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몸부림?

내가 비록 A사로 가기로 결정을 했지만,

지금 있는 회사를 살려놓고 가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어제 밤에도, 아시아쪽에 전화를 걸어 business relation을 build 하는 시도를 좀 했었고,

여전히 여러 통로를 통해 가능성을 찾아보고 있다.

감사한 것은, 잘하면 회생할 수 있을 것 같고,

어쩌면 더 잘 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물론 예전과같이 내가 어떤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필요한 일은 뛰어들어서 하고 있다.

여전히 이메일 엄청 쓰고, 자료 정리도 하고, 한편으론 실험도 하고, demo sample도 만들고…

상황이 좀 나아져서 가능성이 보이니까,

우리 lab director가 내게 물어보았다.

It would be very hard to go forward without you. What would it take to buy you back from a**le?

아… 난 한편으로는 감사했지만… 참 나로서는 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이었다.

지금 있는 이 팀에 대한 애정이 참 크지만, 새로 일하게될 회사와도 이제는 열심히 일하겠다는 ‘약속’을 했기 때문에,

심지어는 다른 곳에서 돈을 더주거나, 더 좋은 자리를 준다고 해서 후딱 옮기거나 하는건 옳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적어도 내가 새로운 그룹에 충분히 contribute을 했다고 느끼기까지는 최소한 1년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어정쩡… 대답했고, lab director는… one year is a long time… 이라며 말 끝을 흐렸다.

어찌되었건, 나는 새 회사에서 정말 열심히 일할 생각이고, 거기서도 내가 일하는 것에 비해 받는 돈이 적다고 느낄 정도까지 해볼 생각이다. ^^

이제 실질적으로 두주 남짓 남은 기간동안,

이 회사와 그룹의 앞길이 잘 열리는 것을 보고 떠났으면 한다.

심지어는, 아 그냥 거기 계속 남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을 정도로. ^^

서로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지난 여름 휘튼에서,

내가 아직 10대(!!) 일때부터 나를 알아오셨던 ㅈ 교수님과 밤에 잠깐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내 표현으로는 내가 코찔찔이일때부터 나를 인도해주신 분이라고 할 수 있다. ㅎㅎ

내 삶의 여러 궤적 속에서,

자주 그분에게 도움을 받기도 했고, 조언을 구하기도 했었는데…

어느 순간에서 부터인가, 그분이 해주시는 말씀들이 내게 out of context 라는 느낌을 갖게 되었었다.

‘낡은 신학’의 체계를 바탕으로 해주시는 말씀이 ‘낡은 조언’으로 느껴지기 시작하면서 부터였다고나 할까.

그런데, 아마 금요일 밤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내가 소위 ‘젊은 복음주의자 그룹’의 몇몇 강사님들과 열띤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때 오셔서는…

소그룹에서 자신의 죄를 서로 고백하면서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이야기를 꺼내셨다.

그야말로 이미 많이 들은… 특히 그분으로부터는 정말 많이 들어온… 그런 이야기였다. ^^

사실 내 20대 초반에 그분과 그분의 network을 통해서 내게 주어진 영향이 대단히 컸기 때문에, 나는 그분이 어떤 맥락에서 그렇게 말씀하시는지 잘 알고 있었다. 한편 공감하면서도… 한편… 나는 이제 그것으로부터는 out-grow 했는데… 뭐 그런 비슷한 생각이 얼핏 들었다.

함께 토론하던 그 젊은 복음주의자 그룹도 비슷한 표정이었었다.

그런데,

지난 3개월여 동안, 그분이 해주신 그 말씀이 내 머리 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서로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소그룹.

사실,

요즘 나를 둘러싼 사람들을 가만히 따져보면,

나를 책망할 수 있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많은 사람들이 나로부터 무언가를 얻어내려고 하는데… 

내게 아픈 이야기를 해주려는 사람이 정말 없다. (한… 두어분 멀리 있는 두어분 정도가 있긴 하지만. ㅎㅎ)

내 죄를 고백하며 기도를 부탁할 수 있는 그런 소그룹이 내게 없는 것이다.

