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에 대한 몇가지 생각들 (9)

개인의 영적 성숙을 공동체에 떠넘기는 것은 위험하다.
그러나 매우 활동적인 개인 영적 성숙이 일어나고 있다고 가정할때, 그것을 가장 효과적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공동체이다.

어떤 사람이 새로 복음을 받아들이거나, 혹은 복음 안에서 성숙해가는 과정 속에서…
자신보다 조금 더 영적 성숙의 여정에서 앞서 있는 사람과의 인격적인 대화는 대단히 powerful한 효과가 있다.

몇년동안 책을 읽고, 기도하고, 성경을 연구하고… 하면서 얻어져야 할 것이,
어떤 사람과의 진솔한 한번의 대화를 통해서 얻어질수도 있다.

만일 어떤 공동체에 다양한 분야의 성숙함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면,
그 공동체에 속해서 그 많은 자양분을 받으며 자라는 것은 대단히 흥분되는 일이다.

그래서 어떤 공동체에 자신이 배울 수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과는 어떻게든 많고도 깊은 대화를 통해 뽕을 뽑아야 한다. ^^
그 사람이 귀찮아 할꺼야, 그 사람이 바쁘니까… 그럴게 아니다.

어떤 공동체에서, 자신이 어떤 면에서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의 영적성숙을 도울 수 있는 면이 있다면…
그 사람은 죽어라고 자신의 시간을 다른사람을 위해서 써야 한다.
그게 그 사람에게 그 자리에서 맡겨진 소명이다.

바람직하기로는,
한 공동체 안에 가능하면 다양한 분야의 성숙함이 공존하는 것이 더 좋다.

공동체에 대한 몇가지 생각들 (8)

서로 죄를 고백하는 공동체는 정말 대단히 powerful하다.
죄를 고백하기 때문에 가식적인 피상성이 자리하기 어려워진다.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인으로 성숙해가는 과정을 여러가지로 설명할 수 있지만,
죄에 대한 민감성이 커지는 것이 중요한 판단기준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예전에는 죄로 여기지 않던 것들 까지도 신앙의 성숙이 깊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뼈아픈 죄로 인식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죄와 싸울 힘이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것은 참된 공동체를 만드는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자신의 죄를 고백하자… 라고 했을때… 누가 그냥 정말 showcase로 죄를 고백하는 show를 한다고 해서,
서로 죄를 고백하는 일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흔히 서로 죄를 고백해야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그런 공동체를 경험하지 못한 리더가 쉽게 범하는 실수이다.
내가 이렇게 죄를 고백하면 뭔가 다른 사람들도 따라 하겠지… 그런 생각으로 했다간… 그냥 썰~렁~한 독백으로 끝나고 만다.

서로 죄를 고백하는 일은 성령께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듯이 공동체를 움직이실때 이루어진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공동체에 대한 몇가지 생각들 (7)

나는 현대 교회에서 공동체를 만드는 큰 장애물 가운데 하나는 ‘nice함’ 이라고 생각한다.
공감, 이해, 예의, 친절함 등등의 이름으로 사람들은 서로에게 매우 nice 하다.
이건 소위 ‘배운 사람들’ 사이에서 더 심하다.

그런데 서로 nice하게 대하기 때문에,
정말 꼭 해줘야하는 이야기를 못하는 경우가 많다.

반복해서 잘 못 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그거 아니라고 이야기해줘야 하는데… 그게 nice한 문화에서는 잘 안된다.

나는 이렇게 ‘nice함’이 교회 내에 넘쳐나는 큰 이유 가운데 하나는,
‘죄’를 가볍게 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어떤 사람이 하나님보다 커리어를, 돈을, 성공을 더 사랑하고 있다면,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매 순간 그 사람은 자신의 영혼을 갉아먹고 있는 것이다.
정말 심각하면서도 대단히 위험한 세계관과 생활습관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날카로운 송곳으로 자신을 계속 찌르면서 자해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면,
그 사람의 얼굴을 주먹을 날리는 한이 있어도 그 습관을 그치도록 해야하지 않는가.

돈을, 섹스를, 권력을, 세상을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왜 그런 마음이 없단 말인가.

공동체에 대한 몇가지 생각들 (6)

건강한 신앙공동체가 해야하는 가장 중요한 한가지를 뽑으라면 무엇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것은 본 회퍼가 이야기한 것이 아닐까 싶다. (정확한 quotation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누가 좀 찾아서 알려주었으면 좋겠다 ^^)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그리스도인으로부터 반복해서 복음을 들어야한다.

공동체가 해야하는 가장 근본적인 것은,
동료 그리스도인에게 반복해서 복음을 들려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이라면 정말 그 기본적인 복음의 이야기를 반복해서 듣고싶은 목마름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또한 실제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그 복음의 이야기를 반복해서 들으며 내가 정말 누구인가를 remind 해야하만 세상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다.

