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adership is an ART

“Leadership is an art”

Herman Miller의 CEO를 지냈고,
헌신된 그리스도인으로 알려져 있는 Max DePree의 책 제목이다.

정말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여러 leadership을 경험하면 할수록,
내가 leadership을 자의반 타의반으로 practice 하는 경험을 갖을 수록…
정말 그 말이 맞다는 생각을 참 많이 하게 된다.

논리적으로 설명해서 되는 일도 아니고,
방법론을 잘 풀어준다고 다 되는 일도 아닌 것 같다.

어떤 사람이 IQ가 300쯤 되고,
자신의 의도대로 자신의 행동을 바로 바로 control 할수도 있고,
순발력도 대단하고….
뭐 그렇다면 그 사람에게 가르쳐서 될 수 있으려나…

마치,
운동신경이 상위 0.000000001%에 들도록 좋고,
체격 조건도 1세기에 나올까 말까 하게 좋고,
100m를 8초에 뛰고,
폐활량은 돌고래를 능가하고,
게다가 순간 판단력도 좋고,
자기 관리 철저하고,
머리도 엄청 좋은 사람이라면…
그 사람에게 이론적으로 수영과 같은 운동하는 방법을 설명해서 그 사람이 운동을 잘 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과 마찬가지 논리이다.

그러나,
물론 그런 사람은 사실상 없으므로…
Leadership은 art가 되는 것 같다.

그렇다면,
리더는 정말 길러질 수 없고 타고나는 것인가.
내 conviction은 점점… 리더는 길러질 수 없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리더를 주시도록 더더욱 기도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상한 문장

캠릿브지 대학의 연결구과에 따르면, 한 단어 안에서 글자가
어떤 순서로 배되열어 있는가 하것는은 중하요지 않고
첫째번와 마지막 글자가 올바른 위치에 있것는이 중하요다고한다.
…나머지 글들자은 완전히 엉진망창의 순서로 되어 있지을라도
당신은 아무 문없제이 이것을 읽을 수 있다.
왜하냐면 인간의 두뇌는 모든 글자를 하나 하나 읽것는이 아니라
단어 하나를 전체로 인하식기 때이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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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선배가 facebook에 쓴 걸 가지고 옴.

목이 곧은…

누구나 사람들은 자신의 세계관을 가지고 다른이의 표현을 이해한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그 ‘자신’이 너무 강하게 자리하고 있어,
이야기하는 사람의 원래 의도를 곡해하거나 오해하여 나름대로 받아들이고 반응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또 자신만의 해석을 가미해서 원래 의도를 변경시키거나 희석시키기도 한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어느정도의 곡해나 오해는 늘 존재하기 마련이다.

성숙한 사람은,
자신의 그러한 점을 인정하는 사람이고,
미성숙한 사람은,
그렇게 오해/곡해한 것을 너무 쉽게 신념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겸손이 전제되지 않으면,
진정한 의미의 대화란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아직도 갈길이 멀다.

Dick Tracy Watch


우리 그룹에서 현재 만들고 있는 제품은,
US Army의 지원을 받아, 위의 그림에서 보는것과 같은 모양의 디스플레이를 만드는 것이다.
병사의 팔목에 감을 수 있는, 얇고 가볍고 휘어지는 디스플레이를 만들고, 바로 옆에는 flexible solar cell을 함께 붙여서 병사가 전장에서도 별도의 배터리 없이도 사용할 수 있는 display를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hp labs의 twitter에 보니까, 우리가 만든 제품을 가지고  이제 곧 US Army에서 field test를 한다고 나와 있었다. (허걱 -.-;)

원문은 LA times의 뉴스 기사인데…
뒤져보니 작년엔 CNN 기사도 있었네.

흠…
US Army의 field test가 무엇을 의미하는 지는 모르겠는데…
신문 기사가 뻥튀겨져서 쓰여지는 것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마찬가지인 듯 하다. ^^

Stanley Hauerwas의 요즘 무신론자(atheist)들에 대한 언급

최근, Christopher Hitchens나 Richard Dawkins와 같은 무신론자를 보면, 얼마나 Secularist(세속주의자)들이 멍청해졌는지(dumb) 알 수 있다.

그것은 일정부분 우리(그리스도인)들에게 책임이 있다. 흥미로운(interesting) 무신론자를 만들어낼 만큼 우리(그리스도인들, 기독교)가 흥미롭지 못한 것이다.

