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쁜 놈이오

어제는 유난히 일이 많았다.
지금 내가 개발에 참여하고 있는 product가 좁게 보면 2개, 좀 넓게보면 4개라고 할 수 있는데…
그중 두개에 일종의 불똥이 떨어졌다.

급하게 data를 모으고, 분석을 해서 report를 만들어야 하게 되었다.

일단… 두개를 다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
그래서 회사에서 시간 되는데까지 하나를 일단 하는데 까지 한 70% 수준까지 해 놓고,
집에 와서는 두번째 작업을 했다.
저녁을 먹고나서도, 계속 식탁에 앉아서 끙끙거리며 해서 10시 조금 넘어서 몇사람에게 보내어서 feedback을 부탁했더니만…
아니 이 인간들이 바로 다들 답장을. -.-;

내일 아침 좀 일어나 조금더 손을 보고, 10시 미팅 전까지 아침에 좀 더 일을 하겠다는 원대한 꿈은 부서지고…
결국 그 밤에 채팅 수준의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더 마무리를 해야했다.

이 사람들은 이 밤에 왜 다들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일을 하는 걸까. 우씨…
그렇게 괜히 속으로 짜증을 좀 내다가…

아니, 가만 생각해보니,
그 밤에 이메일을 initiate한건 나였다는걸 깨달았다.

내가 그 사람들에게 몹쓸짓을 한 것이었군.

하나의 씨앗교회 책 추천 리스트

교회에서 두달에 다섯권씩 책 추천 리스트를 만들고 있다.
나는 책을 많이 읽는 사람도 아니고,
책을 많이 읽은 사람도 아닌데…
어쩌다보니 내가 그걸 좀 주도(?)해서 하는 모양새가 되어 버렸다.

그래도 교회에서 여러분들이 comment도 주시고, 추천도 해주셔서 잘 만들어 가고 있다.
책 리스트를 선정하고 나면, 내가 책 광고를 하고, 주문을 받아서 인터넷 최저가격보다 더 싸게 교인들에게 공급하고 있다. ^^

사실 매달 책이 잘 팔리는 것은 아니고, 열심히 준비해서 광고하고 밑져가면서 팔지만 호응도 그냥 미적지근… 한데.
그럼에도 꾸준히 하는 이유는,
심지어는 이 책들을 읽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믿는 것들이 어떤 것인지, 그 바운더리는 어떠한지 등등을 보여주고 remind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1월 추천 리스트
김세윤, 구원이란 무엇인가
존 스토트, 제자도
로안 윌리암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
김근주, 특강 예레미야
마르바 던, 안식

3월 추천 리스트
팀 켈러, 기도
자크 엘룰, 뒤틀려진 기독교
유진 피터슨, 이 책을 먹으라
우종학, 무신론기자 크리스찬 과학자에게 따지다
김세윤, 바른 신앙을 위한 질문들

5월 추천 리스트
바바라 브라운 테일러, 어둠속을 걷는 법
스탠리 하우어워즈, 하나님의 나그네된 백성
전인수, 김교신 평전
브래넌 매닝, 모든 것이 은혜다
고든 피 & 더글라스 스튜어트, 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잭 로저스, 예수, 성경, 동성애 (이 책은 그 내용이 다소 controversial 할 수 있기 때문에 ‘추천도서’로 넣지는 않았지만 책 소개는 했다.)

이제 이번주말에 광고할 7월 추천 리스트를 열심히 만들고 있는 중.
좋은 책 추천… 완전 환영합니다. ^^

머리가 잘 안돌아가면서…

정말 나도 예전만큼 머리가 잘 돌아가질 않는다. ^^

특히, 기억력의 저하는 현저하다.
무엇을 기억하는데에도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예전에 기억했던 것들도 가물가물한 것들이 많이 있다.

이해력은 크게 떨어지는 것 같지 않다고 생각이 되긴 하는데,
곰곰히 따져보면,
절대적인 이해능력 자체는 떨어진 것 같다.
다만, 이해를 하는 방법을 많이 노력해서 익혀 놓았기 때문에,
예전보다 부족한 이해능력으로도 비슷한 이해 performance를 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머리를 오래 쓰면 지구력이 예전보다 부족해서,
머리를 쓰는 것도 오래하면 능률이 많이 떨어진다.

내 brain도 벌써 50년 가까이 썼으니,
당연히 그 function이 떨어지는것은 당연할텐데…

다만,
점점 머리가 잘 안돌아가는 것을 경험하면서 내가 갖는 가장 큰 두려움은,
이해력, 암기력, 판단력등등이 떨어져서…
내가 그저 이전까지 가져왔던 생각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잘 하지 못하게 되고,
그저 예전의 생각에만 머무르게 되는 것이다.

사실 내게 있어 많은 ‘사고’는,
나를 독선이나 자기중심성으로부터 지켜주는 중요한 도구였다.