흔히 공동체라고 하면,
어려운 일을 도와주고, 힘들때 말 동무가 되어주고, 바쁜 일이 있을때 서로의 빈 구석을 채워주고… 등등을 생각하지 않는가?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복음을 반복해서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어려운 일을 도와주고, 자신의 속 얘기를 하고, 충고를 해주고, 경제적으로 서로 돕고… 등등이 참 좋은 일이지만 그것은 궁극적으로는 서로의 귀에 복음을 들려주는 일의 subset이 되어야한다는게 내 생각이다. 복음이란 총체적인것이기 때문이다.

그 모든 ‘좋은 일’들이 복음이라는 umbrella 아래에서 이루어지지 않을때 공동체는 pseudo-community의 함정에 빠지기 쉽다.

공동체에 대한 몇가지 생각들 (5)

나는 공동체가 중요하다고 물론 생각한다.
그런데 때로는 공동체를 이야기하는 어떤 이들은, 개인의 책임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공동체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각 개인이 하나님과 대면하고, 자신의 영혼을 돌보고, 자신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지는 것들이 힘이 드니까 좋은 공동체를 만나서 자신의 burden을 공동체에 지우고 싶어하는 것이다.

흔히 대학생 선교단체나 친밀한 교회 대학-청년부를 경험한 사람들중에서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을 많이 듣는다.
“예전에는 신앙이 좋았는데, 그 공동체를 떠나고 나서는 기본적인 경건생활도 잘 못하고 있다”

나는 건강한 공동체를 통해서 좋은 신앙을 유지하는 것이 참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때로 ‘좋은’ 공동체 안에 있으면 자신의 신앙이 건강하게 자랄 필요를 잃어버리게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정말 자신의 신앙의 실체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기 쉽기 때문이다.

그 공동체에서 다 하는대로 기도하고, 성경공부하고, 토론하고, 헌신하고, 고민하고… 했는데,
막상 그 모든 것은 ‘공동체’가 했던 것이지 그 자신이 주체가 되어서 한적이 없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또 다시 그렇게 자신이 스스로 서지 않아도 되는 또 다른 공동체를 찾아다닌다.

공동체를, 개인 신앙에 있어서의 책임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거나 그렇게 안주해서는 안될 일이다.

공동체에 대한 몇가지 생각들 (4)

아마 Wheaton college의 교수 중 한사람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어디서 읽었는지, 들었는지 완전 기억 안남 -.-;)
부흥(Revival)에 대해서 연구했던 분의 분석이었다.

19세기 이후 일어났던 부흥들을 살펴보면 대학교 캠퍼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경우가 매우 많았다고 한다.
왜 그랬을까를 생각해보면 대학교 캠퍼스가 일반적으로 tight-knit community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친밀한 공동체와 부흥과의 관계가 서로 연관성이 있다는 것인데…
나는 이것을 매우 흥미롭게 생각했다.

몇가지 생각.

1. 친밀한 공동체가 부흥의 필요조건이나 충분조건이라는 뜻은 물론 아닐 것이다.
2. 그러나 친밀한 공동체가 부흥을 만들어내는 매우 유리한 여건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는 있을 것이다.

가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아… 이 사람이 진짜 복음을 접해서 변하고 있구나… 하는 것이 확~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의 변화는 웬만하면 외부의 어떤 자극으로 쉽게 꺼지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친밀한 공동체 안에 들어가 있으면,
그 사람에게 일어나는 그런 선한 변화가 옆으로 쉽게 전염(?)되고,
때로는 그런 과정을 통해서 더 증폭되어서 더 강력한 형태로 변화가 나타내게되는게 아닌가 싶다.

공동체에 대한 몇가지 생각들 (3)

그저께 글에서 썼지만 어떤 사람이 공동체에 대하여 기대하는 수준은 대부분 그 사람이 경험한 공동체에의해 결정되는 것 같다.
경험했던 공동체가 그저 그렇다면, 기대하는 공동체 역시 그저 그런 수준까지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경험했던 공동체가 정말 깊은 것이었다면, 그것에 미치지 못하는 공동체는 늘 마음에 차지 않는다.

내가 유학생으로 공부할때,
한국의 내 친구는 이런 얘기를 내게 했었다.
돈 필요하면 얘기해라. 여기서 돈 모아서 보내줄께.

나는 대학때 그 친구가 선교여행을 간다고 했을때, 내 통장에 있는거 다 톨톨 털어서 그 친구에게 주고 한달 거지로 살았었다.

나는 그런 경험 때문에,
공동체가 어떻게 서로 재정적 필요를 채워주는가 하는 것에 대해 상당히 높은 기준을 가지고 있다. – 그렇다고 내가 그렇게 사는건 전혀 아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모습이, 내 공동체의 모습이 늘 마음에 차지 않는 것이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예전에 어떤 소그룹 성경공부를 할때,
어떤 친구가, 자기 여자친구에게 일어난 상당히 끔찍한 일을 이야기했던 적이 있었다.
우리는 그 친구와 여자친구를 위해서 눈물로 함께 기도했다. 그 둘은 그 후에 결혼하고 잘 산다.
차마 입에 담을 수 없을만큼 끔찍하고 아픈 일을 그렇게 나누며 기도했던 기억 때문에 나는 웬만한 나눔으로는 마음에 차질 않는다. – 그렇다고 내가 그렇게 사는건 전혀 아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모습이, 내 공동체의 모습이 늘 마음에 차지 않는 것이다.

