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T를 용서하다 (final)

내가 쓴 이 글이…
그저 한 패배자의 글로 비추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결국 꽤 괜찮은 연구결과를 내며 졸업을 했고,
이제는 꽤 괜찮은 직장에서 연구를 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MIT를 용서할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내게 가져다준 보상이 결코 아니다.

MIT가 내게 준 선물은,
그 과정이 가져다준 열매가 아니라,
그 과정 자체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를 발견하게 하시고 나를 인도하시고 나를 품으셨던 하나님이었다.

숲에서 나와 숲을 보는 것 같이…
이미 5년전 졸업을 한 그 학교에 다시 가서…
그토록 고통스러워했던 나를 다시 보며…
이전에 그렇게 선명하게 보지 못했던 하나님의 손길을 볼 수 있었다.

66동 지하 계단에서 울며 기도할때,
학생회관 컴퓨터실에서 거의 패닉 상태로 정신없이 지도교수를 알아보고 있을때,
내게 fair하게 다가오지 않는 상황에 맞서 싸우다 지쳐서 터벅 터벅 기숙사로 걸어가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내 어깨에 손을 얹고 나를 포근히 감싸고 계셨다.

내가 학위를 받는 것에 몰두하고 있었을때,
내가 성공과 명예에 모든 것을 투자하고 있었을때,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아 좌절하고 있었들때,
하나님께서는 그보다 훨씬 더 큰 계획으로 나를 묵묵히 붙들고 계셨다.

그저 시간이 좀 남아 오후 시간을 할애해서 잠깐 학교에 들어보았을 뿐인데…
이번 학회에서는,
하나님께서 전혀 예측하지 못한 큰 선물을 내게 주셨다.

MIT를 용서하다 (6)

MIT에서 내가 만났던 사람들을 용서했다.
내가 MIT를 다시 걸으며… 경쟁 속에서 힘들게 싸우고 있는 교수들, 학생들, postdoc들을 보았다.
MIT가 영예를 가져다 줄 것을 기대하며 admission office의 설명회를 가득 메운 사람들을 보았다.

내가 그렇게 마음 속에 두고 용서하지 못했던 사람들…
교수들, 동료들, 선배와 후배들…
결국은 그 system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으려 몸부림치던 동료 피해자들이었다.

관용과 사랑이 들어가야 할 자리를 남겨놓을 여유를 갖지 못한 채,
성취와 성공을 향해 뛰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 만들어 놓은 피해자들.

물론 어그러진 system 속에서 행하는 타인에대한 가혹함이…
‘나도 피해자다’라는 말 만으로 용서될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그 피해를 입으며 힘들게 박사과정을 지낸 나로서는… 그들을 용서해야할 의무가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MIT를 용서하다 (5)

나는 내가 MIT에 있는 동안,
내 능력에 비해 내가 저평가받는다는 사실이 무척 억울했다.

영어때문에 저평가 받는 것이 억울했고,
나를 인정해서 믿고 밀어주는 지도교수가 없다는 사실이 억울했다.

그래서 나는 늘 인정받는 것에 목이 말랐다.
나보다 못한 연구 결과를 가지고 포장을 잘 해서 ‘뜨는’ 사람들을 보면서 경멸했다. 그러나 그것은 내 마음 깊은 곳에 있었던 열등감과 질투의 표현이었다.

그리고,
나도 언젠간 저렇게 떠서 앙갚음을 하리라는 독기로 가득차 있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참으로 감사하게도…
졸업을 1년 반정도 앞둔 시기에,
하나님께서 내 눈을 열어 그렇게 많이 망가져 있는 나를 보게 하셨다.
아침 QT 시간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집요하게 말씀하시는 것에 나는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었다.

참 많이 마음이 아팠었다. 그렇게 심하게 망가진 나를 보면서 마음이 아팠고, 그것을 알면서도 그것으로부터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는 나를 보면서 또 마음이 아팠다.

지금은 그럼 그것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롭게 되어 빠져 나왔나.
글쎄… 선뜻 대답에 자신이 없다.

