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기를 점검하기

대학원에 다니던 시절,
학교에서 어려움이 있을때마다…
정말 내가 박사를 받고자 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바른 동기에 서 있는가 하는 것을 물어볼 기회를 갖곤 했었다.

결코 평탄하지 못했던 내 박사과정 기간동안,
나는 수 없이 내 동기를 점검하게 되었고,
그 과정이 돌이켜 보면 참 소중한 것이었다.

지금 회사를 하면서…
내가 이렇게 열심히 회사를 하고자 하는 동기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점검해보는 기회를 자주 갖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10여년 전의 나보다 지금 나는 좀 더 철이 들었으므로 (hopefully)
어려움이 닥쳤을때 동기를 점김하는 것 보다 어려움이 닥치기 이전에 동기를 점검하는 성숙함을 갖고 싶다.

그저 나의 naive한 바람일까.

거울이 없으면 망가진다

며칠전,
A 선배님과 저녁식사를 함께 하면서 나눈 이야기이다.

A 선배님과 내가 함께 많이 마음에 두고 걱정하는 B 선배님이 있다.
(B 선배님은 목사님이시다.)

우리가 왜 그 B 선배님이 그렇게 되셨는가 하는 것에 대한 여러가지 분석(?)을 하였는데,
A 선배님이 지적하신 문제는… B 선배님에게 쓴소리 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사실 B 선배님에게는 매우 가깝게 지내던, 같은 교회의 평신도 지도자 C 선배님이 계셨다.
그런데 수년전 C 선배님이 갑자기 사고로 돌아가셨다.

A 선배님 말씀으로는,
B 선배님이 “총기”를 본격적으로 잃어버리기 시작하신 시기와, C 선배님이 돌아가신 시기가 대충 일치한다는 것이다.

돌아오며,
참 많은 생각을 했다.

내게는 누가 쓴소리를 하고 있는가?
나는 누구에게 쓴소리를 하고 있는가?

N. T. Wright에 점점 끌리다

내가 N. T. Wright을 소개받는 것은 대충 2-3년쯤 전이었던 것 같다.
처음엔 어디에서 부터 손을 대어야 N. T. Wright을 이해할 수 있을까 싶어 엄두가 나지 않아 아무것도 못하고 있다가,
인터넷에 떠도는 N. T. Wright의 설교를 몇편 듣고나니 뭔가 약간 희미하게나마 그림이 잡히는 것 같았다.

그 이후, 책을 몇권 읽고, N. T. Wright을 소개하는 글이나 강의들을 좀 듣고… 하면서 N. T. Wright에 대한 이해를 좀 넓혀나갔는데…

물론 아직도 내 이해의 수준이 깊지 않아 많은 것을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요즘 성경을 공부하면서 N. T. Wright에 깊이 끌리고 있다.

그 사람이 이야기한 것들을 모두 동의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는 아직 그렇다고 대답하기를 주저하게 되지만,
참 많은 부분을 공감하며 N. T. Wright에 빠져가고 있는 중이다.

아… 시간이 좀 더 있으면…. (솔직히 말하면, 내가 좀 더 부지런하면^^)
좀 더 공부를 해볼텐데 말이야.

다원주의자, 다신론자 아브라함과 동행하시는 하나님

요즘,
창세기에 나와있는 아브라함의 일생을 공부하고 있다.

성경 본문을 연구하면서,
참 새로운 모습으로 아브라함을 만나고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는,
정말 아브라함이 처음 하나님을 만났을 때 정말 아브라함의 상태가 어떤 것이었던가 하는 것에 대한 생각을 통해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관계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Ur 지방에서 살던 아브라함은,
아마도 다원주의자이거나 다신론자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아브라함의 아버지가 야훼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었던 것으로 보아, 아브라함이 어떤 가정교육을 통해서 유일신관을 전수받았을 것 같지도 않다.

그런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명령하셨을때,
아브라함은 그 야훼 하나님을 어떻게 인식했을까?
아마도 많은 지역신 가운데 하나로 인식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그 신을 하나 붙잡았으니 그 신을 통해서 부와 평안을 얻으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아브라함이 가나안 지방으로 와서 단을 세우고 예배를 드린 행위라던가,
멜기세덱을 만나서 십일조를 한것 같은 마일스톤이 될만한 아브라함의 행동들도,
유일한 하나님에대한 위대한 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기 보다는 그 당시 근동지방에서 통상적으로 행해지던 종교행위의 일부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브라함은 그저 자신이 이해하고 있는 종교의 수준에 매우 오래 머물러 있었고, 그 framework에서 야훼 하나님을 이해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이집트에 갔을때, 자신의 아내를 sister라고 이야기한 것이나,
심지어는 하갈과 같은 대리모를 통해 자신의 대를 연장하려고 했던 것들도…
아브라함이 대단히 잘못한 것이라고 손가락질 하기 보다는,
제한된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있었던 아브라함에게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으로 이해할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그런 과정 중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차근차근, 창조주로서의 야훼 하나님, 그리고 마침내 이땅에 궁극적 창조질서의 회복을 계획하시는 야훼 하나님을 드러내신다.

