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른 누구에게 role model이 될 수 있을까.

내 삶이 다른 어떤 이들에게 “message”가 될 수 있을까.
내 성공과 성취, 승리와 기쁨 뿐 아니라,
내 실패와 좌절, 패배와 슬픔 까지도

점점 나이가 들면서,
이제는 내 삶의 모든 contents가 다른이들에게 “message”가 되는 삶을 살지 않는다면,
내가 말로, 내 얄팍한 passion으로, 섬긴다고 돌아다닌다는 것이 그저 공허한 장난에 지나지 않게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가정과 직장과 내 개인의 삶이 모두 건강하게 integrate되어 있지 않으면,
더 이상 내 말이 진실하지 않은 것임을 깨닫는다.

내 얄팍한 열정이 오히려 다른이들을 파괴하는 무기가 됨을 깨닫는다.
내 신앙의 피상성을 나도 참을 수가 없다!

영적 리더가 되는 아픔

어제 영적 리더가 되는 기쁨에 대해 나누었는데,
오늘은 역시 지난 주말을 지내며 생각하게 되었던 영적 리더가 되는 아픔에 대하여 한번 정리해본다.

1. 후배들을 위해 해줄 수 없는 나를 보며 아파하게된다.
훌륭한 후배들을 만났는데, 그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줄 수 없을때만큼 내가 원망스러울 때가 또 있을까.
훌륭한 후배들을 만나면서 나의 한계를 더 뼈저리게 느끼고, 나 스스로의 성장과 성숙을 향한 타는 듯한 목마름을 느낀다.
때로 그 목마름은 마치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는 것 같은 고통으로 다가오기도 하는 듯 하다.

2. 후배들을 위해 해주지 못한 나를 보며 아파하게 된다.
나름대로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도,
그 소중한 사람들에게 무엇인가를 해주지 못한 아픔이 나를 사로잡는다.
그때는 나름대로 한다고 열심히 했는데, 잘못된 판단으로 엉뚱한 길을 내어놓았다면,
후배들은 그 잘못된 길을 바로잡기 위해 길을 내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하는 경우도 있다.
그때 내가 좀 더 차분하게 생각해서 접근했더라면 이러이러한 사람들에게 무엇인가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이었을텐데… 하는 후회는, 속을 쓰리게 한다.
지금부터 노력해도 그것을 되돌이킬 수 없기 때문이다.

3. 후배들을 위해 잘 해줄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된다.
What if I’m wrong?
과연 내가 내리는 이러한 결정이 후배들에게, follower들에게 정말 도움이 되는 결정일까.
이것으로 전혀 잘못된 길로 이끌게 되는 것은 아닐까.
이들에게 최상의 것을 제공해주는 것일까.

지난 주말 KOSTA 간사 모임을 지내며 이런 생각들을 해보았다.

영적 리더가 되는 기쁨

리더가 되는 기쁨은 매우 풍성하지만,
지난 주말을 지내며 생각하게된 몇가지를 적어본다.

1. 하나님께서 일하심을, 어떤 경우에는 exclusive하게, 더 자세히 관찰할 수 있다.
리더의 위치에 있으면, 섬기고 있는 일의 성격때문에 어쩔수 없이 더 많은 정보를 얻게 된다. 때로 그러한 정보 가운에 어떤 것들은 다른이들과 나누기 어려운것들도 있다.
그런데 그런 정보를 다 수집해서 모아보면 하나님께서 세밀하게 인도하시고 일하심을 더 분명하게 보게되는 경우가 있다.
상황의 detail을 알지 못하면 그저 잘 되었네… 수준의 일인데, 상황의 detail을 알고 나면 감사의 눈물을 흘리거나, 온몸에 전율을 느끼거나, 할말을 잊게되는 수준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을 보게된다.

2. 훌륭한 선배들을 더 가까이 겪게 된다.
많은 분들이, 어떤 조직이나 모임의 리더에게 소중한 조언과 안내를 해주신다. 그 가운데에는 물론 여러가지로 마음을 어렵게 하거나 방해가 되거나, 그저 시간낭비가 되는 일들도 있지만, 어떤 경우에는 무릎을 치는 통찰을 얻게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이런 선배들이 해주시는 조언이 리더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좀 더 근본적으로는 그 리더가 섬기고 있는 조직이나 모임을 위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리더는 어부지리로 큰 선물을 받게 되는 것이다.