그러나,
최소한… 그 어리석음과 탐욕에 매달려 허덕이던 나의 모습을 다시 반추해 볼 수 있었다.
나를 그렇게 몰아넣은 환경, 그리고 그 환경 속에 그저 동화되어버린 나…
나는 그것들을 용서할 수 있었다.

MIT를 용서하다 (4)

많이 지치고 힘들면,
나는 게으름이라는 함정에 종종 빠지곤 하였다.

지도교수와의 문제가 힘들때,
그 문제에 정면으로 맞설 용기가 없어…
그저 나만의 동굴에 숨으려 한 일이 많았다.

Game 중독에 빠지기도 하였고,
하루에 large coffee를 4-5잔씩 마시다가 위염이 생기기도 하였다.

이렇게 있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해서 일어나야지…
하는 생각을 하다가도,
다리에 힘이 빠져 그저 주저앉아 있던 때가 많았다.

게으름은,
내가 내 부족함으로부터 피해 숨는 나만의 동굴이었다.

내가 그 게으름의 극에 이르렀을때 내가 살았던 아파트에 가 보았다.
다소 촌스러운 색의 페인트로 단장을 해서,
내가 살고 있던 시절의 모습과는 꽤 달라 보였다.

그 앞에서…
그 게으름의 늪에서 허덕이는 나를 다시 보았다.
그리고 그 게으른 나를 용서했다.

MIT를 용서하다 (3)

나에 대하여 좀 더 잘 아는 사람들은 아는 이야기지만,
나는 대학원 생활이 그리 평탄하지(?) 않았다.

잠깐 거친 지도교수를 포함해서..
내가 석박사과정을 통틀어 내 지도교수로 있었던 사람은 총… 7명이었다.
그중 MIT에서 총 5명의 지도교수가 있었다.

처음 입학한 후 7-8개월이 지나서… 처음 함께 일하기로 했던 교수가 있었다.
이분과 일하기로 이야기가 대충 되었고, 이제는 지도교수도 잡았으니 열심히 해서 졸업하면 되겠구나 하는 계획도 세우고 있었는데… 이분이 갑자기 나를 뽑기 어렵게 되었다고 이야기를 해왔다. 나중에 알게된 일이지만 내가 아닌 나보다 늦게 그 교수를 찾아간 다른 학생을 내 대신 뽑은 것이었다.

당황한 나는 허겁지겁 여러 교수들을 만났고…
어렵게 한 교수와 연결이 되었다.
이 교수는 지금 현재 자기에게 fund가 없지만 3명의 교수가 함께 하는 project에서 fund를 따려고 하니까 3명의 지도교수와 일을 함께 해 보자고 하였다. 그리고 그 project를 따오는 PI (프로젝트 대빵)이 공식적인 내 지도교수가 되었고 처음 접촉했던 교수를 비롯해서 2명이 공동지도교수가 되었다. 그룹미팅만 한주에 3개나 참석했고… 정말 열심히 했다. 하루에 12시간 이상씩 실험에 매달렸고.

그런데,
결국은 그 project가 돈을 따는데 실패했다. (아니면 그 교수가.. 내가 영어를 잘 못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그런식으로 나를 짜른 걸까.) 정말 열심히 했는데… 다시한번 나는 공중에 붕 뜬 상태가 되었다.

이번엔, 박사과정 oral exam도 볼 기회도 잃어버리게 되었고 나는 석사과정 학생이 되었다.

절망과 좌절 끝에… 그리고 엄청나게 이메일을 돌리면서 알아본 끝에…
한 교수를 만나게 되었고… 이분이 내 최종 지도교수가 되었다.
그 교수와 함께 석사논문을 쓰고 (입학한 후 4년만에 두번째 석사학위를 받았다) 다시 그 후에 박사논문을 4년 반에 걸쳐서 썼다. (입학한 후, 5명의 지도교수를 거치면서 연구 주제를 총 4번 바꾼 끝에, 석사학위 한개, 박사학위 한개를 8년 반만에 받았다.)