명절과 어머니

우리 아버지쪽 가계는 매우 전통적이다.
소위 ‘낙대’를 한적이 없다는 것을 큰 자랑거리로 여기고…
(낙대를 한적이 없다는 말은, 선조로부터 서자가 한번도 끼지 않았다는 뜻인데, 그런 가계가 사실 그리 흔하지 않다고 한다.)
전통적 가치를 지키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남인 계열의 제사상 차리기와 서인 계열의 제사상 차리기의 차이를 논하는 것을 듣기도 했고…
내 어릴적 자장가는 소학이었다는 전설(?)을 전해 듣는다.

그런 집안에 우리 어머니께서 시집오셨다. 혈혈단신 그리스도인으로.

소위 4대봉사 (4대조까지 제사를 지내는 것을 말함)를 하는 집안에서…
그리스도인 며느리로서 제사때마다 명절때마다 제사상 차례상을 차리는 것이 얼마나 힘드셨을까.
물론 육체적으로도 힘드셨겠지만, 정신적으로 당하셨을 어려움은 내가 다 상상하기 어렵다.

게다가 우리 아버지께서 봉사손(제사를 지내야하는 맏아들, 그 맏아들인 나도 사실은 봉사손이다.-.-;)이시므로 어머니의 부담은 더 심하셨다. 그렇게 40년 넘게 결혼생활을 해오시면서, 집안 어른들로부터는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모멸과 수모를 당하시기도 하셨고…

아직도 우리 집에는 명절이면 수십명의 가족(extended family)가 다녀간다.
특히 우리 아버지께서 꽤 넓은 범위의 extended family 중 최고 어른이시기 때문에…

내 어머니도 이제 “칠순 노인” 이신데…
그 많은 손님을 치루어 내시며, 그리고 그 차례상, 제사상을 아직도 차리시면서…
그렇게 고생을 하신다. 아들 둘이 모두 해외에 있기 때문에…  여전히 그 모든 부담이 다 어머니의 몫이다.

한번 명절이 지나고 나면, 손발이 모두 퉁퉁 부어 며칠씩 고생을 하시고,
그야말로 거의 일주일 정도는 몸져 누우시는 일을 매년 반복하신다.

그렇게 하시면서 어머니의 일관된 말씀은 이것이다.
“이 제사를 내 대(代)에서 끝내겠다. 너희 대까지 넘기지 않겠다”

명절때면 그렇게 “영적싸움”을 하고 계시는 우리 어머니를 생각하며…
그저 그 어머니의 희생을 멀리서 누리고만 있는 내 모습이 매년 한없이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이제 그 어머니의 그 희생과 눈물과 기도로, 삼남매는 모두 그 어머니의 신앙을 물려받아 헌신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내가 만일….
perseverance 라는 단어의 뜻을 조금이라도 이해했다면, 그것은 바로 어머니의 그런 모습을 통해서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만일….
감히 내가 믿는 신앙의 그 어떤 열매를 내 삶에서 맺었다면…
내 어머니께서 후에 천국에서 받으실 칭찬의 몫이 적어도 그중 절반은 된다고 할 것이다.

내가 만일….
내 다음 세대에게도 물려줄 수 있는 신앙의 생명을 갖게 되었다면…
이번 설에도 하나님 사랑과 자녀 사랑이라는 마음으로 그 부담을 온 몸으로 짊어지고 계신 어머니의 모범 때문일 것이다.

올해 설에도…
힘드실 어머니를 생각하며….
40이 훌쩍 넘어서도 여전히 철없는 큰아들은…
마음이 무너진다.

현학적이지 않은 신앙

언제부터인가,

내 신앙적 고민을 설명하려면 늘 매우 긴 배경지식을 설명해야 했다.



일종의 신학적 입장에 대한 설명, 역사적 배경에 대한 설명, 대비되는 사조에 대한 설명 등등.



그러다보니,

내가 길게 설명을 하는 것이 어려운 상황에서는…

내 고민 자체를 꺼내어 놓는 것이 힘들게 되어버렸다.



내 신앙의 여정에서…

나를 흥분시키고 자극시켰던

존 스토트, 프란시스 쉐퍼, 자크 엘룰, 김교신, 마틴 로이드-존스, 톰 라이트, 스탠리 하우어워스…



이분들로부터 배운 insight를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현학적이지 않은 신앙을 유지하는 법을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아직은… 참 갈길이 먼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