요즘은,

그렇게 함께 동료된, 친구된, 하나님 나라 동창생으로 살아갈 그런 사람들을 더 많이 만들고 싶다는 열망이 크다.

내가 그들에게 무엇을 해주어야겠다는, 내가 무엇을 해야겠다는, 혹은 내가 누구로부터 무엇을 배워야겠다는 그런 접근 보다도…

그저 함께 살아가는 친구.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한다.

결국…

어제 결국,

A사에서 정식 offer가 왔고, 그걸 accept 했다. 

어제 오후, 그 office에 직접 가서 내가 sign을 했는데,

그걸 sign하기 전까지 내 지금 office에 앉아서 한편 마음이 좀 우울했다.

여기를 이렇게 떠나게 된다니…..

(아마 이것에 대해서는 따로 시리즈의 글을 써봐야 할 것 같다.)

그런데 또 한편,

그 office에 가서, offer에 sign을 하고 hiring manager에게 이메일을 보내는 일을 하면서,

새로운 일에대한 기대랄까 그런것에 마음이 설레기도 했다.

offer를 주면, 

counter offer를 해서 조금이라더 더 받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한참 동안 가지고 있다가,

특별히 최근 하루 이틀 동안, 그렇게 하는게 마음에 많이 불편했었다.

뭔가 협상을 해서 돈을 더 뜯어내고자 하는 것 같은 생각이… 나의 false sense of entitlement를 강화시켜주는 것 같아서 말이다.

그래서 웬만하면, 그게 뭐가 되었던 가서 accept를 하자… verbal offer를 준 range에서 제일 낮게 준다고 해도 그거 그냥 받아들이자. 정말 꼭 필요하다면 가서 일하면서 정정당당하게 실력으로 보여주고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노리자… 뭐 그런 생각을 하고 갔다.

가서 특별히 negotiation을 하지도 않고, recruiter가 제시하는 것에 sign을 하겠다고 달라고 했다.

그리고 offer의 내용을 보니, 내가 제시했을 것보다도 offer 액수가 더 좋았다. ^^

집에 오니, 아내도 민우도 다 좋아한다.

이번달 말까지는 지금 회사에 있게 되고, 11월 5일부터 새로운 회사에서 일하게 된다.

한편, 감사하기도 하고…. 그러나 한편 좀 씁쓸하기도 한… 그런 하루였다.

그리고 어제 밤에는, 이런 복잡한 생각 속에서, 잠도 설쳤다.

참 기분 좋은 꿈

나는 별로 꿈을 꾸지 않는데,

어제 밤에는 매우 생생한 꿈을 꾸었다.

뭐 특별한 의미가 있는 꿈이라기 보다는, 이 아침에 일어나서 무척 기분이 좋은 그런 꿈이었다.

꽤 큰 강당과 같은 곳이었는데,

나는 커다란 집회에 참석하고 있었다.

무슨 준비위원이나 진행위원 그런거 아니고, 그냥 참석자였다. ㅎㅎ

오후에 약간 쉬는 시간이 주어졌는데, 나는 뭔가 좀 더 예배를 드리고 싶다는 생각에 그 큰 집회 장소에 갔다. 혼자 기도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런데 신기한건, 하나 둘 사람들이 그 쉬는 시간에 모여드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금새 그 큰 장소를 가득 채웠다.

부랴부랴 한 사람이 기타를 들고 찬양을 인도하며 찬양이 시작되었고, 앞에 앉아 계시던 ㄱㄷㅇ 간사님께서(!!) 성경을 뒤적이시더니 설교를 하셨다.

말씀을 듣고, 함께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함은’ 찬송을 불렀고, 곧 이어서 기도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그 장소를 가득 채운… 아마 수천명은 된 것 같았다… 그 청년들과 함께, 나는 찬송, 말씀, 기도에 푹 적셔지는 경험을 했다.

