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신에 관하여

지난 금요일에는 헌신에 관하여 KCF 학생들과 말씀을 나누었다.
대략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0. 인간은 누구나 헌신의 대상에 대한 목마름이 있다.
헌신의 대상을 제대로 찾을때야 존재가치를 찾게된다.

1. 헌신의 대상은 자신보다 큰 것이어야 한다.
자신보다 작은 것은 헌신의 가치가 없다.
보통 성공, 행복등에 헌신을 하는데, 성공이나 행복은 나 자신보다 큰 존재가 아니다. 그러므로 그것에 헌신하는 일은 어리석은 일이다.
보통 그것이 나 자신보다 큰 것이냐를 판별할 수 있는 판별식은, 내가 그 가치를 위해서 죽을 수 있느냐 하는 물음이 논리적이냐 하는 것이다.
가령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죽는 것은 논리적으로 성립되지 않는다. 행복은 자신을 채워주는 요소이지 자신을 지배할 수 있는 요소가 아니기 때문이다.

2. 헌신의 대상은 행동이 아닌 가치(value)여야한다.
심지어는 그 행동이 매우 고귀한 것이라하더라도.
가령 어린아이들을 복음으로 양육한다는 가치에 헌신하는 것은 적절한 일이지만, 무슨 무슨 교재를 사용해서 어린아이들을 양육한다는 방법론에 헌신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3. 복음을 사유화(privatize)하지 말아야 한다. 복음에 헌신한다고 했을때 흔히 사유화한 비뚤어진 복음에 헌신하는 경우가 많다. 거대담론(Meta Narrative, Grand Narrative)의 틀 안에서 개인화(personalized)된 복음을 가지고 상황을 보아야 한다. 사유화는 개인화와는 매우 다른 개념이다.
흔히 거대담론을 이해하지 못한채 헌신하려 하기 때문에 잘못된 헌신의 모습을 보이는 일들을 본다.

우리가 헌신할 궁극적 거대담론은, 결국 하나님 나라이다.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도 졸지 않고 들어준 우리 형제 자매들이 대견하다. ^^

아직도 내 마음속의 대통령은 노무현

정치인 노무현이 가졌던 가치를 내가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또 정치인 노무현이 내가 알고 있는 가장 능력있는 정치인이었던 것도 아니다.

그러나,
2002년 정치인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7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내 마음의 대통령은 노무현이다.

한국의 조중동과 기득권 세력이 그렇게도 밟아죽이려고 했던 정치인,
경상도 민주 세력을 독재정권에 상납한 3당 합당을 거부한 정치인,
차떼기식의 금권정치를 거부한 정치인,
언론이 아닌 찌라시인 조중동에 정면으로 맞설 용기를 가졌던 정치인,
친일과 독재로 점철된 한국 정치역사를 바로잡으려 노력했던 정치인,
정당한 논리나 정책을 우스꽝스러운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지역주의와 싸웠던 정치인,
부당한 기득권, 권력에 저항하여 권력을 잡았던, 대한민국 최초의 정치인,
남북관계, 대미관계를 자신의 정치적 수단으로 삼으려 했던 세력과 정면으로 맞섰던 정치인.

정치인 노무현은 결코 완벽하지 않았다.
어떤 의미에서 정치인 노무현의 ‘무능함’은 그가 추구하고자 했던 가치를 구현하는 일을 막았다.

그러나,
나는 2002년 대통령 선거의 상황이 다시 온다고 해도,
정치인 노무현을 다시 지지할 것이다.

나는 2002년 이후, 내 마음의 대한민국 대통령을 아직 바꾸지 않았다.
언젠가 한국의 정치 지형이 바뀌어서, 내 마음속의 대한민국 대통령 노무현을 마침내 떠나 보낼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도한다.

땜빵

그리스도인으로 살면서,
내 헌신의 동기의 순수함을 지키는 것은, 가장 핵심적인 영적 싸움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스스로 순수한 동기의 헌신을 하면서 섬기고 살아가다가보면,
그 동기의 순수함을 위협하는 장애물을 만나게 된다.

그런데,
때로는 그 장애물로인해 생긴 불균형과 부족함을 감당하고 차선을 선택해야 하는 일들을 만나는데…

이상주의, 완벽주의와는 거리가 먼…
차선을 선택해야하는 이런 상황은… 순수함과 싸우도록 요구받는 사람들에게 큰 부담이자 아픔이 된다.

요즈음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이러한 사실들을 여러번 곱씹게 된다.