나이가 들어가면,
예전처럼 사고/생각을 통해 나를 지키는 것 이외에도,
만들어진 인격이 나를 지켜내는 것이 더 많아져야하는 것이 아닌가 싶은데.

머리를 쓰고, 부지런히 공부하고, 열심히 생각하고… 그건 차라리 쉬운데,
다듬어지고 성숙해진 인격이 나를 지키는 것은, 훨씬 더 힘들고… 어렵게 느껴지기만 한다.

사랑에 대한 단상들 (14)

두려움은 여러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지나치게 자신을 보호하려는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거나 공격하는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을 미워하는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고,
게으름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완벽주의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자기과시등의 모습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 모든 모습들의 핵심에는 결국 ‘나’가 있다.
‘나’라는 한계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혹은 ‘자기애’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두려움에 싸여 여러가지 왜곡된 모습들을 보이게 된다.

그런의미에서,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는다”는 성경의 말씀은,
촌철살인이다.

사랑에 대한 단상들 (13)

“Earning the right to be heard”라는 표현이 있다.

말하자면 이런거다.
어떤 나라에서 공산주의 혁명이 벌어지고 있었다. 자본가와 지주를 처단하고, 종교를 민중의 아편이라고 정죄하며 유물론적 공산주의 사상에 저항하는 것을 반동이라고 몰아부치는 폭풍우가 불고 있었다.
가차없이 공산 혁명을 진행시키며 많은 숙청과 처형이 벌어지고 있는데, 어떤 마을에 갑자기 전염병이 돌았다.
홍위병들은 그 전염병이 돌고 있는 마을에 선뜻 들어가지 못했다. 그래서 그 지역의 공산혁명이 주춤했다.

그런데,
그 마을에 박해를 받아 쫓겨다니던 그리스도인들이 들어갔다. 그리고 자신이 그 전엽병에 위험을 감수하고 그 마을의 사람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점차 그 전염병이 잦아들게 되었고, 홍위병들은 그 마을에 들이닥쳤다. 그리고 마을에서 전도를 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닥치는대로 잡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때, 그 공산혁명의 리더가 그 홍위병들을 저지하면서 말했다.
“Let them do it. They earned the right to be heard”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그 사랑이 그처럼 극단적이어야 했을만큼, 세상이 그로부터 멀어졌던 것이었다.
그 세상에 바로 내가 있(었)다.

코스타에 헌신?

21년전에 처음 코스타 집회에 참석한 이후,
계속 이리저리 돕고, 섬기고, 기도하고 했으니…
코스타에 헌신했다고 남들이 나를 보고 이야기할만 하다.

그런데,
사실 나는 한번도 코스타에 헌신한 적이 없었다.
솔직히 내가 처음 코스타에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돕겠다고 결심했을때에도,
내가 더 중요하게 생각했던 크리스천 미니스트리가 있었다.

한참 코스타일로 하루에 100여개씩 코스타 이메일을 주고 받고,
하루에 두어시간씩 코스타 관련 전화를 하면서 보낼 때에도,
솔직히 나는 코스타가 영원해야한다고 한번도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코스타를 섬기던 중간에라도 이게 아니라면 던져버릴 수 있겠다고 생각했었다.
(물론 그런 상황에 정말 맞닥드렸다면 많이 속상하고 아팠겠지만…)

내가 코스타를 섬기면서 잘못했던 것을 나열하라면 밤을 새워가며 할 수 있을 만큼 많지만,
내가 코스타를 섬기면서 잘했던 것을 한가지 들어보라면, 내가 코스타에 헌신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하나님의 사랑에 헌신했다.
(그 헌신이 물론 매우 오염되고 허물 투성이이긴 했지만…)

지난 21년간,
코스타에 헌신했으나, 하나님의 사랑에 헌신하지 않은 사람들도 만나볼 수 있었다.
솔직히 나도 아슬아슬하게 그 fine line을 넘나들기도 했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이 아닌 코스타에 헌신한 사람들은 결국 코스타에 헌신하지 못하게 되는 것을 보았다.
대단히 아이로니컬하다.

그런의미에서,
나는 이번 코스타 집회를 섬기면서 힘과 용기와 감동과 결단을 갖게된 사람들이,
코스타에 헌신하지 않기를 바란다.

하나님꼐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라는 외침이,
이들로 하여금 코스타가 아니라 그 사랑에 모든 것을 던져 헌신하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좀 조심스러운…

오늘 여기 쓰는 이야기를, 이런 public한 공간(?)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많이… 정말 많이… 조심스럽긴 한데.
어차피 이 블로그 보는 사람들이 뭐 대충 내가 아는 사람들이라고 보고 ㅋㅋ
그야말로 소그룹에서 친한 친구에게 나누듯이 한번 써본다.