내가 무언가를 하는 예배가 아닌,

정말 함께 하는 사람들과 깊이 그 예배 자체에 빠지는 그런 예배를 드려본 적이 언제였던가.

눈물로 기도하다가 잠에서 깨었다.

아… 참 깨고 싶지 않은 꿈이었다.

이 아침부터,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함은 찬송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참 멋진 아침이다.

이런 후보들이 나오는 대통령선거라면?

어떤 사람들이 대통령 후보로 나오는 선거라면 내가 참 기쁘게 그 과정을 지켜볼 수 있을까?

한국도 미국도 대통령선거전이 한참이어서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된다.

적어도 나는 한국과 미국의 보수정당의 후보들은 지지하기가 참 어렵다.

그런데, 만약… 원래 보수가 가져야하는 올바른 가치를 주장하는 후보가 보수 후보라면 어떨까?

가령, 자유, 인권, 정의, 법치, 공동체를 위한 헌신 등등.

만일 그렇다면 나는 누구에게 투표할까?

가만 생각해보면, 아마 나는 그렇다면 정말 많이 고민할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나는 진보가 더 잘 되어서 집권을 하는 것 보다는…

보수가 좀 제대로 건강해져서 내가 보수에게 투표하는 것이 부끄럽지 않을 그런 상황이 되는 것을 더 바라는 것 같기도 하다.

친일, 군사쿠데타, 독재, 구식 이데올로기, 부패, 정경유착, 지역주의, 대북 강경주의, 신자유주의, 승자독식, 불균형, 불평등, 인권탄압… 등등의 비합리적, 비도덕적, 비상식적, 비민주적, 비평화적… 모습..의 보수는, 

보수가 아니라 수구이니 말이다.

보수(保守), 그야말로 무엇을 지키고 보존하는 입장이어야 하는데,

적어도 한국의 현재 보수 정치세력은 잘못된 것을 지키고 보존하고 있는 듯.

엘리트!?! – 덧붙여서

주말동안, 지난 금요일에 썼던 내용을 곱씹어 생각해 보았다.

‘내 이야기’를 꺼내지 않고 뭐랄까 너무 objective하게 써서 뭔가 제대로 내 고민이 풀어진 것 같지도 않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또, 내가 이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해본적이 별로 없었구나 하는 사실에 나 스스로 많이 놀라기도 했다.

내 이야기를 풀자면 이렇다.

나는 꽤 어릴때부터 나를 ‘엘리트’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늘 공부를 잘했고, 소위 반장 같은거 안빼먹고 계속 햇었고, 친구들 사이에서 늘 리더였다.

고등학교, 대학을 거치면서 그런 나 자신에 대한 평가는 더 견고하게 되었다.

사회적 교육의 영향이었을까, 부모님의 가르침이었을까…

나는 내가 가진 엘리트로서의 지위를 이용해서 세상에 이롭게 하도록 살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늘 했었다.

나, 엘리트, 사회에 대한 책임…. 이것이 내게는 계속 하나로 엮여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복음을 알게된 후에 생겼다.

내가 기존에 생각하던, 사회적 책임을 지는 엘리트라는 framework이, 내가 새롭게 받아들인 복음에 들어맞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급격히 나는 기존에 내가 가지고 있던 엘리트에 대한 생각을 포기하고 고쳐나가는 작업을 했지만, 그와 함께 내 ‘커리어’의 차원에서보면 엘리트로서의 조건을 더 많이 쌓아나가는, 어찌보면 이율배반적인 path를 계속해 나갔다. 영역주권론에 근거하여, 엘리트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약간 다시 귀를 기울이며 내 학업/전문성의 이유를 재해석하려는 노력을 하기도 했었다. 그렇지만, 개혁주의적 세계관에 근거한 영역주권론 자체에 일부 회의를 갖게되었다.

