대한 clue를 이제야 조금 발견을 하다니.

삶의 목표는,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는데 있지 않다.

Life is not about maximum utilization of one’s talent,
Life is about loving God, loving people.

최근,
함께한 어느 성경공부 그룹에서, 학생들과 나눈 말이다.

삶의 목표는, 내가 가진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이다.

최근 몇년간 참 여러 방법으로 이 말을 곱씹고 있다.

피상성을 접하면서 느끼는 frustration

피상성(superficiality)는 우리 시대의 저주이다. – 리차드 포스터

여러 사람들을 만나다보면,
정말 많은 사람들이 – 나를 포함하여 – 피상성이라는 깊은 질병에 빠져있는 것을 발견한다.

피상성은,
이제 학교를 갓 졸업한 엔지니어가 현장에서 10년동안 일해온 베테랑을 보고
“나도 저만큼 알고 있으므로 나도 저와 같은 레벨의 사람이야”
라고 착각하는 모습에서 발견된다.

피상성은,
한번도 성경공부를 인도해보지 않은 사람이 겨우 성경의 기초만을 알고난 후
“이제 나는 성경의 모든 것을 알고 있어. 누구든 만나면 그 사람을 변화시킬 힘이 내게 있어”
라고 착각하는 모습에서 발견된다.

피상성은,
한번도 리더로서 섬겨보지 않은 사람이
자기 주변의 리더에게 리더쉽에 대하여 훈계와 충고를 늘어놓은 모습에서 발견된다.

피상성은,
자신이 이해한 아주 좁은 영역의 진리로 진리 전체를 설명하려는 무모함에서 발견된다.
(혹은, 큰 진리를 자신이 이해한 좁은 설명으로 환원(reduce)하려는 무모함에서 발견된다.)

피상성은,
자신의 짧은 사고의 전개가,
다른 이의 실존적 경험보다 무조건 우선한다는 교만함에서 발견된다.

피상성은,
내 눈의 들보를 보지못한 채, 다른이 눈의 티끌을 찾아내는 모습에서 발견된다.

피상성은,
내 자신에게서 발견된다.

KOSTA spirit을 생각하며…

KOSTA spirit에 대하여 최근 여러가지 생각을 해보고 있다.
그 내용은 과연 무엇일까
어떤 과정에서 그러한 것들이 만들어 졌을까
성경적인 근거는 어떻게 확보되어 있는가
누가 그것을 지키고 있을까
지금 그것에 대한 도전들은 어떠한 것들이 있는가 등등.

그런데,
KOSTA spirit에 대하여 생각을 하다가,
최근 나름대로 재미있는 것을 ‘재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은… 지금 우리가 KOSTA spirit이라고 이야기하는 것들의 많은 부분은,
KOSTA를 뒤에서 묵묵히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섬겼던 분들의 인격과 품성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는 것이다.

가령,
KOSTA에서 유난히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겸손히 섬기는 것을 강조하는 것은, 신앙의 여러 요소 가운데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겸손히 섬기는 것을 강조했던 사람들이 섬겼기 때문이 아니었나 하는 것이다.

결국 자신을 희생하가며 KOSTA를 섬겼던 사람들, 그러나 결코 그 사람 스스로가 드러나지 않았던 사람들…
그 사람들이 KOSTA spirit을 만든 주체가 된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KOSTA의 spirit이 원래 그런 것이니까… 그것에 맞는 사람들이 모였던 것이 아니냐고 이야기할수도 있지만,
그러니까.. 달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인 질문이 나올수도 있지만…

그러나 좀 더 가까이 지켜본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섬겼던 사람들이 함께 스피릿을 만들어갔던 부분이 많았다고 생각된다.

어떤 드러나는 사람이 스피릿을 만들어내는 것보다,
훨씬 더 바람직하고 건강한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그 KOSTA spirit을 계속 배우고 있는 나로서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스스로 감격에 젖는다.

Overrated

존경하던 신앙의 선배가,
최근 많이 망가지는 모습을 보면서…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된다.

어떻게 그분이 그렇게 되었을까. 정말 내가 거의 20년전 부터 가장 존경하던 분중 한분이었는데…

여러가지가 있지만,
이분은… 자신이 정말 중요한 사람이라고 확신하고 계신것 같다.