학생으로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학과 사무실에서는 이번학기까지 졸업을 못하는 이유를 써서 내라… 는 식의 협박성의 공문을 내게 매 학기 보내왔었다.
매 학기 그걸 받아들고 힘들어 했던 기억들…

지도교수를 잡지 못하며 힘들어 하던 어떤 여름,
MIT 졸업식장을 지나며… 과연 내가 저기에 설수는 있을까…
내가 폐인이 되지 않고 이 과정을 다 마치는 것이 가능하기는 한걸까…
그런 생각을 했던… 그 lobby에 한참을 서 있었다.

마치 MIT가 내 목을 조르는 것 같이 느낄때,
아침에 울며 QT를 하고 나서는…
MIT는 나를 망가뜨리지 못해… MIT는 나를 어쩌지 못해… 나는 그래도 하나님의 자녀인데…
그렇게 마음속으로 고함을 질렀던 66동의 지하 계단에 한참을 앉아 있어 보았다.

그렇게 많이 좌절하고 낙망했던 시간들…
도대체 내 뜻대로 되는 거라곤 뭐 하나 없는 것 같이 느껴지던 시간들…

과연 그것을 통해 내가 얻은 것은 무엇이었나?
학위도, 영예도, 명성도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었다.

MIT를 용서하다 (2)

나는 참 영어를 못했다.
지금 내 영어가 매우 뛰어나다고 이야기하긴 어렵지만,
정말 나는 영어를 잘 못했다.

정규 고등학교 과정을 다 마치지 못한 탓이 크다고 늘 핑게를 대곤 했지만,
결국 학교다닐 때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은 내 불성실함이 문제였다.

영어를 잘못한다는 사실 때문에 나는 MIT에 있는 동안 늘 기가 죽어 있었던 것 같다.
사실 내가 졸업하기 전에는 그런대로 영어를 잘 하게 되었는데 처음부터 기가죽었던 나는 졸업할때까지 처음 기죽었던 것을 다 회복하지 못했던 것 같다.

내 영어가 부족하다고 유난히 많이 구박하고 윽박질렀던 내 이전 지도교수의 실험실 앞을 지나가보았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학교에 아직 다니고 있을 때에는 그 지도교수가 소리를 지르던 모습이 악몽과 같이 남아 있어서 그 앞을 일부러 피해서 멀리 돌아가곤 하였다.

성취, 효율성, 명성 등에 motivate되어 있었던 그 분이, 나를 윽박지르고 있었고,
나는 그 앞에서 안되는 영어로 더듬 더듬하면서 내 실험 결과를 항변하고 있는 모습이 떠올랐다.  내 설명을 다 듣지도 않은 채, 자기 혼자서 소리를 지르다가 나보고 나가보라고 하던 모습도 떠올랐다.
결국 어느날, 그 교수가 fund가 없다는 말을 했고, 나는 입술을 부르르 떨며 그 교수의 방을 나오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영어를 조금만 더 잘했더라면..
내 능력보다 낮게 평가되는 것이 너무 분하고 억울해서 울면서 기도했던 모습도 떠올랐다.

함께 classmate였던 아이들과 대화를 해보려고 하다가,
말이 막히면 미국 애들이 무시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던 몇명의 얼굴도 떠올랐다.

나는 바보가 아닌데, 바보 취급을 당하고 있다는 굴욕감에 그렇게도 힘들어했던 지금보다 자그마치 12년이나 어린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런데,
그런 내 모습을 보며 그리 아프지 않았다.

그것은 내 잘못으로 하나님께서 내게 벌을 주시는 것이라던가,
내가 못나서 내 성격을 다스리고 있지 못하는 것이라던가,
심지어는 내 소심함으로 상황을 극복할줄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권오승이라는 사람을 붙들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내 인생의 한 시기에 그분의 선하심 안에서 펼쳐놓으시는 스토리였다.

사실,
나는 지금은 일반적으로 보는 한국인 유학생 출신에 비해서는 영어를 잘 하는 편이다. (내 착각인가? ^^)
그것은 아마 내가 영어로 인해 느꼈던 frustration 때문에 영어에 매달렸던 것에 기인하는 면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래서 이렇게 영어를 잘하게 되었다 하는 것은 그 스토리의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하나님의 선하심, 하나님의 인도하심, 어그러진 세상의 질서 속에서 당신의 사람을 돌보고 계시는 그분의 손길… 바로 그것이 내가 돌아본 스토리의 중심이었다.