헌신의 특권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KOSTA 간사들이 간사 수양회를 할 장소를 물색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장소를 찾지 못해 걱정을 많이 하고 있었는데…
선배중 한분이, 큰 집을 소유하고 있는 어떤 분께 말씀을 드려서 자신의 집을 간사들 수양회 장소로 제공하도록 arrange 해 주셨다. (정말 어마어마한 저택이었다! 집 이쪽 끝 부터 저쪽 끝 까지 가는데 한참~이 걸리는)

그때 그 선배님은 그 집 주인에게…
“당신의 집에서 KOSTA 간사들이 수양회를 할 수 있도록 기도하십시오.”
라고 말했다고 한다.

참 황당한 접근이다!
아니… 자신의 집을 내어 놓는 희생과 헌신을 그렇게 ‘뻔뻔스럽게’ 요구하다니.

이 선배님은 주변에 돈이 많은 분들의 마음을 움직여 그 돈을 가치있게 사용하도록 하는 일도 아주 멋지게 하신다.
KOSTA를 위해 헌금하도록 설득하면서… 헌금을 하는 것이 얼마나 그분에게 커다란 기쁨인지 하는 것을 말씀하신다.

헌신은 자신의 것을 억지로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더 높은 가치에 자발적이고 기쁘게 하는 것이라는 당연한 원칙을 당당하고 떳떳하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런 선배님과 함께 있다보면…
정말 나의 재물과, 시간과, 열정과, 재능과 땀을 드려 헌신하는 것이 얼마나 큰 특권인지를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복음은 세상을 뒤집는 가치

복음은 세상을 뒤집는 가치이다.
그러나 현대에 그 복음은 민중의 아편으로 전락해 버렸다.

자크엘룰의 이 말이 요즈음 더 뼈속 깊숙히 느껴진다.

복음을 아편으로만 여기며 생각하고 있는 이들에게… 이 복음이 진정으로 세상을 뒤집는 가치임을 설득할수 있으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

마치 아편중독자들같이,
종교의 아편에 빠진 이들에게… 복음을 보여줄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

사람을 세우는 것

사람을 세우고 양육하고 훈련시키는 일만큼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는 일이 또 있을까.
사람은… 참 잘 변하지 않는다.
자신이 기존에 가지고 있는 틀을 깨고 그 이상으로 발전하는 것을 본능적으로 거부한다.

정말 사람의 힘으로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사람을 세우고 양육하고 훈련시키는 것이외에 다른 무엇에서 소망을 찾을 수 있을까?
아무리 그 일이 나를 지치게 하더라도… 결코 그것을 포기할 수 없다.
그것 이외에, 미래에 대한 소망을 갖게하는 다른 것이 없기 때문이다.

텅빈 집

새집으로 이사온지 거의 열흘이 되어간다.
아직도 우리 다람쥐 두마리가 들어오려면 한달가까이 더 있어야 한다.

내가 가지고 들어온 짐은 별로 되지 않기 때문에,
에이… 그냥 뭐 이렇게 대충 널어놓고 살다가 나중에 정리하지… 하면서 지저분하게 지내다가,
지난 수요일 저녁에는 마음먹고 자그마치 30분이나 들여 널어놓은 짐들을 다 정리했다.

정리하기 이전엔 그래도 꽤 짐이 많아보였는데 ^^
정리를 하고 나니… 집이 더 텅 비어보인다.

텅빈 이 집도, 텅빈 내 마음도, 늘 바쁘지만 텅빈 내 일상도,
채워질 날이 이제 불과 한달 남짓 남았다.

시간이 부족한가, 열정이 부족한가, 체력이 부족한가

요즈음,
내가 하고 있는 일 하나 하나에 정말 마음을 쏟아 하고 있지 못한다.

사람들을 말씀으로 섬기는 일이나, 회사에서 실험을 하는 일이나, 사람들을 대하는 일이나, 아주 단순한 노가다 까지도…
하나 하나에 마음을 쏟아 하지 못한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이전같으면 쉽게 그 이유를…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너무 많기 때문 으로 돌렸던 것 같다.
하는일이 많고, 시간이 없고…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건 아니다.
나에게는 여전히 빈둥거리며 그냥 지내는 많은 시간이 있고…
훨씬 더 시간을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여유가 있다.

그렇다면,
체력이 부족한걸까.
내가 체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자꾸만 쉬어주어야 돌아가는 걸까.
글쎄, 그것도 딱 맞는 분석은 아닌 것 같다.
지치지 않은 상황에도 쉽게 게을러지는 나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열정이 부족한걸까.
매우 정답에 가까운 분석인 것 같긴 하지만…
열정의 부족으로 모든 것을 덮어씌우기엔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다면 무엇이 원인일까.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내가 많은 일들에 마음을 담아 할때와 그렇지 못할 때 큰 차이 가운데 하나는…
내 기도생활의 건강함이다.