그러면서 나는, 전반적으로 엘리트로서 내 책임에 대해 비중을 두기보다는, 같은 시대에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과의 연대성을 갖는 것에 비중을 두고 내 직장생활, 전문분야 활동을 해왔다. 그런 생각 때문에, irreversible한 직업상의 선택을 하기도 했었고.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내가 아닌 사람과 나를 동일시 할 수 없다는 것을 많이 깨닫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내가 아무리 노력을 한다 하더라도,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내 background (학력, 경력, 능력 등등) 때문에, 나는 그것을 갖지 못한 사람들과 같아질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 나보다 낮은 학력이나 경력을 가지는 사람들보다 내가 우월하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그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core belief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생각이다.

그렇지만, 나는… 내가 아닌 사람들과는… 분명 다른 것이다.

역사를 엘리트가 만들어 가느냐, 대중이 만들어 가느냐,

역사와 사회 속에서 엘리트가 감당해야하는 역할은 무엇이냐…

그런 거창한 scale의 질문을 던지면서 해답을 찾으려 하면 좀 막막한데,

실제 그런 질문이 현실적인 고민이 되는 내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질문에 답을 찾으려하니, 여전히 막막하긴 하지만, 막연하지는 않다. ^^

적어도 현재까지는,

엘리트주의 혹은 반엘리트주의 양쪽 극단에 다 치우치지 않고,

그때그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면서 self-positioning을 해나가고 있는 셈이다.

엘리트?!?

내가 대학교에 다닐때만 하더라도, (그게 이제 25년 전이군. ^^)

대학생은 엘리트였고, 그 엘리트가 해야하는 역할은 아직 충분히 깨지 못한 ‘민중’을 데리고 함께 미래로 가는 것이라고 여겨졌던 것 같다.

운동권들은 그 가야하는 미래를 사회주의로 보았고,

보수적인 학생들은 자본주의적 번영으로 보았고.

그런의미에서 엘리트는 참 중요한 역할이라고 여겨졌고, 그 엘리트 반열에 들어있는 사람들 역시 자신들에게 주어진 역할의 무게를 어느정도는 인식하며 살았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은,

우선, 그 엘리트 그룹의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심지어는 소위 명문대를 마친다 하더라도 그 엘리트 그룹에 편입되는 것이 힘들게 느껴진다.

그리고, 그 엘리트 그룹이 나머지 사회에 가지는 책임감이나 역사의식 같은 것이 사실 별로 보이질 않는다.

그저 기득권 이라는 차원에서 자신이 가지는 것을 바라보는 것 같아 보인다.

과거 엘리트가 아직 생존의 어려움을 겪는 민중을 함께 이끌고 가야한다는 고민을 했다면,

지금 그 사람들은 스스로 사회나 체체의 피해자가 되어 생존에 매달리고 있게 되었다.

그런 변화하는 시대를 지난 20+년 살아오면서,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복음을 받아들여 진정한 의미에서의 역사의식과 소명을 발견한, 그리고 발견하고 있는 나는,

나 스스로를 엘리트라고 규정하며 살았던 시기도 거쳤고, 의도적으로 그것을 거부하려고 했던 시기도 거쳤다.

지금 나 자신을 바라보면서, 고민을 많이 해본다.

나는 지금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나는 과연 엘리트로서의 소명과 책임을 느끼며 살아야하는 입장일까? 

그렇지 않으면 나도 역시 ‘민중’의 한 사람으로 인식하며 살아가는 것이 더 적절한 현실 인식일까?

만일, 내가 그런 엘리트 위치에 있다면,

나는 underprivileged 사람들과의 연대성을 더 깊이 느껴며 내 삶을 살아가야 하는 걸까, 

그렇지 않으면 내게 그들을 이끌고 가야하는 소명이 주어진걸까.