특히 공동체의 ‘리더그룹’이 경험했던 수준은 그 공동체의 기대수준을 정하는데 대단히 중요한 것 같다.

공동체에 대한 몇가지 생각들 (2)

어떤 공동체가 되었건 그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핵심이 있기 마련이다.

가족이라는 공동체는 ‘관계’가 그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핵심이다.
사진 동호회는 ‘사진’이라는 공통 관심사가 그 핵심에 있다.
학교라는 공동체는 ‘교육’이라는 공동의 목표가 있다.

그럼,
교회는 그 핵심에 무엇이 있을까?

이 질문이 얼마나 우스운가? 당연히 예수님 아닌가.

그런데,
실제 교회들에서 하고 있는걸 보면 그게 그렇게 우습지 않다.
교회에서 ‘공동체’를 강조하는 모습을 보면 그것이 예수님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지 않아도 괜찮은 형식을 많이 취한다.

우리가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 서로 마음을 열고 많이 대화하자,
우리가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 서로 싸우지 말자,
우리가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 함께 놀러가기도 하고 봉사도 하고 시간을 많이 보내자…

나는 이런것들이 무의미하다고 당연히 생각하지 않는다.
서로의 관계를 build-up 해나가는 것은 공동체 형성에서 대단히 중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그 안에 예수님이 어디있는가 하는 것이 missing되어 있다면?

사진찍는 동호회에서는 궁극의 공통 관심사가 ‘사진’이어야 하듯이,
교회의 궁극의 공통 관심사는 ‘하나님, 예수님, 십자가, 복음, 하나님나라’이어야 한다.
그것 빼고 서로 사이좋게 지내는 방식으로 공동체를 만들려고 하는 것은 foundation 없이 집을 짓는 것과 같다는게 내 생각이다.

교회에서 함께 하는 끈끈한 것이 부족하다면,
일차적으로 점검해야하는 것은 관계를 개선시키는 테크닉이 아니라,
복음이 정말 풍성한가 하는 것이어야 하지는 않을까.

공동체에 대한 몇가지 생각들 (1)

내가 머리속으로만 꼭 써야지 써야지 하면서 미루어놓은 주제들이 몇가지 있다.
그중 어떤 것은 너무 scale이 커서 한번 시작했다하면 한달동안은 쓰게될 것 같고,
어떤 것은 생각이 다 정리되지 않아서 시작하지 못하는 것도 있다.

공동체에 대한 생각은 주로 후자에 해당하는 것이다. 내 생각이 너무 설익어서 제대로 모든 내용을 잘 cover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그래서 그냥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단편적인 생각 몇가지를 너무 길지 않게 한번 적어볼 생각이다.

나는 공동체에 대한 어떤 사람의 생각은 그 사람의 공동체 경험에 대단히 깊게 의존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모든 개념에대한 이해가 경험에 의존하긴 하지만, 공동체에 대해서는 특히 더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공동체에 대한 경험이 대단히 약하고 일천하다. 아주 단편적으로 건강한 공동체의 몇개의 단면들을 좀 경험해본 적이 있을 뿐이다.
그러니 내가 여기에 쓸 수 있는 것 역시 대단히 근시안적이고 제한적일터…

가슴이 먹먹할때는…

어제 잘 아는 한 동생으로부터,
최근 있었던 마음 무거운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마음이 많이 아프고 무거울 수 있는 이야기인데,
그걸 그냥 덤덤하게 말해주었다.

그 얼굴로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는 모습이 더 내 마음을 먹먹하게 했다.

내가 뭔가 작심을 하고 힘을 내어서 도움을 줄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가 무슨 지혜가 넘쳐나서 그 지혜를 흘려줄 수 있지도 않고,
아니면 내가 왕창 공감능력이 뛰어나기라도 해서 그걸 듣고 함께 많이 공감해주지도 못했다.

다만,
그 이야기는 내 마음을 많이, 많이, 많이, 많이, 무겁게 누르고만 있다.

이렇게 가슴이 먹먹할때는,
그리고 그 앞에서 내가 아무런 힘이나 도움도 주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그 먹먹함을 그냥 내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것이 기도가 되기도 한다.
그걸 기도라는 format으로 담아내지 않고, 그 먹먹함을 마음에 하나 가득 담고 그 안으로 하나님을 초청하는 것만으로 기도가 되기도 한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그 마음 속의 부담을 기도라는 format으로 풀어낼 힘이 없다고 느껴진다고 이야기하는게 더 맞는 이야기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