나는 기도가 체질이 영 아닌 사람이다.
그래서 기도를 잘 못하기도 하고, 기도를 많이 하지도 못한다.
그런데, 늘 기도에 대한 목마름이 있고, 기도를 좋아하기도 한다.
그리고 기도를 깊이 하면서 경험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엇인가를 가끔 경험하기도 한다.

그중 하나는,
어떤 기도를 할때는…
내 몸의 어떤 부분에서 특정한 반응이 나타난다.
왼손이 찌릿해지는 반응이다. (정확히는 왼손부터 팔꿈치 까지가 쭉~ 찌릿해진다.)

대충… 20년쯤 전에 이런 것을 경험하기 시작했는데,
20년동안 이게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 반응일까 하는 것에 대해서 잘 알아보지 못한채 살아왔다.

기도를 간절하게 한다고 해서 이런 반응이 나타나는 것도 아니고,
‘올바른’ 내용의 기도를 한다고 해서 이런 반응이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어떤 특정한 기도를 할때… 왼손이 찌릿해지면서 어떤 강렬한 ‘느낌’을 경험한다. – 이게 말로 표현하기가 참 어려운데…

좀 어릴땐,
혹시 이렇게 손이 찌릿할때 누구에게 안수하면 병이 낫는건 아닐까 해서 슬그머니 그렇게 손이 찌릿할때 아픈 사람에게 손을 얹고 기도해보기도 했고,
그렇게 손이 찌릿할때 손을 펴서 어떤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면 특별히 그 기도에 어떤 능력이 있는 걸까 싶어 손을 들고 기도를 해보기도 했었다.

뭐 그런데… 별로 효능(?)이 없는 듯 ㅎㅎ

그래서….
내 나름대로는,
가끔 내가 하나님 마음에 맞는 기도를 할때, 하나님께서 그저 내게 일종의 confirmation을 해주시는 것이려니…
그렇게 생각하고있다.

그래… 지금 그 기도는 바로 내 마음에 합한 기도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확인해주시는 것이라고나 할까.

이번주에 당연히 내 온 마음이 시카고의 두 모임에 다 빼앗겨 있다.

그리고 뜬금없이 기도가 쏠리면…
혼자서 얼른 빈 conference room이나 차 안으로 들어가 짧게 5분씩이라도 그렇게 기도를 하고 있다.
그러면서 많이 울기도 하고…

그런데,
이번주에 그렇게 기도를 하는데 내내 그렇게 손이 저리다.
회사에서 일하면서 타이핑에 지장이 있을 정도까지.

하나님께서
그래… 너는 참 별볼일 없는데,
지금 하는 네 그 기도는 참 내 마음에 든다…
뭐 그렇게 말씀해주시는 것이 아닐까.

시카고의 두 모임의 현장에서 기도하면서 땀과 눈물로 뛰고 있는 우리 후배들이,
기도중에 어떤 경험을 하고 있는지 참 많이 궁금하다.

내게 크게 소리질러 주세요

살다보면,
참 많이 그리운 것이…
내게 큰 소리로 내가 이미 알고/믿고 있는 것을 일깨워주는 목소리이다.

내가 다 아는 것 같은 이야기,
내가 이미 그것에 헌신해서 살아온 이야기,
내가 심지어는 그것을 다른사람들에게 가르치기도 하는 이야기이지만…

막상 나도 그 이야기를 다시 간절히 듣고 싶을 때가 참 자주 있다.

그리고 그 목소리를 듣지 못하면,
많이 힘들고 외롭다.

밤이고 낮이고,
시카고에 내 마음이 다 쏠려 있는 이유이다.

하나님께서 그토록 사랑하시는 그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그 목소리가 들리도록 섬기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생각하며,
눈물이 핑 도는 이유이다.

다음 주에 일어나기를 기대하는 것들 (4)

무엇보다도,
사랑이 별과 같이 빛나게되길 간절히 바란다.

자기애, 헌신없는 감정, 자기 agenda를 이루려는 조작(manipulation), 어떤 대상에 대한 미움의 반작용으로서 나타나는 내편 감싸기… 등등과 같은 거짓된 사랑이,
유일한 사랑의 근원이신 그분이 친히 임재하심으로 말미암아,
초라하고 거짓된 것으로 드러나게 되길 바란다.

이 시대에 하나님의 사랑이 어떠한 것인지를 잃어버린 사람들,
쾌락, 성취, 승리, 비교우위 등등으로 사랑을 대체해버려 갈 방향을 잃어버린 사람들,
다툼과 정죄, 미움과 비난 이외에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사랑이 아니고 다른 대안이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집회가 되길 바란다.

사랑은 기독교의 도구이자 방편일 뿐 아니라,
기독교의 목표이기도 하다는 것이 명확해지는 집회가 되길 정말 바란다.

….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우리 간사 후배들에게…
그저 많이 미안할 뿐이다.