위에 대한 해답은 아마 ‘somewhere in the middle’ 이 되겠지만,

요즘 나와 내 아내가 새로운 길을 모색하며 기도하는 와중에,

우리에게 주어진 책임, 상황, 의미, 소명을 많이 고민하게 된다.

How to Be Evangelical Without Being Conservative

어제, “How To Be Evangelical Without Being Conservative” (by Roger Olson) 이라는 책을 한권 끝냈다.

정확하게 말하면 책을 읽은 것이 아니라, audio book을 사서 들었다. (노안… ㅋㅋ)

우아, 대박!

저자는, 보수적이 되지 않으면서도 복음주의자가 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하는 것을 설명하는 것을 너머,

오히려 보수적이 되는 것이 복음주의적이지 않다는 이야기를 아주 명쾌하게 풀어나간다.

Introduction : Who’s an “Evangelical” and What Does “Conservative” Mean?

1장 Being Biblical without Orthodoxy

2장 Building Character without Moralism

3장 Celebrating America without Nationalism

4장 Seeking Truth without Certainty

5장 Taking the Bible Seriously without Literalism

6장 Being Religionless without Secularism

7장 Transforming Culture without Domination

8장 Redistributing Wealth without Socialism

9장 Relativizing without Rejecting Theology

10장 Updating without Trivializing Worship

11장 Accepting without Affirming Flawed People

12장 Practicing Equality without Sacrificing Difference

Conclusion : Toward a Postconservative Evangelicalism

이 정도의 책이면,

복음주의에 대한 아주 기초적인 지식을 가진 사람이, 정말 무엇이 복음주의인지 하는 것을 더 잘 파악하는데 도움을 줄만한 훈련교재로도 쓸만할 것 같다.

한국말로도 번역이 된 것 같다. 

“보수와 자유를 넘어 21세기 복음주의로”

영어 제목이 좀 더 마음에 들긴 하는데… ^^

많은이들에게 강추한다!

마누란 기도 스타일!

어제 아침 10시가 좀 넘어서 아내가 내게 카카오톡을 보내왔다.

우리 집에서 거의 한시간 반쯤 떨어져 있는 기도원에 갔다고!

허억. 갑자기 기도원을.

요즘 아직 일을 시작하기 직전이어서 시간이 좀 남는 편인데,

그런 짬을 이용해서 기도원에 가기로 한 모양이다.

아침에 미팅을 하나 끝내고 office에서 이런 저런 이메일을 쓰고 받고 있는데 그런 카카오톡 메시지가 온 것이다.

나는 거기서 어떻게 기도할 수 있는지 간략하게 알려주었더니만,

내 아내는 거기서 예배도 드리고, 기도도 하는데 그게 그렇게 좋다고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래서 나는,

‘마누란 기도 스타일’ 이라고 답을 해 주었다. ㅎㅎ

기도 스타일의 사람이 되는 것, 기도 스타일의 사람과 함께 사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

깊이 연구하고 teaching 하고 싶은 성경 본문

지난번 간사 수양회를 위해서 디모데후서를 다시 한번 깊이 공부하고 묵상할 수 있었던건, 내게도 참 큰 유익이 있었다.

다시 좀 여러가지 생각을 가다듬으면서,

그동안 아, 이런 본문을 좀 여러사람과 함께 공부도 하고 강해도 하고 나누어보면 좋겠다 싶었던 책들을 좀 정리해 보았다.

다니엘서 전반부 (엘리트 디아스포라의 관점에서)

베드로전후서 (세상속의 그리스도인의 관점에서)

누가복음 (하나님 나라 관점에서)

요한계시록 (하나님 나라, 제국 속의 하나님 나라 백성이라는 관점에서)

사사기 (현 시대를 비추어 읽어보는 의미에서)

그리고.. 로마서 (허억! – 이건, 아주 많은 복합적인 의미인데… 쩝.)

이런 본문들이 내 마음에 많이 들어온다.

이 본문들을 좀 더 깊이보고 연구하며 사람들에게 나눌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