아브라함의 생애동안,
계속해서 아브라함이 가지고 있었을 잘못된 세계관을 바로 잡아가시는 하나님,
다원주의자였을 아브라함에게 유일신으로서 당신의 존재를 소개시켜가시는 하나님…

이런 관점으로 아브라함을 읽고 있자니,
정말 흥미진진하다!

마치 2차원 도면으로 평면에 표현되어 있던 3차원의 구조물이,
현실로 드러나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는다!

Dave Packard’s 11 Simple Rules

1. Think first of the other fellow. This is THE foundation

— the first requisite — for getting along with others.

And it is the one truly difficult accomplishment you must

make. Gaining this, the rest will be “a breeze.”

2. Build up the other person’s sense of importance.

When we make the other person seem less important, we frustrate

one of his deepest urges. Allow him to feel equality or superiority,

and we can easily get along with him.

3. Respect the other man’s personality rights. Respect

as something sacred the other fellow’s right to be different

from you. No two personalities are ever molded by precisely

the same forces.

4. Give sincere appreciation. If we think someone

has done a thing well, we should never hesitate to let him

know it. WARNING: This does not mean promiscuous use of obvious

flattery. Flattery with most intelligent people gets exactly

the reaction it deserves — contempt for the egotistical

“phony” who stoops to it.

5. Eliminate the negative. Criticism seldom does

what its user intends, for it invariably causes resentment.

The tiniest bit of disapproval can sometimes cause a resentment

which will rankle — to your disadvantage — for years.

6. Avoid openly trying to reform people. Every man

knows he is imperfect, but he doesn’t want someone else trying

to correct his faults. If you want to improve a person, help

him to embrace a higher working goal — a standard, an

ideal — and he will do his own “making over” far more

effectively than you can do it for him.

7. Try to understand the other person. How would

you react to similar circumstances? When you begin to see

the “whys” of him you can’t help but get along better with

him.

8. Check first impressions. We are especially prone

to dislike some people on first sight because of some vague

resemblance (of which we are usually unaware) to someone else

whom we have had reason to dislike. Follow Abraham Lincoln’s

famous self-instruction: “I do not like that man; therefore

I shall get to know him better.”

9. Take care with the little details. Watch your

smile, your tone of voice, how you use your eyes, the way

you greet people, the use of nicknames and remembering faces,

names and dates. Little things add polish to your skill in

dealing with people. Constantly, deliberately think of them

until they become a natural part of your personality.

10. Develop genuine interest in people. You cannot

successfully apply the foregoing suggestions unless you have

a sincere desire to like, respect and be helpful to others.

Conversely, you cannot build genuine interest in people until

you have experienced the pleasure of working with them in

an atmosphere characterized by mutual liking and respect.

11. Keep it up. That’s all — just keep it up!

정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HP의 founder중 한명인 David Packard가 정리한 일터에서의 11가지 원칙인데…

이겨도 이긴게 아니야

지난주말,
우리 그룹에서 어떤 사람이 내가 하는 어떤 실험에 대하여 아이디어를 내어 놓았다.
그러면서 실제 구체적인 experimental design을 해서 내게 excel file로 보내왔다.
그대로 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기분이 많이 상했다.
아니 내 실험인데… 지가 뭔데 이래라 저래라야.

어제 아침 process meeting 시간이 있었는데,
나는 그 사람의 experimental design이 잘못되어 있음을 하나씩 지적하며 그 사람의 논리를 반박했다.
그 meeting이 끝난 이후에도 그 사람과 이야기하면서 그 사람의 논리가 부족함을 조목조목 따졌다.
process parameter들을 펼쳐가며… 이미 내가 한 실험 결과를 설명하며… 그 사람의 실험에 대한 제안이 ‘시간낭비’가 됨을 역설했다. 솔직히 나중에 가서는 그 사람이 약간 억지를 부리기도 하였다.

그 사람은 결국 자신의 논리가 부족함을 인정했고, 나는 그 토론에서 ‘이겼다.’

그.러.나…

내가 이긴 것은 이긴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렇게 내가 그 사람과 논리 싸움을 해서 이긴게 어떤 유익이 있는데?
결국은 내 실험에 그 사람이 관여했던 것이 기분나쁜 것 이상의 그 무엇이 아니었지 않은가!