3. 훌륭한 후배들을 더 다양하게 만나게 된다.
리더로서 사람들들 더 많이 만나게 되고, 그러다보면, 미래에대하여 부푼 희망을 갖게하는 훌륭한 후배들을 만나게 된다. 이런들을 보는 것은 정말 가슴벅찬 일이다.
한때 나는, 내가 사람들을 길러내지 못하고 있다는 자괴감에빠져 힘들어 한적이 있었다. 그때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 사람들은, 이러한 훌륭한 후배들이었다.

지난 주말,
또 한번의 KOSTA 간사모임을 마쳤다.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불성실한 사람을 말씀 사역자로?

학교나 직장이나 가정에서는 매우 게으르거나 성실하지 못하거나 부정직한 사람인데,
교회나 성경공부 모임 등에서는 많이 나서는 사람들을 가끔 접한다.

나도 물론 얼마나 내가 직장과 가정에서 성실한 사람인가 하는 반성을 스스로 지금도 많이 하지만…

내가 한국에서 석사과정을 할때, 나는 정말 성경공부가 좋았다.
그래서 학교 생활을 성실하게 하지 않으면서 성경공부에 몰입한 기간이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한번 빠지고 나니, 학교 생활을 다시 성실하게 하는 리듬을 되찾는 것이 무척 어려웠다.

그래서…
그 이후 계속 허덕허덕 하다가…
그 후 직장생활을 하면서야 비로소 겨우 회복을 할 수 있었다.

학교 생활이나 직장생활, 혹은 가정 생활에 성실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말씀사역을 강조하는 것은 그 사람을 망치는 독인 것 같다.
한번 그렇게 빠지면 회복이 쉽지 않은 것 같다.

내 모습을 자주 점검해 보곤 하는데,
늘 그 균형이 아슬아슬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그 균형이 깨어진 사람들을 보면 참 마음이 아프다.

Called vs. Driven

Gordon McGonald 목사님의 Ordering Your Private World 라는 책을 보면
(한국 번역판 이름은 내면세계의 질서와 영적성장)
Called people과 driven people의 대비가 나온다.

책을 읽은지 벌써 거의 20년쯤 되었으므로… 기억이 가물가물 한데,
하나님을 위해 살도록 부르심을 받은 사람의 적극성과 능동성, 그리고 잘 정리된 삶에 대비되어,
쫓겨서 사는 삶은 피동적이고 소극적이고 잘 정돈되지 못한다는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이것과 관련된 또 한가지의 dimension을 최근 생각해 보게 되었다.

어떤 건강한 가치를 위해 헌신하고 자신을 희생하는 일을 할때,
called people(부르심을 입은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창의적으로, 적극적으로 한다. 희생이 이들에게는 억지로 감당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기쁨일 수 있다.

그러나,
Driven people (쫓겨다니는 사람)은, 피동적으로, 소극적으로, 그리고 자신을 그렇게 이끄는 주체 (사람, 조직, 가치)등에 부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임하게 된다. 희생이 이들에게는 불평과 불만과 갈등의 이유가 된다.

함께 살아가면서,
어떤 사람은 주의의 사람들을 called people로 만들도록 섬기면서, 그들이 자발적으로 적극적으로 희생하도록 돕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주의의 사람들에게 논리와 경험등을 앞세워 충고와 명령과 당위를 남발하면서 called people로 있던 사람들 조차도 driven people로 만들어 버린다.

나는 주변의 사람들을 (특히 내가 이끌어야 하는 사람들, 내 가족들, 내 영향력 아래 있는 사람들)을 called people로 만들고 있을까, 혹은 driven people로 만들고 있을까.

대답에 자신이 없다.

Leader와 Manager

예전에,
KOSTA 세미나 중에서, 최광철 집사님께서 하신 리더쉽 세미나에서.. 들은 이야기.

Manager는 “Get the things done”에 관심이 있고,
Leader는 “Do the right thing”에 관심이 있다.

가끔은…
내가 Do the right thing을 추구해야 하는데…
그것이 힘들고 버겁게 느껴지면… 그냥 get the things done에만 치중하고 안주하려는 모습을 보이는 것 같다.