물론,
그분은 매우 “중요한”분이시다. 그러나 자신이 중요함을 너무 깊이 인식하신 나머지… 자신의 생각 이외에 다른 것을 받아들이시지 않는 데 문제가 있다.
그런데 그 생각이 비뚤어지거나 잘못 되었을때 그것을 바로잡을 어떤 장치가 그분 내부에도, 그분을 둘러싼 주변 환경에서도 없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분은 스스로를 overrate 하고 계신 것이다.

최근…
나의 참 모습과, 나의 주변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내 모습을 비교해보면서…
내가 아주 심하게 over-rated 되어 있음을 발견하고 있다.

실제 내 모습보다 사람들이 나를 더 괜찮은 사람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나도 자주  내 스스로를 overrate 하는 우를 범한다.

이런 내게,
진실한 꾸중이나 충고를 해주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그저 의미없는 out of context의 잔소리/충고를 남발하는… 그래서 오히려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이 더 힘든… 그런 사람들과,
내게 좋은 이야기만 해주는 사람들에의해 내가 둘러싸여지고 있는 느낌이 든다.

지난 1년간,
내게 매우 의미있는 방식으로 내가 내 한계를 벗어나도록 나의 잘못을 지적해준 사람들을 꼽아보자면…
아무리 많이 생각해도 2-3사람 정도이다!
이런 상태라면… 흠….

Presentation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유형을 보면 대충 다음의 몇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1. Performer
이 사람은 presentation을 art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presentation을 통해서 자신의 인상을 강하게 심는 것이 목적인 경우가 많다. 대개는 presentation을 청산유수와 같이 잘 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이들은 이런 형식의 presentation에 매우 bother가 되기도 한다.

2. Teacher
presentation을 통해서 가르치는데 목적을 두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논리 전개의 detail에 매우 신경을 쓰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 사람의 수준보다 높은 audience를 만나면 대개는 아주 지루한 presentation이 되고 만다. 반면 적절한 수준의 audience를 만나면 audience에게 큰 유익을 준다.

3. Reporter
사람들에게 information을 전달하는데 촛점을 맞춘다. 이런 사람은 대개 청중에 대한 고려보다는 내용의 충실함에 더 큰 비중을 둔다. 때때로 지루한 presentation이 되기도 한다. 이런 presentation은 자료를 받아두는게 큰 도움이 된다.

4. Agitator
선동가이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presentation을 통해서 청중을 자기편으로 끌어오고 싶어한다. 혹은 함께 어떤 방향으로 이끌고자 한다. 청중의 반응에 민감하지만, 때로 자신의 목적에 맞도록 information을 취사선택하기도 한다.

나는 어떠한 형태의 presentation을 하는 사람일까?
나는 4>1>2>3 의 순서로 내 style을 기술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주 엔지니어답지 않은…

그러나,
어쩌면… 내가 가장 부족한 3번 형태의 presentation이 결국은 많은 경우 가장 쓸모있는 것이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3주동안… 각종 presentation을… 10-15번 이상 해야할 것 같은데…
이것 저것을 준비하면서 잠깐 든 생각들이다.

엔지니어와 프로젝트 매니저

한 여자가 기구로 비행을 하던 도중 바람에 지도를 날려버렸다.
아무래도 어떤 방향으로 가야할지 몰랐기에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저 아래를 걷고있는 남자에게 소리를 질렀다.

“저, 실례합니다. 여기가 어디인지 가르쳐 주실 수 없습니까? 원래는 1시간 안에 돌아갈 계획이었지만 여전히 이렇게 하늘만 맴도는 중입니다..”

남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당신이 있는 장소는, 대략 지상 30미터 정도의 상공입니다. 위치는 북위 36도 30분과 35분의 사이, 동격 39도 45부와 50분 사이지요”

그 말을 듣고 여자가 물었다.

“실례지만, 직업이 엔지니어 아니신가요?”

“그렇습니다. 어떻게 아셨죠?”

“지금 받은 정보는 분명 이론적으로는 틀림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숫자는 해석방법을 모르면 전혀 도움이 되지않습니다. 실제로 저는 변함없이 계속 헤매고 있을 뿐이고 문제는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남자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프로젝트 매니저 아닙니까?”

“네, 그렇습니다만, 어떻게 아셨죠?”

“우선 당신은 자신이 지금 있는 위치나 자신이 향해야 할 목표조차 모릅니다.
게다가 지킬 수 있을지 어떨지 모를 약속을 혼자 스스로 한 주제에 저에게 문제 해결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쉽게말해, 상황자체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데도 당신은 자연스럽게 전부 제 탓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알려준… 출처 불명의 유머. ^^
이걸보면, 난 엔지니어가 확.실.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