MIT를 용서하다 (1)

지난 주에 있었던 학회가 목요일 오전이 지나고 나니
관심분야의 발표가 거의 다 끝났다.

목요일 오후와 금요일의 시간이 완전히 남아서,
나는 혼자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어떤 일을 할까 고민하다가,
내가 보스턴에서 살았던 일들을 되새기며 이곳 저곳을 다녀보기로 결정했다.

사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다소 즉흥적으로 그렇게 한 것이었는데,
다니면서 여러가지를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다.
그리고 내 마음 속에 응어리져 있던 몇가지를 해결하는 큰 소득을 얻었다.

전혀 뜻하지 않게 내 박사과정 지도교수를 만나기도 했고,
내가 살았던 기숙사 건물,
처음 신혼생활을 보냈던 낡은 집,
민우가 처음 태어났던 허름한 아파트,
qualifying 시험을 치루었던 교실,
성경공부를 했던 장소,
나만의 secret QT place 등등도 다 가보았다.

블로그에 글을 쓰는 시간을 하루에 10분 이상 할애하지 않는 것이 내 원칙이므로,
하루에 이 이야기들을 다 쓰기 보다는 몇번에 나누어서 쓰는 것이 좋을 듯 하다.
내일부터 몇차례에 나누어, 내 과거 이야기, 그 과거를 바라보는 지금의 내 이야기들을 한번 해보려한다.

(지난번에 내가 start-up company를 하는 이유 시리즈 글을 잘 읽었다는 분들이 많이 계셔서 힘을 얻어… ^^)

학회를 마치면서

1.
내가 박사과정을 할 때,
내 지도교수의 그룹은 우리쪽 분야에서 늘 leading group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다보니 학회에 가서 내가 발표를 하고 나면, 내게 와서 여러가지를 묻고 하는 사람들이 늘 있었다. 나는 그러면 괜히 우쭐해지고 기분이 좋아지곤 하였다.

HP에 와서,
학회에 가면, (내가 발표를 하기도 하였고, 함께 간 다른 사람이 하기도 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와서 우리 그룹에서 한 일에 관심을 표현했다.
작년에 어느 학회에서 내가 발표를 한 후에는, 말 그대로 나와 이야기하기 위해 사람들이 줄을 서기도 했다.
사람들과 만날 약속들이 바빠서 10분 15분을 쪼개가며 사람들을 만나고 그랬다.

2.
이번 학회에 와서 보니,
이 학회는 내 관심사 (그리고 우리그룹/회사의 관심사)와 그리 잘 맞는 것은 아니었다.
나름대로 발표를 하고 사람들과 interaction을 가지려 했지만 사람들이 신기해 하기는 하는데 당장 자신의 일차적 관심이 아니기 때문에 더 이상 대화의 진전이 없었다.
학회에서 말하자면 별로 바쁘지 않게… 이렇게 할일없이 보내는건 참 오랜만이었다.
덕분에 많이 쉬기는 했지만, 학회가 재미있지는 않았다.

3.
이 학회에는 유난히 대학원생들의 발표가 많았다. 회사나 연구소에서의 발표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실제 현장에서 필요한 것을 다루는 실제적인 논문은 매우 드물었다. 그 가운데 솔직히 말해서 많은 것들은, 논문을 쓰기위한 연구들인 것 같아 보였다.
그 연구를 통해 새로운 현상을 발견했다거나, 어떤 현상들에 대한 새로운 해석들을 해낸다거나, 아니면 아예 생산현장에서 도움을 얻을 수 있는 실제적 접근을 했다거나 하는 것이 그리 많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발표들을 보고 있자니까, 바로 몇년전 내 모습이 보였다.
내가 대학원생일때, 정말 thesis를 쓰기 위한 연구를 했던 것. 큰 그림을 머리속에 담지 못한 채 그저 사소한 것에 매달렸던 것. 그리고 그것을 통해 사람들에게 나를 알리고 좀 떠보려고 했던 것.
그런데, 지금의 나는 얼마나 예전의 나와 다를까. 부끄러웠다.