물론 get the things done도 매우 중요한 부분이지만,
내게 주어진 do the right thing의 role이 있는데도…
그것을 그냥 유기하고 있는 내 모습을 간혹 발견한다.

‘능력있는’ 리더가 하는 두가지 실수

개인적으로 ‘능력이 있는’ 리더가 할 수 있는 두가지 종류의 실수가 있다.

첫번째는, 자신의 능력을 신뢰하면서 다른 이들의 능력을 불신하기 때문에 자신이 모든 것을 다 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는 많은 경우 자신의 능력에 대한 과신이나 과대평가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겸손하지 못한 리더들에게서 흔히 발견되는 듯 하다.

두번째는, 자신의 능력을 일반화하여, 자신이 하는 모든 것을 모든 사람이 쉽게 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때로 ‘능력있는’ 사람들이 하는 어떤 일들은 ‘모든 사람’이 그것을 모델로 삼을수 없는 독특성이 있는데, 그것을 무시하는 것이다.
이는 능력있는 리더들이,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거나, 자신이 섬기고 있는 follower들을 세심하게 배려하고 돌보지 않는 독선과 무관심에서 비롯되는 듯 하다.

두가지의 balance를 갖춘 리더를 보는 것이 참 쉽지 않다.

어떤 것이 더 나쁜 리더일까?
두가지 모두 나쁜 리더의 모습들이지만,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두번째 유형인 것 같다.
더 뿌리깊은 교만과 더 뿌리깊은 사랑없음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나는…
너무 자주… 두번째 리더의 모습을 보인다.

생각을 흔들어 놓기

불과 2년 전 정도까지…
나는 잘못된 신앙의 태도와 노선을, 무지의 결과로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그런 이들과 대화하면서 그 사람의 생각을 흔들어 놓는 일을 하려고 참 많이 노력했었다.

그런 대화를 나누다보면,
관계가 서먹해지기도 하고, 그쪽에서 울거나 화를 내기도 하고, 심지어는 좌절이나 혼란에 빠지게도 되는 일들을 보았다.  장기적으로 그 사람에게 큰 유익이 되어 결국 올바른 가치들을 받아들이는 일들을 내가 목격한 적도 있었고, 그 끝을 보지 못하고 그 사람과의 연락이 끊어지기도 하였다.

물론 내가 그렇게 한 이유는 그 사람을 향한 사랑과 관심이었다. 그리고 그 사람을 제대로 키워보고 싶은 열망이었다.

그러나, 요즈음은 생각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그 사람이 그렇게 자신이 가지고 있던 생각의 기반을 흔들었을때 붙들 수 있는 무엇이 바로 가까이 있지 않은 상태일때에는… 그 사람의 기반을 심하게 흔들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혹은 대안이 될만한 가치체계가 가까이 있다고 해도 그 사람이 그 새로운 대안을 취할 능력/여력이 되지 않을 경우에는 원래의 잘못된 기반을 심하게 흔드는 것은 자칫 그 사람에게 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이 그 잘못된 기반에 뿌리가 너무 깊이 박혀 있을 때에는 (정서적, 감정적 뿌리를 포함해서)
그 기반을 차라리 놓아두는 것이 최소한 잠정적으로는 올바른 선택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내 자신을 define 하듯…
“변절한 이상주의자”의 궤변인걸까…

Being Bossy

내가 어떤 사람을 나의 boss로 인정하지 않는데,
그 사람이 네게 boss로 행동하면, 그 관계는 참 어려움에 빠지게 된다.

내가 그런 사람들을 많이 만나보기도 했고, 지금도 그런 사람들이  내 주위에도 있고…
그리고 물론, 더 큰 문제는… 내가 심하게 그런 사람이라는 것이다.

누구를 만나든.. 그 사람의 boss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같은 것이 내게 있지 않나 싶다.
어떤때는 그것이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 그 사람에 대한 친절 등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부정적으로는 그 사람의 사사로운 것에 참견을 한다거나 그 사람이 이미 잘 하고 있는 것에 대해 잘한다 못한다 참견을 한더거나… 등의 일들을 벌이게 된다.

이 고통을 가장 심하게 당하는 사람은 물론 내 아내이다.
아내에게 미안하고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