지난 달이었던가…
우리 lab director와 이야기를 하면서 나와 논쟁을 벌였던 그 사람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 사람이 사실 매우 어려운 위치에 있다는 것이 우리가 함께 나눈 말이었다. 그 사람은 말하자면 별로 훌륭한 학문적 훈련을 받지 못했다.
최고의 학벌과 실력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그 사람이 자신의 위치를 잡는데 매우 어려울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나와 우리 lab director가 함께 동의했었는데…

불과 몇주가 못되어,
나는 그 사람을 자근자근 짓누르고자 혈안이 되었던 것이다.

예수의 방법(The way of Jesus)이 아니야…
이겨도 이긴게 아니야…

또 하나 상을 받았다.

이번주 Phoenix에서 열리고 있는 Flextech conference에서 우리 회사와 HP의 우리 그룹이 상을 또 하나 받았다.
이번 상은, Flexible electronics쪽에서 가장 active한 학회에서 준 상이어서 의미가 있게 느껴진다.

우리 그룹이 최근 1-2년 동안 받은 award, recognition등을 정리해 보면…

2008년 IDTechEx printed electronics award
2008년 Merck award for outstanding display technology
2008년 Wired Magazine top ten technology breakthrough
2010년 Flextech alliance outstanding R&D award

그외에… 수없이 많은 학회 invited talk이 물론 있었다.

두가지 연관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첫번째는,
상을 받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 아니라 실제로 market place에 의미있는 방식으로 contribute하는 technology를 개발하여 commercialize 하는 것이 목적이므로 자꾸만 상을 받아 모으는 것으로 기뻐하는 것보다 실제로 이루어지는 작지만 의미있는 technological achievement에 더 기뻐해야 할텐데…
이렇게 recognize 되는 것을 더 기뻐하는 것을 보면 내가 일하는 자세나 모습이 아직 유치한 수준이 아닌가 싶다.

두번째는,
이번에 학회에는, 내가 최근 여러가지 일로 travel을 많이 했기 때문에 참석하지 않기로 했었는데… 내가 참석하지 않기로 한 학회에서 상을 받게 되었고… 그 상을 받는 자리에 내가 없다는 사실이 잠깐 섭섭했었다. 그래도 내 나름대로는 이 technological achievement에 내가 중요한 부분을 contribute 했다고 믿고 있는데…
그렇게 잠깐 생각했다가… 정말 부끄러워졌다.
결국은 그렇게 attention 받는 것이 내 동기의 바닥에 깔려 있었던 것인가.
그렇지 않아도… 너무나도 자주.., 우리 그룹 내에서 그리고 외부적으로도… 내가 deserve 한것보다 더 많이 나는 attention과 recognition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자주 해 왔었는데…

상받는 기쁜 소식에,
부끄러운 두개의 단상.

선배가 필요해…

나는 고등학교 3기이다. 당연히 선배가 많지 않다.
대학교는 2기이다. 내 1년 선배가 대학 선배의 전부이다.

그런 영향이 있을까…
나는 그리스도인으로서도 참 선배가 많지 않다.

대학교 3학년때, 처음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맺은 후,
정말 desperately “선배”를 찾았다.
그러나 나를 이끌어주고 키워줄 그런 선배를 결국 찾지 못했다.
내가 가진 진지한 질문에대해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이해한 수준의 자기 중심적인 대답을 길게 나열하는데 바빴지, 내 질문과 고민을 종합적으로 이해하고 그 사고를 발전시키도록 도와주지 않았다.
단순히 내 대학선배뿐이 아니었다. 교회에서 만나는 어른들, 꽤 이름이 있는 평신도 지도자들, 교수님들로부터도 도움을 얻지 못했다.
그런이들과의 대화는 도움은 커녕 frustration만을 가져왔다.

몇년간 그런 시도를 하다가,
나는 선배를 찾는 것을 포기했다.
하나님께서, 적어도 내게는, 그런 luxury를 허락하시지 않는다는 잠정적 결론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런데 요즘,
그런 선배를 다시 찾아본다.
그런데… 그런 선배가 없다.

역시 내 고민을 이야기하면,
자신의 한계 내에서 내 고민을 나름대로 해석해서,
내 context와는 무관한 대답만을 쏟아놓는 사람은 많이 만나지만…
정말 나의 성숙과 성장에 관여하여 도움을 주려는 그런 사람을 만날수가 없다.

내게, 도움을 요청하며 무엇인가를 기대하는 사람은 많은데…
막상 나는 그런 도움을 받아본 경험이 일천하기 때문에, 너무 자주 엉뚱한 실수를 한다.

어쩌면,
선배에 대한 나의 이런 목마름이…
나의 깊은 문제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내가 충분히 유연하지 못해서 다른 이들의 가르침을 잘 듣지 못한다거나,
이미 좋은 스승이 내 주변에 많이 있는데도 내가 그분들을 appreciate하지 못한다거나…

역시 “선배”는 내게 luxury 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