4.
이전에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던 학회에 익숙하다가,
혼자 ‘쓸쓸한’ 학회에 있다보니…
‘백마병’에 물들어 있던 내 모습이 보였다.
자신의 등에 있는 왕자를 보고 환호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마치 자신을 향해 환호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백마.
학회에서 내게, 내 연구 결과에 주목했던 사람들의 다수는,
내 affiliation이나, 내가 속한 그룹의 명성, 단순히 내가 그런 그룹에 속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내가 얻을 수 있었던 advantage로 인한 연구 성과 등을 보며 내게 접근 했던 것이었다.
사실 그 가운데 내 contents가 얼마나 된다고…

이번 학회를 통해서,
학문적으로, 많은 것을 배운 것 같지는 않지만…
내 자신에 대해, 내가 하는 일에 대해, 공학에 대해,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성전 미문의 거지

사도행전
3:9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및 하나님을 찬미함을 보고
10 그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의 당한 일을 인하여 심히 기이히 여기며 놀라니라
11 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으니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 나아가 솔로몬의 행각이라 칭하는 행각에 모이거늘
12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기이히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본문에서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미문에 앉아 있던 거지를 손을 붇들어 일으키는 장면이 나옵니다.
나면서부터 걸을 수 없었던 이 성전 미문의 거지를 베드로와 요한이 우리가 지난번에 성경공부시간에 보았던 것 처럼 ‘금과 은은 내게 없으나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라고 이야기를 하니 성전 미문의 거지가 일어나 걷게 된 장면입니다.

아마도 많은 사람이 이 성전 미문의 거지를 알고 있었을 겁니다. 성전을 늘 들고 나오다 보면, 늘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만한 장소에 앉아 있는 이 거지를 사람들은 보면서 이 사람을 향해서, ‘아 불쌍하다’ ‘참 안됐다’ 하는 반응으로부터 자기 자녀에게 허리를 구부려 귓숙말로, ‘너도 죄 지으면 저렇게 돼’ 라고 타이르는 반응, 혹은 그냥 피하는 반응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겠지만 이 사람은 이미 꽤 유명한 사람이었는지 모릅니다. 장애가 죄로 인한 하나님의 저주로 여겨지던 그 시대에, 이 거지는 어쩌면 그런 의미에서 어떤 피해야할 예로 여겨졌을 겁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갑자기 걷게 되었습니다. 아니, 그냥 걸었던 것이 아니고 뛰면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이것은 그냥 단순히 신기한 일 정도를 넘어서는 것이었습니다. 무엇인지는 알수 없으나 자신들이 가지고 있었던 기존의 파라다임이 무너지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죄에 의해 이렇게 되었다면 이 사람이 죄의 문제가 해결 되어야 이런 일이 일어 나는 것일테고, 죄는 하나님만이 사하실 수 있는건데… 아니… 무슨 선지자도 아니고 스스로 그렇게 claim하는 사람들도 아닌 두사람의 어부가 이런 일을 한 것입니다.

이런 엄청난 일이 일어 났으니 당연히 사람들은 이 두 사람을 주목했겠지요.
그런데 이 두 사람은 자신에게 사람들의 주목이 집중되는 것을 적극적으로 거부합니다. 아니 질색을 합니다. “아니 도대체 왜들 이러십니까, 이게 무슨 일입니까”
왜 그랬을까. 아니 그냥 일단 자신에게 집중하게 하고 그런데 이런 내가 사실은 예수의 제자다. 하는 식으로 이야기 했더라면 어떤 의미에서 더 효과적이지 않았을까요. 사실 이거 참 많이 우리가 생각하는 거지요. 나중에 훌륭한 과학자가 되어서 노벨상을 받는 자리에서 사실은 내가 그리스도인이다 라고 이야기 하면 얼마나 멋있겠느냐. 교회에서 이런 설교도 많이 듣고요.
그런데 이 두 사람은 아주 질겁을 합니다. 아이고 이러시면 아니되옵니다.