내 기도생활이 삶의 모든 부분을 엮어 주는 힘이 되는 것인지,
아니면 내 삶의 모든 부분이 잘 정리되고 엮여졌을때 기도가 잘 되는 것인지…
닭과 달걀의 argument인 것 같기도 하고…
글쎄…

사랑의 빚

벌써 지금으로부터 10년쯤 된 일이다.
내가 어느 지역교회에서 열심히 섬기다가 여러가지 여건으로 그 교회에서 더 이상 섬기지 못하게 된 일이 있었다.

인간적인 아쉬움과 안타까움, 섭섭함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내 영혼은 지쳐있었다.

성경말씀으로 사람들을 세우고, 양육하고 훈련하는 값진 일 이외에,
비본질적인(?) 일들에 마음을 많이 빼앗겼던 탓이었다.

나는 그때,
내가 한국에서부터 들어오던 Gate Bible Study 라는 성경공부 모임의 문을 두드렸다.
12월 추운 겨울이었는데…
그 성경공부에 참여해서 말씀을 나누며… 삶을 나누었던 그 첫 모임의 감격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아… 그래… 성경공부라는게 원래 이런거였지!
이렇게 말씀을 깊이 연구, 묵상하고… 그 말씀대로 살기로 결심하고 서로 격려하고…
지친 사람들을 섬기고 서로를 위해서 기도하고.

결국 그 모임에 얼마간 나가다가…
새 그룹을 ‘개척한다’고 선언하고…
그 당시 우리가 살던 기혼자 학생 아파트에 3명이 모여 성경공부를 시작했었고… 결국 그 모임은 25명까지 모이는 모임으로 성장했었다.

지난 주말에는,
그렇게 우리 가족을 Gate Bible Study에 정착하도록 도와주었던 선배님 부부와… 또 우리가 보스턴에서 말씀과 삶을 나누던 몇 가정과 함께…
보스턴에서 간단한 저녁식사를 나누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는… 그리고 나는…
참 많은 사랑의 빚을 졌다.

존경스러운 선배님들

내가 연관되어 있는 Christian ministry 가운데 하나에서,
요즘 다소 지저분한(?)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순수하지 못한 동기로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에 대하여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다소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선배님들로부터 많은 조언을 듣고, 또 그분들이 나서서 사람들과 사건을 대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참 많은 것을 느낀다.

한분의 선배님은, 순수함 그 자체로 가득찬 분이시다. 동기의 순수함에대한 수없이 많은 도전을 나는 이 선배님으로부터 배워왔다. 하나님 나라를 위한 거짓없는 헌신.
이분은, 자신을 희생하면서, 자신이 모든 비난을 다 받아도 좋으니, 자신이 나서서 이 문제의 근본을 눈물로 밝히고, 이 일을 해결한 후에, 혹시 ministry에 있을수도 있을 어려움을 피하기 위해 자신이 희생양이 되어 스스로 물러나겠노라고… 그렇게 의분을 참지 못하신다.

다른 한분의 선배님은, 온유함 그 자체로 가득찬 분이시다. 사람에 대하여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설득하고 절대로 내치지 않고 품으시는 분이시다. 이분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어떤 과정에서도 단 한사람이라도 – 비록 그 사람이 ‘악인’이라 하더라도 – 상처받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분이시다. 정말 시간을 낭비한다 싶게 느껴질 만큼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겸손하게 말을 들으시고, 때로는 그로인해 얼토당토않은 오해도 받으시면서 그렇게 섬기시는 분이시다. 이분을 보면 온유와 섬김이 그저 흘러 넘친다.

얼핏 보면 이 두분의
방향이 매우 다르지만…  그래서 마치 함께 하고 있을때 이 두분 사이에 큰 갈등이 있을 것 같아 보이기 까지 하지만…
동일한 그리스도를 향한 불타는 사랑, 하나님 나라를 향한 지칠줄 모르는 열정, 이 과정에서 나같이 어리버리한 후배까지도 보호하고 지켜주시려는 마음…
나는 정말 말할수 없이 깊은 감동을 받는다.

말씀을 가지고 사람들을 섬기다가,
정말 너무나도 어처구니 없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모습을 몹시도 고통스럽게 바라보게 되다가도…
이런 선배님들과 같은 그리스도인들을 보며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한다.
아니… 그저 가볍게 경험하는 수준이 아니라… 내 뼈에 하나님의 살아계심의 증거를 새기는 것과 같이 느껴진다. – 고통스러운 과정을 통해… 도무지 지워지지 않는 강렬한 참된 지식을 얻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