아마 이 사람들이 이렇게 했던 가장 큰 이유는,
이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예수가 꽉 차 있었’던 것이었을 것 같습니다.

인생과 말과 행동의 모든 목표가 예수님을 높이고 그분의 이름을 전하고 그분의 삶을 따라서 사는 데에 집중 되어 있는데, 갑자기 자신이 높아지게 되니 도무지 어떻게 이것을 참고 있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이 높여지는 것이 얼마나 천박한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한 이해가 절절하게 있었던 것입니다. 아니 이렇게 내가 주목받다간 예수님의 이름이 높여지는 것에 심각한 장애가 있겠다는 생각에 아주 질색을 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살면서 얼마나 많은 순간 우리의 이름이 높여지고 우리가 주목 받지 못하는 것 때문에 전전긍긍해 합니까? 퀄리 파잉 시험은 내가 잘 보려나, 결혼은 잘 할 수 있으려나, 다음주 시험은, 직장은, 논문 쓰는 것은… 결국 따지고 보면 사람들은 내게 attention을 주려 하지 않는데 나는 그것을 아주 desperately 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얻어 내기 위해 아둥 바둥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우리 삶 속에서 그것이 사라진다면 얼마나 우리가 많은 것으로부터 자유롭겠습니까?
그 대신 내가 아닌 하나님의 이름이 높여지는 것을 갈망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내 삶의 영역에서 나를 ‘높이시는’ 일은 하나님께서 필요에 맞게 하시도록 맡겨드리는 것입니다. 나는 그저 내가 할 일을 최선을 다해서 하는 것이지요. 사실 하나님은 그저 그분 자체로 영광스러운 분이시니,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이 하나님으로 드러나도록만 하면 됩니다. 괜히 내가 그 앞에서 치장을 할 필요가 없는 거지요. 오히려 그것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천박하게 가릴 뿐입니다.

저희 딸 민우는요, 때로 정말 멋진 그림을 그리고 나선 엄마 아빠에게 쪼르륵 그 그림을 들고 옵니다. 엄마 아빠가 잘 그렸다고 칭찬해 주면서 한번 안아주길 바라면서요. 글쎄요 그 칭찬이라는게… 잘했다고 말하면서 한번 꼭 안아주는 거지만 민우는 그걸 얼마나 좋아하는 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민우는 엄마 아빠를 몹시 사랑하거든요. 엄마 아빠의 주목을 받는 것이 그 무엇에도 우선하거든요.

언젠가 영광스럽게 하나님의 나라가 이땅에 충만히 회복되는 그때, 우리 하나님께서 꼭 안아주시면서 내가 너를 사랑한다. 그리고 다른 누구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고, 다른 누구의 인정보다 내 인정을 더 갈망하는 네 마음 내가 안다 하시는 거 모습을 정말 저는 매일 꿈꿉니다.
그것이 베드로와 요한을 베드로와 요한 되게 했고, 그들이 전한 예수님을 참으로 예수되게 했고, 그리고 오늘날의 우리를 참으로 우리되게 할 것입니다. 세상의 싸구려 거지 가치관에 의해 휩쓸리지 않는

===

벌써 몇년전에….
어디에선가 짧게 나누었던 이야기인데…
학회에 와서 사람들의 발표하는 모습을 보며,
또 학회에 와서 발표하고 사람들과 대화하는 내 모습을 보며,
이 내용이 다시 생각났다…

구두쇠가 되기

나는, 대단히 부자집에서 성장하지는 않았지만 돈이 쪼들리는 환경에서 자라지도 않았다.
때문에 대학, 대학원에 다니는동안 돈이 없어서 크게 고생한 기억이 없다.
따라서 절약을 한다는 것은 주어진 용돈을 아껴서 사고 싶었던 CD player를 사는 수준이었다.

대학교를 다닐때, 한달에 13만원정도를 학교에서 받았는데 (10만원 장학금 + 3만원 학교 내 아르바이트) 이 정도면 그 당시 꽤 넉넉한 것이었다.(그게 벌써 20년전 일이니…) 한국에서 대학원을 다닐때도 학교에서 매달 돈이 나왔고, 그 후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할때는 더 넉넉하게 되었다.

미국에 와서,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살면서 나는 아주 다른 경험을 하게 되었다.
처음 미국에 와서 얼마 동안은 지도교수를 잡지 못해서 한국에서 받는 국비유학장학금(정말 얼마 안준다!)에 의지했어야 했었고, 또 지도교수를 바꾸는 중간 중간등에는 늘 돈이 모자랐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경제적인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물론 때로 (솔직히 말하면 너무 자주) 양가에서 경제적인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우리는 기본적으로 우리가 학교에서 받는 생활비로 생활을 하려고 했기 때문에 참 많이 아껴야 했다.

옷가게중에서, 옷에 약간 하자가 있는 것들이나 반품이 된 것만을 모아서 파는 곳이 있다. 이런 가게에서는 옷을 아주 황당하게 판다. 그중 어떤 상품은 다소 황당할만큼 많이 하자가 있는 것도 있지만 잘 고르면 하자가 그리 크지 않은 (가령 주머니의 깊이가 너무 얕다던가, 단추 사이의 거리가 조금 균일하지 않다던가) 상품을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다.

처음 이런 가게에서 옷을 사러 갔더니, 가게는 지저분하고, 저소득층 사람들이 가득했다. (어떤 특정 인종, 어떤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약간 무섭기도 했고 서럽기도 했다.
그렇게 5-6불짜리 청바지를 하나 사가지고 오면서 3-4불짜리 카푸치노를 하나 사서 마시기도 했다. (어휴.. 정말… 얼마나 개념이 없는 짓인지…)

그런데,
지금 돌이켜서 생각해보면 나는 절약을 하려고 노력도 했고, 실제로 절약을 하기도 했지만 절약이 몸에 배지도 않았고 정말 절약을 어떻게 하는지 알지도 못했던 것 같다.
그렇게 조금 아끼다가도… 전혀 내게 어울리지 않는 사치품이나 기호품 등을 사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 당시로서는 내게 사치였던 한국 음식점에 가서 먹고 싶은 것을 자주 먹는 다던가, 값비싼 오디오를 산다던가, 매일 값비싼 음료를 사먹는 다던가 하는 것과 같은.

지금은 그럼 절약을 더 잘하고 있을까.
적어도 10년전의 나보다는 그런 것 같다. 절약을 한답시고 폼만잡거나, 한쪽에서 절약하면서 다른 쪽에서 펑펑쓰는 것 같은 잘못은 이제는 그리 자주 범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정말 검소하게 사는 사람들에 비하면 아직도 나는 참 멀었다.
꽤 많은 월급을 받으며 살고 있지만 늘 돈이 모자르다.

현재는, 내가 먹는 것, 내가 갖고 싶은 것을 사는 것, 생필품을 사는 것, 옷을 사는 것 등등을 모두 포함해서 하루 평균 10-12불 수준으로 살고 있는데 (하루 평균 식비 5-7불, 내가 밥을 사야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그리 불편하지 않다. 하지만 너무 자주 절제하지 못하고 쓰지 말아야 할 돈을 쓰기도 한다.

검소한 삶, 절약하는 삶은 훈련이자 훈련이 필요한 습관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그렇게 검소하게 살면서도 인색하지 않는 삶을 사는 것도 역시 훈련이 필요한 습관인 것 같다. 그건 또 다른 글에서 한번 얘기해봐야 할 것 같다)
아직도 너무 자주 씀씀이를 절제하지 못하는 나를 보면서 참 답답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하나님과 가족들에게 미안하기도 하다.

그러나 절약을 해야한다는 당위만 있고 요란하기는 했지만 실제 검소한 삶을 살지도 못했던 10여년 전의 나를 생각하면서 그래도 시간을 통해 이나마 성장시켜주신 하나님께 참 많이 감사한다.

그리고,
좀 더 훈련과 하나님과의 동행을 통해서…
검소하면서도 인색하지 않은 삶의 자세가 몸에 잘 배었으면 좋겠다.
앞으로의 삶을 통해 나를 좀 더 성장시켜 주실것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